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둘리는 '민영기업' 포스코 "왜?"

'주인' 없는 태생적 한계…정권만 바뀌면 털린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국의 주요 화두로 '부패와의 전면전'이 떠올랐다. 대기업 포스코가 제물이 된 모습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검'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수족을 맴돌고 있다. '영포회'를 겨냥한 수사는 친이계 전체로 확대될 조짐이다. 박근혜정부의 이번 포스코 수사는 다목적 카드로 읽힌다. 그러나 예상치 않은 변수 때문에 청와대가 내상을 입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 총리는 지난 12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하겠다"라고 말했다. 이 총리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판을 짠 사람은 따로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7일 화상 국무회의에서 "비리의 뿌리를 찾아내 뿌리 덩어리를 들어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이른바 사정 드라이브의 신호탄을 쏜 것이다.

정윤회 문건
포스코 영향?

포스코그룹(이하 포스코)이 첫 과녁으로 결정됐다.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은 유력한 수사 대상으로 거론된다. 검찰을 지렛대 삼은 언론은 정 전 회장을 향해 십자포화를 퍼붓고 있다. 불거진 비리 의혹이 너무 많아 정리조차 안되는 분위기다.

정 전 회장은 비교적 자신만만한 모습이다. 출국금지가 내려지고, 소환조사가 초읽기에 들어갔지만 "나중에 다 밝혀질 것"이라며 여유를 부렸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듯했다.

현재 포스코 수사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가 전담하고 있다. 대다수 언론이 놓치고 있지만 포스코 수사를 특수2부가 맡은 이유가 있다. 포스코 수사의 뿌리를 찾다보면 의외의 사건이 나온다. 바로 지난해 12월 특수2부가 전담한 '정윤회 문건' 유출 수사다.


앞서 <일요시사>는 지난 1월12일 '정윤회 문건 후폭풍 미공개 박관천 파일 추적'이라는 기사에서 관련한 사실을 전한 바 있다. 박관천 전 청와대 행정관이 작성한 문건에는 포스코가 연루된 비리 정황이 있었다. 앞서 청와대는 "보고서 전부가 찌라시"라고 브리핑했다.

문제는 보고서 내용 상당수가 기업수사 첩보로 활용될 소지가 있었다는 것이다. 박 전 행정관이 2013년 6월24일 작성한 'VIP(대통령) 방중 관련 현지 동향 특이 보고'를 보면 "중국 유력인사 S씨가 VIP 친인척(서향희 변호사)을 통해 J씨의 회사 대표 재임용을 청탁했다"라고 돼 있다.

해당 기사에서 <일요시사>는 "여러 정황상 J씨는 대기업 P사의 임원으로 의심된다"라고 보도했다. 기사 작성을 앞두고 만난 검찰 관계자는 관련 내용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포스코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J씨와 P사는 굳이 숨길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J씨는 정 전 회장, P사는 포스코를 뜻한다.

해외 비자금
윗선에 상납

박 전 행정관이 작성한 'S2'라는 제목의 문건에는 "J씨가 OOO 회장으로 가려 로비하고, 서 변호사로부터 받은 문자메시지를 (주변에) 보여주며 세력을 과시한다"라고 적혀 있다. 정 전 회장이 실제 로비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정 전 회장이 사퇴압박을 받고 있던 것만큼은 분명했다.

2013년 6월 정 전 회장은 박 대통령의 방중 일정을 다른 기업인들과 함께 수행했다. 포스코의 재계 서열은 6위로 기업 총수들 가운데 '끗발'이 있는 쪽이었다. 하지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주최한 국빈 만찬에 정 전 회장은 초대받지 못했다. 청와대가 사실상 '왕따 작전'을 편 것이다.

2013년 9월에는 포스코를 겨냥한 세무조사 소식이 전해졌다. 정권 차원에서 스스로 물러나라는 사인을 준 것이다. 그럼에도 정 전 회장은 미련을 갖고 버텼다. 같은 해 11월 사퇴할 때까지 정부와 어떤 협상을 시도했는지는 의문으로 남아 있다.


