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게이트> 홍준표 대반격 시나리오

"이대로 혼자만 죽을 수는 없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성완종 리스트가 화제의 중심에서 이동하고 있다. '비박'인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이완구 전 국무총리만 모든 역풍을 뒤집어 쓴 모습이다. 특히 검찰은 '피의자' 홍 지사와 연일 설전을 벌이는 등 혐의 입증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남은 6인'의 대선자금 의혹에 대해선 함구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에 홍 지사는 보란 듯 언론을 활용해 '공천헌금' 논란을 지폈다. 혼자만 당할 수 없다는 계산이다.

'성완종 리스트'의 진실이 미궁에 빠질 조짐이다.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 관계자는 지난 14일 "향후 수사를 종합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성완종 리스트의 실체를 밝힐 수 있는 비밀장부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잠정 결론 냈다. 현재로써는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이완구 전 국무총리를 사법처리하는 선에서 수사가 종료될 것으로 보인다.

이완구 소환
기소 초읽기

같은 날 이 전 총리는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3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소환돼 15시간이 넘는 고강도 조사를 받았다.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8인 가운데는 홍 지사에 이어 두 번째다.

다음날 오전 1시 조사를 마치고 나온 이 전 총리는 취재진과 만나 "나름대로 입장을 얘기했고 검찰 얘기도 들었다"라며 소감을 밝혔다. '진실이 이긴다고 했는데, 이겼다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대해선 "이겼다 졌다가 아니고 저는 받은 사실이 없으니까 진실한 것이 우선이라는 말"이라고 답했다. 검찰은 이 전 총리에 대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한다는 방침이다.

이날 검찰은 "앞서 조사한 홍 지사를 이 전 총리와 일괄 기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라고 알렸다. 일부 언론에 보도된 것과는 달리 홍 지사에 대해선 구속영장 청구까지 검토되는 상황이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친박계 핵심 인사들에 대해선 '기록물 확보'조차 안 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홍 지사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자신의 정리된 주장을 기자간담회 및 SNS 등을 통해 적극 알리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홍 지사가 나름의 '반격 카드'를 쥐고 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여당 원내대표와 당대표 등을 두루 거치며 누구보다 '친박'의 약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란 기대다. 실제로 홍 지사는 이른바 '공천헌금' 발언으로 '무력시위'의 가능성을 열었다.

검찰이 다투고 있는 두 가지 혐의는 홍 지사의 1억원 수수 여부와 핵심 증인에 대한 회유 지시 의혹이다. 검찰은 성 회장이 한장섭 전 경남기업 부사장에게 지시해 1억원을 만들었고, 이 돈이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을 거쳐 홍 지사에게 전달된 것으로 보고 있다. 범행 장소와 방법도 구체적이다. 윤 전 부사장이 2011년 6월 자신의 아내가 운전하는 차로 국회 의원회관에 도착해 홍 지사를 부른 뒤 1억원을 담은 쇼핑백을 건넸다는 것이다.

검찰 이완구·홍준표 일괄 기소 검토중
늪 빠진 대선자금 수사…출구전략 고심

하지만 홍 지사는 금품수수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윤 전 부사장으로부터 1억원을 받을 이유가 없을 뿐 아니라 돈을 건넸다는 윤 전 부사장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홍 지사의 최측근이자 당시 1억원을 들고 나간 것으로 지목된 나경범 경남도청 서울본부장은 검찰 조사에서 혐의 사실을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홍 지사가 핵심 증인을 회유하려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막바지 조사를 진행 중이다. 홍 지사에 대한 구속여부가 판가름 나지 않은 이유는 회유 의혹에 대한 법리검토가 끝나지 않아서이다. 특별수사팀의 보고를 받은 김진태 검찰총장은 더욱 확실한 증거가 나올 때까지 결정을 유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내부적으로는 김해수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과 홍 지사의 측근 엄모씨 등이 윤 전 부사장과 접촉해 회유를 시도한 것으로 의견이 정리됐다. 이미 검찰은 이들과 윤 전 부사장 간의 통화 녹음파일을 확보한 상태다. 단 김 전 비서관 등이 홍 지사와 사전에 회유를 공모했는지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홍 지사 역시 회유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윤 전 부사장과 개인적으로 친한 사람들이 자신을 걱정하는 차원에서 진상을 알아보려 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검찰은 홍 지사 측근들이 같은 시기 조직적으로 움직인 점에 비춰 홍 지사의 묵인 내지는 방조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과정에 지시가 있었다면 검찰은 증거인멸 교사 혐의를 추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궁 빠진 수사
만만한 홍준표?

