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대표적 부실인사 7인 공개

'여왕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다. 한 집단의 품격을 보려면 어떤 사람을 쓰는지 관찰하라는 말도 있다. 박근혜정부의 인사 참사는 그 집단의 품격을 오롯이 드러냈다. 뽑는 이마다 족족 논란이 뒤따랐다. <일요시사>는 최근 임명됐거나 임명을 기다리고 있는 고위공직자 7인을 선정해 그들의 면면을 되짚었다.

이완구 국무총리는 청문회 과정에서 비뚤어진 언론관과 부동산 투기, 병역 문제 등이 불거지며 망신당했다. '실세 총리'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전망은 밝지 않아 보인다. 그의 전임인 정홍원 전 국무총리는 '대독 총리' '의전 총리'라는 말을 들었다.

[부실인사 1]
거짓 해명 이완구

이 총리는 대통령과의 친밀도를 고려할 때 책임 총리의 위상에 근접하게 될 것으로 점쳐졌다. 3선 국회의원, 여당 원내대표, 충남도지사 등을 지낸 경력과 '충청권의 대표주자'라는 상징성이 가볍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 총리는 청문회 과정에서 각종 의혹으로 상당한 내상을 입었다. 당초 기대보다는 정치적 입지가 축소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한 달 전만 해도 무난한 인사청문회가 예상됐지만 병역기피·부동산 투기·황제 특강 의혹에 이어 '언론 외압'  의혹까지 잇따라 터지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이 총리를 인준하기 위한 표결이 강행되면서 여러 의혹이 수면 아래로 자취를 감췄다. 대표적으로 그의 타워팰리스 구입 자금과 관련한 거짓 해명은 아직 속 시원히 밝혀지지 않았다. 새정치민주연합 진성준 의원은 "이 총리가 타워팰리스 구입에 사용했다고 밝힌 현대아파트 전세보증금 5억원이 재산신고에 누락돼 있어 자금 출처가 의심스럽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 총리는 "나중에 (재산신고를) 정정했다"고 해명했지만 당시 신고서에는 '재산변동 내역이 없음'이라고 돼 있었다. 또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 역시 '정정신고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이 총리의 해명이 거짓이었던 셈이다.

이 총리가 약속한 "대통령께 쓴소리와 직언을 하는 총리가 될 것"이라는 말도 거짓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정치권은 이 총리가 친박인사라는 점에서 논란이 되는 이슈를 놓고 박근혜 대통령과 맞서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부실인사 2]
초고속 승진 홍용표

홍용표 통일부장관 후보자는 지난 24일 논문 중복게재 의혹을 인정하면서 사과했다. 홍 후보자는 박 대통령이 당선인이던 2013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국방·통일분과 실무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대통령 직속 외교안보수석비서관실 통일비서관을 맡고 있다.

홍 후보자는 2010년 5월 연세대 북한연구원이 발행한 전문학술지에 '이승만의 반공정책과 한반도 냉전의 진화'라는 제목의 영문 논문을 게재했다. 그러나 이 논문은 홍 후보자가 2000년 영국에서 출판한 영문 논문 '국가안보와 정권안보: 1953년에서 60년 사이 이승만 대통령과 남한의 불안정 딜레마'를 '자기 표절'한 것이었다.

국내 학계는 인용 없는 논문 중복 게재를 연구 윤리 위반행위로 보고 있다. 앞서 <뉴스타파>는 "홍 후보자가 한양대 교수 시절, 10년 전 자신의 논문을 인용이나 출처 표기 없이 다른 학술지에 중복 게재한 사실이 취재 결과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홍 후보자는 "일부 중복되는 측면이 있다"며 "통일부장관 후보자로서 송구스럽다”고 사과했다.

홍 후보자와 관련한 가장 큰 논란은 그가 직급이 낮은 비서관 신분으로 차관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장관 후보자로 승진했다는 점이다. 때문에 통일부 안팎에선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책임부처가 아닌 청와대에서 '오더'를 받아 실무만 하는 '통일준비위원회' 수준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받고 있다.


[부실인사 3]
시국사건 은폐 박상옥

같은 날 새정치민주연합은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의 청문회를 열 수 없다고 당론을 정리했다. 야당은 박 후보자가 검사 시절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수사에 참여했던 경력을 문제 삼아 청문회를 보이콧해왔다.

이날 새정치민주연합 안규백 원내수석부대표는 "박 후보자에 대해선 사안의 경중을 떠나 은폐의 책임이 있다"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같은 당 이종걸 의원(인사청문회특위 위원장)도 "다수 의견대로 승인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 청문회를 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이들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후보자의 적격성 여부에 대한 판단은 이미 끝났다"며 "자진사퇴만이 정답"이라고 날을 세웠다.

여당 쪽에선 박 후보자를 향해 당시 초임 말단검사로서 아무것도 몰랐다는 옹호론을 펴고 있다. 특히 박 후보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인사청문회) 준비를 계속하고 있다"며 "지켜봐 달라"고 별렀다. 자진사퇴 압박에도 물러날 의사는 없는 셈이다.

그러나 같은 법조인들의 생각은 야당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지난 4일 성명을 내고 박 후보자의 임명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부실인사 4]
'리틀 김기춘' 우병우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지휘했던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이 입을 열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몬 검찰의 언론플레이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국가정보원으로 책임을 넘겼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이 전 부장의 발언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됐다. 당시 우 수석은 수사를 책임진 주임검사였다. 시간이 지나 이 전 부장 본인은 불명예 사퇴한 데 반해 '후배'(당시 중수1과장)였던 우 수석은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영전했다. 이를 아니꼽게 본 이 전 부장이 일종의 '견제구'를 날렸다는 해석이 나온다.

