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게이트> ④박근혜 위기탈출 카드 포착

또 물타기? 노무현 잡고 이완구 보낸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권력기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성완종 게이트'로 낭떠러지에 몰린 여권은 위기를 타개할 '물타기' 카드를 찾고 있다. 표적은 다시 '그 사람'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정원, 국세청이 앞장서고, 검찰은 뒷짐 진 채 특검을 합의할 때까지 시간을 버는 모습이다.

지난 10일 국가정보원이(이하 국정원)이 청와대에 보고하던 이른바 '정치보고서' 작성을 중단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국정원 내부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은 지난 9일 <서울신문> 기자를 만나 이 같이 밝히고 "국정원은 대북 및 해외 관련 업무에 주력할 방침"이라고 주장했다.

국정원 정치개입
비선라인 가능성

국정원은 지난해까지 특정 정치인의 동향이나 정치 현안 등의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작성해 청와대에 전달했다. 보고서는 크게 두 종류로 대통령이 열람하는 'VIP용' 보고서와 수석실(주로 민정)이 참조하는 '수석용' 보고서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일 아침 청와대는 국정원이 서류봉투에 담아 보낸 보고서를 읽고 국정현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 청와대에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정치보고서의 위상을 이렇게 설명했다. "대통령 자리에선 정무적인 결정을 할 때 수백장에 달하는 모든 보고서를 읽어볼 수 없으므로 국정원 보고서가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될 수밖에 없다. 또 국정원의 힘은 ‘정보’에서 나오는데 정권 안보에 방해되는 ‘세력’을 제거하고자 할 때 국정원만큼 신뢰할 수 있는 조직은 없다."

그런데 보도대로라면 국정원은 자신들의 중요한 '기득권'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국정원 관계자는 같은 날 "정치개입 소지가 있는 것은 일절 안 한다"라고 주장했다. 여권 관계자도 "이병기 전 원장(현 청와대 비서실장) 시절 정치보고서를 없앴고, 이병호(현 국정원장) 체제에서도 변한 게 없는 것으로 안다"라고 거들었다.


앞서 국정원은 '대선 개입'으로 촉발된 야권의 비판에 내부 개혁을 약속하면서 "국내 정치 개입 금지"를 공언했다. 긍정적인 시각에서 보면 자신들의 약속을 이행한 것으로 풀이됐다. 반면 청와대 입장에선 다른 해석이 가능했다. 국정원이 자체 취득한 국내 정치정보를 대통령과 직접 공유하지 않겠다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혹은 국정원보다 더 믿을 만한 '비선조직'의 개입 가능성이 점쳐진다. '누군가'가 대통령과 국정원의 직접적인 접촉을 막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으로부터 정례보고를 받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완종 게이트
국정원에겐 기회

공교롭게도 국정원의 '정치보고서 작성 중단' 보도가 나온 날, 초대형 폭로가 정치권을 덮쳤다. 두 전직 청와대 비서실장의 억대 금품 수수 의혹이다. 이들에게 돈을 건넸다고 폭로한 사람은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다. 성 회장은 지난 9일 판도라 상자를 열고,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십상시 파문'조차 비교 불가한 비자금 스캔들은 일파만파 확대됐다. 성 회장은 생전 마지막 유언과 메모를 통해 정권 최고실세로 일컬어지는 8인을 지목했다. <경향신문>과의 단독 인터뷰가 만든 소용돌이는 메가톤급 파괴력을 가진 허리케인으로 확대돼 정권을 직접 타격했다.

최초 공개된 성 회장의 메모에는 '김기춘 10만달러' '허태열 7억원'이란 내용이 적혀있었다. 두 전직 비서실장 외에도 남은 6명의 신원이 속속 공개됐다. 메모 속 인물은 '홍준표(1억), 서병수(2억), 홍문종(2억), 유정복(3억), 이병기, 이완구'였다.

