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 정부' 대한민국 수소차 현주소

딴나란 안 그런데…우리나라만 뒷전

[일요시사 취재1팀] 이광호 기자 = 세계 각국이 새로운 에너지원 확보와 환경 보존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유수의 자동차 업체들은 수소연료전지차에 공을 들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현대차가 앞장서 수소차 개발 전쟁에 뛰어들었지만 갈 길이 멀다. 다른 나라들과 달리 지원이 미비해서다. 이대로 가다간 주도권을 빼앗길 것이란 지적이다.

 
수소연료 산업은 공해물질의 배출 없이 오직 물만 배출해 동력을 생산해 낼 수 있는 차세대 에너지 산업이다. 자동차 분야에 있어서도 수소연료전지차가 궁극적인 미래 친환경차로 주목을 받고 있다.

부실한 정책적 지원
추진동력 잃을 위기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KARI)에 따르면 디젤차(투싼ix 2.0 디젤 기준) 100만대를 수소연료전지차(투싼ix 수소연료전지차 기준)로 대체했을 경우 연간 1조5000억원의 원유 수입 대체 효과가 발생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수소연료전지차 100만대는 1GW(10만대Ⅹ10kw/대)급 원자력 발전소 10기(구축비용 약 30조원)의 역할에 버금간다.
 
수소연료전지차를 에너지 저장소 및 가상 발전소로 활용할 수도 있어 전력 피크시 전력계통, 산업 또는 가정에 전력을 공급하는 것도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온실가스 감축 효과도 커 수소연료전지차를 100만대 운행할 경우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연간 210만t이나 저감시킬 수 있다.
 

사실상 모든 분야에 혁신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수소연료전지 사업은 수소연료전지차를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다. 일본 닛케이 BP 클린테크연구소에 따르면 오는 2030년 세계 연료전지 시장 규모는 약 400조원, 2050년에는 무려 16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수소연료전지차 및 충전 인프라 산업이 전체 연료전지 시장의 성장을 주도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부경진 서울대 공과대학 교수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에도 오는 2040년 ▲연료전지 산업 규모는 약 107조원 ▲생산 유발효과는 약 23조5000억원 ▲고용효과는 17만 3300명에 달할 것으로 관측된다.
 
우리나라는 현대차가 앞장서 수소차 개발 전쟁에 뛰어들었다. 이미 세계 최초로 수소연료전지차 양산 체제를 구축한 상황. 광주시가 현대차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국 수소연료전지 산업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 최초 수소연료전지차 양산체제
현대차 앞장 미래 친환경차 주도 선점
 
지난 1월 광주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출범했다. 출범식에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참석할 정도로 국민의 관심을 끌었다. 광주시와 현대차는 “미래 주력 산업으로 성장할 수소연료전지차 산업에서 선도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활발한 산·학·연 협동 체제를 구축할 계획”이라며 “전문인력 양성과 저변 확대를 위한 지원에도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광주는 수소에너지 산업 발전에 필요한 전방산업, 연구 및 산업 인프라를 확보하고 있어 현대차와 함께 국내 수소연료전지 산업에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현대차는 2013년 울산공장에 수소연료전지차 전용 라인을 구축해 도요타·GM·다임러 등 글로벌 업체들이 목표로 한 2015년보다 2년이나 앞서 세계 최초로 수소연료전지차 앙산체제를 구축했다. 미국 자동차 전문 예측기관인 ‘내비건트 리서치’는 현대차를 수소연료전지차의 ‘확고한 1위’로 평가한 바 있다.
 

그러나 갈 길이 멀다. 다른 나라들과 달리 지원이 미비해서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세계 친환경차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수소연료전지차에 기술을 보유하고도 우리나라의 현 상황은 수소연료전지차 산업의 선도 국가로서의 모습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본격적인 수소시대
치고 나가야 하는데…
 
일본만 비교해도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올해 수소연료전지차 본격 보급을 앞두고 있는 일본은 가장 적극적으로 ‘수소사회’구현을 준비하고 있는 국가로 꼽힌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4월 ‘제4차 에너지 기본계획’에서 ‘수소사회 실현’을 선언하고, 기본계획 발표 후 불과 2개월 만에 ‘수소연료전지 전략 로드맵’을 공개했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확산’을 목표로, 글로벌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일본 정부는 올해부터 일반인 대상 구매 보조, 수소 충전소 설치비용 국고 보조 등 수소연료전지차 보급 정책을 추진 중이다. 또 충전소 확충을 위해 고압가스 안전법, 소방법, 건축 기준법 등 관련 규제도 대폭 완화할 계획이다.
 
