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인생을 그리는 서양화가 상하

"유명한 화가? 행복한 화가 될래요"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우주의 유한한 존재에 대하여." 서양화가 상하의 작업노트는 이렇게 시작한다. "별의 잔해일 뿐인 존재에 대하여" "지금이라는 순간을 살며 사라지는 존재에 대하여" "삶이라는 공기를 맡고 뱉으며 소멸하는 존재에 대하여" 상하의 그림은 소소한 일상을 버티고 선 작고 연약한 존재에 대한 헌사다. 상하와의 인터뷰는 경기 남양주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이뤄졌다.

멋진 옷차림과 젊은 감각의 헤어스타일이 돋보였다. 서양화가 상하는 화가이면서도 사고의 깊이가 있는 '철학가'였다. 대단한 것보다는 하찮은 것, 거창한 것보다는 소소한 것을 사랑했다. 인간 생명은 물론이고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에게까지 애정을 보였다.

생명을 담다

그는 그림을 통해 우리 주변에 있는 소중한 순간을 말하고자 했다. 상하는 '순간'을 존재하는 것의 숙명으로 인식했다. 지구상에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다. 인간도 결국은  먼지처럼 사라진다. 먼지가 된 인간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는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해 '사라진 것들'이 별이 된다고 생각했다. 별을 닮은 오색의 화려한 점은 새하얀 캔버스 위에 눈꽃처럼 흩날렸다.

때로는 뚜렷하게 때로는 희미하게 각각의 '점'들은 밤하늘에 떠있는 별을 가리켰다. 우리가 아는 별은 반짝하고 빛나지만 폭발과 함께 사라져버린 것이다.

상하의 그림에서 별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 '당신은 이만큼 반짝이는 존재다'이고, 둘째 '그러나 당신 역시 언젠가는 사라진다'이다. 상하는 "어차피 사라질 거라면 지금 이 순간을 최대한 즐겼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어찌 보면 덧없는 삶이지만 주어진 시간을 행복하게 살다가 별이 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별과 우주를 배경으로 한 상하의 그림에는 남녀와 아이, 노인 등 인간의 여러 모습이 담겨 있다. 그 중에서도 상하는 인간이 느끼는 각각의 감정을 표현하는 일에 매력을 느꼈다. 좋아하는 작품으로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를 꼽았다. 상하는 "내 작품 가운데 가장 반응이 좋은 것은 사랑 시리즈"라며 "사랑의 감정을 나타낼 수 있는 키스와 포옹 장면을 자주 그리는 편"이라고 말했다.

말과 강아지를 비롯한 동물도 등장한다. 대중에게 친숙한 마이클잭슨, 이소룡도 그의 작품에선 별이 된다. 단 대중의 기대와는 별개로 작가 본인은 '상처'라는 감정에 관심이 많다. 인터뷰 도중 몇 차례나 '세월호'를 언급했다. 그가 그린 작품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비극에 가깝다.

별 주제로 인간과 동물 화폭에 담아
지하철 드로잉 수천번…연습 또 연습

그는 관객이 비참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화폭을 통해 전달코자했다. 상하는 "사랑 시리즈에 비해 갤러리의 수요는 없는 편"이라며 웃었다.

상하는 홍익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출신학교를 밝히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했지만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실었다). 한국 현대사의 격변기였던 1990년대를 온몸으로 관통했다. 미술 대학원을 졸업한 상하는 10년 가까이 붓을 잡지 않았다. 이 시기 세상과 한 발짝 떨어져 살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다고 했다.
 

5년 동안 상하는 거의 매일 책만 읽었다. 독서를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 했지만 책은 인생의 해답을 주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어느 순간 문득 '남의 생각'이 아닌 '내 생각'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하의 그림은 오랜 성찰의 결과물인 인간에 대한 존중, 나아가 생명을 보듬는 위로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애견인이기도 한 그는 20년 넘게 생명을 기르고 있다.

10년의 깨달음


상하는 물감을 풀어 여러 번 덧칠하는 작업 방식을 지키고 있다. 특유의 몽롱한 색감은 이 같은 노력의 산물이다. 모델 앞은 물론이고 지하철에서 인체 드로잉을 수천번씩 반복하며 그림선의 맵시를 연마했다. 꿈틀대는 필선은 인체를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상하는 "매일 새 작업방향을 고민하는 것이 내 삶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유명세를 좇기보다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상하. 막연한 우울감을 뿌리치고 행복을 찾아 비상하는 그의 새로운 작업에 관심이 모아진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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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