<경향신문>은 지난 16일 지면에서 '성완종 인터뷰' 녹취록 전문을 공개했다. 메모에 쓰인 내용과 성 회장이 생전 육성으로 밝힌 주장은 같았다. 보도 과정에서 이완구 국무총리가 성 회장으로부터 3000만원을 받았다는 의혹도 새롭게 제기됐다. 이 총리는 '목숨' 운운하며 결백을 주장했다.


성 회장이 남긴 '성완종 리스트'는 박근혜정부 전·현직 핵심 참모 및 새누리당 유력 정치인을 궁지로 내몰았다. 아울러 이들 대부분은 소위 친박계 정치인이자 각종 선거 과정에서 박 대통령을 도왔기 때문에 청와대가 직격타를 맞는 최악의 상황이 펼쳐졌다.

국정원·국세청 동원 비선라인 존재 촉각
참여정부 겨냥해 성완종 사면 의혹 조준

국정원은 이 시점에 등장했다. 얼결에 메모를 입수한 검찰이 대응방향을 고심하고 있을 때 국정원은 발 빠르게 움직여 첩보를 수집했다는 주장이다. 국정원이 모은 정보는 메모 속 8인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국정원은 스스로 선언한 '정치 개입 중단'에 충실했다. 이들은 '기업인'인 성 회장의 과거, 그 중에서도 참여정부 당시 사면을 받았던 정황에 주목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정기관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지난 14일 "국정원이 불리한 국면에서 성완종의 사면 사실을 신속히 밝혀 공을 세웠다"라고 말했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여권에 말문을 터줬다는 것이다.

이어 이 관계자는 “'물타기'를 하려는 것인지, 국정원 직원들이 경남기업의 인수합병 과정과 민·관 공사 수주 과정에 대해서도 파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국정원은 정치보고서를 작성하지 않겠다고 했을 뿐 첩보 수집을 멈추겠다고 약속하지는 않았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사정 정보라인에서 '그런 얘기'가 돈 것을 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여러 권력기관이 합동으로 성 회장의 과거 행적을 쫓고 있는 상황을 인정했다. 물론 여당 정치인은 예외다. 첩보수집의 방향성은 철저히 참여정부에 맞춰지고 있는 모습이다.

이를테면 참여정부 당시 경남기업이 자사 브랜드인 경남아너스빌을 여러 곳에 착공했는데 이 과정에 특혜가 있었다는 제보를 흘리는 식이다. 정보의 진실성은 중요치 않다. 최대한 참여정부가 부각될 수 있는 '찌라시'를 모아 언론을 통해 의혹을 제기하게끔 하고 "여야 모두가 잘못했다"는 쪽으로 여론이 형성되면 성공이다.

국정원의 동향을 전한 관계자는 "만약 '성완종 리스트'에 김기춘이 아닌 문재인이란 이름이 적혀 있었다면 어땠을까. 마찬가지로 여당에 불리한 정보를 취합해 균형을 맞췄을까. 나는 아나라고 본다"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박근혜정부가 위기 탈출을 위해 '노무현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절묘한 타이밍
국세청도 가담

관계자들의 주장은 현실로 드러났다. 국세청은 같은 날 조사관 20여명을 투입해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로 알려져 있다.

복수 언론은 16일 "이번 조사가 정기 또는 비정기 조사인지 확인되지 않았다"라고 보도했다. 정기 조사는 말 그대로 정기적(4~5년)으로 하는 세무조사이며, 비정기조사는 불투명한 자금 거래 등을 밝히기 위해 임의로 하는 특별조사다.

국세청은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기획하면서 사전 통지를 생략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국세청이 '특수한 시점'에 맞춰 세무조사에 착수한 뒤 언론을 활용한 셈이다.


지난 2008년 국세청은 태광실업 세무조사로 노 전 대통령을 겨냥한 사정작업의 포문을 열었다. 박 회장은 당시 탈세와 정관계 로비 혐의로 구속기소돼 징역 2년6월을 판결 받았다. 만기 출소한 박 회장은 최근 해외에 머물고 있다. 급작스런 세무조사에 대응하기 힘든 상황이다. 특정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는 그간의 사례를 비춰봤을 때 정치적인 의도가 깔려있을 개연성이 높다.

