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 쟁탈전> 유통공룡 칠국지 '필살기 열전'

‘황금거위 잡아라!’굴지 재벌들 불났다

[일요시사 취재1팀] 이광호 기자 = 서울 시내 면세점 쟁탈전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대기업 몫 면세점 2곳을 차지하기 위해 재벌가 7곳이 뛰어들었다. 각 기업은 저마다 승부수를 띄우며 그룹의 미래를 내다보고 있다. 면세점사업은 흔히 ‘황금알 낳는 거위’로 비유되고 있다. 유통업계는 시내 면세점이 경기 침체에도 수익을 내는 마지막 노다지라고 입을 모은다. 면세점 입찰 대전의 승자는 과연 누가 될까.

 
1일 서울 시내 면세점 입찰이 마감되면서 서울 시내 면세점 쟁탈전이 본격화되고 있다. 대기업 몫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권 카드는 총 2장이다. 면세점 전쟁에 뛰어든 대기업은 호텔신라-현대산업개발의 합작법인인 HDC신라면세점, 현대백화점그룹, 롯데면세점, 신세계그룹, 한화갤러리아, SK네트웍스, 이랜드그룹 등 총 7곳이다. 이들 중 2곳만이 사업권을 획득하게 된다.

7곳 뛰어들어
2곳만 사업권
 
서울 시내 면세점 전쟁에 뛰어든 기업 모두 면세점 사업권 획득 시 그룹의 성장동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룹 경영을 이어받은 후계자로서 사업수완을 검증받을 수 있는 잣대로 작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각 기업들이 이를 악물고 사업권 쟁탈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HDC신라]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손을 맞잡았다. 삼성과 현대의 2·3세가 서울 시내 면세점 쟁탈을 위해 힘을 합쳤다. 둘의 연대는 지난 3월 초 시작돼 직접 대면하면서 논의가 급물살을 타 합작사 설립에 전격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용산 아이파크몰 부지를 가진 현대산업개발과 면세점 운영 노하우가 있는 호텔신라가 모두 이기는 게임이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호텔신라와 현대산업개발 경영진들은 지난달 25일 시내 면세점 사업 예정지인 용산 아이파크몰에서 합작법인 HDC신라면세점의 출범식을 열었다. HDC신라면세점은 현대산업개발과 계열사 현대아이파크몰이 각각 25%, 호텔신라가 50%의 지분을 출자했다. 초기 자본금은 200억원이며 사업 1차 년도에 총 3500억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공동대표에는 양창훈 현대아이파크몰 사장과 한인규 호텔신라 운영총괄 부사장이 선임됐다. HDC신라면세점은 6만5000㎡에 달하는 세계 최대 도심형 면세점 ‘DF랜드’를 조성해 동북아시아를 대표하는 거점형 면세점으로 키우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 중 아이파크몰 4개 층에 2만7400㎡에 400여개의 브랜드가 들어서고 나머지 3만7600㎡에는 한류 공연장, 한류 관광홍보관, 관광식당, 교통 인프라와 주차장이 들어선다. 이외에도 대형 관광식당과 한류전시관 등도 문을 연다.
 
HDC신라면세점은 서울 용산을 베이스캠프로 삼아 명동, 종로, 신촌, 강남을 모두 아우르는 서울 관광의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특히 입지에 대한 자신감이 크다. 용산 아이파크몰에 들어설 HDC신라면세점은 KTX, 1호선, 경춘선 등이 연결되는 역사 내에 위치해 있다. 이러한 이점을 이용해 중국 최대 여행사와 협조해 관광객을 유치할 계획이다. 
 

[현대백화점]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중소·중견기업 등과 합작해 ‘현대DF’를 설립하고 서울 시내 면세점 입찰에 참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현대백화점그룹이 선택한 후보지는 삼성동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이다. 면적은 7만2439.45m2에 달한다. 지하 4층, 지상 10층 건물이다. 코엑스 단지와 연결돼 있어 관광 인프라가 뛰어나다. 도심공항터미널과도 연결돼 있어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유입되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에 지하철 2호선과 9호선 외에 향후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와 고속철도(KTX), 위례∼신사선 건설이 예정돼 있어 교통망의 허브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인근에는 파크하야트호텔, 인터컨티넨탈호텔이 있다. 파르나스호텔은 신축 중이며 내년에 완공될 예정이다. 특급호텔뿐만 아니라 한류 문화 콘텐츠 전문공간 SM타운 등도 있어 외국인 관광객의 구미를 당길 만하다. 현대백화점그룹 측은 무역센터점이 ‘쇼핑-숙박-출국’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지역이라는 점을 내세우며 외국인 관광객만 연간 1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대DF의 초기 자본금은 100억원이다. 주주 간 약정을 통해 향후 자본금 규모를 1500억원대로 늘릴 예정이다. 또 면세점 투자비용 전액을 100% 현대백화점그룹의 자기자본으로 조달하는 등 무차입 경영을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현대DF합작법인의 지분은 현대백화점 50%, 현대백화점과 한국무역협회가 공동 출자한 한무쇼핑이 20%, 모두투어네트워크가 17%를 각각 보유하게 되고, 나머지 지분 13%는 엔타스듀티프리, 서한사, 현대아산, 제이엔지코리아, 에스제이듀코가 나눠 갖게 된다.
 