우선 수소탱크에 적용되는 수소 압축률을 높이고 충전소당 수소 저장량 제한을 없애 하나의 거점이 더 많은 차량의 수소 충전을 소화해 낼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충천소 설치 장소에 대한 규제도 완화함으로써 일반 주유소 대비 많게는 10배까지 차이가 나는 건설비용을 2020년까지 2배 정도로 떨어뜨린다는 목표다.
 
특히 초기 투자비가 높은 충전소 구축을 지원하기 위해 충전소당 최대 2억8000만엔(약 26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미 지난해까지 40건 이상의 충전소 건립 보조금을 지급 완료했다. 올해에도 충전소 설치 보조금으로만 100억엔(약 925억원)을 배정하는 등 인프라 구축을 위해 2014년의 3배 수준인 총 400억엔(약 3700억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일본 정부는 인프라 구축뿐만 아니라 자국의 대표적인 자동차 기업에 대한 지원과 소비자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보조금 지원도 아끼지 않고 있다. 2015년 수소연료전지차의 일반 보급 본격화를 앞두고 보조금 제도를 도입해 대당 200만∼300만엔(최대 약 277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지방 정부도 보조금 지급 및 자동차세 면제 등을 통해 지원을 늘린다는 방침이다.
 
세계 각국 인프라 구축 등 밀어주기
한국은 불확실한 계획에 예산도 줄어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국들도 이미 수소경제를 향해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은 세일혁명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크게 하락하자 수소에너지 개발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를 중심으로 강화되고 있는 친환경차 보급 정책을 통해 수소연료전지차 보급을 위한 인프라를 강화하고 있다.
 
2012년 ‘수소연료전지차 보급 로드맵’을 발표한 캘리포니아주는 2013년 대체 연료·자동차 기술 자금지원 프로그램인 ‘AB8법’을 통과시켜 수소충전소 100기 구축까지 매년 2000만달러씩 투자하겠다고 공언했다. 올해 말까지 총 51개의 충전소 구축을 위해 이미 5000만 달러 수준의 투자를 집행하기 시작했다. 구매 지원 금액도 기존 2500달러에서 5000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인프라 구축과 보조를 맞춰 캘리포니아주에서만 2025년까지 무공해차(ZEV) 150만대 보급을 선언한 상태다.
 

온실가스 저감에 관심이 많은 유럽은 신재생에너지 활용 극대화 수단으로 수소연료전지에 주목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덴마크는 수소연료전지차 보급 목표(전체 등록 차량 내 수소연료전지차 비율)를 ▲2020년 1%(누적대수 2만4000대) ▲2035년 30%(80만대) ▲2050년 50%(140만대)로 잡았다. 

35억 관련 예산
올 20억원으로 
 
이를 위해 파격적인 세제혜택을 통한 수소연료전지차 보급 확대 정책을 추진 중이다. 차를 구매할 경우 차값과는 별도로 차량 가격의 최대 180%에 달하는 자동차 등록세를 내야 하지만, 덴마크 정부는 수소연료전지차에 대해 면제해 주고 있다. 충전소도 대도시를 기점으로 반경 150㎞ 마다 1기씩 구축하는 등 2025년까지 185기, 2050년까지 1000기를 전국에 구축할 계획이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어떨까. 국내 정책과 인프라 구축은 세계적인 속도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첫 걸음을 먼저 내디뎠지만 앞으로 더 나아갈 추진력을 잃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35억원이었던 수소연료전지차 관련 예산을 올해 무려 43%나 줄인 20억원으로 책정해 자동차 산업 관계자들을 더욱 당혹하게 만들고 있다. 이 와중에 2013년 에너지기술평가원에서 공모해 2016년까지 137억원을 들여 세종시에 수소충전소를 건설하려던 계획마저 무산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이원욱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일본은 경제산업성 내 수소 전담기관을 설립해 내년까지 수소충전소 100기 구축을 발표했는데 반해 우리는 세계 최초로 수소연료전지차 양산을 시작했는데도 지금은 연구용 충전소 13곳이 전부인 상황”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렇다고 끝난 게 아니다. 아직까지 일본과 미국도 인프라 구축이 완료된 것은 아니다. 정부와 기업, 그리고 연구기관 등 민·관 협력을 통한 수소연료전지차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따른다면 지금도 늦지 않았다.
수소연료전지차 산업이 성공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인프라 구축과 보급도 중요하지만 자생할 수 있는 시장형성이 필수적이다. 우리나라의 준비 상황과 인식이 미흡한 부분이 있지만, 적극적인 정부 정책과 함께 민·관의 긴밀한 협력 체계가 갖춰진다면 충분히 세계 시장을 선도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 
 