국세청은 박근혜정부 들어 '연말정산 파동'과 '세수 결손' 등으로 미운털이 박혔다. 증거 조작으로 물의를 빚은 국정원과 마찬가지로 조직의 입지가 위태롭다. 정권 차원의 위기 상황은 조직의 '충성'을 시험할 수 있는 무대다. 이 같은 배경으로 국정원과 국세청이 가장 먼저 움직였다는 주장도 있다.

검찰은 주춤한 모습이다. 성 회장을 압박해 이명박정부 실세를 낚으려던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죽음을 통해 드러난 성 회장의 실체는 'MB맨'이 아닌 '근혜맨'이었다. 결과적으로 검찰은 벌집을 건드려 '아군'에 피해를 입혔다.

박근혜-김무성 단독회동
'이완구 자르기' 합의설

'MB를 직접 겨냥하진 못할 것'이란 세간의 예측은 맞아 떨어지고 있다. 성 회장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원 쪽을 뒤지다 없으면 그만둬야지. 마누라와 아들, 오만 것까지 다 뒤져서 가지치기 해봐도 또 없으니까 1조원 분식 얘기를 했다. (검찰이) 저거(이명박정부의 자원외교)와 제 것(배임·횡령 혐의)을 '딜'하라고 그러는데, 내가 딜할 게 있어야지요"라고 말했다.

이는 성 회장에 대한 수사가 궁극적으로는 이명박정부를 겨누기 위한 발판이었다는 증거다. 하지만 성 회장의 죽음을 계기로 관련한 수사는 사실상 중단된 상황이다.


발등의 불은 '친박'의 명운을 쥔 대선자금 수사다. 그러나 일각에선 검찰의 수사의지를 의심하고 있다. 당장 검찰 주변엔 USB를 비롯한 핵심 증거 확보에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나돈다.

나아가 <조선일보>는 지난 17일 "여야 인사 14명이 포함된 '성완종 장부'가 나왔다"라고 보도했다. 보도의 핵심은 '여'가 아닌 '야'다. 지금껏 언급되지 않았던 야당 정치인 7~8명에 대한 로비 자료가 포함됐다는 내용이다. 관련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의심되는 '윗선'은 성 회장이 언급한 8인에 대한 수사를 늦추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신 야권이 연루된 자료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한 관계자는 알렸다.

<조선일보>가 보도한 야당 정치인 중 일부는 성 회장으로부터 '통상적인' 정치후원금을 받았다. 이는 성 회장이 여당 쪽에 제공한 '대선 자금'과는 성격이 다른 돈이다. 그럼에도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한 수사를 보강할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내부에선 검찰의 역할을 '여야 균형 맞추기'로 보는 분위기다.

이완구 아웃?
문재인 엮는다

특히 여당은 특검 도입을 주장함으로써 야당의 딜레마를 적극 이용하고 있다. 앞서 여당이 사건 직후 특검을 제안한 이유는 시간을 벌기 위함으로 전해졌다. 당초 야당은 특검으로 이슈가 분산될 것을 우려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여당의 노림수에 말려들고 있다. 박 대통령도 특검에 찬성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지난 16일 박 대통령과 단독으로 회동한 자리에서 이 총리의 거취 문제를 논의했다. 김 대표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남미 순방을 다녀와서 결정하겠다"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이 총리의 사퇴가 임박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차기 총리 후보로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내정됐다는 설이 전해진다. '이완구를 자르는 선에서 사건을 봉합하고, 대선자금 수사는 흐지부지 종결하겠다'는 게 소문의 요지다.

변수는 이 총리다. 이 총리가 순순히 사퇴에 응할지는 미지수다. 관련한 맥락에서 이 총리 팬클럽으로 알려진 '완사모(이완구를 사랑하는 모임)' 회장에 대한 60억원대 횡령 수사가 눈길을 끈다. 완사모가 언급된 연이은 검찰발 보도는 박근혜정부의 숨은 의중을 가늠케 한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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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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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