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보는 전두환 회고록

박정희처럼… "7년 더 하려 했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전두환 전 대통령이 회고록을 집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출간은 이르면 내년 초로 예고됐다. 벌써부터 회고록에 담길 '비사'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역대 대통령은 저마다 회고록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을 주장했다. 군부 쿠데타와 광주 학살, 삼청교육대로 기억되는 전 전 대통령이 자신의 과거를 미화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요시사>는 전 전 대통령의 발언과 기록 등을 토대로 '전두환의 시간'을 재구성했다.

1989년 12월31일 인권변호사 출신의 한 초선 국회의원이 증언대를 향해 자신의 명패를 집어 던졌다. '품위를 지키라'는 동료 의원들의 성토가 잇따랐다. 당시 민주당 의원이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5공 청문회 도중 "감정을 다스리지 못했다”라며 사과했다.

그렇지만 노 전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반문했다. "(오늘) 증언의 내용과 제 행동 중 어느 것이 더 비난 받아야 하는지요." 증인 신분으로 소환된 전두환 전 대통령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청문회장을 빠져나갔다.

발포명령 내렸나

5공 청문회는 무엇 하나 진실이 규명되지 않은 채 1990년 1월1일 폐회했다. 전날 평민당 이철용 의원이 전 전 대통령에게 달려들어 "전두환 이 살인마야!"라고 윽박지른 것이 뇌리에 남은 마지막 모습이다. 여당인 민정당은 야당의 공세에 육탄방어로 맞섰다. 전두환정권 시절 있었던 수많은 의혹들은 오늘날까지 '의혹'으로 남았다.

당시 증언대에 올라선 전 전 대통령은 언론 통폐합, 일해재단 비자금, 친인척 부정부패 등 5공 비리에 대해 함구했다. 광주민주화운동 때 자행된 신군부의 살상 진압은 '자위권 행사'라고 주장했다. 전 전 대통령은 5·18 희생자 유족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27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마찬가지다.


지난 19일 전 전 대통령이 회고록을 집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00년 무렵부터 전 전 대통령을 보좌해 온 민정기 전 비서관은 "전 전 대통령이 수년 전부터 조금씩 회고록을 준비해왔다"라며 "내년 초·중순께 출판이 가능할 것 같다"라고 <한겨레>에 밝혔다. 전 전 대통령의 측근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도 "(회고록) 원고가 거의 완성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전 전 대통령이 회고록 집필에 착수한 시점은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았다. "오래 전부터 준비해왔다"라는 것이 측근의 설명이다. 민 전 비서관은 <한겨레>에 "전 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그전에 없던 대통령 기록담당비서관직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 기록물과 관련 자료들에 관심이 많았다"라며 "꾸준히 일기도 써온 만큼 회고록 분량은 굉장히 방대해 책 한 권으론 안 될 것"이라고 전했다.

전 전 대통령의 회고록 집필은 민 전 비서관 등 측근들이 돕고 있다. 자료를 정리해 보고하면 대통령이 '재가'를 내리는 방식으로 알려졌다. 초미의 관심사인 회고록 내용에 대해선 "5·18도 그렇고 당연히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에 대해 말씀하시겠죠"라는 것이 전 전 대통령 측의 입장이다. 생존하는 전직 대통령 가운데 회고록을 내지 않은 대통령은 전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이승만·박정희·최규하 전 대통령은 각자의 사정으로 회고록을 남기지 못했다.

