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름 딴 법안들 '심층진단'

툭하면 나오는 ‘국민정서법’ 실효성은…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국민정서에 어긋나는 행위를 법에 빗대어 ‘국민정서법’이라 부른다. 최근 들어서는 여론이 법에 특정인의 이름을 붙이는 경향이 짙어졌는데, 대표적으로 ‘김영란법’을 꼽을 수 있다. 이외에도 이름을 딴 법안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법안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여론에 편승한 설익은 법이 남발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나온다. 

 
특정인의 이름을 딴 법안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법에 이름이 붙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다. 법을 주도적으로 추진한 사람의 이름, 법을 적용해야 하는 사람의 이름, 사건 피해자의 이름 등이다. 주로 정부·정치권·언론이 법안에 이름을 붙인다.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법안들
 
특정인의 이름을 딴 법안 중 입법에 성공한 법안은 6개다. ‘김영란법’(부정청탁·금품수수 금지), ‘전두환법’(공무원 뇌물 범죄에 대한 추징 강화), ‘오세훈법’(기업의 정치후원금 기탁 금지 등), ‘유병언법’(상속·증여된 범죄자 재산 몰수), ‘조두순법’(성폭력 범죄 심신 장애 감경 조항 엄격 적용), ‘최진실법’(친권의 자동 부활 금지) 등이다.
 
논의되다 폐기된 법안은 3개다. ‘정봉주법’(허위사실 공표죄의 성립 요건 강화), ‘나경원법’(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처벌 강화), ‘김장훈법’(고액 기부자의 노후 생계가 어려워지면 생활보조금 지원) 등이다.
 

국회 안팎에서 논의 중인 법안은 5개다. ‘김부선법’(아파트 관리비 투명 공개 제도화), ‘신해철법’(의료분쟁 시 강제로 조정 절차 개시), ‘김우중법’(범죄 수익 추징, 민간으로 범위 확대), ‘이학수법’(재벌가 관행적 세습과 불법수익 차단), ‘장그래법’(비정규직 사용기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 등이다.
 
 
이 같은 법안들이 고개를 들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우선 입법에 성공한 법안부터 알아본다. 최근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김영란법은 지난 2012년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추진했던 법안으로 정확한 명칭은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다. 공무원이 직무 관련성이 없는 사람에게 100만원 이상의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처벌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골자다. 
 
정치인과 연예인, 드라마 주인공까지…
유명인 이름 따고 반짝 홍보효과 노려
 
김영란법에는 ‘이해충돌 방지’ 조항이 있었으나 여야가 막판까지 의견차를 좁히지 못해 의결대상에서 제외됐다. 법안이 시행되면 공직자와 언론사 임직원, 사립학교와 유치원의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장과 이사는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 본인이나 배우자가 100만원을 넘는 금품 또는 향응을 받으면 무조건 형사처벌을 받는다. 이 법안은 1년6개월간의 유예 기간을 거쳐 2016년 9월28일부터 시행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산을 추징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두환추징법은 2013년 공무원의 불법취득 재산에 대한 몰수·추징 시효를 3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고 제3자로까지 추징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으로 발의된 법안이다. 추징금 집행의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해 검사가 관계인의 출석 요구 및 진술 청취, 소유자·소지자 또는 보관자에 대한 서류 등 제출요구, 특정금융거래정보와 과세정보, 금융거래정보 제공 요청, 기타 사실조회나 필요한 사항에 대한 보고 요구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이해 쉽지만…

설익은 경우 태반
 
오세훈법은 2004년 개정된 정치자금법 등 정치관계법을 의미한다. 기업 등 법인의 정치후원금 금지와 지구당 폐지 등을 골자로 불투명한 정치자금을 차단하고 깨끗하고 투명한 선거문화를 만든다는 취지에 마련된 법안이다. 당시 정치관계법 개정은 ‘차떼기’로 상징되는 정경유착 등 후진적 정치문화를 개혁하라는 여론이 높았던 시기였다. 이에 따라 개혁적인 입법이 이뤄진 것이다. 기업활동과 소비시장 위축 및 과잉입법 우려도 있었지만 돈 안 드는 선거를 정착시켜 우리 정치를 깨끗하게 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다.
 
