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동 민원 급증 속사정

“섹스동영상 삭제해 주세요”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애인과 성관계하는 장면을 촬영한 동영상이 유출됐다며 ‘야동(음란동영상)’을 삭제해 달라는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 보통 ‘XX녀’란 이름으로 온라인을 통해 유통되다 뒤늦게 화면 속 여성이나 그 대리인이 민원을 제기해 삭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삭제된 야동은 지난해 무려 1400건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성 개방 풍조 확산과 디지털기기 관리 미숙으로 인해 벌어지는 풍경이다.

  
‘일반인’ ‘XX녀’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성관계 동영상은 대부분 커플들이 셀카로 찍은 것들이다. 성관계를 가지면서 그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하더라도 보관을 목적으로 동의를 얻었다면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지난달 24일 나왔다. 상대 동의하에 촬영했고 외부로 유포하려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사생활로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다.

보복성 유출
혹은 실수
 
그렇다면 동영상 속 커플이 헤어진 뒤 한쪽이 일방적으로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면 어떻게 될까. 촬영 시점에 합의했다 하더라도 상대방 동의 없이 유포하면 처벌을 받게 된다. 영리 목적으로 영상을 공개하면 가중처벌이다. 연인시절에 동영상 한번 잘못 찍었다가 자신의 알몸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불상사가 발생하는 것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에 따르면 지난해 “내가 나오는 성관계 동영상을 인터넷에서 삭제해달라”는 민원이 1404건이었다. 하루 약 4명 꼴로 ‘야동 민원’을 넣었다. 동영상 속 주인공들은 영상이 유포된 사실조차 몰랐거나, 알고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은 경우까지 합치면 이 같은 민원은 한 해 수천건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야동 유출에 따른 고민을 토로하는 글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직장인 여성 A씨는 3년 전 소개팅을 통해 남성 B씨를 만났다. A씨는 잘생긴 외모와 번듯한 직장을 갖고 있는 B씨에게 호감을 느꼈고 연인사이로 발전하게 됐다. 주말 데이트의 종착점은 언제나 모텔이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B씨는 A씨에게 ‘섹스 모니터링’을 제안했다.
 
스마트폰으로 자신들의 성관계 모습을 촬영해보자는 것이었다. 처음에 A씨는 정색을 하며 거부했다. 그러나 B씨의 끈질긴 설득 끝에 동영상 촬영을 허락했다. A씨와 B씨는 스마트폰을 삼각대로 고정시킨 채 성관계를 가졌다. 이들은 이런 식으로 몇 달 동안 연애를 했다. 그러다 마음이 맞지 않아 이별을 맞이했다.
 
문제는 헤어지고 3년 뒤에 터졌다. A씨는 단짝 이성친구로부터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 됐다. 야동을 검색하던 중 A씨로 의심되는 야동을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A씨는 즉시 그 야동을 재생했고 동영상 속 주인공이 자신임을 알게 됐다. A씨는 ‘멘붕’에 빠졌다. 야동은 이미 다양한 경로로 유출된 상태였다. A씨는 B씨의 휴대폰 번호를 급하게 찾았지만 알 수 없었다.
 
신고를 할까 고민을 했지만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몰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의 남자친구가 알게 될까 조마조마했다.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사이였기 때문에 더욱 걱정이 컸다. A씨의 야동은 여전히 인터넷 상을 떠돌아다니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하루 3.8건 요청
 
일반인들의 성관계 동영상의 유출은 최근 증가 추세다. 방심위에 따르면 ‘본인 성관계 동영상’ 삭제 요청은 2013년에는 1166건이 제기됐다. 2013년과 2014년 1년 사이 20%가 증가했다. 방심위에 제기되는 개인 초상권 침해 관련 전체 시정요구 중에서 이런 동영상이 차지하는 비중도 크게 늘었다. 2013년에는 초상권 관련 시정요구가 1964건 접수돼, 본인 성관계 동영상(1166건)의 비중이 59%였다. 2014년에는 초상권 관련 시정요구 1679건 가운데 개인 성행위 영상이 1404건으로 83%를 차지했다.
 

유출된 동영상은 올라오기가 무섭게 파일 공유 서비스, 인터넷 게시판 등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간다. 유포자는 대부분 남성으로 알려져 있다. 이별한 뒤 보복성으로 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는 것이 주요 유출 경로다. 이들에 의해 유포된 동영상의 제목은 보통 피해 여성의 특징을 짧게 묘사한 ‘XX녀’ 혹은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해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XX대학교 12학번XX녀’ 등이다.
 
