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뿐인' 4대악 척결 현주소

국민안전 우선?…흐지부지 대선공약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였던 2012년 TV토론에서 '4대악'을 언급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새 정부의 최우선 척결 대상으로 4대악을 꼽았다. 4대악은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을 일컬었다. 박근혜정부의 주요 공약인 '4대악 근절'은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다짐이었다. 정부 출범으로부터 2년이 흐른 지금 대통령의 약속은 지켜졌을까. 관련 통계들은 달라진 게 없음을 말하고 있다.

'4대악 근절' 또는 '4대악 척결'로 불리는 박근혜정부의 대표 브랜드가 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정권 초기 전담팀을 구성해 의욕을 보이던 경찰은 자체 홍보에 더 열심이다. 애초부터 '진정성 없는 공약' '구색 맞추기식 공약'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진정성 없는
4대악 척결

박근혜정부는 2013년 정부조직 개편과정에서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라며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꿨다. 당시 안전행정부 장관이었던 유정복 현 인천시장은 "이름을 바꾸는 데 1억원 내외가 든다"라고 말했다. 조직 이름을 바꾸면 사무실 명패와 직원 명함을 바꾸는 등의 일에 돈이 쓰인다. 유 장관은 '예산낭비'라는 일부 지적에 대해 "대통령의 강한 정책의지를 담아 표현했다는 점을 이해해 달라"라고 답했다.

초기 안전행정부는 행정사무는 물론 재난·안전 관련 업무를 통합·관리했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뜻하지 않은 이유로 간판을 내렸다. 청와대가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물어 재난·안전 관련 업무를 떼어내면서 국민안전처와 분리했기 때문이다. 안전행정부는 다시 행정자치부로 이름을 바꿨다. 2013년 사례를 참조하면 이 과정에 다시 1억여원이 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전행정부는 박근혜정부의 4대악 근절을 앞장서 추진하던 부처다. 2013년 6월에는 '국민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했다. 4대악을 중점으로 한 21개 분야 안전관리 대책이 마련됐고, 이 가운데 4대악에 대해서는 '국민안전 체감지수'를 정기적으로 조사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안전행정부가 해체되면서 관련 조사는 국민안전처의 소관으로 바뀌었다. 4대악 근절을 일선에서 추진하고 있는 경찰이 행정자치부 소속임을 고려하면 지휘체계가 이원화돼 있는 셈이다. 더구나 안전행정부 시절 이뤄졌던 여론조사 결과와 국민안전처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큰 차이를 드러내지 않았다.

국민 10명 중
2명은 불안하다

안전행정부가 2013년 8월 전국 성인 및 중·고생 2100명을 대상으로 안전 체감도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사회 전반에 대해 안전하다고 답한 사람은 10명 중 2명에 불과했다. 당시 안전행정부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19세 이상 남녀 1000명, 학계·법조인 등 전문가 100명, 중·고생 1000명을 표본으로 뽑아 조사(신뢰수준 95%, 표준오차 ±3.1%P)를 진행했다.

2014년 12월 국민안전처가 발표한 동일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 10명 가운데 2명만이 한국사회가 안전하다고 답했다. 국민안전처 역시 ㈜글로벌리서치에 조사(신뢰수준 95%, 표준오차 ±2.83%P)를 의뢰했으며, 표본 변화는 성인 남녀 수를 1200명으로 늘린 것밖에 없었다.

두 '국민안전 체감지수'를 세부적으로 살피면 2014년(하반기 기준)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안전하다'고 밝힌 응답자는 21.0%였다. 2013년 같은 문항에서는 24.2%가 '안전하다'고 답했다.

반대로 '안전하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은 2014년(하반기) 기준 42.6%로 집계됐다. 2013년 조사에서는 30.4%만이 '안전하지 않다'고 답했다. 특히 '이번 정부가 추진한 4대악 근절 대책이 효과가 있다'는 응답은 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폭력 분야에서 46.8~49.4%로 조사돼 절반 넘는 국민이 그 실효성에 의문을 품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행안부→안행부→국민안전처 이름만 바꿔
'안전하지 않다' 응답 1년새 12.2%P 증가


2013년 조사에서 4대악 가운데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분야로 꼽힌 범죄는 성폭력이었다. 당시 성인 54.3%, 전문가 41%, 중·고생 52.7%가 '안전하지 않다'고 답했다. 평균적으로 보면 49.3%가 '불안하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2014년 조사에서 성폭력에 대한 불안도는 43.6%로 낮아졌다. 여전히 높은 수치지만 정부의 노력이 일정 부분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성폭력의 전체 발생 건수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명박정부 말기인 2012년 2만2933건을 기록했던 성범죄는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2013년 2만8786건으로 늘었다. 2014년에도 9월 기준 2만2211건을 기록해 3개월을 남긴 상황에서 2012년과 비슷한 수치를 보였다.

