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 때 잘 나간 검사들 현주소

그렇게 충성하더니…잘 먹고 잘 산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성완종 게이트'로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정치권의 시선은 검찰에 쏠린다. 검찰은 '성역 없는 수사'를 약속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국민은 많지 않은 모습이다. 검찰에는 '원죄'가 있다. 이명박정부 때부터 검찰은 자신들의 권력을 이용해 정권을 보호했다. '정치검찰'로 불린 이들은 출셋길을 보장받았다. 이명박정부 당시 검찰권을 남용한 '검사님들'은 지금 어디 있을까.

친이계 좌장으로 알려진 이재오 최고위원이 성을 냈다. 지난달 18일 이 의원은 자원외교 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의 수사 소식을 전해 듣고 "그때(이명박정부 때)는 가만뒀다가 정권이 바뀌면 (수사)하니 정치검찰이란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분개했다. 이날 친이계 의원들은 '정치검찰'의 행보에 이구동성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무리한 수사
관대한 집행

친이계가 말한 정치검찰은 새로운 표현이 아니다. 정권의 하명을 받고 검찰이 움직인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역대 정부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검찰을 통제하지 못한 권력은 이른 레임덕에 직면했다.

때문에 정권은 검찰을 이용했다. 때로는 아닌 척 정적을 제거했다. 이명박정부는 검찰을 움직여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또 박근혜정부는 집권 3년 차를 맞아 이명박 전 대통령을 겨냥한 사정작업에 돌입했다.

수사를 받는 쪽은 늘 '정치적인 탄압'이라고 반발했다. 검찰은 이 싸움에서 살아있는 권력을 편들었다. 정권에 협조한 검사는 승승장구했다. 정권이 바뀌면 또 다른 권력에 줄을 댔다. 어찌 보면 정치검찰이란 오명을 자초한 검찰이다.


그런데 이번 수사에서 친이계 의원들이 간과한 사실이 있다. 정치검찰은 2009년에야 일종의 대명사로 각인됐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과정은 정치검찰의 교본으로 불린다. 당시 일부 검사는 정권을 보호할 목적으로 전에 없던 무리한 수사를 감행했다. 혹은 유례없는 관대한 법 집행으로 출셋길을 보장받았다.

그렇다면 박근혜정부 3년 차인 지금 그때 그 검사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참여연대가 이명박정권 말기인 2012년 12월 발표한 '이명박정부 정치검사' 명단을 토대로 그들의 근황을 정리했다.

당시 참여연대가 작성한 자료에 따르면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이명박정부 검찰권 오남용 13대 사건'을 선정했다. 또 관련 수사에 참여한 47명의 검사를 명단에 적시했다. 이 가운데 검사장급 이상 10명은 따로 추려 '정치검사'로 규정했다. 아래는 사건 순서대로 관련 검사의 현재 직책과 주요 동향을 정리한 결과다. 수사시점 기준 부장급 아래 검사는 제외(일부 대검 간부 제외)했다.

정치검찰
승승장구

2008년 있었던 'PD수첩 명예훼손 혐의 수사'(1)는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언론 프로그램의 일부 오류를 문제 삼아 형사 범죄로 만든 사건이다.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가 담당했으며, 당시 형사부를 지휘한 서울중앙지검 1차장은 정병두 검사였다.

정 검사는 지난 2006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연루된 '황제 테니스' 사건의 주임검사를 맡아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는 이 전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 인수위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2009년에는 '용산 참사' 수사본부장을 맡아 농성자 5명을 구속기소했다. 2012년에는 차관급인 인천지검장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정 검사는 더 높은 자리를 꿰차지 못하고 2014년 2월 퇴임했다. 대법관 후보자로 추대됐지만 끝내 선임되지 못했다. 퇴임 당시 직책은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이었다.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이며, LG전자 세탁기 파손사건의 변호인단으로 합류했다.


참여연대 검찰권 남용 검사 47인 선정
초고속 승진하거나 거대 로펌으로 영입

PD수첩 사건 당시 형사6부장이던 전현준 검사는 요직으로 영전했다. 전 검사는 그의 선배가 역임한 서울중앙지검 1차장에 내정됐다. 현재 1차장은 서울중앙지검 내 핵심 보직으로 분류된다. 주로 공안사건을 지휘하는 역할로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긴밀히 연결된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정연주 전 KBS 사장 배임 혐의 적용 수사'(2)를 맡았던 박은석 검사는 내부 승진에서 밀려났다. 사건 당시 서울중앙지검 조사부장이었던 그는 법원에서 조정권고를 받은 사건을 다시 끄집어 내 논란을 빚었다. 특수수사에 강점이 있는 그는 2014년 초 금융감독원 감찰실 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금융감독원이 현직 검사를 영입한 사례는 박 검사가 처음이다.

