박근혜정부 '국립대 잡도리' 내막

보수성향 '우대' 진보성향 '칼질'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방송통신대학교를 포함한 국립대 세 곳의 총장 자리가 비어있다. 1년 가까이 혹은 1년 넘게 공석이다. 박근혜정부가 총장 임명제청을 반대하고 있어서다. "이유를 알려 달라"라는 세 후보자의 요구에 정부는 어떤 답변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세 국립대와 같은 처지였던 한국체육대학교는 네 차례나 후보를 바꾼 끝에 교육부의 승인을 받았다. '그들'의 선택은 '친박계'로 알려진 김성조 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이었다.

지난해 6월19일 서울대학교(이하 서울대)는 성낙인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신임 총장후보로 선출했다. 투표권이 있는 서울대 이사회 임원 15명 가운데 8명이 성 교수를 선택했다. 국립대인 서울대 총장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교육부가 대학에서 복수후보자(투표 1·2위)를 추천받으면 교육부 장관이 단수로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다. 복수후보자를 추천받는 이유는 검증 과정에서 1순위 후보자가 낙마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국립대 총장은
대통령이 재가

서울대는 즉시 성 교수를 신임총장으로 추대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 달도 못가 임명제청안을 재가했다. 같은 해 7월11일 박 대통령은 성 교수를 제26대 서울대 총장으로 임명했다. 서울대 개교 이래 첫 간선제로 뽑힌 총장이지만 인준 과정에 큰 잡음은 없었다. 성 교수는 7월20일 4년의 총장 임기를 예정대로 시작할 수 있었다.

또 다른 국립대인 충북대학교(이하 충북대)는 서울대보다 하루 앞선 6월18일 윤여표 약학대 교수를 1순위 총장후보자로 선출했다. 충북대는 당시 김승택 총장의 사퇴로 교무처장이 총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었다. 충북대는 서울대와 비슷한 시기 윤 교수에 대한 추천서를 교육부로 송달했다. 자체 윤리위원회의 검증 결과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 담겼다. 윤리위원회는 후보자의 연구실적과 논문표절 여부 등을 검증하는 기구다.

그런데 청와대는 8월19일에야 충북대 총장 임명제청안을 통과시켰다. 서울대와 비교하면 한 달 넘게 시간을 끈 것이다. 교육부는 내부 사정을 근거로 들었다. 학위수여식은 예정일보다 일주일 늦은 8월28일로 연기됐다. 교육부 사정 때문에 졸업자들은 졸업식 일정을 잡는 데 혼란을 겪어야 했다.


한밭대학교(이하 한밭대)도 정부의 '늑장'으로 신임총장의 임기가 뒤늦게 개시됐다. 같은 해 4월 송하영 건축공학과 교수를 1순위로 뽑은 한밭대는 석 달 후인 7월29일이 돼서야 정부의 재가를 받았다. 신임총장의 임기는 2014년 7월20일부터 2018년 7월19일까지로 공고됐다. 정부가 일처리를 서둘렀다면 공고된 임기를 위배할 이유가 없었다.

총장 임명 거부
이유는 못 밝혀

그나마 두 대학은 사정이 나은 편에 속했다. 공주대학교(이하 공주대)와 방송통신대학교(이하 방통대), 경북대학교(이하 경북대)는 아직까지 총장 자리가 공석이다. 이들 대학은 총장이 없고, 각각 직무대행이 총장업무를 보고 있다. 공주대는 1년2개월째 총장이 공석이며, 방통대는 10개월째 총장실이 비어 있다. 경북대도 총장의 부재로 8개월째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교육부는 이들 3개 대학이 추천한 총장후보자에 대한 임용제청을 거부했다. 그러면서 거부사유는 밝히지 않았다. 역대 정부 가운데 '자질'을 근거로 총장 임용이 거부된 사례는 드물다. 정의당 정진후 의원이 지난 2월 공개한 '국립대 총장 임용제청 거부 사례'를 보면 노무현정부 때는 단 1건의 거부권 행사가 있었고, 이명박정부 역시 5년간 6번을 반대하는 데 그쳤다.

