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측근 잡을' 특별감찰관 타깃 막전막후

대통령 드디어 '워치독' 풀었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윤회 비선실세' 파문이 여전하다. 아직 다수 국민은 대통령을 둘러싼 '측근 전횡'이 있다고 믿고 있다. 지난 3일 국회는 2년을 미뤄온 특별감찰관 최종 후보군을 대통령에게 추천했다. 박근혜정부의 대선 공약인 특별감찰관은 대통령 측근 비리 감시가 주된 목적이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특별감찰관. 과연 그는 국민을 위한 '워치독(감시견)'이 될 수 있을까.

'현대판 암행어사'로 불리는 특별감찰관이 베일을 벗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일 국회가 추천한 후보자들 가운데 이석수 변호사(52·사법연수원 18기)를 특별감찰관으로 지명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에서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이 같은 뜻을 밝혔다.

후보자 3인 중
여당 추천 낙점

앞서 국회는 지난 3일 본회의를 열고 이석수·이광수·임수빈 변호사를 초대 특별감찰관 후보자로 추천했다. 이석수 특별감찰관 후보자는 검사 출신으로 대검찰청 감찰1·2과장과 춘천·전주지검 차장검사 등을 역임했다. 2010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한 그는 여당 추천으로 박 대통령의 선택을 받았다.

반면 대한변호사협회의 추천을 받은 이광수 변호사(54·사법연수원 17기)와 야당이 추천한 임수빈 변호사(54·사법연수원 19기)는 외면당했다. 이 가운데 임 변호사는 지난 2008년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장검사일 당시 '광우병 사태'와 관련해 MBC <PD수첩> 제작진을 "기소할 수 없다"고 버티다가 눈 밖에 났다. 현 정권이 임 변호사에게 '칼자루'를 내주는 광경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특별감찰관은 지난 대선의 화두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 정치권은 대통령 친인척 및 측근 권력에 대한 상시적인 감시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민주통합당(현 새정치민주연합)은 '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를 대선 공약으로 내놨고, 새누리당은 특별감찰관 및 상설특검 제도를 약속했다. 대선에서 승리한 곳은 새누리당이었다.


특별감찰관과 공수처는 권력형 비리에 대한 견제라는 측면으로 봤을 때 맥을 같이한다. 다만 예상되는 입법 효과는 다르다. 공수처가 도입되면 검찰권으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해 사법개혁이 이뤄진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함께 주어지기 때문에 정치적인 위상에서 검찰과 대등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

공수처와 달리 특별감찰관 제도에는 수사권과 기소권이 없다. 대신 원안은 수사권에 준하는 조사권과 고발권을 주기로 설계됐다. 원안을 작성한 인물은 안대희 전 대법관이다. 안 전 대법관은 지난 2012년 9월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장 자격으로 특별감찰관제 도입을 제안했다.

알짜 권한
줄줄이 뺏어

안 전 대법관이 구상한 바에 따르면 원안에는 계좌추적권이 들어 있다. 그는 대검 중수부장 시절 굵직한 비자금 수사를 여럿 지휘해 계좌추적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특별감찰관에게 계좌추적권을 부여해 독립적인 내사가 가능하도록 했다.

국가정보원 존안자료 열람권을 비롯한 각종 보안자료 접근권도 제공했다. 압수수색권의 공백을 보완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조처였다. 특정인에 대한 강제 동행은 제한했지만 통신거래내역 조회와 같은 조사권은 발동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초안만 놓고 보면 나름 강력한 권한이 주어졌던 셈이다.

뿐만 아니라 안 전 대법관은 특별감찰관이 감찰 대상을 임의로 지정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대통령의 배우자, 직계존비속을 포함한 친인척, 장관급 이상 공무원, 감사원장 등 권력기관장은 물론 특별감찰관이 지정한 사람도 조사 대상에 포함시켰다. 예를 들어 민간인인 정윤회씨는 공직자가 아니지만 특별감찰관이 '특수관계인'으로 지목하면 감찰이 가능했다.