2014년 발의된 유병언법은 사망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재산 가운데 상당수가 이미 상속·증여돼 추징할 수 없게 된 허점을 보완해 제3자에게도 추징판결을 집행할 수 있도록 해 재산이 자식 등에게 상속·증여된 경우라 할지라도 몰수 대상에 포함되도록 했다.
 
 
몰수·추징 판결 집행의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해 과세 정보, 금융거래정보 등의 제공 요청, 압수, 수색, 검증영장의 도입 등 재산추적수단도 강화했다. 하지만 제3자의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실효성 논란에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조두순법은 성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감형을 받는 사례를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서 심신미약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공소시효를 늘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형법에 따르면 심신장애로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경우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할 수 없다.
 
심신장애자보다 정도가 약한 심신미약자는 형이 감경돼 왔다. 법관이 전문가 감정 없이 피고인에 대해 이 규정을 적용, 형량을 깎아주는 사례가 빈번해지면서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엄벌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2008년 12월 등교 중이던 8세 여아를 성폭행하고 영구장애를 입힌 조두순이 전문가 감정 절차 없이 심신미약이 인정돼 형을 감경 받은 것이 조두순법이 나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최진실법은 부모가 이혼한 후 친권자였던 한쪽 부모가 사망한 경우 친권이 나머지 한쪽 부모에게 자동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거정법원의 심사를 거쳐 미성년 자녀에 대한 친권자를 결정한다는 제도다. 기존 친권자동부활제가 폐지된 것이다. 2008년 배우 최진실씨가 사망한 후 친권이 아버지 조성민씨에게 넘어가자 그동안 남매를 키워온 외할머니에게도 친권을 주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 최진실법이다. 2013년 7월1일부터 전면 시행됐다.
 
 
정봉주법은 2012년 총선·대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이 내놓은 법안이다. 공직선거법상의 허위사실공표죄에 대한 개정안으로 허위경력 등 공표죄와 허위 사실 공표죄의 구성요건에 허위임을 알고도 후보자를 비방할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요건이 추가된 것이 핵심이다.
 
허위경력 등 공표 행위와 허위 사실 공표 행위가 진실한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공공의 이익을 주된 목적으로 하거나 그 행위가 공공성 또는 사회성이 있는 공적 관심사안에 관한 것으로써 사회의 여론형성 내지 공개토론에 기여하는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봉주 전 의원은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가 BBK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됐다는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대법원 판결로 징역형을 받았다. 당시 야당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허위사실공표죄의 적용 요건을 강화하는 정봉주법을 내놓았다.

이슈마다
졸속입법
 

나경원법도 정봉주법과 마찬가지로 공직선거법상의 허위사실공표죄와 관련해 논의된 법안이다. 나경원법은 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연설, 방송, 신문, 통신(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모바일메신저 포함) 등의 방법으로 후보자 및 그의 배우자, 직계존비속, 형제자매에 대하여 허위사실을 공표하거나 배포를 목적으로 선전문서를 소지한 자에 대하여 1년 이상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정봉주법과 나경원법은 상반된 내용으로 맞부딪히며 정치권의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지만 두 법안은 논의 중 폐기됐다.
 
김장훈법은 110억원이 넘는 기부를 하고도 정작 본인은 전세 아파트에 사는 가수 김장훈씨의 사례처럼 기부를 많이 한 사람이 노후 생계가 어려워졌을 때 생활보조금을 지원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여론에 따라 기부연금제도가 논의됐으나 18대 국회 임기가 끝날 때까지 별 진전이 없었고 결국 논의 중 폐지됐다.
 
각종 논란에 부딪혀 진전없이 증발하기도
인격권 침해 등 문제의 소지 적지 않아…
 
 
현재 국회 안팎에서 다섯 개의 법안이 논의되고 있다. 김부선법은 배우 김부선씨의 아파트 난방비 의혹 폭로를 계기로 계량기를 조작하면 형사처벌하는 내용의 주택법 개정안을 의미한다. 계량기를 위·변조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현행법에는 공동주택 난방장치의 관리와 요금 부과의 근거가 되는 난방계량장치에 관한 규정이 없는 상태다.
 