현재 집필 중…내년 초 출간 예정
벌써부터 비사 둘러싸고 논란 증폭
10·26, 5·18, 비자금…진실 밝힐까

그런데 전 전 대통령이 회고록을 준비해왔다는 사실은 3년 전인 2012년에도 보도됐다. 당시 JTBC는 전 전 대통령과 예일대 학생들의 간담회를 보도했다. 이때도 전 전 대통령의 측근은 "회고록을 쓰기 위해 자료를 수집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인 탓에 회고록 출간이 미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간담회에서 전 전 대통령은 임기 7년의 대통령직을 한 번 더 하려 했다는 비화를 공개했다. 그는 "내가 대통령을 7년 했는데 (원래는) 프랑스식으로 7년씩 두 번 하려다 '잘못하면 내가 3~4번 해야겠다'는 모순에 빠지거나 불행한 사태가 일어날까봐 딱 7년만 했다"라고 말했다. 발언의 맥락상 전 전 대통령이 예로 든 '모순'은 이승만 전 대통령, '불행'은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 해석된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전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과 여러 인연으로 얽혀있음이 정설로 여겨진다. 전 전 대통령은 유신체제 들어 노태우 전 대통령과 함께 출세코스를 밟은 군인이다. 그래서인지 전 전 대통령은 지금껏 집권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꺼렸다. 그는 "급작스럽게 전임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나서 내가 사건을 조사하다 보니 대통령이 됐다"라고만 했다. 때문에 이번 회고록에 박 전 대통령이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 관심이 쏠린다.


'영애'였던 박근혜 대통령과의 인연 역시 눈길을 끄는 부분이다. 전 전 대통령은 정권을 잡은 직후 유신체제 인사를 대거 포섭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력을 빼앗긴 박 대통령 입장에선 꺼림직한 대목이다.

실제 박 대통령은 전두환정권 시절 일체의 외부 활동을 하지 못했다. 그의 자서전을 보면 당시 신군부를 못마땅하게 여겼음이 읽힌다. 박 대통령은 "(10·26 이후) 아버지의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들조차 싸늘하게 변해가는 현실은 나에게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사람들은 뚜렷한 신념 없이 이쪽과 저쪽을 쉽게 오갔다. 사람이 사람을 배신하는 일만큼 슬프고 흉한 일도 없을 것이다"라고 적었다.

'전두환 회고록'은 결과적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쓴 <대통령의 시간>처럼 박 대통령의 '예민한 구석'을 건들 것으로 전망된다. 회고록 출간에 앞서 대통령기록물을 열람할 때도 현 정부가 방해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근혜정부는 출범 직후 '사정 1호'로 전 전 대통령을 겨냥한 바 있다. 전 전 대통령으로서는 여론의 반발뿐 아니라 권력과의 친소관계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 5공 청문회에 출석한 전 전 대통령은 두 개의 '연설문'을 챙겨왔다. 이 가운데 '사과의 메시지'가 약한 것을 선택해 읽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 전 대통령은 12·12사태와 관련해 "우발적인 사건이었을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선 "군인복무규율에 따라 불가피한 상황에서 (자위권이) 행사된 것"이라며 "계엄사의 작전지침이 하달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방적 주장만?

전 전 대통령의 이 같은 생각은 바뀌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전 전 대통령의 측근은 "어떤 것이 진실이냐를 따져볼 여지가 생길 것"이라고 자신했다. 민 전 비서관은 "전 전 대통령의 전체 생애를 놓고 봤을 때 그 부분(5·18, 12·12)의 시간은 1년가량으로 길지 않지만 논란이 많았던 만큼 알려지지 않은 내용들을 상당 부분 기술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전 전 대통령은 "좌파 세력의 공세가 있었다"라는 주장을 반복했다. 일부 보수세력은 전 전 대통령의 주장을 인용했다. 그러나 법원은 '5·18 북한군 개입설'을 수차례에 걸쳐 '허위사실'이라고 판시했다.

전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10%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자랑으로 삼고 있다. 서울올림픽 유치와 야간 통행금지 해제, 직선제 개헌 수용 등도 자신의 공으로 돌리고 있다. 그러나 정작 독자가 궁금해 하는 것은 '과거의 영광'이 아니다. 여론은 '6월 항쟁'으로 몰락한 신군부의 '민낯'을 보고 싶어하는 눈치다.

 

<angeli@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