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무상급식 중단한 홍준표 서울본부 운영 실태 공개

아이들 식판 뺏고 서울선 접대 '펑펑'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무상급식을 중단했다. 도 재정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홍 지사는 없는 살림을 쪼개 정치인·공무원·언론인을 상대로 '공짜밥'을 주고 있었다. 대권을 겨냥한 노림수로 의심된다. 2015년에는 관련 예산을 대폭 증액했다.
 

하루에 세끼. 아이들은 밥을 먹는다. 요즘은 아침을 거르고 점심을 기다리는 아이도 제법 많다. 때로는 한끼도 못 먹고 마른 침을 삼키는 아이도 있다. 얼마 전까지 중·고등학교에서의 점심시간은 모두에게 평등했다. 한국은 의무교육을 받는 학생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했다. 교육에 필요한 점심값 3000∼4000원 정도는 국가가 낼 수 있다고 믿어서다.

경남 서울본부
무차별 무상급식

하지만 국가 구성원 모두가 무상급식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무상급식 반대론자도 나름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지난 12일 "무상급식을 중단하겠다"라고 선언했다.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한 데 이어 자신의 페이스북에 "학교는 공부하러 가는 곳이지 밥 먹으러 가는 곳이 아니다"라고 적었다. 홍 지사는 지난해 11월5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도 "국고가 거덜 나는데 '무상 파티'만 하고 있을 것이냐"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경상남도에는 '무상 파티'를 전담하는 정무조직이 있다. 국회 보좌관, 정부부처 공무원, 언론사 기자들에게 '무차별 무상 급식'을 지원하는 지사 직속 기구가 존재한다.

'경상남도 서울본부'(이하 서울본부)는 '국회·중앙부처·언론사 등 인적 네트워크 구축을 통한 도정 협조체제 마련'을 목적으로 두고 있다. 이들의 주요 수행과제는 ▲경남지역 국회의원실 보좌진 간담회 개최 ▲경남 출신 국회·공무원·언론관계관 모임 참여 ▲재경 향우 중앙언론인 모임 참여 ▲재경 중앙부처 향우 공무원 모임 조직 등이다.


실질적인 활동을 정의하면 정가·관가·언론을 상대로 한 '삼시세끼 접대'가 핵심이다. 경상남도를 비롯한 전국 14개(서울·세종·충북 제외) 광역지자체는 이 같은 '서울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경기도부터 제주특별자치도까지 규모와 예산의 차이는 있지만 예외는 없다.

각 서울사무소의 중점 업무를 따지면 차이점보단 공통점이 더 많다. 식사 자리에서 도정과 관련한 정보를 취득하고, 상대에 따라 협조를 구하는 일이다. 편의상 이를 대관업무라고 부른다. 대관업무를 맡은 수행원은 자신을 일컬어 '협력관'이라고 말한다.

이런 협력관의 활동을 꼭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없다. 중앙집권화된 우리 정치 시스템에서 의회·정부와의 소통은 필요하다.

문제는 서울사무소에 할당된 재원의 한계와 그 쓰임의 정당성이다. 만약 도비로 운영되는 서울사무소가 특정 단체장의 대권을 위한 '여론기구' 역할을 하고 있다면 어떨까.

예산 3억 증액
대권도전 노림수

홍 지사는 올해(2015년) 서울본부 예산액을 10억6600만원(10만원 단위 이하 생략)으로 늘렸다. 2014년 예산액이 7억4400만원인 것과 비교하면 3억2000만원가량을 증액한 편성이다. 앞서 홍 지사는 무상급식을 중단한 근거로 '재원 부족'을 언급했다.

홍 지사가 취임하기 전인 2012년에는 6억4000만원이 서울본부 예산으로 배정됐다. 경상남도는 2회 추경을 거쳐 원래 규모(7억2300만원)에서 8000만원 가까이 예산을 삭감했다.


홍 지사가 결제한 2015년의 예산안과 2012년 예산안의 차이는 크게 3가지다. 첫째, 계약직 수가 증가하면서 임금지출이 많아졌고, 둘째, 사무실을 옮기면서 임차료가 2배 이상 늘었다. 셋째, 대관업무에 필요한 '접대비'가 확대 편성됐다.

먼저 '2012년 서울본부 인력운영비' 명목 가운데 '계약직 보수'로 배정된 예산은 5600만원으로 나타났다. 채용된 계약직은 두 명(나급·라급)에 불과했다. 홍 지사는 이 계약직을 임기제로 바꾸면서 관련 예산을 2억8800만원으로 늘렸다. 4·5급직 공무원 3명은 월 501만원의 봉급이 책정됐고, 9급직 공무원 2명에게도 월 328만원의 봉급을 약속했다. 직전 회계 '기타직 보수'(계약직 보수) 예산은 1억2400만원, 홍 지사는 1년 사이 1억원 넘게 인건비를 올렸다.