 
신해철법은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으로 의료 분쟁 시 환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를 담고 있다. 고인의 사망 이후 이 법안의 필요성이 강력하게 대두돼 왔으나 의료계가 강제조정법이라며 거세게 반대하고 있어 현재 법 제정에는 뚜렷한 진전이 없는 상태다.
 
김우중법은 고액 추징금 미납자가 타인명의로 숨긴 재산에 대해 몰수나 추징 등을 강제할 수 있는 범죄수익은닉규제처벌법이다. 김우중법은 앞서 설명한 전두환법의 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특례법을 일반 범죄로 확대한 것이다. 김우중법이 통과되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같은 기업인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재산 국외도피, 외국 공무원에 대한 뇌물, 범죄단체 수익 등 중대범죄는 검사가 차명재산임을 확인한 경우 추징할 수 있다.
 

이학수법은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헐값 발행 사건을 토대로 기업의 불법 이익을 국가로 환수하는 것이 골자다. 대법원은 2009년 4월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며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이학수 전 부회장, 김인주 사장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이학수법을 두고 재계가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 위헌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장그래법은 35세 이상 비정규직의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장그래는 인기리에 방영됐던 tvN 드라마 <미생>의 비정규직 주인공의 이름이다. 미생 원작자 윤태호 작가는 방송에서 장그래법에 대해 “만화와는 전혀 다른 의미의 법안”이라고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노동자를 위한 법안이 아니라 사용자를 위한 법안이라는 비난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이외에도 최근 만 24세 이하의 주류광고를 금지하는 일명 ‘김연아법’이 등장했다. 영국·중국·일본 등 해외에서도 화제다. 지난달 27일 영국 국영방송 BBC와 28일 중국 관영 <중국국제방송> 및 일본 포털사이트 ‘야후 재팬’ 자체기사는 “한국 국회가 만 24세 이하 젊은이의 주류 광고 출연을 금지하는 법안 제정에 나섰다”면서 “국민적 피겨스타 김연아가 3년 전 22세의 나이로 맥주 광고에 나온 것이 도화선이 됐다. 한국 국회는 당시 김연아의 광고가 청소년의 음주를 조장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고 보도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24일 건강증진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만 24세 이하는 어떠한 주류 광고에도 출연할 수 없으며 이를 어길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아직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통과 절차가 남아있다. 그런데 여론의 반발이 만만찮다.

누더기 입법
입법취지 왜곡·변질
 
이름 딴 법안들이 잇따라 나오는 가운데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인격권 침해 논란도 있었다. 2008년 법무부는 ‘혜진예슬법’(13세 미만 아동 성폭행 및 살인 시 사형·무기징역에 처하는 법 개정안)을 내놨다. 당시 법무부는 “살해된 두 아동을 애도하며 사회적 경각심과 홍보 효과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피해자 어머니가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부모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 헤아려 달라”며 불편한 심경을 내비쳐 개정안은 혜진예슬법이라 불리지 않았다. 성범죄 가해자의 음주 감경 조항 적용을 엄격히 하는 ‘나영이법’도 같은 이유로 종적을 감췄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묻지마 법안 발의 실태
10건 중 7건 계류 중
 
19대 국회 임기가 1년 남짓 남은 상태에서 법률안 발의 건수가 18대 국회 법률안 전체 발의 건수에 육박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3일까지 19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률안은 1만3902건이다. 18대 국회 4년간 발의한 법률안은 1만3913건으로 불과 11건 적은 숫자다. 19대 국회에서 매일 20건이 넘는 법률안이 발의된 셈이다.
 
15대 국회 때는 1951건이었다. 16대 국회 들어 2507건으로 늘었고 17대 국회에서는 7489건으로 더욱 늘었다. 그러다가 18대 국회 들어서는 1만건을 넘었다. 19대 들어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률안은 1만2285건이다. 발의된 법률안 중 아직 처리되지 못하고 국회에 계류돼 있는 법률안은 9319건으로, 미처리율은 67.0%다. 의원 입법은 현재 8939건이 처리되지 않아 미처리율은 72.8%를 기록하고 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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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