이는 성범죄에 대한 경찰의 인지수사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2012년 3715건이었던 인지수사는 2013년 8118건으로 뛰었다. 또 다음해에도 9월 기준 3개월이 남은 시점에서 7419건의 인지수사를 벌여 전년대비 증가세를 보였다. 성범죄에 대한 경찰의 실적경쟁이 데이터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허수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수도권에서 근무 중인 한 경찰 관계자는 "인지수사가 많다는 것은 결국 인터넷 음란물 수사나 성매매 업소 수사가 많다는 것을 뜻한다"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성범죄'하면 강간이나 강제추행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경찰이 통계로 뽑는 성범죄에는 간통과, 성매매(또는 알선·중개), 음란물 제조·유포, 통신매체 음란물 이용, 공연음란 등이 포함돼 있다.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실제 국민이 체감하는 '안전'과는 거리가 있는 것들이다.

그렇지만 정부는 '국민안전 종합대책'에서 '국민안전'을 이루기 위한 두 가지 목표를 제시했다. 가해자를 검거하지 못한 비율을 뜻하는 미검률과 재범률을 각각 2017년까지 6.1%와 9.1%로 낮추겠다고 한 것이다. 경찰은 지난해 관련 목표를 이미 달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고민거리인 학교폭력과 관련해서는 교육당국과 현장이 느끼는 인식의 차이가 컸다. 2013년 조사에서 응답자의 65.1%(성인 68.6%, 전문가 70%, 중·고생 56.7%)는 '학교폭력에서 안전하지 않다'고 답했고, 2014년 조사에서는 54.4%가 같은 답변을 내놨다. 외견상으로는 성범죄와 마찬가지로 정부의 노력이 성과를 거둔 것처럼 해석됐다.

그런데 문제는 '폭력서클 집중 단속 및 선도 프로그램 운영'을 해법으로 내놓은 정부 정책이 먹혀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교육부는 "학교폭력이 줄어들었다"라는 그릇된 실태조사 발표로 학부모들을 속였다.

안전과 무관한
무한 실적경쟁

앞서 교육부는 지난해 11월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학교폭력이 감소 추세"라고 주장했다. 실태조사는 온라인으로만 이뤄졌는데 2012년 8.5%와 비교해 2014년엔 1.4%(1차), 1.2%(2차)로 꾸준히 낮아졌다는 발표였다. '국민안전 종합대책'에 따르면 정부가 제시한 학교폭력 근절 목표는 2017년까지 피해경험율을 5.7%로 낮추는 것이었다. 교육부 발표대로라면 학교는 이미 안전한 상태여야 했다.

그러나 지난 1월 정의당 정진후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학교폭력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4년 상반기 전국 모든 학교(초·중·고 및 특수·각종 학교)의 폭력 심의건수는 1만662건으로 2013년 상반기에 비해 9.8%(9317건)가량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전체 학생수 차이를 반영한 1000명당 학교폭력 발생건수는 2013년(상반기) 1.49건에서 2014년(상반기) 1.69건으로 13.2%가량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정 의원이 받은 자료는 각 학교에서 폭력사건이 발생하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회의를 열어 심의를 내린 건수를 종합한 공식통계다.


학교폭력은 늘었지만 검거된 소년범 건수는 2015년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 2월 경찰청은 "지난해 학교폭력 가해자로 검거된 인원은 1만3268명으로 전년 대비 23.7%(4117명) 감소했다"라고 브리핑했다. 그러면서 "범정부 차원의 학교폭력근절 종합대책 이후 학교폭력이 감소했다"라고 자찬했다.

정부대책 효과 물음표 국민 50% 부정적
경찰청 홍보비 5억 신설…실효성 의문

흥미로운 점은 폭력과 금품갈취, 기타 강력범죄 등 거의 모든 범죄비율이 2013년과 비교해 18.8~32.9% 줄었지만 유독 성범죄만 전년 대비 21.4%(228명) 늘었다는 것이다.