사무실 임차료 역시 같은 기간 1억원 가까이 증액했다. 2014년 1억5700만원이었던 임차료는 2015년 2억4700만원으로 뛰었다. 2012년에는 그 절반에 못 미치는 1억1300만원을 꾸린 것으로 확인됐다.

홍 지사는 지난해까지 서울 용산에 있던 서울본부 사무소를 여의도로 옮겼다. 국회와 인접한 곳에 '캠프'를 차린 것이다. KTX 이용 때문에 서울 강남에서 서울역 인근으로 사무소를 이전한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대조적이다. 정치권은 홍 지사의 여의도 서울본부 개소를 대권 도전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다.

홍 지사 자신도 대권을 향한 욕심을 숨기지 않는 모습이다. 홍 지사는 지난 1월7일 경남도청에서 열린 신년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올해부터 천천히 대권 준비를 하겠다"라고 말했다. 여의도 서울본부는 홍 지사의 대선 출마를 돕는 '전초기지'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경상남도는 지난 1월14일 '서울본부 이전에 따른 정보통신시설 설치 공사'로 2100여만원을 한진전력에 지급했다.

무상급식 전면중단…예산 전액 삭감
대권기지 의심 여의도사무실은 증액

2015년 예산안 가운데 눈에 띄는 항목은 2000만원이 신규 편성된 '행사운영비'다. 행사운영비 사업목적에는 '국회·중앙부처·언론사 등과의 협력관계 강화 사업'이라고 쓰여 있다. 사업비는 구실이고, 현실에선 '접대비'와 다름없다. 서울본부 측은 "최근 행정자치부 권고 규정이 바뀌어 운영비로 오찬을 계산할 수 없게 됐다"라며 "우리도 고민이다. 분명한 건 직접적인 밥값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행사운영비 말고도 밥을 살 수 있는 항목은 네 가지가 더 있다. '국회·중앙부처 등 협력 네트워크 구축'으로 묶인 항목에 ▲국회·중앙부처 유대강화(1000만원) ▲재경도민회 유대강화 및 업무협의(500만원) ▲국내외 투자유치 및 업무추진(630만원) ▲도정 주요시책 홍보(1740만원)가 포함됐다. 관련 예산을 모두 더하면 연간 5870만원의 '합법적인 접대'가 가능하다.

5870만원(서울본부 입장 3870만원)은 경상남도 전체 예산에서 큰 비중이 아니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돈의 용처다. 한 국회 출입기자는 지난 1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경상남도와 관련한) 뚜렷한 현안이 없었지만 후생관에 있던 A씨로부터 지난해 음식을 얻어먹은 적이 있다"라고 밝혔다.

국회엔 음료수
언론엔 특산물

이 출입기자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한 번은 홍 지사가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서 3위(야권 후보 제외)를 한 적이 있는데 A씨가 운을 떼면서 '우리 지사님을 잘 봐 달라' 했다"며 "나 말고도 A씨가 여러 기자를 만났고, 언론을 관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A씨는 주로 국회에 상주하며 여러 정보를 취합해 홍 지사에게 매일 오전 직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둘 사이의 대화는 카카오톡을 통해 이뤄진다"라는 것이 출입기자의 설명이다. A씨는 지난 19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대표님께(홍 지사) 보고하는 것은 맞다"라고 말했다.
 


경남도청 홈페이지에 공개된 서울본부 지출 내역을 분석했다. 2014년 3월부터 2015년 1월까지 식사 접대(직원 회식 포함)와 여비 명목으로 쓴 돈은 6500만원에 달했다. 239개 지출 항목 가운데 여비는 44차례(2667만원) 지급됐다.

관련 여비에는 식대가 일부 들어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비는 현금화될 수 있어 정확한 지출 내역을 알기 어렵다. A씨는 이어진 통화에서 "다른 지자체는 모르겠지만 그렇게까지 돈을 쓰지는 않는다"라며 "커피값도 내 사비로 내는 편"이라고 부인했다. 서울본부 측도 "규정에 맞게 쓰고 있다"라고 말했다.

식대가 쓰인 사업 개요를 보면 '국회·중앙부처·재경도민회 등 유대강화' 혹은 '투자유치 및 도정홍보'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언론인은 같은 기간 명목상 48차례 밥을 얻어먹었다. '주요 언론사 언론인과의 간담회' '국회출입기자단 만찬' '중앙언론사 관계관 오찬' 등을 명목으로 4만5000원에서 49만5000원상당의 결제가 주 평균 1회 이뤄졌다.

접대 대상이 모호한 '홍준표 지사 도정 홍보를 위한 오찬' 등까지 더하면 언론에 쓰인 공짜 밥값은 더 많았을 것으로 관측된다. 서울본부가 작성한 '2014년 시책업무추진비 집행현황'을 보면 2014년 1월7일 '도정 주요현안에 대한 인터뷰 및 티타임 경비 지출'에서 49만4000원이 집행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참가자는 모두 6명이었는데 이를 지출액으로 나누면 1인당 티타임으로 8만2000원 정도를 지불한 셈이다.