 
[롯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동대문 패션 중심지인 ‘롯데피트인’을 면세점 부지로 확정했다. 지난 2013년 문을 연 피트인은 지하 3층~지상 8층 총 11개 층으로 총면적 1만9286㎡ 규모에 약 190개 브랜드가 입점해 있는 복합쇼핑몰이다. 롯데면세점은 중소면세사업자인 중원면세점과 복합 면세타운 형태의 면세점을 선보일 계획이다. 롯데면세점이 5개 층에 패션, 시계 액세서리를 맡고 중원면세점이 2개 층에 술, 담배, 잡화를 선보일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서울디자인재단과의 협력을 통해 동대문 상권을 살리고 관광활성화에도 적극 나선다는 방침이다.
 
피트인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2·4·5호선)에 위치해 관광객들이 찾아오는데 편리하다. 역사 지하에서 바로 쇼핑몰로 들어갈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여기에 바로 건너편에는 동대문의 랜드마크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등 복합쇼핑몰들이 들어서 있어 관광하기에 좋은 환경이다.
 
경기악화에도 꾸준히 수익내는 노다지
대진표 확정…7강 구도 ‘누가 먹을까’
 
면세점업계 1위인 롯데면세점은 특히 중국인 관광객 사이에서 인지도가 높아 기본적으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예로 피트인은 중국인 관광객을 잡기 위해 매월 첫째주를 ‘차이나 위크’로 정하고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관광명소로 알려져 있어 서울 시내 면세점 중 최대 격전지로 꼽히고 있다. 
 
[신세계]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국내 최초의 백화점이라는 상징성이 있는 ‘명동 본점 명품관’을 면세점 부지로 낙점했다. 신세계 명동 본점의 면적은 1만8180㎡로 지하 1층 지상 6층 건물이다. 명동 본점은 과거 ‘미쓰코시 경성점’이 있던 곳으로 역사적 가치를 갖고 있는 곳이다. 명동 본점에는 명품브랜드들이 즐비하다. 근대건축의 모습을 재현한 중앙계단, 앤틱 스타일 엘리베이터 등도 볼거리다. 뿐만 아니라 제프 쿤스, 헨리 무어, 호안 미로 등 세계적 예술가들의 작품들도 전시돼 있다.
 
신세계 명동 본점 옆에는 SC은행이 있는데 이 은행 건물도 역사적 가치가 높다. 근대건축물로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돼 있기도 하다. 신세계 그룹 축은 SC은행 건물에 상업사박물관, 한류문화전시관 등을 설치할 예정이다. 아울러 신세계 본점 명품관 맞은편에는 화폐박물관도 볼거리다. 신세계그룹 측은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명동과 면세점, 남대문시장, 남산을 도보로 돌아보는 ‘관광 둘레길’도 조성할 방침이다.
 
신세계 명동 본점이 위치한 곳은 ‘외국인 반 내국인 반’이라고 할 정도로 관광객이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인근 명동성당 바로 앞에는 게스트하우스와 서울로얄호텔 등이 있어 관광객들의 숙박문제가 해결된다. 신세계그룹 측은 면세점 사업을 위해 삼성생명 주식 600만주를 매각해 7000억원에 달하는 현금을 확보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63빌딩을 면세점 후보지로 낙점했다. 외국인 관광객을 여의도 지역으로 유치해 63빌딩을 쇼핑·관광 메카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63빌딩에는 아쿠아리움, 아트갤러리, 쇼핑·식음료 시설이 있고 인근에는 한강공원, 선유도공원 등이 있다. 63빌딩 내 면세점 규모는 9900㎡ 정도다. 여기에 엔터테인먼트 및 식음시설 2만6400㎡ 내외의 면적을 연계해 63빌딩을 컬처 쇼핑 플레이스로 재탄생시킨다는 계획이다. 한화갤러리아는 기존 아쿠아리움을 새단장하고 한강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테라스 공간을 조성할 계획도 갖고 있다.
 
