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뿐인' 4대악 척결 현주소

국민안전 우선?…흐지부지 대선공약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였던 2012년 TV토론에서 '4대악'을 언급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새 정부의 최우선 척결 대상으로 4대악을 꼽았다. 4대악은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을 일컬었다. 박근혜정부의 주요 공약인 '4대악 근절'은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다짐이었다. 정부 출범으로부터 2년이 흐른 지금 대통령의 약속은 지켜졌을까. 관련 통계들은 달라진 게 없음을 말하고 있다.

'4대악 근절' 또는 '4대악 척결'로 불리는 박근혜정부의 대표 브랜드가 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정권 초기 전담팀을 구성해 의욕을 보이던 경찰은 자체 홍보에 더 열심이다. 애초부터 '진정성 없는 공약' '구색 맞추기식 공약'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진정성 없는
4대악 척결

박근혜정부는 2013년 정부조직 개편과정에서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라며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꿨다. 당시 안전행정부 장관이었던 유정복 현 인천시장은 "이름을 바꾸는 데 1억원 내외가 든다"라고 말했다. 조직 이름을 바꾸면 사무실 명패와 직원 명함을 바꾸는 등의 일에 돈이 쓰인다. 유 장관은 '예산낭비'라는 일부 지적에 대해 "대통령의 강한 정책의지를 담아 표현했다는 점을 이해해 달라"라고 답했다.

초기 안전행정부는 행정사무는 물론 재난·안전 관련 업무를 통합·관리했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뜻하지 않은 이유로 간판을 내렸다. 청와대가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물어 재난·안전 관련 업무를 떼어내면서 국민안전처와 분리했기 때문이다. 안전행정부는 다시 행정자치부로 이름을 바꿨다. 2013년 사례를 참조하면 이 과정에 다시 1억여원이 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전행정부는 박근혜정부의 4대악 근절을 앞장서 추진하던 부처다. 2013년 6월에는 '국민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했다. 4대악을 중점으로 한 21개 분야 안전관리 대책이 마련됐고, 이 가운데 4대악에 대해서는 '국민안전 체감지수'를 정기적으로 조사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안전행정부가 해체되면서 관련 조사는 국민안전처의 소관으로 바뀌었다. 4대악 근절을 일선에서 추진하고 있는 경찰이 행정자치부 소속임을 고려하면 지휘체계가 이원화돼 있는 셈이다. 더구나 안전행정부 시절 이뤄졌던 여론조사 결과와 국민안전처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큰 차이를 드러내지 않았다.

국민 10명 중
2명은 불안하다

안전행정부가 2013년 8월 전국 성인 및 중·고생 2100명을 대상으로 안전 체감도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사회 전반에 대해 안전하다고 답한 사람은 10명 중 2명에 불과했다. 당시 안전행정부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19세 이상 남녀 1000명, 학계·법조인 등 전문가 100명, 중·고생 1000명을 표본으로 뽑아 조사(신뢰수준 95%, 표준오차 ±3.1%P)를 진행했다.

2014년 12월 국민안전처가 발표한 동일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 10명 가운데 2명만이 한국사회가 안전하다고 답했다. 국민안전처 역시 ㈜글로벌리서치에 조사(신뢰수준 95%, 표준오차 ±2.83%P)를 의뢰했으며, 표본 변화는 성인 남녀 수를 1200명으로 늘린 것밖에 없었다.

두 '국민안전 체감지수'를 세부적으로 살피면 2014년(하반기 기준)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안전하다'고 밝힌 응답자는 21.0%였다. 2013년 같은 문항에서는 24.2%가 '안전하다'고 답했다.

반대로 '안전하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은 2014년(하반기) 기준 42.6%로 집계됐다. 2013년 조사에서는 30.4%만이 '안전하지 않다'고 답했다. 특히 '이번 정부가 추진한 4대악 근절 대책이 효과가 있다'는 응답은 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폭력 분야에서 46.8~49.4%로 조사돼 절반 넘는 국민이 그 실효성에 의문을 품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행안부→안행부→국민안전처 이름만 바꿔
'안전하지 않다' 응답 1년새 12.2%P 증가


2013년 조사에서 4대악 가운데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분야로 꼽힌 범죄는 성폭력이었다. 당시 성인 54.3%, 전문가 41%, 중·고생 52.7%가 '안전하지 않다'고 답했다. 평균적으로 보면 49.3%가 '불안하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2014년 조사에서 성폭력에 대한 불안도는 43.6%로 낮아졌다. 여전히 높은 수치지만 정부의 노력이 일정 부분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성폭력의 전체 발생 건수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명박정부 말기인 2012년 2만2933건을 기록했던 성범죄는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2013년 2만8786건으로 늘었다. 2014년에도 9월 기준 2만2211건을 기록해 3개월을 남긴 상황에서 2012년과 비슷한 수치를 보였다.