여당 추천 이석수 특별감찰관 지명
대선 전 원안보다 권한·범위 축소


그런데 이게 바뀌었다. 지난해 3월 국회를 통과한 특별감찰관제에 따르면 민간인인 정씨는 조사 대상에 포함될 수 없었다. 관련법이 감찰의 범위를 대통령의 배우자 및 4촌 이내 친족과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 이상 공무원으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원안에 있던 장관급 이상 공무원, 각 권력기관장은 감찰대상에서 빠졌다. 청와대 밖에 있는 '십상시'는 자연스레 배제됐다. 논란이 된 문고리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 역시 '비서관급'이란 이유로 감찰을 피해갔다. "유명무실한 제도"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배경이다.

더구나 법안에는 계좌추적, 통신거래내역 조회 등에 관한 강제권이 명시되지 않았다. 특별감찰관과 짝을 이뤘던 상설특검제는 슬그머니 꼬리를 감췄다. 고강도 감찰이 이뤄져도 기소까지 이어지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대통령에게 임명권을 준 것도 논란의 대상이다. 앞서 밝혔듯 여야는 모두 3명의 후보를 추천하는데 이 가운데 1명만이 온전한 야당의 몫이다. 추천을 해도 대통령이 신임할 확률은 희박하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3명의 후보 가운데 여당 추천 인사를 골랐다. 누가 됐든 임명권을 쥔 권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무엇보다 특별감찰관은 감찰 개시와 종료를 대통령에게 그 즉시 보고해야 한다. 감찰 기간 연장이 필요한 경우에도 대통령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는 대통령 입장에서 특별감찰관이 누구를 감찰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 공정성 시비에 휘말릴 위험이 높다. 이렇듯 특별감찰관은 기대와 달리 '앙꼬 없는 찐빵' 신세로 전락한 모습이다.

임기는 3년
목표는 3인방

특별감찰관의 이 같은 운명은 예견돼 있었다. 박 대통령은 공약 이행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여당도 뜨뜻미지근했다. 대통령 취임 1년이 다 돼서야 특별감찰관의 존립 근거가 담긴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마저도 당초 약속한 권한을 상당 부분 축소시켰다. 특별감찰관의 의미는 퇴색됐다.

지난해 6월 법안이 발효됐지만 국회 차원의 후보자 인선 작업은 이뤄지지 않았다. 뒤늦게 물색한 여러 후보는 인사청문회 등을 이유로 관직을 고사했다. 우물쭈물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마침내 '정윤회 문건 파문'이 터졌다. 그제야 여당 일각에서는 특별감찰관의 '숨겨진 역할'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당·청 관계가 소원해진 이유는 인사 때문인데 지도부는 청와대 깊숙한 곳에 직통 채널이 없다"며 "'정윤회 사건' 같은 게 터지면 준비할 시간 없이 당해야 했다"라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박지만 (EG) 회장이 조응천(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통해 별도의 채널을 유지했듯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라는 분위기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는 자신들이 추천한 특별감찰관을 통해 청와대 내부 동향을 파악하겠다는 뜻으로 이해됐다. 물론 여당 일부가 의도한 대로 될지는 알 수 없다. 당사자인 이 후보자가 거래를 거부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만약 양쪽이 한배를 탄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미래권력 싸움에서 상당한 우위를 점할 수 있어서다.

가령 특별감찰관이 모은 대통령 측근 비위 사실은 당 지도부로 배달돼 당·청 협상카드로 쓰일 수 있다. 현 정부처럼 폐쇄적인 청와대 운영을 고집할 경우 정보가 가진 파괴력은 배가 된다. 모두가 지켜봤듯 '찌라시'에 불과한 십상시 문건에 휘청댔던 박근혜정부다.