기자들 불러 "지사님 잘 봐 달라"
진주의료원 특위 앞두고 식사대접

그러나 이는 특수한 경우로 서울본부의 결제는 소액으로 자주 이뤄졌다. 식사비는 천차만별로 적게는 5000원에서 많게는 4만원일 때도 있었다. 평균적으로 1만5000원보다 비쌌고, 3만5000원을 넘지는 않았다. 주로 국회 보좌진, 도정 협조자, 중앙부처 관계관 등과 밥을 먹었다.


30만원 이상의 결제가 이뤄진 만찬자리가 42차례였다. 비교적 큰 행사인 '36대 도지사 취임식 오찬' 때 쓴 돈은 35만1000원이었다. 2014년 7월 '국회 보좌진 오찬 간담' 때는 45만원, 같은 기간 '국회관계관 만찬 간담'으로 48만원을 썼다. '주한베트남 대사관 도지사 국빈 방문 오찬' 때도 서울본부가 9만원을 따로 결제했다.

서울본부는 2014년 8월 43명의 언론관계자를 위해 지역특산품 116만원어치를 샀다. 18명의 재경향우회를 위해 48만6000원, 18곳의 국회의원실로 보낼 특산품 역시 48만6000원어치를 구매했다.

또 서울본부는 음료수와 간식을 국회의원실로 보냈다. '국회 지역구 의원실 다과 구입'을 한다며 40만원, '도정 협조를 위한 의원실 음료수 제공'으로 34만원을 썼다. 같은 금액으로 '의원실 음료수 제공'은 3차례 더 이뤄졌다. 6만원 이하 소액 지출은 제외했다. 상기한 지출 내역은 2014년 자료를 근거로 한 것이다.

2013년 자료(시책업무추진비 집행현황)에서는 서울본부의 역할이 뚜렷이 드러났다. 경상남도는 2013년 5월~7월 진주의료원 사태가 불거졌을 당시 서울본부를 통해 모두 10차례 관계자를 만나 식사를 대접했다.

같은해 5월29일 '진주의료원 폐업 발표에 따른 언론관계관 오찬간담'(3명·6만5000원)을 시작으로 6월부터 집중적인 '로비 활동'에 들어갔다. ▲6월4일 진주의료원 청와대관계관 오찬간담(5명·17만6000원) ▲6월5일 공공의료 정상화를 위한 국정조사 실시에 따른 국회 관계관 오찬간담(4명·7만5000원)을 했다.

6월14일 진주의료원 관련 언론홍보를 위한 언론관계관 오찬간담(4명·6만2000원) ▲6월20일 국정조사 실시에 따른 관계관 오찬간담(2명·5만4000원) ▲6월24일 국정조사 특위 여야 간사 회의결과 파악을 위한 관계관 오찬간담(4명·8만4000원) ▲6월24일 우리도(경남) 의견 전달을 위한 관계관 만찬간담(2명·4만4000원) ▲6월26일 국정조사 관련 동향파악을 위한 언론관계관 만찬간담(6명·18만원)이 이어졌다. 당시 경상남도는 국정조사를 받는 피감사 대상이었다.

이들은 7월1일 국정조사 특위 의원실 5곳에 간식(10만7000원)을 보내는 면밀함을 보였다. 7월9일에는 국정조사특위 관련 국회출입기자 오찬간담(6명·5만4000원)을 갖고, 오후에는 언론관계관 만찬간담(3명·9만5000원)을 다시 열었다. 7월9일은 국정조사 특위가 홍 지사에게 증인출석을 명령한 날이다. 이날 홍 지사는 증인출석을 거부하고 국정조사를 '보이콧'했다.

홍 지사는 지난 1월 자신의 최측근인 조진래 전 정무부지사를 1급 정무특보로 임명한 뒤 서울본부로 발령냈다. 조 전 부지사는 18대 국회의원을 지내 국회 사정에 밝다는 평이다. 앞으로 조 전 부지사는 여의도와 홍 지사의 가교 역할을 하게 된다. 홍 지사가 서울본부에 쏟는 애정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서울본부의 역할이 강화될수록 '공짜밥'은 더 많아진다. 국회·중앙부처·언론에서 힘깨나 쓴다는 사람이 배부르다. 경상남도가 '쏘는' 공짜밥은 어려운 서민을 위한 것이 아니다. 먹고 살만한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다. 홍준표식 '무상급식 수혜자'는 지난해 기준 1200여명에 이르렀다.

무상급식 중단
대권 마이웨이

홍 지사의 표현을 빌면 학교는 밥 먹으러 가는 곳이 아니지만 서울본부는 '밥 먹이러' 가는 곳이다. 아이들을 위한 '무상급식'은 안 되지만 대권을 위한 '무차별 급식'은 확대됐다. 홍 지사는 지난 19일 기자가 해명을 요구하자 "지금은 통화가 곤란하다"라며 전화를 끊었다. 장문의 문자와 함께 수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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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