 
방심위는 스마트폰 대중화로 인해 영상 유출이나 삭제 민원이 늘어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에는 영상을 찍으려면 전용 촬영 장비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 성능이 좋아져서 무선 인터넷 속도도 점점 빨라져 신속한 촬영이 가능하게 됐다. 영상을 찍는 것도 쉽지만 그만큼 유포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어 일반인들의 성관계 동영상이 꾸준히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 인터넷·SNS에 퍼져
지인들 볼까 두려워…고민하다 고해성사
 
성관계 동영상 삭제 요청은 인터넷으로 받는다. 동영상이 올라와 있는 곳의 인터넷 주소(URL)는 필수 입력 사항이다. 피해자 본인이 삭제를 요청하기도 하지만 위임장을 받은 대리인이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민원이 제기되면 방심위에서는 해당 게시물을 삭제·차단 조치한다. 영상이 국내에서 유통되는 경우 해당 게시판 운영자나 포털사이트 등에 요청해 삭제한다.
 
해외로 퍼져나가면 국내법을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인터넷 망 사업자(SKT·KT·LG유플러스)에 요청해 국내에서 해당 정보에 접속하지 못하도록 차단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의미가 없다. 정보가 무한 복제되는 인터넷 특성상 영상이 한번 유포되면 사실상 100% 차단 및 삭제는 어렵다.
 
방심위 관계자는 “좋은 감정에서 찍었던 동영상이 유출되는 경우가 다반사로, 유출에 조심한다기보다는 무엇보다 찍지 않은 게 최선”이라고 당부했다. 개인 성관계 동영상을 온라인에 유포할 경우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관한 특례법’ 등에 따라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방심위는 개인 성관계 동영상 민원이 제기되면 삭제 조치와 함께 민원인에게 유포자를 추적해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동영상 유출 피해자들은 자신이 나온 동영상이 인터넷 상에서 사라지길 바란다. 하지만 해외 음란사이트로 퍼지는 순간 모든 건 물거품이 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유출된 성관계 동영상을 지우는 대행 서비스도 성행하고 있지만 그 효과는 미미하다. 
 
성관계 동영상 유출본 상당수는 보복성인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기기 분실로 인한 유출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스마트폰, 컴퓨터 수리기사 등이 기기를 다루면서 고객 신상정보와 고객의 기기 속 영상을 합쳐 유포한 사례가 종종 나타나고 있다.

전 남친 섹스동영상
현 남친 볼까 두려워
 
과거에는 ‘일반인’을 검색하면 헤어진 연인에 대한 복수 등을 위해 의도적으로 유출한 ‘몰카’ 야동 일색이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영상 속 자막 또는 파일 이름에 개인 신상정보가 들어 있는 일반인 성관계 동영상 천지다. ‘일반인’ ‘XX녀’ 등 자연스러운 야동이 인기다. 그런데 야동의 제목과 내용이 맞지 않는 경우가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안양 XX동 XXX’ ‘광주 XX여상 3학년 XXX’ 등 구체적인 주소나 소속, 이름 등이 적혀 있는 영상과 전혀 상관없는 신상정보를 담은 야동들이 나돌고 있는 것은 ‘생생함’을 추구하는 현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실에 존재하는 인물 이름을 빌려와 영상 제목을 지어 호기심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라고 본다. 
 
이 같은 행위는 영상 속 인물과 신상정보가 일치하지 않더라도 명예훼손 및 음란물 유포 혐의로 처벌 대상이 된다. 최근 들어 S넷 B닷컴 등 음란물 사이트 또는 파일공유 사이트에는 일본AV(Adult Video) 등 연출 제작된 야동보다는 ‘실제상황’을 다룬 몰카 및 셀카 음란물이 압도적으로 많이 올라온다. 일반인 야동에 불을 지핀 건 과거 ‘가수 백양’ ‘탤런트 오양’ 등 연예인들의 음란물 영향이 컸다. 
  
문제는 이 같은 야동 유출로 인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남자라면 한 번쯤은 봤을법한 ‘선배녀’ 동영상이 대표적이다. 선배녀로 불리는 동영상 속 여성은 자신의 야동이 수년 간 인터넷을 떠돌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모든 걸 내려놓고 자살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검색하면 ‘XX녀’시리즈 넘쳐
삭제 안 돼…수치심에 자살 결심
 
‘딱풀녀’라는 이름의 야동도 마찬가지다. 인천 모 여자고등학교에 재학중이던 이모양은 자신의 얼굴이 나온 야동이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충격을 받은 나머지 학교 인근 아파트 28층에서 투신해 자살했다고 알려져 있다. ‘강의실녀’라는 이름의 야동 속 여성도 자살했다는 글들이 나돌았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모 대기업에서 계약직 비서로 근무하다가 퇴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직 구체적인 사실이 밝혀지지 않은 루머지만 ‘XX녀’ 자살설은 여전히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 떠돌아다니고 있다.
 

