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후폭풍' 각계 손익계산서

잡도리 시작?…결국 검찰만 웃었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김영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김영란법은 공직자 부정부패 방지를 위한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법안 조정을 거치면서 적용범위가 확대됐다. 김영란법의 공포는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한 접대·로비 관행을 근절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공짜 술'과 '낯 뜨거운 청탁'에 길들여진 일부 공직자, 언론 종사자는 김영란법을 피해가기 위한 꼼수를 찾고 있다. 일각에서는 김영란법 때문에 검찰 권력이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우여곡절 끝에 입법에 성공했다. 지난 3일 국회는 김영란법을 본회의에 상정해 표결을 진행한 결과 재석의원 247명 가운데 찬성 226표를 얻어 법안을 처리했다고 알렸다. 반대는 4표, 기권은 17표에 불과했다. 반대표는 새누리당 홍준·권성동·김종훈·김용남 의원이 던졌다.

압도적으로 가결
졸속 처리 지적

대법관 출신인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지난 2012년 8월 공직자 부정부패 방지를 위한 법안을 준비했다. 김 전 위원장이 입법을 예고한 초안은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2년 8개월을 계류했다. 같은 기간 김영란법은 의회 차원에서 수많은 조정을 거쳤다. 공직사회는 물론 언론계, 학계까지 파장이 미칠 법안이라 협의 과정에서 진통이 뒤따랐다.

우물쭈물했던 김영란법은 여야가 약속한 올 3월을 넘기지 않고 통과했다. 논란이 됐던 적용 대상에는 언론 종사자와 사립학교재단 이사장 및 임직원이 추가됐다. 다만 법조계를 중심으로 과잉·이중처벌 등의 위헌 논란이 있는 만큼 일부 수정은 불가피해 보인다.

김영란법은 공포된 날 기준으로 1년 6개월의 유예기간을 두고 있다. 이 사이 다른 법과 충돌된 조항이 고쳐질 것으로 보인다.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거나 이득을 보게 될 이해기관으로는 청와대와 각 정부부처, 국회, 검찰, 언론, 사학재단, 정부출자 공공기관 등이 꼽힌다. 법률은 하나지만 김영란법을 바라보는 각계의 시선은 다르다. 이들의 손익계산과 김영란법의 주요 쟁점을 정리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영란법은 공직자가 직무와 관계없이 1회 100만원(연 300만원)을 초과한 금품을 수수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배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100만원 이하의 금품을 수수한 경우엔 직무 연관성이 입증돼야만 금품가액 기준 2∼5배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

또 다른 법안의 핵심은 당사자 간 금품이 오가지 않아도 부정청탁을 받았다면 처벌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현행법은 부정청탁의 대가로 금품이 오갔을 때에만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무원의 경우는 수뢰죄, 비공무원은 배임수재죄의 적용을 받는다.

그런데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금품 전달이 없어도 부정청탁에 대한 처벌이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사인인 정윤회씨가 개인적인 이유로 '문고리 권력(이재만·정호성·안봉근)'을 통해 청와대 인사에 개입했다면 청탁 받은 당사자가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게 되는 것이다.

비선 인사개입
부정청탁 포함

김영란법은 이 같은 '부정청탁'의 유형을 15가지로 분류했다.  먼저 인가·허가·면허·승인 등 법령에서 일정 요건을 정해놓고, 직무 관련자로부터 신청을 받아 처리하는 업무에 대해 위법하게 처리하도록 하는 행위는 '부정청탁'에 해당했다. 인·허가 취소에 관한 청탁 역시 금지됐다.

조세·부담금·과태료·과징금을 비롯한 각종 행정처분 또는 형벌에 관해 청탁받고 감경·면제하도록 하는 행위는 처벌 대상이다. 채용·승진·전보 등 공직기관 인사에 위법하게 개입하거나 영향을 미치는 행위 또한 마찬가지다.


