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름 딴 법안들 '심층진단'

툭하면 나오는 ‘국민정서법’ 실효성은…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국민정서에 어긋나는 행위를 법에 빗대어 ‘국민정서법’이라 부른다. 최근 들어서는 여론이 법에 특정인의 이름을 붙이는 경향이 짙어졌는데, 대표적으로 ‘김영란법’을 꼽을 수 있다. 이외에도 이름을 딴 법안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법안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여론에 편승한 설익은 법이 남발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나온다. 

 
특정인의 이름을 딴 법안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법에 이름이 붙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다. 법을 주도적으로 추진한 사람의 이름, 법을 적용해야 하는 사람의 이름, 사건 피해자의 이름 등이다. 주로 정부·정치권·언론이 법안에 이름을 붙인다.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법안들
 
특정인의 이름을 딴 법안 중 입법에 성공한 법안은 6개다. ‘김영란법’(부정청탁·금품수수 금지), ‘전두환법’(공무원 뇌물 범죄에 대한 추징 강화), ‘오세훈법’(기업의 정치후원금 기탁 금지 등), ‘유병언법’(상속·증여된 범죄자 재산 몰수), ‘조두순법’(성폭력 범죄 심신 장애 감경 조항 엄격 적용), ‘최진실법’(친권의 자동 부활 금지) 등이다.
 
논의되다 폐기된 법안은 3개다. ‘정봉주법’(허위사실 공표죄의 성립 요건 강화), ‘나경원법’(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처벌 강화), ‘김장훈법’(고액 기부자의 노후 생계가 어려워지면 생활보조금 지원) 등이다.
 

국회 안팎에서 논의 중인 법안은 5개다. ‘김부선법’(아파트 관리비 투명 공개 제도화), ‘신해철법’(의료분쟁 시 강제로 조정 절차 개시), ‘김우중법’(범죄 수익 추징, 민간으로 범위 확대), ‘이학수법’(재벌가 관행적 세습과 불법수익 차단), ‘장그래법’(비정규직 사용기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 등이다.
 
 
이 같은 법안들이 고개를 들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우선 입법에 성공한 법안부터 알아본다. 최근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김영란법은 지난 2012년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추진했던 법안으로 정확한 명칭은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다. 공무원이 직무 관련성이 없는 사람에게 100만원 이상의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처벌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골자다. 
 
정치인과 연예인, 드라마 주인공까지…
유명인 이름 따고 반짝 홍보효과 노려
 
김영란법에는 ‘이해충돌 방지’ 조항이 있었으나 여야가 막판까지 의견차를 좁히지 못해 의결대상에서 제외됐다. 법안이 시행되면 공직자와 언론사 임직원, 사립학교와 유치원의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장과 이사는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 본인이나 배우자가 100만원을 넘는 금품 또는 향응을 받으면 무조건 형사처벌을 받는다. 이 법안은 1년6개월간의 유예 기간을 거쳐 2016년 9월28일부터 시행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산을 추징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두환추징법은 2013년 공무원의 불법취득 재산에 대한 몰수·추징 시효를 3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고 제3자로까지 추징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으로 발의된 법안이다. 추징금 집행의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해 검사가 관계인의 출석 요구 및 진술 청취, 소유자·소지자 또는 보관자에 대한 서류 등 제출요구, 특정금융거래정보와 과세정보, 금융거래정보 제공 요청, 기타 사실조회나 필요한 사항에 대한 보고 요구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이해 쉽지만…

설익은 경우 태반
 
오세훈법은 2004년 개정된 정치자금법 등 정치관계법을 의미한다. 기업 등 법인의 정치후원금 금지와 지구당 폐지 등을 골자로 불투명한 정치자금을 차단하고 깨끗하고 투명한 선거문화를 만든다는 취지에 마련된 법안이다. 당시 정치관계법 개정은 ‘차떼기’로 상징되는 정경유착 등 후진적 정치문화를 개혁하라는 여론이 높았던 시기였다. 이에 따라 개혁적인 입법이 이뤄진 것이다. 기업활동과 소비시장 위축 및 과잉입법 우려도 있었지만 돈 안 드는 선거를 정착시켜 우리 정치를 깨끗하게 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다.
 