그런데 검찰은 홍 지사를 수사하면서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바로 '공천헌금' 의혹이다. 윤 전 부사장은 앞선 소환조사에서 "성 회장이 2012년 총선 당시 당의 공천을 받기 위해 홍 지사에게 돈을 건넨 것으로 알고 있다"라는 취지로 진술했다. 성 회장 또한 생전 마지막 언론 인터뷰에서 “내가 뭐 그때 공천 받으려고 한 것도 아니고, 아무 조건 없이 그렇게 했다”라며 공천헌금의 존재를 언급했다.

법리상 대가성 여부는 공소사실을 가르는 근거다. 공천을 목적으로 돈을 받았다면 공직선거법 위반이나 뇌물수수 혐의가 추가될 수 있다. 반대로 대가성 없는 돈이라면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게된다. 처벌 수위는 공직선거법 위반이나 뇌물수수가 더 세다.

하지만 검찰의 걱정은 처벌수위가 아닌 홍 지사의 '입'에 있다. 홍 지사는 얼마 전 기자간담회에서 "(현역) 의원으로부터 공천헌금을 주겠다는 제의를 받은 적 있다”라고 폭로했다. 잘못 건드렸다간 애써 잡은 불길이 다른 '집'으로 번질 태세였다.

공천헌금 파장
당혹스런 새누리

지난 11일 홍 지사는 기자들에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옛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시절 총선을 앞두고 수억원대의 공천헌금이 오갔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홍 지사는 이날 "(내가) 17대 (총선) 공천심사위원장일 때 등산복 차림의 영남 지역 의원이 공천을 하루 앞둔 일요일 새벽 우리 집으로 찾아와 '저건 돈이다'고 직감해 문을 안 열어줬다”라고 말했다.

이어 홍 지사는 "(그 의원이 다음날) 월요일 (아침) 9시 국회 사무실에 찾아와 '5억원을 줄 테니 공천해 달라'고 해 내가 '왜 16대 때는 20억원을 준 걸로 아는데 17대 때는 5억원이냐'고 하니까 즉각 '20억원을 준다'고 했다"라며 "그날 오후 내가 공천심사위원회에 보고하고 (탈락하는 것으로) 공천을 바로 했다"라고 설명했다.

홍 지사의 이 같은 작정 발언은 5억원도 받지 않은 내가 1억원 따위(?)를 받았겠냐는 뜻이다. 그렇지만 발언의 취지와 달리 홍 지사는 "1억원은 광역의원 공천하는 돈도 안 된다"라고 말해 또 다른 '불씨'를 남겼다. 오랜 당직 경험으로 홍 지사는 공천의 '시세'를 꿰뚫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공천헌금을 건넨 사람을 밝히진 않았지만 새누리당 안팎은 '철렁한 분위기였다'라고 전해진다.