역대 정부는 거의 예외 없이 임기 3∼4년차에 권력형 비리로 몸살을 앓았다. 당 지지도가 대통령 지지도를 앞지르는 레임덕이 왔을 때 권력기관들이 반응한 것이다. 레임덕 국면에서 특별감찰관의 역할이 따로 주목되는 이유다. 특별감찰관의 선택에 따라 권력의 추가 급격히 기울 수 있다.


또 한 가지 주목되는 것은 특별감찰관이 대통령에 의해 '잘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별감찰관은 국회의 탄핵이나 해임요구, 금고 이상의 형이 선고되지 않으면 면직이 불가능하다. 정해진 임기는 3년인데 공교롭게도 박 대통령의 남은 임기와 같다.

제2의 조응천? 문고리 3인과 충돌?
김무성-이병기-박지만 가교 가능성

인사권자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문고리 권력이 가진 힘의 근원은 대통령 지근거리라는 점도 있지만 신원 보장에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기춘대원군'으로 불린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짐을 쌌지만 3인방은 온갖 지탄에도 살아남았다.

행정부 안에서 3인방 정도로 신분이 안정된 공무원은 특별감찰관이 유일하다. 마음만 먹으면 '양천'(박관천·조응천)처럼 '전면전'도 가능하다. 나아가 그들과 달리 쫓겨나지도 않는다.

흥미로운 사실은 현 국무총리인 이완구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지난 1월 특별감찰관의 감찰 대상을 확대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는 것이다. 개정된 안에는 안 전 대법관의 초안대로 장관급 공무원, 각 권력기관장을 감찰 대상에 포함할 것을 명시했다.

그러나 여당의 속내는 따로 읽혔다. '비선 실세'를 잡겠다는 것이다. 여권 복수 관계자는 "감찰 대상을 청와대 일반 비서관이나 행정관 등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는 결국 3인방을 감찰 대상에 집어넣겠다는 의지와 다름없다.


우병우 수석
또 다른 변수

특별감찰관의 가장 큰 라이벌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다. 수사권이 빠진 특별감찰관은 민정수석과 역할 및 권한이 비슷하다. 당장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의 관리를 어느 쪽이 해야 하는가가 첨예한 논쟁거리다. 이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권력암투설'이 불거질 수 있다.

대통령은 대면보고를 기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감찰관은 업무 특성상 대통령과의 '독대'가 불가피하다. 그러나 현재로써는 대면보고를 단언하기 어렵다. 때문에 이병기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의 지시를 받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앞서 김기춘호와 김무성호는 소위 말하는 '케미'가 맞지 않았다. 이를 교훈삼아 새롭게 출발한 이병기호가 특별감찰관을 가교 역할로 쓸 것이란 전망도 있다.

사실 특별감찰관은 근본부터 정치적인 자리다. 살아 있는 권력과 미래 권력 중 어느 곳에 줄을 설 것인가, 선택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정말로 국민만 바라보는 '워치독'이 될 수 있을까. 판단은 그의 몫이다.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석수 특별감찰관은?

청와대로부터 특별감찰관으로 지명된 이석수(52·사법연수원 18기) 변호사는 검찰 출신으로 공안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1998년 일명 '북풍 수사'에 참여해 활약하는 등 검사 시절에는 공안통으로 분류됐으며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파견 경력도 있다.

2010년 변호사로 개업했고 이후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 특검 당시 특검보를 지내기도 했다. 이하 약력.

▲서울 ▲상문고·서울대 법학과 ▲서울대 대학원 법학석사 ▲사시 28회(사법연수원 18기) ▲대구지검 경주지청·인천지검·대구지검·서울지검 검사 ▲서울지검 검사 ▲국방대학원 수료 ▲인천지검 부부장검사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부산지검 부장검사 ▲중앙지검 부부장검사(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파견) ▲대검찰청 감찰 2·1과장 ▲창원지검 통영지청장 ▲춘천지검·전주지검 차장검사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 특검팀 특검보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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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