모텔 몰카도 여전해 주의할 필요가 있다. 모텔에 미리 투숙해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후 원격으로 성관계 동영상을 촬영해 당사자를 협박하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난 3일 서울 강동경찰서는 모텔에 휴대전화 카메라를 설치해 원격조종으로 성관계 동영상을 찍고 협박한 혐의로 30대 이모씨를 구속했다.

몰카 촬영하고
금품 협박까지

이씨는 지난 2월21일과 23일 두 차례에 걸쳐 서울 강동구의 한 모텔에 미리 투숙한 후 객실 내 화장대 아래에 휴대전화 카메라를 설치해놓고 자신의 집에서 원격조종하는 방식으로 성관계 동영상을 촬영한 혐의를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씨는 28일 첫 번째 동영상에 찍힌 투숙객의 신원을 알아내 스마트폰 메신저 카카오톡으로 연락해 “돈을 주지 않으면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피해자는 곧장 경찰에 신고했고, 이씨는 출동한 경찰에 의해 긴급체포됐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동영상 촬영 사실과 협박 등에 대한 모든 혐의를 인정했지만 피해자에게 요구한 돈의 액수나 연락처를 알아낸 방법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이씨의 전자기기에 해당 영상 말고도 여러 건의 영상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씨의 영장실질검사를 담당한 서울 동부지법 양재호 판사는 “이씨가 자료를 삭제함으로써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디지털 유산 상속 논란
죽어도 그대로 ‘어찌하리오’
 
페이스북이 구글에 이어 ‘디지털 유산 상속’ 정책을 내놨다. 사망한 사용자의 계정을 지정된 사람이 관리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이용자가 사망할 경우 해당 이용자의 페이스북 계정은 열람만 가능했다.
페이스북은 제도 도입 배경을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우리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다수의 이용자로부터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페이스북의 ‘디지털 유산 상속’ 정책에 의해 이를 상속받은 이용자는 고인 계정에 접속, 프로필 사진을 바꾸거나 추모에 관한 알림 글 등을 개제할 수 있게 된다. 단 고인의 프로필에는 ‘추모(Remembering)’라는 머릿글을 달아 악용을 방지하고 고인을 추모하는 사용자와 상속자 간 소통을 가능케 했다.
 
다만 고인의 개인적 메시지와 같은 개인 정보는 상속자에게 전달되지 않으며 생전에 ‘잊혀질 권리’를 행사하고 싶을 경우 사망 후 계정이 폐쇄되도록 미리 지정할 수 있다.
 
이에 앞서 구글은 ‘휴면계정관리자’라는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일정 기간 사용하지 않는 계정에 대해 만일 사태에 대비해 사진, 이메일, 문서 등의 데이터를 다른 사람에게 미리 보내도록 설정할 수 있게 한 기능이다. 이용자는 휴면 계정이 되기 위한 미접속일을 미리 설정하고 데이터를 보낼 지인을 10명까지 지정할 수 있다.
 
구글과 페이스북이 ‘잊혀질 권리’에 대한 정책을 실시하자 국내 누리꾼들 사이에서 디지털 상속 문제가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 강국이라는 한국에서는 이를 둘러싼 논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에서 이용자의 동의 없이 제3자에게 개인 정보를 제공할 수 없게 규정하고 있어 디지털 자산을 상속자에게 넘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실제로 네이버와 다음카카오 등 주요 포탈 업체들은 이용자 사망 시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계정 접속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들이 속한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에서도 “상속인에게 피상속인의 계정 접속권을 원칙적으로 제공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족에 대한 위로 차원에서 사망자의 공개된 게시물에 대한 백업 정도를 지원하고 민법상 재산권으로 보장되는 사이버머니나 뮤직, 전자책 등 웹콘텐츠 사용권만 상속인에게 승계된다. 계정을 해제하거나 탈퇴하려면 별도의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
 
국내에서 사망자의 개인정보 처리에 대한 규정 마련 여부는 검토단계에 불과하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오는 2016년까지 전문가 의견을 수렴한 뒤 법제화 여부를 본격적으로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대법원도 지난해 5월이 돼서야 사법제도 비교연구회를 중심으로 해외 사례 등을 검토해 국내에 디지털 유산 관련 소송이 들어올 경우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지 연구에 돌입한 상태다. <호>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