소문은 무성했다. 현 정권 실세에게 줄을 대려 했다는 얘기부터 거절 당했다는 얘기까지 포스코 안팎이 술렁였다. 포스코 내부에선 '정준양의 사람들'을 노린 내부 감사가 은밀히 진행되고 있었다. 포스코 일부 임원진의 개인 비리가 담긴 투서가 공공연히 떠돌았다.

기자는 우연한 계기로 포스코 안에서 일어난 감사 결과를 들을 수 있었다. 내용은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포스코 관계자는 "지난해 8월 포스코건설 상무급 간부 2명이 베트남 파견업무 중 보직해임 돼 한국으로 돌아와 문제가 됐다"라고 말했다.

관계자는 두 상무급 직원의 이름과 소속을 비교적 상세히 진술했다. 당시 관계자가 밝힌 이들의 비위 사실과 사건 개요는 이랬다. 두 박모씨는 2010∼2012년 포스코건설이 운영 중인 동남아사업단에서 모두 120억원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했다. 직원 10여명과 공모해 하도급 대금을 부풀리는 수법을 이용했다. 1인당 20억원씩 백머니(뒷돈)를 챙겼고, 남은 돈은 '윗선'에 상납했다.

정준양 인사청탁 등 각종 의혹 불거져
포스코 지렛대 '부패와의 전쟁' 선포

그런데 상납된 80억원의 행방이 묘연했다. 여기서 돌발 변수가 생겼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것이다. 포스코는 이로부터 약 1달 뒤 또 다른 상무급인 A씨를 동남아사업단으로 급파했다. A씨는 뜻밖에도 정 전 회장 쪽 사람으로 알려졌다. 귀국한 두 박씨는 별도의 조치 없이 대기발령 상태로 놔뒀다.

이 과정에서 축소·누락 보고가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나아가 회사 차원에서 문제의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두 박씨는 올 초 정기인사에서 비상근 임원직을 유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월에야 이 같은 소식이 포스코 외부로 터져 나왔다. 검찰은 이 무렵 포스코에 관계된 첩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법조계의 반응은 반신반의였다. '검찰이 설마 포스코를 칠 수 있겠냐'라는 회의론이 고개를 들었다.

포스코 수사는 정치권을 겨냥한 사정작업으로 풀이될 가능성이 높았다. 정치권 가운데도 이명박 전 대통령(이하 MB)을 비롯한 지난 정부 인사가 다칠 위험이 있었다. 포스코와 MB를 잇는 가교 역할을 했던 인물이 정 전 회장이다. 앞서 MB의 최측근인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은 정 전 회장이 포스코 대표이사가 되도록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검찰은 당시 관련 내사를 진행하다가 자체 중단한 바 있다.

사정 신호탄
타깃은 MB?

지난 2월 기자와 만난 사정기관 관계자는 "포스코 수사의 명분이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묵은 비리를 들춰내겠다는 것인데 '의도'는 있지만 '계기'가 없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1월 말 MB는 자신의 회고록인 <대통령의 시간>을 출간했다. 회고록에서 MB는 박 대통령을 의식한 듯 날을 세웠다. 시기상 포스코 수사는 대통령이 받은 '모욕'을 MB에게 되돌려주겠다는 뜻으로 이해됐다. 문제는 수사에 착수할 명분이 없다는 것이었다.

평소 검찰은 대형 수사를 앞두고 선전포고를 할 때 압수수색을 활용했다. 이어 '타깃'을 잡고 출국금지를 내렸다. 소환이나 체포는 가급적 하지 않았다. 여론전과 함께 심리적인 압박을 주기 위해서다. 중요도가 낮은 인물에서 높은 인물까지 차례로 소환했다. 포스코 수사라면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는 정 전 회장을 맨 마지막에 부른다.


현재까지 드러난 검찰의 1차 목표는 '정준양의 입'이다. 그의 입을 열어 수사를 정치권으로 확대하겠다는 복안이다. 여기엔 전제가 있다. '내부 고발자'의 존재다.

