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많은 회장님 '성완종 살생부' 실체

이명박 털려다 박근혜 털린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해외 자원개발 비리 수사로 이명박정부를 겨냥했던 청와대가 심각한 역풍을 맞았다. '죽은 성완종'이 '산 박근혜'를 쫓고 있는 꼴이다. "나는 MB맨이 아닌 MB정부의 피해자"라고 울먹였던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은 죽음과 맞바꾼 메카톤급 폭로로 정부·여당의 폐부를 찔렀다. 이제 관심은 '성완종 리스트'에 모아진다. 메모 내용이 사실이라면 청와대의 남은 운명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10일 새벽 6시 초대형 폭로가 나왔다. 두 전직 청와대 비서실장의 억대 금품 수수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이들에게 돈을 건넸다고 밝힌 사람은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다. 성 회장은 판도라 상자를 열고, 몇 시간 뒤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자원외교 역풍
정부에 부메랑

'십상시 파문'조차 비교 불가한 사상 초유의 비자금 스캔들이 터졌다. 성 회장은 생전 마지막 유언을 가족이 아닌 언론 기자에게 남겼다. <경향신문>과 가진 단독 인터뷰가 만든 소용돌이는 메가톤급 파괴력을 가진 허리케인으로 확대돼 청와대를 덮쳤다.

성 회장은 자살을 결심한 지난 9일 새벽 5시 유서를 남기고 자택을 나섰다. 자택 인근의 리베라호텔 앞에서 택시를 타고 5시30분께 북한산에 도착했다. <경향신문>은 약 30분 뒤 성 회장과 전화로 인터뷰했다. 결과적으로 유언이 된 그의 인터뷰는 거대한 후폭풍을 몰고 왔다.

10일 공개된 인터뷰에 따르면 성 회장은 지난 2007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을 전후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각각 10만달러와 7억원을 건넸다. 돈의 성격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단 당시 대선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성 회장은 두 실장에게 돈을 전달한 시기와 장소를 정확히 묘사했다. 김 전 실장에 대해선 "2006년 9월 VIP(박근혜 대통령) 모시고 독일 갈 때 10만달러를 바꿔서 롯데호텔 헬스클럽에서 (돈을) 전달했다. 당시 수행비서도 함께 왔었다. 결과적으로 신뢰관계에서 한 일이었다"라고 말했다.

또 허 전 실장에 대해선 "2007년 당시 허 본부장(당시 박근혜캠프 직능총괄본부장)을 강남 리베라호텔에서 만나 7억원을 서너 차례 나눠서 현금으로 줬다. 돈은 심부름한 사람이 갖고 가고 내가 직접 주었다"라고 말했다. 성 회장은 "그렇게 (돈을 전달해) 경선을 치른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권 핵심 인사들 도마 '일파만파'
성회장 메모 사실이면 현정부 '끝'

성 회장의 인터뷰는 이날 오전 거의 모든 매체가 빠짐없이 인용했다. 사안이 가진 폭발력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일각에선 '녹취록이 정말 있는 것이냐'라며 의문을 표했다. <경향신문>은 같은 날 오후 12시 성 회장의 육성 녹취록을 직접 공개하며 논란을 정리했다. 녹취록의 내용과 보도된 내용은 정확히 일치했다. 의혹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이로부터 약 2시간 뒤엔 성 회장이 죽기 직전 남긴 메모가 세상에 알려졌다. 성 회장의 시신을 검시하는 과정에서 검찰이 메모를 확보한 것이다. 메모에는 두 실장을 포함한 여권 거물급 정치인 8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메모에 쓰인 내용은 성 회장이 생전 육성으로 밝힌 주장과 같았다. '김기춘 10만달러' '허태열 7억원' 등의 내용이 담겨 있던 것이다.

남은 6명의 신원도 속속 드러났다. 메모 속 인물이 '홍준표(1억), 부산시장(2억), 홍문종(2억), 유정복(3억), 이병기, 이완구'라는 방송보도가 잇따랐다. 검찰은 "대체적으로 (언론에서 밝힌) 내용이 같다"라며 사실을 인정했다. 여기서 '부산시장'은 친박계인 서병수 부산시장으로 확인됐다.

메모의 필적은 평소 성 회장의 필적과 비슷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성 회장의 메모가 맞는지 필적감정을 의뢰했고, 본인 것이 맞다는 확인을 받았다. 메모에 적힌 총 글자 수는 55자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이병기 현 청와대 비서실장과 이완구 국무총리는 구체적인 금액이 적혀있지 않아 의문을 자아냈다. 남은 4명은 각각 성 회장으로부터 적힌 액수만큼의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메가톤급 파괴력
판도라상자 열려

비록 성 회장은 세상에 없지만 그가 남긴 '성완종 리스트'는 박근혜정부 전·현직 핵심참모, 새누리당 유력 정치인을 궁지로 내몰았다. 아울러 이들 대부분은 소위 친박계 정치인이자 각종 선거 과정에서 박 대통령을 도왔기 때문에 청와대가 직격타를 맞는 최악의 상황이 펼쳐졌다. 박근혜정부 입장에선 성 회장이 토끼인 줄 알고 몰았다가 사냥개에 물린 형국이다.

지난 2월26일 <세계일보> 보도를 시작으로 박근혜정부는 '부패와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이 무렵 수사의 무게 중심은 포스코에 쏠렸다. 이 총리가 먼저 3월12일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하겠다"라고 말했고, 같은 달 17일에는 박 대통령이 "비리의 뿌리를 찾아내 뿌리 덩어리를 들어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당시 경남기업에 대한 수사는 일종의 보험 성격으로 풀이됐다. 자원개발 비리 수사는 영포라인뿐 아니라 일부 친이계 전·현직 의원을 옭아 멜 수 있고, 현 정권에 직접 타격을 입히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선택지로 꼽혔다.