더구나 두 정부는 위장전입 및 위장증여, 공무원 영리행위 금지 위반, 교육공무원법 위반 등의 거부사유를 명확히 고지했다. 그런데 박근혜정부는 2년 동안 무려 7차례나 임명제청을 거부하면서도 그 이유를 당사자에게 알리지 않았다. '비공개' 또는 '국립대 총장으로서 부적합'이 전부였다.

공주대와 방통대, 경북대 후보자는 교육부를 상대로 임용제청 거부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교육부는 이 소송에서 연이어 패소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올 1월 공주대 김현규 총장후보자가 교육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지난해 9월 1심에서 승소한 김 후보자는 마지막 대법원 판결만을 남겨놓고 있다.

방통대·경북대·공주대 총장 공석 논란
한체대 친박 정치인 '낙하산 총장' 의혹


방통대 류수노 총장후보자도 올 1월 1심에서 승소했다. 남은 항소심 역시 이변이 없는 한 승소가 유력한 상황이다. 경북대 김사열 총장후보자의 경우는 같은 달 소송을 제기해 교육부와 법정공방에 돌입했다. 현재까지의 일관된 판례는 "교육부가 행정절차법과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기본권, 대학의 자치권을 훼손했다"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세 대학에 압박을 넣고 있다. 지난 3월 교육부 명의로 '새로운 총장후보자를 선출하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진행 중인 소송은 '교육부와 개인 간의 분쟁'이라고 못박았다. 교육부는 임용을 거부한 세 후보자와 일체의 접촉을 피하고 있다. 모두 황우여 전 새누리당 대표가 교육부 장관에 취임한 이후 벌어진 일들이다. 그러나 황 장관에게 '실권'이 있다고 보는 견해는 찾기 어렵다. 더 윗선인 '청와대'의 존재 때문이다.

박근혜정부 들어 국립대 총장은 모호한 이유로 임용절차가 지연되는 일이 잦았다. 각 국립대에는 직무대행 체제가 유행했다. 한경대학교(이하 한경대), 부산교육대학교(이하 부산교대), 금오공과대학교(이하 금오공대)는 2012년 12월~2013년 1월 후보자를 추천했음에도 반 년 가까이 총장 자리가 공석이었다. 한국체육대학교(이하 한체대) 역시 자율추천한 후보자가 교육부의 반대로 낙마했다.

정권과 '코드'가 맞는 총장은 시간이 걸려도 청와대의 검증을 통과했다. 한경대 태범석 총장은 보수단체인 범시민사회단체연합(범사련) 소속이다. 범사련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적대적인 단체로 알려져 있다. 부산교대 하윤수 총장 역시 보수성향으로 분류된다. 하 총장은 TK(부산·경남) 출신으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교육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금오공대 김영식 총장 또한 이명박정부 때 대통령 자문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의장으로 활동했다.

보수 성향은
무조건 통과

임명제청이 거부된 세 후보자는 나란히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거나 정권 비판적인 활동을 한 것으로 오해받았다. 대표적으로 류 후보자(방통대)는 지난 2009년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과 함께 이명박정부를 규탄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한 바 있다. 김 후보자(경북대)의 경우도 지난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 성명에 참여한 전력이 있다.

반면 또 다른 김 후보자(공주대)는 억울함을 호소한다. 지난 2011년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퇴진 촉구, 교수 1000인 선언'에 이름을 올린 그는 "서명한 사실이 없다"라는 입장이다. 교육부 안팎에선 '김 후보자가 진보성향으로 찍혀 제청이 거부됐다'라는 설이 파다하다.

한국교통대학교(이하 교통대) 총장 선출 과정에선 지난 정권과 현 정권이 맞부딪혔다. 2013년 4월 장병집 당시 총장이 물러난 교통대는 권도엽 전 국토해양부 장관을 1순위 후보자로 선출했다. 그러나 'MB맨'의 귀환은 역풍을 불러왔다. 정치권까지 가세한 비판여론에 권 전 장관은 같은 해 7월 후보직을 사퇴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의 '교통정리'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교육부는 권 전 장관이 사퇴한 직후 총장후보자 재추천을 교통대에 요구했다.