다음날 당시 홍 지사와 공동 공천심사위원장이었던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홍 지사의 말이 사실"이라고 확인했다. 김 전 지사는 홍 지사가 공천헌금 액수를 최소 5억원에서 최대 20억원으로 부른 데 대해 "그 이상일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여당 사정에 정통한 정치권 관계자도 비교적 최근까지 '돈 공천'이 있었다고 귀띔했다. 시세는 비례대표 기준 20억원 정도일 것이라 부연했다. 헌금 일부를 당에 기탁하고 일부는 심사위원에게 전달하는 식이다. 홍 지사는 이 같은 흐름을 잘 파악하고 있을 것이란 설명도 곁들였다. 그는 "받아도 되는 돈이 있고 아닌 돈이 있다"라며 "영남 의원 얘기는 정치권에 파다하지 않느냐"라고 반문했다.

정치자금 비리를 수사했던 검찰 관계자도 비슷한 의견을 보였다. 그는 "이미 별건의 공천비리 내사가 끝난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수사 착수가 쉽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홍 지사가 입을 열면 사정은 또 달라진다"라고 덧붙였다. 검찰이 사건을 덮으려 했다는 의혹을 씻기 위해 수사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예측이다.

"공천헌금 수십억 제의" 폭로
친박·태권도협 비리 만지작?


이미 검찰은 성완종 리스트 수사를 마무리하기 위한 출구전략을 찾고 있다. 리스트에 이름이 있지만 직책 혹은 액수만 있는 서병수 부산시장·유정복 인천시장·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수사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기춘·허태열 전 대통령 비서실장도 공소시효가 지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문제는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이다. 성 회장은 인터뷰에서 홍 의원에게 2억원을 줬다고 증언했다. 메모에도 그렇게 적혀 있다. 또 성 회장의 금고지기인 한 전 부사장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선대위 관계자에게 2억원을 전달했다"라고 진술했다. 홍 의원은 지난 대선 때 박근혜캠프에서 조직 관리를 담당해 의혹이 더 짙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검찰 관계자는 "홍 지사와 이 전 총리를 일괄기소한 후 향후 1~2주 내에 검찰이 홍 의원에 대한 액션에 들어가지 않으면 이달 말에 수사를 마무리하는 것으로 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홍 의원을 공개 수사한다는 것은 박근혜정부 대선자금을 정면으로 건드리겠다는 것인데 집권 중반 청와대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상황에서 그게 가능하겠냐"라고 반문했다.

검찰 수사의 한계를 알고 있는 홍 지사는 이 같은 허점을 파고들 계획이다. 홍 지사는 윤 전 부사장의 '배달사고' 가능성을 꾸준히 제기했다. 홍 지사는 검찰 조사에서 "한 전직 지자체단체장이 2012년 12월 경남도지사 선거 때 '성 회장이 큰 것 한 개(1억원)를 윤 전 부사장을 통해 도지사 캠프에 전달하려 했는데 배달 사고가 났다'는 얘기를 전해왔다"라며 "이 단체장도 검찰이 불러 조사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홍 지사로서는 상황에 따라 "내가 어디서 들었는데…"라며 또 다른 '친박' 인사를 들먹일 수 있다.

회심의 카드
물귀신 작전?

홍 지사는 지난 기자간담회에서 "1억원이 아내의 비자금이었다"라는 해명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공직자윤리법 위반과 공금횡령 가능성에도 "돈을 받지 않았다"라는 입장을 강조한 것이다. 홍 지사의 주장대로 그가 '아내의 대여금고'를 몰랐다면 판례상 법적인 책임을 묻기 어렵다. 처벌을 받더라도 과태료를 납부하는 수준에서 끝날 가능성이 높다.


홍 지사는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고 1억원 수수 의혹을 방어하고 있다. 도덕적인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사법처벌을 피하겠다는 속셈이다. 홍 지사의 성격을 잘 아는 정치권 관계자들은 한 목소리로 "받지 않았다면 받지 않은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싸울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그가 회장을 역임한 대한태권도협회와 관련한 비리를 '회심의 카드'로 남겨 놓은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내놓고 있다. 공교롭게도 '친박'인 홍 의원은 대한태권도협회의 유관기관인 국기원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홍 지사가 꺼낼 남은 승부수가 비상한 관심을 모은다.

 

<angeli@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