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세금 안 내는 거물들 추적(16) 주수도 JU그룹 회장

거대로펌 변호…그 돈 어디서?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부는 항상 세수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돈이 없다"면서 만만한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기 일쑤다. 그런데 정작 돈을 내야 할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회피하고 있다.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정부가 걷지 못한 세금은 40조원에 이른다. <일요시사>는 서울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을 토대로 체납액 5억원 이상(법인은 10억원 이상)의 체납범을 추적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16화는 797억7500만원을 체납한 주수도 제이유그룹 회장이다.

지난달 초 '제주 오라관광지구 개발사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제주도가 사업 승인 취소를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도 잇따랐다. 오라관광지구는 한라산국립공원을 마주해 투자 가치가 높은 지역으로 알려졌다. 1999년 12월부터 추진돼 온 개발사업은 사업 시행자가 네 차례나 바뀌면서 표류했다.

수감 생활은?

시행자 가운데는 JU그룹(제이유그룹) 계열사인 알바스트로개발(주)이 있었다. 알바스트로개발(주)은 지난 2005년께 오라관광지구 일대 토지와 개발사업권을 사들였다. 문제는 자금을 틀어쥐고 있는 JU그룹이 '부실 덩어리'였다는 것이다. JU그룹의 대표 주수도씨(이하 주수도)는 입찰 1년여 만에 2조원대 사기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 그룹 재무상황이 악화되자 법인을 우회해 부동산에 투자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왔다.

주수도는 2007년 6월 "60만평(200만m²)에 달하는 관광지구를 개발해 3000억원에 가까운 수익을 올릴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당시 주수도는 구속수감돼 있었다. JU그룹의 뒤를 이어 사업에 참여한 건설사는 오라관광지구 개발에 성공하지 못했다. 공정률은 10%에 머물렀다. 또 주수도는 500억원 규모의 '인천 강화 관광지구 개발사업권'을 따냈다고 주장했으나 지금껏 착공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주수도는 울산 출신의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알려졌다. 1980년대에는 영어강사로 활동했다. 강사 생활 몇 해만에 학원을 세울 정도로 사업수완이 남달랐다고 한다. 1987년에는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김종필 당시 신민주공화당 후보를 지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수도는 1990년대 중반부터 다단계 사업을 시작했다. 다단계 업계에선 나름 신화적인 인물이다. 1999년 자신의 이름을 딴 주코라는 회사를 설립했고, 2002년 JU(제이유)네트워크로 상호를 변경했다. 제이유네트워크는 설립 3년 만에 연매출 2조원에 달하는 JU그룹으로 성장했다.

주수도의 '이름값'을 믿은 수만명의 투자자(그룹 내에선 사업자이자 소비자)는 빚을 내서라도 JU그룹에 투자했다. 그러나 상당수의 투자자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주수도는 다단계 업체를 운영하며 사기 혐의로 두 차례나 구속된 전과자였다.

주수도는 '소비생활 공유 마케팅'이라는 그럴싸한 판매기법을 내세워 눈먼 투자자들을 현혹했다. 핵심 원리는 간단했다. 제품을 더 많이 사면 더 많은 수당을 받는 것이다. 주수도는 물건 구매가의 250%에 달하는 '고배당'을 약속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수익구조지만 30여만명의 사업자는 그의 말을 맹신했다.

주수도는 거의 매일 JU그룹 회원들이 볼 수 있는 화상회의를 통해 '소비'를 독려했다. 한편으로는 외부 강연으로 신규 투자자를 끌어 모았다. 2005년 JU그룹은 세계적인 다단계 회사 암웨이를 제치고 국내 다단계 판매업체 1위에 등극했다. 참여정부를 패닉에 빠뜨린 '단군 이래 최대 사기사건'은 그 무렵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JU그룹은 처음부터 천문학적인 수당을 지급할 능력이 없었다. 그럼에도 외연을 확대해 피해규모를 키웠다. 수당을 지급받지 못한 피해자가 속출하자 주수도는 "내 사재를 털어서라도 수당은 주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해가 바뀌도록 피해자들은 수당을 받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JU그룹에 납품하던 생산업체들마저 줄줄이 도산했다.