이는 성범죄에 대한 경찰의 인지수사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2012년 3715건이었던 인지수사는 2013년 8118건으로 뛰었다. 또 다음해에도 9월 기준 3개월이 남은 시점에서 7419건의 인지수사를 벌여 전년대비 증가세를 보였다. 성범죄에 대한 경찰의 실적경쟁이 데이터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허수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수도권에서 근무 중인 한 경찰 관계자는 "인지수사가 많다는 것은 결국 인터넷 음란물 수사나 성매매 업소 수사가 많다는 것을 뜻한다"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성범죄'하면 강간이나 강제추행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경찰이 통계로 뽑는 성범죄에는 간통과, 성매매(또는 알선·중개), 음란물 제조·유포, 통신매체 음란물 이용, 공연음란 등이 포함돼 있다.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실제 국민이 체감하는 '안전'과는 거리가 있는 것들이다.

그렇지만 정부는 '국민안전 종합대책'에서 '국민안전'을 이루기 위한 두 가지 목표를 제시했다. 가해자를 검거하지 못한 비율을 뜻하는 미검률과 재범률을 각각 2017년까지 6.1%와 9.1%로 낮추겠다고 한 것이다. 경찰은 지난해 관련 목표를 이미 달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고민거리인 학교폭력과 관련해서는 교육당국과 현장이 느끼는 인식의 차이가 컸다. 2013년 조사에서 응답자의 65.1%(성인 68.6%, 전문가 70%, 중·고생 56.7%)는 '학교폭력에서 안전하지 않다'고 답했고, 2014년 조사에서는 54.4%가 같은 답변을 내놨다. 외견상으로는 성범죄와 마찬가지로 정부의 노력이 성과를 거둔 것처럼 해석됐다.

그런데 문제는 '폭력서클 집중 단속 및 선도 프로그램 운영'을 해법으로 내놓은 정부 정책이 먹혀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교육부는 "학교폭력이 줄어들었다"라는 그릇된 실태조사 발표로 학부모들을 속였다.

안전과 무관한
무한 실적경쟁

앞서 교육부는 지난해 11월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학교폭력이 감소 추세"라고 주장했다. 실태조사는 온라인으로만 이뤄졌는데 2012년 8.5%와 비교해 2014년엔 1.4%(1차), 1.2%(2차)로 꾸준히 낮아졌다는 발표였다. '국민안전 종합대책'에 따르면 정부가 제시한 학교폭력 근절 목표는 2017년까지 피해경험율을 5.7%로 낮추는 것이었다. 교육부 발표대로라면 학교는 이미 안전한 상태여야 했다.

그러나 지난 1월 정의당 정진후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학교폭력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4년 상반기 전국 모든 학교(초·중·고 및 특수·각종 학교)의 폭력 심의건수는 1만662건으로 2013년 상반기에 비해 9.8%(9317건)가량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전체 학생수 차이를 반영한 1000명당 학교폭력 발생건수는 2013년(상반기) 1.49건에서 2014년(상반기) 1.69건으로 13.2%가량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정 의원이 받은 자료는 각 학교에서 폭력사건이 발생하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회의를 열어 심의를 내린 건수를 종합한 공식통계다.


학교폭력은 늘었지만 검거된 소년범 건수는 2015년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 2월 경찰청은 "지난해 학교폭력 가해자로 검거된 인원은 1만3268명으로 전년 대비 23.7%(4117명) 감소했다"라고 브리핑했다. 그러면서 "범정부 차원의 학교폭력근절 종합대책 이후 학교폭력이 감소했다"라고 자찬했다.

정부대책 효과 물음표 국민 50% 부정적
경찰청 홍보비 5억 신설…실효성 의문

흥미로운 점은 폭력과 금품갈취, 기타 강력범죄 등 거의 모든 범죄비율이 2013년과 비교해 18.8~32.9% 줄었지만 유독 성범죄만 전년 대비 21.4%(228명) 늘었다는 것이다.