우 수석은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있던 시기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에 연루돼 한모 경위를 회유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또 우 수석은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항명하고 사퇴하는 과정에서 원인을 제공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직속상관인 김 전 수석을 거치지 않고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에게 직보하며, 김 전 수석의 입지를 축소시켰다는 주장이다.

우 수석은 '사심이 없는 원칙주의자'로 불리며 청와대의 강한 신임을 받고 있다. '꼼꼼한 일처리'가 김 실장을 닮았다는 평가다. 업무 스타일이 비슷해 '리틀 김기춘'이란 별명도 갖고 있다.

우 수석을 민정수석으로 승진시키는 과정에서 후폭풍은 엉뚱하게도 검찰을 덮쳤다.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우 수석보다 기수가 낮은 검찰 현직간부에게 전화해 "용퇴하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대표적이다.

[부실인사 5]
섬투기 의혹 이명재


박 대통령이 특보단을 꾸리면서 가장 공을 들인 인사는 이명재 민정특보다. 특보직을 제안할 때도 이 특보에게는 박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건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특보에게는 김 실장이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김 실장은 이후 자신의 후임으로 이 특보를 추천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 특보가 이를 고사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여권 일각에선 '이명재-우병우' 체제만이 김 실장의 공백을 메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특보 역시 검증절차가 진행되면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뉴스타파>는 지난 17일 "이명재 청와대 민정특보가 대검 중수부 2과장으로 재임하던 80년대 말, 전남 신안군 압해도 일대 임야를 매입한 것으로 드러나 섬 투기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경북 영주가 고향인 이 특보는 연고도 없는 신안군 땅을 확인도 없이 매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때 신안군 일대에는 외지인들의 묻지마 투기가 기승을 부렸다고 한다. 이 특보가 사들인 임야는 1만7000여㎡ 규모로 알려졌다. 1993년 국회의원들의 재산 공개 때 이순재 민자당 의원 등 일부 여당 의원들은 신안군 부동산 투기에 가담해 질타를 받았다.

당시 검찰은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는데 공교롭게도 이 시기 이 특보는 땅을 사들였다. 땅값은 한평(3.3㎡)당 10만원대까지 치솟았다고 전해진다. 관련 인터뷰에서 이 특보는 "투기라고는 생각 못했다"며 "개발 호재 같은 건 전혀 알지 못했다. 바다가 보인다고 해 조그만 절 집이나 지으려고 샀다"고 해명했다.

[부실인사 6]
만만회 뒷말 현명관

현명관 한국마사회장은 27일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물망에 올랐다. 현 회장이 언론에 등장하자 '찌라시'가 돌았다. 개인사가 섞인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글이었다. 그러나 현 회장과 관련한 주된 의혹은 따로 있었다. 바로 '만만회' 연루설이다.


지난해 7월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만만회'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알려진 현명관 한국마사회장이 용산 경마장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며 현 회장과 비선실세로 알려진 정윤회씨의 유착 의혹을 제기했다.

박 의원은 이른바 '공주 승마' 의혹을 일으킨 정윤회씨의 딸이 '7인회' 멤버인 현 회장의 비호를 받고 있는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측은 지난 4월에도 "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통하는 정모씨(정윤회)의 딸이 승마 국가대표로 선발돼 특혜를 누린다는 제보가 있다"고 폭로했다.

특히 "현 회장 부임 이후 정씨의 딸이 마사회 소속만 쓸 수 있는 '마방'에 말 3마리를 입소시켰다"고 지적하면서 "월 150만원의 관리비도 면제 받고 별도의 훈련을 한다는 제보가 있다"고 주장했다.

마사회 측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현 회장 역시 "분명히 말하겠다. 그런 것과는 관련이 없다"고 부인했다.

앞서 기자와 만난 현 회장의 한 측근은 관련한 물음에 대해 "알 수 없고, 알아서도 안 된다"라고 말했다. 현 회장은 이른바 '정윤회 문건' 파문이 있기 전부터 고위공직자 후보로 수차례 거론됐다.

[부실인사 7]
회전문 인사 임종용

임종용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전형적인 '회전문 인사' 관행을 답습했다. 그는 기획재정부 차관 출신이며, 2013년 6월부터 NH금융지주 회장으로 20개월 정도 일했다. 관료로 시작해 기업 경영자로 갔다가 다시 관가로 돌아온 셈이다.

임 후보자는 NH농협금융지주 회장으로 재직한 최근 2년 동안 연평균 2억원씩 저축했다. 박근혜정부 국무조정실장 시절인 2013년 3월 공직자재산신고 기준으로 본인과 배우자 소유의 아파트 2채와 예금 5억원 등 모두 16억6000만원을 신고했다.

지난 25일 국회에 제출된 인사청문요청안에 따르면 임 후보자의 재산은 18억6251만원이었다. 2년 사이 2억여원 정도가 늘었다. 예금은 2013년 3월보다 4억2061만원이 늘었다.

임 후보자는 시력이 좋지 않아 제2국민역 판정을 받았으며 방위로 복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2년 6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복무한 뒤 육군 일병으로 소집해제됐다. 현역으로 복무하지 않았다는 점이 청문회 과정에서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임 후보자가 주목되는 이유는 그가 이명박정부의 대표 '브레인'이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정권출범 후 이명박정부 색채가 강한 인사는 되도록 기피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그는 현재 국정조사를 앞두고 있는 자원외교 컨트롤타워인 '에너지협력외교 지원협의회'를 주재했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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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