공공기관의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직위에 선정되거나 탈락하도록 하는 행위, 공공기관이 주최하는 각종 수상이나 포상에 특정 단체 등을 선정하거나 탈락시키는 행위도 안 된다. 공직자를 상대로 입찰·경매·개발·시험·군사 등에 관한 직무상 비밀을 누설하도록 하는 행위도 막았다. 계약 관련 법령을 위반해 특정 개인이나 단체가 계약 당사자로 선정되거나 탈락시키도록 하는 행위까지 부정청탁에 포함했다.

나머지 조항을 보면 각종 보조금 관련 법령 등을 위반해 특정 개인이나 법인에 지원하는 행위, 개인 또는 법인에 투자하도록 개입하거나 영향을 미치는 행위 모두 처벌 대상이다. 공공기관이 관리하는 용역을 정상적인 거래관행에서 벗어나 특정인에게 매각하도록 하는 행위도 금지됐다.

교원의 경우는 청탁을 받고 성적을 조작하도록 하는 행위가 일체 금지됐다. 학생의 입학·성적·수행평가에 관한 업무를 위법하게 처리·조작하도록 하는 행위도 부정청탁으로 못박았다. 군공무원은 징병검사·부대배속·보직부여 등을 위법하게 처리하도록 청탁해선 안 되고, 사법부에서는 수사·재판·심판 등을 위법하게 처리하도록 부탁하는 행위가 금지됐다.

우여곡절 끝에 국회 본회의 통과
공안 정관언 타깃 기획수사 수월

그러나 김영란법은 상기한 부정청탁 사례 외에 예외 규정을 별도로 뒀다. 절차와 법에 따라 공직자에게 특정 행위를 요구하거나 공개적으로 공직자에게 특정 행위를 요구하는 것은 정당한 청탁으로 인정했다.

또 선출직 공직자나 정당 등이 공익을 목적으로 민원을 전달함은 예외 사유로 보호했다. 법정기한 내에 관련 직무를 처리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과 그 밖의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는 처벌 대상에서 제외했다. 여기서 '사회상규'란 단어는 그 의미가 포괄적이라 법률 집행 과정에서 논란의 가능성이 있다.

김영란법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집단은 역시 언론이다. 방송과 신문, 잡지, 뉴스통신, 인터넷신문 등 모든 언론 종사자가 김영란법의 영향 아래 놓였다. 김영란법에 따르면 언론 종사자는 특정인에게 연간 300만원 이상의 금품(또는 향응)을 제공받을 수 없다.

김영란법은 처벌 대상이 되는 금품의 종류로 현금과 부동산, 증권과 물품을 비롯해 회원권과 입장권, 할인권, 초대권, 관람권, 부동산 사용권 등을 적시했다. 또 음식물·주류·골프 접대, 교통·숙박 등 편의 제공, 빚 면제, 취업 제공, 이권 부여와 기타 유·무형의 경제적 이익을 모두 금품에 포함시켰다.

법령을 현실에 대입하면 언론 종사자는 룸살롱 접대는 물론 골프장 회원권 대여, 해외 취재를 빙자한 비행기티켓 수령, 주택·외제차·가전·명품잡화 등 고가의 상품에 대한 할인 혜택이 차단된다.

언론·학계 타격
고위공직자 느긋

구성원 대다수가 '공직자'인 학계 역시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김영란법이 규정한 공직자에는 공립학교 교원과 사립학교 임직원이 두루 포함돼 있다. 특히 다른 교원에 비해 강의·강연·기고가 많은 대학교수가 김영란법을 위배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통과된 법률은 공직자가 자신의 직무와 연관되거나 지위·직책에 따라 요청받은 외부 토론회·세미나·공청회 등에 나갔을 때 강의·강연 등의 대가로 대통령령이 정한 금액 이상의 사례금을 받게 되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도록 명시했다.


마찬가지로 교수가 외부에 글을 기고했을 때도 일정 수준 이상의 고료를 받는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단 대통령령이 정한 기준 금액이 얼마가 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그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자리를 배분 받았던 정부출연 공공기관도 자유롭지 않다. 김영란법은 정부 지원액이 총수입액의 절반 이상인 기관과 정부의 지분이 50% 이상인 기관, 정부가 30% 이상의 지분을 갖고 임원을 임명하는 등 사실상 지배력을 확보하고 있는 모든 기관을 적용 대상으로 삼았다.