검찰은 지난 2월부터 내부 고발자를 찾아왔다. 수사의 시작인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기 위해선 단 한 가지 혐의라도 사실에 가깝게 입증해야 했다. 나머지 범죄 사실은 압수수색을 통해 차츰 드러날 것이란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이는 전형적인 기획수사 또는 표적수사의 패턴이다.

그렇다면 검찰은 왜 포스코 수사에 매달렸던 것일까. 여러 이유 가운데 언론에 소개되지 않은 일화가 있다. 포스코와 가까운 한 홍보통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캠프에서 포항 유세일정을 짤 때 '포스코 임직원과의 만찬'을 넣었지만 박 대통령이 직접 거절해 취소가 된 적이 있다"라며 "박 대통령은 자신의 아버지가 포스코를 만들었는데 이를 부인해 온 포스코의 태도에 안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모양이었다"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과 가까운 현 정부 실세는 이 같은 감정선을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결국 지난 2월26일 <세계일보> 보도를 시작으로 '부패와의 전면전'이 선포됐고, 같은 기간 검찰은 해외 비자금 상납구조의 흐름을 얼추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포회·친이계' 동시 타깃
박근혜 승부수…성패 달려

복수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검찰은 남은 80억원의 관리를 정 전 회장이 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또 이 돈의 일부가 '영포라인'으로 흘러간 것으로 보고 있다. MB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과 박 전 차관이 중심인 영포라인은 경북 영일과 포항 출신 공직자들의 모임을 일컫는 말이다.


그간 영포라인은 포스코에 취업하거나 포스코로부터 계약을 따내는 방식으로 이권을 챙겼다는 눈총을 받아왔다. 또 이렇게 만들어진 돈은 상납을 거쳐 MB정부 실세들이 나눠가졌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MB가 직접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영포라인이라는 말이 연일 언론을 도배하는 것은 검찰의 관심이 어디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열쇠다.

검찰은 포스코 수사를 시작하면서 만약을 대비해 일종의 보험도 들었다. 자원외교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것이다. 자원외교 카드는 영포라인뿐 아니라 일부 친이계 전·현직 의원을 옭아 멜 수 있고, 현 정권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지 않는다는 점에서 '꽃놀이패'로 꼽힌다. 특히 자원외교 비리에는 최경환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현직 인사가 대거 연루될 수 있어 공직기강을 잡는 데 효과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자충수 가능성
실패 시 레임덕

이른바 '사자방'으로 명명된 MB정부 실책 가운데 박근혜정부는 자원외교와 방산비리 수사에 힘을 쏟는 모습이다. 4대강은 배제됐다. 이를 두고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은 팟캐스트 방송 <노유진의 정치카페>에서 "MB가 직접 연상되는 4대강은 지양하고, 자원외교와 방산비리를 수사해 '친이계'에 겁을 주려는 것"이란 취지로 분석했다. 발언 내용을 정리하면 'MB를 직접 겨냥하진 않을 것'이란 예측이다.

궁지에 몰린 MB가 무슨 일을 꾸밀지는 알 수 없다. 포스코 주변에선 현 정권과 관련된 소문이 돌고 있다. 수사가 틀어져 불이 엉뚱하게 옮겨 붙으면 청와대가 짊어져야 할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013년만 해도 포스코 수사는 요원해 보였다. 금융당국의 포스코 계좌 추적에 정부가 나서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설'도 들렸다. 그만큼 정치적인 접근을 경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집권 2년 만에 '잡도리'를 시작한 이상 전 정권의 잔재는 모두 솎아내야 하는 것이 박근혜정부의 숙명이다. 대통령 자신의 친인척, 청와대 일부 실세의 인사 개입에 대한 소문까지 '마사지'하고 가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같은 이유로 박 대통령의 승부수는 자충수가 될 가능성도 있다. 친이계로 전선을 넓힌 이상 수사가 실패할 경우 의회가 등을 돌리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점쳐지고 있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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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