'미네르바 전기통신기본법위반 혐의 수사'(3)에서 두각을 나타낸 김수남 검사는 서울중앙지검장을 거쳐 대검찰청 차장으로 고속 승진했다. 미네르바 사건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었던 그는 수원지검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RO사건을 총지휘해 이번 정부에서 가장 신임 받는 검사로 거듭났다. 이후 검찰 '넘버2'인 서울중앙지검장에 올라 '정윤회 문건 유출 수사'까지 매듭지었다. 대구 출신인 김 검사는 이변이 없는 한 차기 검찰총장 1순위로 유력시 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 부장검사로 사건을 맡은 김주선 검사는 대전지검 천안지청장으로 승진한 뒤 서울고검 검사를 거쳐 대구고검 검사로 발령 났다. 차기 인사에서 '검찰의 꽃'인 지검장으로 승진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김상곤 경기교육감 직무유기 혐의 수사'(4)를 지휘한 윤갑근 검사는 탄탄대로를 밟았다. 2009년 당시 수원지검 2차장이었던 그는 '중앙선관위 DDos 공격 사건' '서울시 공무원 간첩증거 조작사건' 등 굵직한 수사를 차례로 맡았다. 올해 대검찰청 반부패부 부장으로 영전했으며, 박근혜정부의 명운을 쥔 '성완종 게이트' 특별수사팀을 총괄하는 보고라인으로 지명됐다.

수원지검 공안부장이었던 변창훈 검사 역시 출셋길을 걸었다. 2012년 수원지검 형사3부장이 된 그는 오원춘 사건을 처리하고,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으로 발탁됐다. 또 국정원으로 파견돼 '대선 개입' 사건을 수습하고, 올 1월 대검찰청 공안기획관으로 복귀했다.

대법관 후보
총장 하마평

'한명숙 전 총리 관련 수사'(5)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2부가 2009년(뇌물수수)과 2010년(정치자금법 위반) 번갈아 맡았다.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관련 수사를 모두 총괄한 김주현 검사는 올 3월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법무부 차관 임명장을 받았다.

법무부 기획조정실장과 법무부 검찰국장을 지낸 그는 '한명숙 수사' 당시 표적수사라는 비난에도 연이어 한 전 총리를 기소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이었던 권오성 검사는 현재 대전지검 차장검사로 승진했다. 권 검사는 최근 이석우 다음카카오 공동대표에 대한 아동음란물 방치 혐의 수사를 진행해 특유의 '정치적 감각'을 드러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이었던 김기동 검사는 대검찰청 검찰기획단장과 성남지청 차장검사를 거쳐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장 시절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합수단) 단장에 임명됐다. 검찰에 몇 남지 않은 '특수통'인 그는 올 2월 대전고검 차장검사로 보직을 옮겼다. 하지만 서울에서 여전히 합수단을 지휘하며, 박근혜정부와 호흡을 맞추고 있다.

2010년 서울중앙지검 1차장으로 '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수사'(6)를 총괄한 신경식 검사는 청와대에 면죄부를 내렸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또 '용산 참사' 수사에서도 공소 유지를 담당했으나 법원에 수사기록을 제출하지 않은 것이 문제됐다.


그는 올 2월까지 수원지검장을 역임했으며 청와대 민정수석실 개편 과정에서 황교안 법무부장관으로부터 용퇴 압박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옷을 벗은 신 검사는 지난달 변호사 등록을 마쳤다.

'불법사찰 수사'의 또 다른 주역인 오정돈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에서 광주지검 차장검사, 의정부지검 부장검사로 자리를 옮겼다가 현재는 인천시로 파견됐다. 인천시는 오 검사를 시 법률자문검사로 임명했다.

'내곡동 대통령 사저부지 불법매입 의혹'(7) 수사를 맡은 송찬엽 검사는 이명박정부 당시 출셋길에 올랐다가 박근혜정부 들어 낙마한 케이스다. 그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참모(당시 대검찰청 공안부장)로 알려졌는데 2013년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기소 과정에서 선거법 적용에 찬성했다가 이듬해 고검장 승진에서 탈락했다. 서울동부지검장을 마지막으로 2015년 2월 퇴임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으로 내곡동 사건을 담당한 백방준 검사는 2013년 서울고검 검사로 부임했다. 그러나 서울고검 검사는 순환보직으로 경력관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현재 백 검사는 광주시 소속 사법정책보좌관으로 파견됐다. 승진과는 거리가 있는 상황이다.