공공기관은 업무 특성상 정부기관과 협조할 일이 많은 편이고, 관행에 따라 공무원을 '대접'하는 일도 빈번해 우려가 커지는 분위기다. 특히 이른바 '제3자'를 위해 부탁하는 행위가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제3자가 관여한 청탁은 모두 위법이다.

100만원 초과 돈 받으면…
공직자 부정청탁 받아도…

김영란법은 제3자를 위해 다른 공직자에게 부정청탁을 한 공직자의 경우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 또 제3자를 위해 부정청탁을 한 사람(비공직자)의 경우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도록 했다. 아울러 제3자를 통해 부정청탁을 한 사람(당사자)은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처벌 기준으로 적었다.

이번 법안 심의 과정에서 국회의원은 '민원 처리'라는 예외조항을 만들어 살 길을 찾았다. 그러나 이들도 막지 못한 조항이 있었다. 배우자로서의 신고 의무였다. 김영란법은 배우자가 금품을 수수한 사실을 알았음에도 신고하지 않았을 경우 공직자 본인이 처벌 받도록 규정했다. 원안에서는 배우자가 아닌 직계가족을 명시했다.


새누리당은 이를 두고 '가족 해체법'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신고 의무 조항의 삭제를 요구했다. 그렇지만 여야는 가족의 범위를 배우자로 한정하는 대신 신고 의무는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공직자는 법령을 위반한 금품 수수 사실을 알게 되면 이를 제공자에게 반환하거나 소속기관장에게 인도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광범위한 업무를 관장하는 청와대는 공공기관과 마찬가지로 '청탁'할 일이 많다. 하지만 청와대가 김영란법의 실질적인 적용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는 많지 않은 모습이다. 오히려 검찰을 동원한 표적수사의 우려가 커졌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청와대 손해 없어
적용대상 300만명

실제로 김영란법 적용대상은 300만명 정도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더구나 1회 100만원이라는 액수는 고위공직자나 일부 힘 있는 정치인을 겨냥한 조항은 아니라는 해석이 많다. 오히려 정권 입장에선 각 부처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는 기회로 여길 수 있다. 검찰권이 정·관계는 물론 언론·학계까지 위협할 것이란 주장이 나온 배경이다.

끝으로 눈여겨 볼 부분은 공직자의 금품 수수 금지 목록에 예외가 있다는 점이다. 상급 공직자가 위로·격려·포상 등의 목적으로 제공하는 금품이나 부조 목적의 경조사비 등은 금품으로 보지 않는다. 또 공직자와 장기적·지속적 친분관계를 맺고 있는 자가 질병·재난 등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으면 금품을 제공할 수 있다.

사적거래(증여 제외)로 생긴 채무 이행은 당연히 제외된다. 사회상규에 따라 동호인회·동창회·향우회 등에서 구성원에게 제공되는 금품도 허용됐다.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한 '향우회'의 활약이 주목되는 이유다.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영란법' 손댄다면?

 

국회를 통과한 김영란법이 1년 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친 후 내년 9월부터 시행된다. 유예기간 동안 사후 발생 문제와 미비점에 대한 다각적인 논의 및 대책 강구로 김영란법이 개정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부 여야 의원들은 "김영란법이 명확성의 원칙과 평등의 원칙과 관련해 위헌소지를 가지고 있다"며 시행령으로는 이런 위헌소지를 없애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유예기간 동안 모호한 예외 조항을 구체화하고 대통령령으로 정할 부정청탁의 예외 규정을 보완해야 한다는 뜻이다.

김영란법의 원안에는 법 적용 대상으로 민법상 가족(배우자와 직계혈족, 형제자매,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었으나 이번 제정된 김영란법에는 배우자로 그 범위를 한정해 우회적 금품 로비 가능성을 열어뒀다. 원안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사립학교 교원 및 언론사가 포함됐고 국회의원과 시민단체는 적용대상에서 제외됐다.

또한 공공성이 야기되는 의사와 변호사도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기소 여부를 결정할 검찰의 권한이 커질 것으로 예상돼 보다 세부적인 시행령이 필요하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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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