주수도는 2006년 8월 사기 혐의로 구속됐지만 옥중 경영을 시도했다. JU그룹은 제이유피닉스, 불스홀딩스, RESD 등 간판만 바꾼 채 같은 수법으로 영업을 계속했다. 도리어 주수도는 "국정원이 암웨이와 짜고 거짓 보고서를 만들어 나를 함정에 빠뜨렸다"라고 주장했다. 앞서 국정원은 'JU그룹의 정·관계 로비설'과 관련한 보고서를 언론에 흘린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시 227억2700만원
국세청 570억4800만원
다단계 사기 피해액 2조


주수도의 문어발 인맥은 각계에 포진해 있었다. 국회의원·탤런트·아나운서를 비롯한 명망가들이 JU그룹의 '얼굴마담'을 자처했다. 특히 JU그룹은 일부 유력 신문사에 후원을 하고 그 대가로 광고를 하는 등 이미지 마케팅에 주력했다. 그 결과 주수도의 '사기 마케팅'은 중소기업의 '성공 신화'로 둔갑했다.

주수도는 2007년 2월 서울동부지법에서 징역 12년을 선고 받았다. 당시 검찰은 주수도가 투자자 11만여명으로부터 2조1000억원의 투자금을 편취하고, 회삿돈 284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인정했다. 그해 대법원은 징역 12년을 확정 판결했다. 주수도와 JU그룹에는 거액의 세금이 부과됐다.

주수도는 2005년 8월부터 취득세 등 11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서울시가 징세할 체납액은 4억4900만원이다. 국세청의 자료에 따르면 주수도는 2001년부터 법인세 등 40건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 국세청이 거둘 체납액은 570억4800만원이다.

서울시 고액체납 법인 명단을 보면 JU개발과 JU네트워크가 나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JU개발은 2005년 7월부터 주민세 등 39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체납액은 113억3200만원이다. JU네트워크도 2005년 8월부터 주민세 등 40건의 세금을 내지 않았다. 서울시가 과세한 지방세는 109억4600만원이다. 두 회사 법인 대표란에는 주수도의 이름이 적혀 있다.

반면 국세청 고액체납 법인 명단에는 주수도의 이름이 빠져있다. JU개발은 윤모씨, JU네트워크는 이모씨가 각각 대표로 기재돼있다. 이 가운데 윤씨는 JU시설관리 대표를 겸하고 있다.

국세청이 추징할 JU개발의 국세는 104억9700만원(2005년부터 부가가치세 등 26건)이다. JU네트워크는 434억300만원(2005년부터 부가가치세 등 3건), JU시설관리는 409억4100만원(2005년부터 부가가치세 등 11건)을 각각 국세청에 내야 한다.

박모씨가 대표로 있는 JU백화점도 2006년부터 부가가치세 등 18건의 세금을 내지 않았다. 확인된 체납액은 218억3000만원이다. JU그룹으로부터 파생된 체납액의 합은 1166억7100만원에 이르렀다. 주수도 개인에게 물린 세금 797억7500만원까지 더하면 세수의 합은 2000억원에 육박했다.

그런데 주수도는 몇 년째 거대 로펌의 변호를 받고 있다. 지난해에는 재심을 신청해 양형을 낮추고자 했다. 거대 로펌 B사와 D사가 그의 변호인으로 선임됐다. 법원은 최근 재심에서 2007년 있었던 원심을 확정했다. 그 사이 주수도는 별건(사기)으로 기소돼 벌금 2000만원을 추가로 선고 받았다. 그러나 주수도는 벌금 역시 내지 않고 있다.

비자금 의혹

그가 구속 전 지분을 투자한 것으로 전해진 중국 '금사력가우'는 연매출 4000억원 규모의 방문판매업체다. 주수도의 재심이 결정되자 JU 측 인사들은 언론에 접근해 '금사력가우의 지분을 뺏길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흘렸다. 이후 금사력가우가 어떻게 됐는지는 감감무소식이다.

지난해 10월 JTBC는 "주수도가 같은 해(2014년) 1∼9월까지 변호인 접견을 1465회 신청했다"라고 보도했다. 사실상 전담 변호사를 두고 하루 평균 7차례 접견한 셈이다. 그 많은 돈은 어디서 조달되는 것일까.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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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