국내 수소산업은 중 발전용 연료전지 시장은 정부 정책 지원에 힘입어 지난 2009년(8.4MW) 부터 2013년(127.6MW)까지 연평균 57.8% 성장했다. LNG를 연료 원으로 사용하고, 핵심 기술 자립도가 다소 부족하다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대규모 전력 생산업자에게 일정 비율 이상 신재생에너지 공급을 의무화하는 의무할당제(RPS) 시행이 상당한 효과를 봤다.
 
연료전지 산업 분야는 석유화학 등 에너지 분야나 자동차, 가전 등 제조 부문이 튼튼한 우리나라 역시 일본 못지않게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수소연료전지차를 양산화한 현대차그룹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수소연료전지차 보급 확산, 충전 인프라 확대를 위한 계획을 구체화하고 그린카 에너지 실증사업에 좀 더 속도를 낸다면 우리나라가 미래 수소사회를 주도할 수 있다.
 
최근 출범한 광주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중심이 돼 정부, 지자체 등의 적극적인 정책 지원을 이끌어 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현대차도 우수 협력사, 우수 인재를 발굴해 기술력을 강화하고 가격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세계 최고 기술력 
경쟁선 뒤쳐질라
 
유지수 국민대 총장은 “우리나라가 수소연료전지차 양산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성공했지만 보급과 확산에서는 일본에 뒤지고 있다. 친환경과 경제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주도권 싸움에서 밀리지 않고 소재, 부품, 석유화학, 제철, 건설 등 전후방 연관산업에 큰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해선 서둘러 구체적인 로드맵을 마련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한국 정부 vs 일본 정부' 수소차 지원 비교
밀어주는 ‘미라이’ 나몰라 ‘투싼 FCEV’
 
한국 정부의 수소연료전지차 지원이 일본 정부와 다르다는 점은 두 나라의 대표적인 수소차를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올해부터 본격 민간 보급을 앞두고 있는 도요타의 수소연료전지차 ‘미라이’는 최근 가격을 700만엔(약 6470만원)으로 책정했다. 1억5000만원의 투싼FCEV보다 가격 면에서 경쟁력이 높다.
 
도요타가 공격적인 가격 정책을 펼칠 수 있는 데에는 무엇보다 정부와의 긴밀한 협력과 적극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있는 도요타의 ‘미라이’는 출시 한 달여 만에 1500여대가 계약됐다. 이를 구입하기 위해 1년 넘게 고객이 대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도요타는 당초 연 700대 가량을 생산하기로 했으나, 2017년 3000대까지 늘리기로 했다. 도쿄에서 하계 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까지 6000대의 수소연료전지차를 보급할 계획이다. 과거 도요타는 보조금, 세금 감면 등 강력한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프리우스를 통해 하이브리드 시장을 선점한 성공사례가 있다.
 
반면 이미 양산체제 구축한 지 2년을 바라보고 있는 현대차의 투싼FCEV는 세계 최초로 북유럽을 비롯해 미국 캘리포니아주 시범 보급을 하는 등 시장 선점을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누적 계약이 200여대, 출고 대수는 150여대에 불과하다.
 
대당 가격이 1억5000만원인 투싼FCEV에 대한 보조금은 지방자치단체에 한해 6000만원을 지원하지만, 민간에 대해서는 지원금액이 결정되지 않았다. 보조금은 차치하고서라도 수소연료전지차 보급은 정부의 시범보급사업으로 지정돼 일반 소비자가 구입할 수 있는 방법조차 없는 상황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투싼FCEV는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 시장에서 수소연료전지차 최초로 ‘세계 10대 엔진상’을 수상하는 등 호평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격 경쟁력과 인프라를 확보하지 못해 오히려 후발 주자에게 역전을 당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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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