이는 성범죄 실적을 올리려는 경찰과 학교폭력 건수를 줄이려는 교육부의 '담합'이 있지 않고는 불가능한 발표로 의심됐다. 2013년 설문조사에서 정부의 학교폭력 대책에 대해 '효과가 있다'고 응답한 중·고생은 21%에 그쳤다. 같은 항목에 55%를 응답한 전문가와는 차이를 보였다.

4대악 가운데 그나마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가정폭력과 불량식품은 어떨까. 정부는 가정폭력을 근절하겠다며 '알콜·도박 등 4대 중독 특별 관리' '가정폭력 피해자 안전 확보'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또 2017년까지 재범률을 25.7%로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불량식품의 경우는 '불량식품 사전예방 안전강화'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안전체감지수 목표를 2017년까지 90%로 높이겠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일요시사>는 2013년 7월29일자 인터넷판 기사인 '어이없는 불량식품 단속 백태'란 기사에서 경찰의 단속 움직임을 전한 바 있다. 기사에는 식약처가 할 일을 떠맡았다는 내용이 담겼다.


2014년 설문조사에서 가정폭력에 대해 '불안하다'고 밝힌 응답자는 16.2%로 나타났다. 불량식품의 경우는 26.2%가 '안전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성범죄와 학교폭력의 사례로 미뤄보면 자체 '목표 달성'을 홍보코자 가정폭력 재범률은 줄어들 것이고, 불량식품을 '안전하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 역시 줄어든 결과로 발표될 것이다.

실제 경찰은 지난해 가정폭력 재범률이 10%대로 자체 목표치(11%)를 넘겼다고 주장했다. 그 부작용으로 신고건수에 비해 입건수가 줄거나 긴급 임시조치가 줄어드는 등의 조짐이 눈에 띈다.

지난해 10월 <국민일보>에 따르면 112로 접수되는 가정폭력 신고(서울경찰청 기준)는 하루 평균 80건이지만 가해자를 형사입건한 경우는 9.6건(12%)에 머물렀다.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치 않았기 때문으로 <국민일보>는 분석했다. 또 경기지방경찰청에 따르면 가정폭력 사건은 2013년과 2014년 각각 5179건, 5394건으로 소폭 오름세였지만 긴급 임시조치 건수는 268건에서 243건으로 줄었다.

관련 통계에는 암수가 있다. 지난 2월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정폭력 경험자가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비율은 1.3%에 그쳤다. 전체 응답에서 '부부간 폭력 유경험자'가 절반에 이른 것을 생각하면 매우 낮은 수치다. 따라서 경찰이 정부 목표를 달성하려면 거꾸로 폭력사범 검거를 줄여야하는 역설이 발생한다.

전국 경찰청
홍보예산 집행

불량식품 근절도 사정은 좋지 않다. 지난해 10월 새정치민주연합 박민수 의원이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발행한 '2013 식품소비행태조사 통계보고서'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국민 10명 가운데 1명은 1년 내 식품과 관련한 피해를 당한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HACCP(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 인증 식품에서도 5년 동안 벌레와 금속 등 이물질 250여건이 검출되면서 불량식품의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더불어 불량식품업자는 가정폭력만큼이나 재범률이 높았음에도 이에 대한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않은 정부다. 식품위생법 사범의 재범률은 1995년 25.3%였고, 2010년에도 24.2%로 큰 변동이 없었다.

4대악 가운데 불량식품 분야는 국민안전처가 아닌 식약처가 설문조사를 맡고 있다. 2014년 상반기 18.2%가 안전하다고 답했으나 하반기엔 25.2%가 같은 답을 했다. '안전하지 않다'는 응답도 2.4%P 낮아졌다. 통계상으로는 4대악 모든 분야에서 성과를 올리고 있는 셈이다.

<일요시사>는 최근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경찰청이 집행한 '4대악 관련 홍보비 집행 내역'을 입수했다. 2013년에는 홍보비 편성이 없었지만 2014년 들어 4억9100만원이 신규 책정됐다. 경찰청은 관련 홍보비를 전액 집행했다.

17개 지방청에 차등 배정된 돈은 4억1800만원이었다. 경찰청이 직접 쓴 돈은 7300만원이었다. 홍보비는 리플릿·안내물·플랜카드 제작 및 배부 등에 사용됐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4대악'을 검색하면 수천 건의 기사가 쏟아진다. 각 경찰서는 4대악 간담회를 연 것을 경쟁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홍보비 집행 과정에서 언론에 직접 쓰인 돈은 없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경찰의 4대악 근절 홍보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국민을 향한 것일까. 아니면 정부를 위한 것일까. 소문난 잔칫상에 먹을 것 없는 모습이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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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