저마다 승부수 띄우고 우위 점쳐
선정되면 막대한 이익 창출 기대
 
한화갤러리아는 63빌딩 내 면세점 유치 시 국회의사당, 한강유람선 여의도 선착장, 노량진 수산시장 등을 여의도 관광 벨트로 키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63빌딩에 들어설 면세점의 콘셉트는 ‘럭셔리로의 출발 시간’이다. 한화갤러리아만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담겠다는 것이다. 또한 면세점 특화존을 설정해 신진 디자이너 및 사회적기업 제품도 배치한다는 방침이다.
 

[SK]
 
문종훈 SK네트웍스 대표는 동대문이 한국 최고의 관광명소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동대문 케레스타(옛 거평프레야)를 면세점 후보지로 선정했다. 케레스타는 현대백화점의 도심형 아울렛과 워커힐 면세점이 함께 구성되는 형태로 재탄생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케레스타의 1층부터 9층까지는 현대 아울렛이 계약했으며 나머지 1만5180㎡ 10층부터 14층까지는 SK네트웍스가 시내면세점 후보지로 점찍어 놨다.
 
SK네트웍스가 선정한 동대문 케레스타는 인근 동대문역과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도보로 불과 5분 남짓한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접근이 용이하다. 또한 2km 반경 내 신규로 공급될 예정인 호텔 객실 수는 2500여개로 기존 2500개와 합하면 총 5000여개 규모로 기존 면세점 주변 객실 수를 압도한다.
 

입지 선정이 마무리됨에 따라 SK네트웍스는 면세점 사업모델 등 구체적인 전략수립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특히 글로벌 사업역량을 바탕으로 지역사회 및 중소기업과의 협력을 강화하며 SK가 보유한 기술력과 인프라를 활용해 이국인 관광객들의 편의성을 극대화하는데 주력할 계획이다.

 
[이랜드]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은 면세점 후보지로 홍대 상권을 선택했다. GS건설과 함께 특1급 호텔로 개발계획 중이었던 홍대입구에 위치한 서교자이갤러리 부지로 최종 확정했다. 서교자이갤러리의 장부가는 740억원이다. 면적은 6735㎡인 이곳에 연면적 1만4743㎡으로 차별화된 면세점을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면세점 전쟁에 뛰어든 기업들이 주로 그룹 계열 건물에 면세점 후보지를 정한 반면 이랜드그룹은 과감하게 자사건물이 없는 홍대 지역을 택했다. 다른 기업과 후보지가 겹치지 않아 사업자 선정에 있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게 된 셈이다.
 
홍대지역은 최고의 관광지로 이미 급부상했으며 이대-신촌-홍대와 한강은 물론 K-컬처 허브인 상암동까지 바로 연결돼 있어 최적의 장소로 평가된다. 특히 세계 최대 면세 기업 듀프리와 중국 최대 여행사 완다그룹 여행사와 손을 잡은 것도 파격적이다. 듀프리는 전 세계 시장 점유율 25%를 점하고 2000여개 매장을 보유한 스위스 면세기업이다. 듀프리는 이랜드그룹에 면세 사업 운영 노하우를 지원할 계획이다.
 
완다그룹 계열사인 완다그룹 여행사는 중국 전역에 11개 여행사를 인수합병(M&A)했고 추가 9개 M&A를 통해 총 20개 여행사를 합병 운영하는 중국 최대 여행사다. 이랜드그룹은 완다그룹 여행사와 함께 기존 저가 쇼핑 관광으로 중국 내 한국 여행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긍정적인 이미지로 바꿔 중국인 관광객을 한국으로 다시 끌어들인다는 계획이다.

6가지 심사 평가
결과 7월중 발표
 
관세청은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자 선정을 위해 6가지 심사 평가표를 마련했다. ‘특허보세구역 관리역량’(250점)과 ‘운영인의 경영능력’(300점), ‘관광 인프라 등 주변 환경요소’(150점), ‘중소기업 제품 판매 실적 등 경제·사회발전을 위한 공헌도’(150점), ‘기업이익 사회 환원 및 상생협력 노력 정도’(150점) 등이다. 결과는 7월 중 발표될 예정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서류 심사만으로 업체 간의 차이를 구별하기 쉽지 않다”며 “누가 선택 되든 특혜 의혹이 일게 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정 재벌가가 2개의 사업권을 가져갈 경우 재벌가 몰아주기 비난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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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