그렇지만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포스코 수사는 기대만큼 풀리지 않았다. 지금껏 포스코 수사의 핵심 인물인 정동화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에 대한 소환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반대로 경남기업 수사는 빠른 속도로 핵심에 다가갔다. 압수수색부터 구속영장 청구까지 일사천리였다.

타깃이 된 성 회장은 기업 경영권을 포기했으며, 회사는 법정관리·상장폐지로 내몰렸다. 비빌 곳이 없어서였는지 수사의 강도도 셌다. 검찰은 압수수색 18일(4월3일) 만에 성 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다. 다음날엔 언론을 통해 성 회장의 구속수사를 기정사실화했다. 성 회장에게는 'MB맨'이라는 별명이 덧씌워졌다. 이명박정부 당시 정권 차원의 특혜를 받았다는 보도도 나왔다.

사망 전 육성파일
"나눠서 7억 줬다"

그러나 성 회장은 지난 8일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나는 MB맨이 아니다"라며 요목조목 억울함을 호소했다. 또 성 회장은 "(지난) 2012년 총선에서 선진통일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는데 새누리당과 합당 이후 대선과정에서 박근혜 후보를 위해 혼신을 다했다"라며 눈물을 훔쳤다.

수사기관도 이 같은 사실을 인지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성 회장을 'MB맨'으로 분류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다. 그는 지난 정권의 핵심축이었던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에 속하지 않았다. 당내 계파 구도상 친이계로 뚜렷한 목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하지만 검찰은 한국광물자원공사와 경남기업이 해외 자원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불투명한 자금 거래가 있었다는 혐의를 잡고, 둘 사이의 연관성을 찾으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망이 좁혀오자 성 회장은 여러 친박계 중견 정치인에게 구명을 요청했지만 "죄가 없으면 수사를 받으라"며 번번이 거부당했다고 전해진다. 메모에 등장하는 이 실장 역시 성 회장의 구명 요구를 거절했다고 밝혔다.

때문에 기자회견은 그가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 있는 카드였다. 그러나 성 회장의 바람과 달리 기자회견 이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성 회장은 바로 다음날 비극적인 선택을 했다. 성 회장을 통해 지난 정권 인사를 엮으려던 검찰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검찰 수사 리턴?…정관계 긴장
'뇌물리스트' 존재 여부에 촉각


'MB를 직접 겨냥하진 못할 것'이란 세간의 예측은 맞아 떨어지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들은 '메릴린치 자문 사기' 의혹 등을 받고 있음에도 참고인 조사조차 받지 않고 있다. 오히려 MB 쪽을 어설프게 건드린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이들은 '친박'이다. 생전 성 회장은 이 전 대통령과의 연관성을 부인했지만 성 회장의 죽음으로 가장 득을 본 인물은 바로 이 전 대통령이다.

<경향신문> 인터뷰에 따르면 성 회장은 "자원 쪽을 뒤지다 없으면 그만둬야지. 마누라와 아들, 오만 것까지 다 뒤져서 가지치기 해봐도 또 없으니까 1조원 분식 얘기를 했다"라며 "(검찰이) 저거(이명박정권의 자원외교)와 제 것(배임·횡령 혐의)을 '딜'하라고 그러는데, 내가 딜할 게 있어야지요"라고 말했다.

이는 성 회장에 대한 수사가 궁극적으로는 MB 쪽을 겨누기 위한 발판이었다는 증거다. 정부는 진짜 'MB맨'을 잡기 위해 가짜 'MB맨'을 벼랑으로 몬 것이다. 성 회장의 죽음을 계기로 관련 수사는 사실상 중단될 개연성이 높다. 검찰 입장에선 수사 계획을 처음부터 다시 조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4·29재보선을 앞두고 '성완종 리스트'는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변수로 떠올랐다. 대중의 관심은 사건 관련자의 금품 수수 여부에 쏠리고 있다.

김 실장과 허 실장, 그 밖에 언급된 모든 정치인은 "돈을 받은 적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김 실장은 청와대를 통해 해명자료를 보내는 등 이례적으로 해명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진실을 가리려면 보다 많은 증거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한 검찰 관계자는 "공소시효도 따져봐야 하지만 금품거래 의혹의 당사자인 성 회장이 사망했기 때문에 수사가 어렵다"라는 입장을 전했다.

4·29재보선
변수로 떠올라


검찰의 수사 착수와는 별개로 성 회장이 쓴 메모와 육성 녹취록 등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관련한 의혹 제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시비를 가리는 유일한 끈은 '제3의 목격자'다.

<경향신문>이 공개한 육성파일을 들으면 성 회장이 금품을 전달하는 과정에 '심부름을 시킨 사람'과 '수행비서'가 등장한다. 만약 이들이 성 회장의 인터뷰가 사실이라고 진술한다면 청와대의 남은 3년은 장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뇌물 메모' 8인의 반박

[김기춘] "악의적이고 황당무계한 내용"
[허태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홍준표] "돈 받을 정도로 친밀감 없다"
[서병수] "알지만 왜 거론됐나 모르겠다"
[홍문종] “하늘에 한 점 부끄러움 없다”
[유정복] "단 1원 한푼도 받은 적 없다"
[이병기] "인간적으로 섭섭했던 것 같다"
[이완구] "의정때 그렇게 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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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