'미네르바 수사' 김수남 차기 총장 1순위
'김상곤 수사' 윤갑근 성완종 사건 총괄
'노무현 수사'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행
'한명숙 수사' 김주현 법무부 차관 영전

'용산 농성장 화재 및 경찰의 과잉진압과 불법행위 방조수사'(8)는 앞서 밝혔듯 정병두 검사가 수사본부장을 맡았다. 그 밑에서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장으로 사건을 축소한 의혹을 받은 안상돈 검사는 2014년 광주고검 차장검사로 승진했고, 세월호 참사 당시 검경합동수사본부 본부장에 내정됐다. TK 출신인 그는 이번 인사에서 대검찰청 형사부장으로 중앙무대에 복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9)를 밀어붙인 우병우 당시 대검 중수부 1과장은 박근혜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발탁됐다. '포스트 김기춘'이란 별명은 그의 막강한 위세를 드러낸다.

'광우병 촛불집회 참가 시민들에 대한 집시법 위반 등 혐의 적용 수사'(10) 지휘자인 정점식 당시 대검 공안1과장은 박근혜정부 들어 검찰 내 위상이 몰라보게 높아졌다.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이자 정부 측 대리인으로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을 이끈 그는 대검찰청 공안부장에 임명됐다. 차기 인사에서는 지검장으로의 승진이 유력시되고 있다.

'전교조 시국선언 발표에 대한 수사 및 정당가입 추가 수사'(11)를 지휘한 오세인 당시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박근혜정부 들어 요직을 순환하고 지검장으로 영전했다. 2년 동안 초대 대검찰청 반부패부장, 대검찰청 공안부장을 지냈고 서울남부지검장에까지 임명됐다. 특히 오 검사가 있는 서울남부지검은 금융범죄 수사의 거점으로 검찰 내 중요도가 높아졌다는 평가다.

봉욱 당시 대검찰청 공안기획관도 지검장급으로 승진했다. 봉 검사는 법무부 기획조정실 실장, 울산지검장을 거쳐 법무부 법무실장에 발탁됐다. 공직에 있으면서도 2014년 재산은 5억원 가까이 늘었다.

아울러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이었던 윤웅걸 검사는 2014년 공안기획 총괄인 서울중앙지검 2차장으로 승진했고, 올 2월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으로 발령 났다. '전교사 수사'에는 정병두 검사와 신경식 검사가 함께 이름을 올렸다.

'조중동 광고불매 운동에 대한 수사'(12)는 2009년 김수남 검사가 서울중앙지검 3차장 자격으로 지휘했다. 당시 김 검사의 지휘를 받았던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본부장 구본진 검사는 최근 변호사로 전업했다. 퇴임 후에는 필적학자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광고불매 운동에 대한 수사'를 별건으로 확대했던 최재경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인천지검장을 끝으로 검사를 그만뒀다. 검찰 역사상 가장 유능한 특수통으로 불렸던 그는 삼성과 김앤장(법률사무소)에서 온 '러브콜'을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얼마 전에는 <경향신문>에 법조인 자격으로 칼럼을 게재했다.

노승권 검사는 사건 당시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부 2부장을 맡았으며, 현재 대구고검 차장검사로 영전했다. 이명박정부 때는 대검 중수1과장을 역임해 대검 중수부장을 지낸 최 검사와 또 다른 인연이 있다.

'G20 포스터 쥐그림 수사'(2010)를 맡은 공상훈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2차장을 거쳐 올해 창원지검장에 취임했다. 당시 '쥐그림 수사' 외에도 북한 간첩단 '왕재산' 사건을 맡았으며, 곽노현 서울교육감의 후보자 매수사건을 기획해 곽 교육감을 구속기소했다.

공 검사의 지휘를 받은 안병익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에 이어 창원지검 진주지청장, 인천지검 1차장으로 안정적인 경력관리를 하고 있다.

이처럼 이명박정부 때 공을 세운 대다수 검사는 박근혜정부 들어서도 승진을 거듭했다. 단 관련 검사들의 수사권을 쥐고 흔들던 두 서울중앙지검장은 최종 관문인 검찰총장에 오르지 못했다. 나란히 고대 출신이었던 이들은 이명박정부와 운명을 같이 했다.

공안통 일색
특수통 사임

그럼에도 여전히 '잘 나가고' 있는 두 '검사님'이다. 노환균 검사는 법무법인 태평양의 고문변호사가 됐으며, 최교일 검사는 2014년 한전 사외이사(현재 사퇴)와 고려아연의 이사로 동시에 등재됐다.

앞서 최 검사는 지난 2009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특별사면 과정에서 "이 회장이 IOC 위원 자격을 잃으면 스포츠 외교분야에서 국력이 약해질 수 있다"라고 말해 이 회장의 단독사면을 도왔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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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