2014년 발의된 유병언법은 사망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재산 가운데 상당수가 이미 상속·증여돼 추징할 수 없게 된 허점을 보완해 제3자에게도 추징판결을 집행할 수 있도록 해 재산이 자식 등에게 상속·증여된 경우라 할지라도 몰수 대상에 포함되도록 했다.
 
 
몰수·추징 판결 집행의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해 과세 정보, 금융거래정보 등의 제공 요청, 압수, 수색, 검증영장의 도입 등 재산추적수단도 강화했다. 하지만 제3자의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실효성 논란에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조두순법은 성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감형을 받는 사례를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서 심신미약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공소시효를 늘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형법에 따르면 심신장애로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경우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할 수 없다.
 
심신장애자보다 정도가 약한 심신미약자는 형이 감경돼 왔다. 법관이 전문가 감정 없이 피고인에 대해 이 규정을 적용, 형량을 깎아주는 사례가 빈번해지면서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엄벌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2008년 12월 등교 중이던 8세 여아를 성폭행하고 영구장애를 입힌 조두순이 전문가 감정 절차 없이 심신미약이 인정돼 형을 감경 받은 것이 조두순법이 나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최진실법은 부모가 이혼한 후 친권자였던 한쪽 부모가 사망한 경우 친권이 나머지 한쪽 부모에게 자동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거정법원의 심사를 거쳐 미성년 자녀에 대한 친권자를 결정한다는 제도다. 기존 친권자동부활제가 폐지된 것이다. 2008년 배우 최진실씨가 사망한 후 친권이 아버지 조성민씨에게 넘어가자 그동안 남매를 키워온 외할머니에게도 친권을 주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 최진실법이다. 2013년 7월1일부터 전면 시행됐다.
 
 
정봉주법은 2012년 총선·대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이 내놓은 법안이다. 공직선거법상의 허위사실공표죄에 대한 개정안으로 허위경력 등 공표죄와 허위 사실 공표죄의 구성요건에 허위임을 알고도 후보자를 비방할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요건이 추가된 것이 핵심이다.
 
허위경력 등 공표 행위와 허위 사실 공표 행위가 진실한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공공의 이익을 주된 목적으로 하거나 그 행위가 공공성 또는 사회성이 있는 공적 관심사안에 관한 것으로써 사회의 여론형성 내지 공개토론에 기여하는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봉주 전 의원은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가 BBK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됐다는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대법원 판결로 징역형을 받았다. 당시 야당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허위사실공표죄의 적용 요건을 강화하는 정봉주법을 내놓았다.

이슈마다
졸속입법
 

나경원법도 정봉주법과 마찬가지로 공직선거법상의 허위사실공표죄와 관련해 논의된 법안이다. 나경원법은 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연설, 방송, 신문, 통신(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모바일메신저 포함) 등의 방법으로 후보자 및 그의 배우자, 직계존비속, 형제자매에 대하여 허위사실을 공표하거나 배포를 목적으로 선전문서를 소지한 자에 대하여 1년 이상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정봉주법과 나경원법은 상반된 내용으로 맞부딪히며 정치권의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지만 두 법안은 논의 중 폐기됐다.
 
김장훈법은 110억원이 넘는 기부를 하고도 정작 본인은 전세 아파트에 사는 가수 김장훈씨의 사례처럼 기부를 많이 한 사람이 노후 생계가 어려워졌을 때 생활보조금을 지원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여론에 따라 기부연금제도가 논의됐으나 18대 국회 임기가 끝날 때까지 별 진전이 없었고 결국 논의 중 폐지됐다.
 
각종 논란에 부딪혀 진전없이 증발하기도
인격권 침해 등 문제의 소지 적지 않아…
 
 
현재 국회 안팎에서 다섯 개의 법안이 논의되고 있다. 김부선법은 배우 김부선씨의 아파트 난방비 의혹 폭로를 계기로 계량기를 조작하면 형사처벌하는 내용의 주택법 개정안을 의미한다. 계량기를 위·변조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현행법에는 공동주택 난방장치의 관리와 요금 부과의 근거가 되는 난방계량장치에 관한 규정이 없는 상태다.
 