9개월을 허비한 교통대 총장 공백은 김영호 전 대한지적공사 사장이 2014년 1월 임명돼며 갈무리됐다. 후보군 가운데 유일한 외부 인사였던 그는 행정안전부 1차관을 지낸 관료로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공교롭게도 박근혜정부는 지금껏 세 번의 국무총리를 모두 '성대' 출신으로 지명했다. 김 총장이 임명된 배경에도 '출신학교가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TK·구미·성대 출신은 '프리패스'
교육부 묻지마 인사 배후엔 청와대?

표면적으로 국립대 총장 임명제청권은 교육부 장관에게 있다. 교육부 장관은 '교육공무원 인사위원회'의 자문을 받는다. 인사위원회에는 교육부 소속 고위공무원이 대거 포진해있다. 차관을 위원장으로 기획조정실장, 대학지원실장 등 내부인사 5명과 전문직 외부인사 2명이 후보자를 검증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이번 정부 들어 인사위원회는 청와대의 '거수기'로 전락했다. 이는 지난 2012년 국립대 총장 선거를 간선제로 전환할 당시 우려됐던 부분이기도 하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 출석한 나선화 문화재청장은 '(문화재청이 관리하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총장을 왜 선임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청와대가 결정하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사실상 청와대의 결정을 인사위원회가 따르고 있다는 증거다.


이 같은 청와대의 '실력행사'는 국립대를 길들이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9일 임명된 이남호 전북대학교 총장은 박근혜정부 핵심 국정과제인 '창조경제'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 정부가 추진한 '창조경제대상 창업경진 대회'에 적극 협력한 데 이어 지난 20일에는 전북창조경제혁신센터 이사장에 내정됐다. 앞서 이 총장은 '정부의 창조경제 핵심산업인력 양성을 위한 특성화 전문대학 육성'을 올해의 목표로 꼽았다.

26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안동대학교(이하 안동대) 권태환 총장과 창원대학교(이하 창원대) 최해범 총장도 마찬가지다. 먼저 권 총장은 지역 인터뷰에서 창조교육혁신센터 설립, 총장 직속 미래창조위원회 설치 등을 공언했다. 안동대는 지난해 전국 대학 가운데 최초로 '창조경제실천대회'까지 열었다.

최 총장이 보여준 성의도 권 총장에 못지않다. 그는 지난해 총장 도전을 앞두고 응한 인터뷰에서 "창의적이고 도전정신을 가진 인재를 양성해 창조경제 구현에 이바지하고 지역사회 발전의 견인차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창원대는 학내에 'COMPASS 창조경제타운'을 운영하고 있으며, 교육부가 주도하는 산학협력선도대학(LINC) 육성사업에 적극 동조하고 있다.

감사원 움직여
국립대 주물럭

박근혜정부는 국립대 총장을 쥐락펴락하면서 교수들을 상대로는 사정작업을 벌이고 있다. 감사원은 지난해 국가 R&D(연구·개발)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에 착수했다. 감사원이 적발한 연구비 부실 관리 대학에는 서울대와 전북대, 경북대가 모두 망라됐다. 당장 내년 총장 선거를 앞둔 국립대 입장에선 정부의 이 같은 압박이 반가울 리 없다. '후보자를 잘못 뽑았다가 보복 당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각종 비리로 몸살을 앓던 한체대는 2013년 3월 김종욱 당시 총장이 물러난 뒤 4차례나 총장 후보를 바꿨다. 교육부는 온갖 이유로 한체대가 추천한 후보자에 딴지를 걸었다. 최종적으로 한체대가 고른 안전한 선택지는 김성조 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이었다.


경북 구미 출신안 김 전 의장은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을 지낸 '친박계' 정치인이다. 체육계에 어떠한 연고도 없음에도 전체 47표 중 36표를 득표해 지난 1월 후보자로 추대됐다. 반대로 일관하던 청와대는 바로 다음 달 김 전 의장을 총장으로 임명했다. 교육부 안팎에서 제기된 낙하산 논란에는 꿈적하지 않았다. 'TK·구미·성대' 출신에게만 '프리패스'를 내 준 셈이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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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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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