이는 성범죄 실적을 올리려는 경찰과 학교폭력 건수를 줄이려는 교육부의 '담합'이 있지 않고는 불가능한 발표로 의심됐다. 2013년 설문조사에서 정부의 학교폭력 대책에 대해 '효과가 있다'고 응답한 중·고생은 21%에 그쳤다. 같은 항목에 55%를 응답한 전문가와는 차이를 보였다.

4대악 가운데 그나마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가정폭력과 불량식품은 어떨까. 정부는 가정폭력을 근절하겠다며 '알콜·도박 등 4대 중독 특별 관리' '가정폭력 피해자 안전 확보'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또 2017년까지 재범률을 25.7%로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불량식품의 경우는 '불량식품 사전예방 안전강화'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안전체감지수 목표를 2017년까지 90%로 높이겠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일요시사>는 2013년 7월29일자 인터넷판 기사인 '어이없는 불량식품 단속 백태'란 기사에서 경찰의 단속 움직임을 전한 바 있다. 기사에는 식약처가 할 일을 떠맡았다는 내용이 담겼다.


2014년 설문조사에서 가정폭력에 대해 '불안하다'고 밝힌 응답자는 16.2%로 나타났다. 불량식품의 경우는 26.2%가 '안전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성범죄와 학교폭력의 사례로 미뤄보면 자체 '목표 달성'을 홍보코자 가정폭력 재범률은 줄어들 것이고, 불량식품을 '안전하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 역시 줄어든 결과로 발표될 것이다.

실제 경찰은 지난해 가정폭력 재범률이 10%대로 자체 목표치(11%)를 넘겼다고 주장했다. 그 부작용으로 신고건수에 비해 입건수가 줄거나 긴급 임시조치가 줄어드는 등의 조짐이 눈에 띈다.

지난해 10월 <국민일보>에 따르면 112로 접수되는 가정폭력 신고(서울경찰청 기준)는 하루 평균 80건이지만 가해자를 형사입건한 경우는 9.6건(12%)에 머물렀다.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치 않았기 때문으로 <국민일보>는 분석했다. 또 경기지방경찰청에 따르면 가정폭력 사건은 2013년과 2014년 각각 5179건, 5394건으로 소폭 오름세였지만 긴급 임시조치 건수는 268건에서 243건으로 줄었다.

관련 통계에는 암수가 있다. 지난 2월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정폭력 경험자가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비율은 1.3%에 그쳤다. 전체 응답에서 '부부간 폭력 유경험자'가 절반에 이른 것을 생각하면 매우 낮은 수치다. 따라서 경찰이 정부 목표를 달성하려면 거꾸로 폭력사범 검거를 줄여야하는 역설이 발생한다.

전국 경찰청
홍보예산 집행

불량식품 근절도 사정은 좋지 않다. 지난해 10월 새정치민주연합 박민수 의원이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발행한 '2013 식품소비행태조사 통계보고서'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국민 10명 가운데 1명은 1년 내 식품과 관련한 피해를 당한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HACCP(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 인증 식품에서도 5년 동안 벌레와 금속 등 이물질 250여건이 검출되면서 불량식품의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더불어 불량식품업자는 가정폭력만큼이나 재범률이 높았음에도 이에 대한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않은 정부다. 식품위생법 사범의 재범률은 1995년 25.3%였고, 2010년에도 24.2%로 큰 변동이 없었다.

4대악 가운데 불량식품 분야는 국민안전처가 아닌 식약처가 설문조사를 맡고 있다. 2014년 상반기 18.2%가 안전하다고 답했으나 하반기엔 25.2%가 같은 답을 했다. '안전하지 않다'는 응답도 2.4%P 낮아졌다. 통계상으로는 4대악 모든 분야에서 성과를 올리고 있는 셈이다.

<일요시사>는 최근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경찰청이 집행한 '4대악 관련 홍보비 집행 내역'을 입수했다. 2013년에는 홍보비 편성이 없었지만 2014년 들어 4억9100만원이 신규 책정됐다. 경찰청은 관련 홍보비를 전액 집행했다.

17개 지방청에 차등 배정된 돈은 4억1800만원이었다. 경찰청이 직접 쓴 돈은 7300만원이었다. 홍보비는 리플릿·안내물·플랜카드 제작 및 배부 등에 사용됐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4대악'을 검색하면 수천 건의 기사가 쏟아진다. 각 경찰서는 4대악 간담회를 연 것을 경쟁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홍보비 집행 과정에서 언론에 직접 쓰인 돈은 없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경찰의 4대악 근절 홍보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국민을 향한 것일까. 아니면 정부를 위한 것일까. 소문난 잔칫상에 먹을 것 없는 모습이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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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