 
신해철법은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으로 의료 분쟁 시 환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를 담고 있다. 고인의 사망 이후 이 법안의 필요성이 강력하게 대두돼 왔으나 의료계가 강제조정법이라며 거세게 반대하고 있어 현재 법 제정에는 뚜렷한 진전이 없는 상태다.
 
김우중법은 고액 추징금 미납자가 타인명의로 숨긴 재산에 대해 몰수나 추징 등을 강제할 수 있는 범죄수익은닉규제처벌법이다. 김우중법은 앞서 설명한 전두환법의 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특례법을 일반 범죄로 확대한 것이다. 김우중법이 통과되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같은 기업인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재산 국외도피, 외국 공무원에 대한 뇌물, 범죄단체 수익 등 중대범죄는 검사가 차명재산임을 확인한 경우 추징할 수 있다.
 

이학수법은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헐값 발행 사건을 토대로 기업의 불법 이익을 국가로 환수하는 것이 골자다. 대법원은 2009년 4월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며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이학수 전 부회장, 김인주 사장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이학수법을 두고 재계가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 위헌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장그래법은 35세 이상 비정규직의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장그래는 인기리에 방영됐던 tvN 드라마 <미생>의 비정규직 주인공의 이름이다. 미생 원작자 윤태호 작가는 방송에서 장그래법에 대해 “만화와는 전혀 다른 의미의 법안”이라고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노동자를 위한 법안이 아니라 사용자를 위한 법안이라는 비난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이외에도 최근 만 24세 이하의 주류광고를 금지하는 일명 ‘김연아법’이 등장했다. 영국·중국·일본 등 해외에서도 화제다. 지난달 27일 영국 국영방송 BBC와 28일 중국 관영 <중국국제방송> 및 일본 포털사이트 ‘야후 재팬’ 자체기사는 “한국 국회가 만 24세 이하 젊은이의 주류 광고 출연을 금지하는 법안 제정에 나섰다”면서 “국민적 피겨스타 김연아가 3년 전 22세의 나이로 맥주 광고에 나온 것이 도화선이 됐다. 한국 국회는 당시 김연아의 광고가 청소년의 음주를 조장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고 보도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24일 건강증진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만 24세 이하는 어떠한 주류 광고에도 출연할 수 없으며 이를 어길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아직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통과 절차가 남아있다. 그런데 여론의 반발이 만만찮다.

누더기 입법
입법취지 왜곡·변질
 
이름 딴 법안들이 잇따라 나오는 가운데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인격권 침해 논란도 있었다. 2008년 법무부는 ‘혜진예슬법’(13세 미만 아동 성폭행 및 살인 시 사형·무기징역에 처하는 법 개정안)을 내놨다. 당시 법무부는 “살해된 두 아동을 애도하며 사회적 경각심과 홍보 효과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피해자 어머니가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부모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 헤아려 달라”며 불편한 심경을 내비쳐 개정안은 혜진예슬법이라 불리지 않았다. 성범죄 가해자의 음주 감경 조항 적용을 엄격히 하는 ‘나영이법’도 같은 이유로 종적을 감췄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묻지마 법안 발의 실태
10건 중 7건 계류 중
 
19대 국회 임기가 1년 남짓 남은 상태에서 법률안 발의 건수가 18대 국회 법률안 전체 발의 건수에 육박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3일까지 19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률안은 1만3902건이다. 18대 국회 4년간 발의한 법률안은 1만3913건으로 불과 11건 적은 숫자다. 19대 국회에서 매일 20건이 넘는 법률안이 발의된 셈이다.
 
15대 국회 때는 1951건이었다. 16대 국회 들어 2507건으로 늘었고 17대 국회에서는 7489건으로 더욱 늘었다. 그러다가 18대 국회 들어서는 1만건을 넘었다. 19대 들어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률안은 1만2285건이다. 발의된 법률안 중 아직 처리되지 못하고 국회에 계류돼 있는 법률안은 9319건으로, 미처리율은 67.0%다. 의원 입법은 현재 8939건이 처리되지 않아 미처리율은 72.8%를 기록하고 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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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