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 보는 데 얼마 들까?

2015 복채 대해부

[일요시사 사회2팀] 유시혁 기자 = 민족의 대명절인 설이 지나면 점집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평소 점에 관심이 없던 이들도 토정비결, 사주팔자, 궁합 등을 알아보기 위해 점집을 찾곤 한다. 길거리의 노점 점집을 비롯해 강남대로변의 빌딩에 위치한 점집, 깊은 산골짜기에 위치한 점집까지 편의점보다 더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점집이다. 그렇다면 상담의 대가로 지불하는 금액인 복채는 얼마가 적당할까.

음력 연초가 되면 점집은 호황이 이룬다. 점술가로부터 토정비결, 사주팔자 등을 본 후 다가올 한 해를 미리 예견해보고 혹시 모를 사고나 질병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특히 지난 한 해 동안 골머리를 앓아왔던 자녀 문제, 직장 내 갈등, 직업 선택, 결혼 문제, 건강 걱정, 사업 문제 등의 근심거리를 점술가에게 토로함으로써 마음의 위안을 얻고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안 받을 수 있다.

복채, 기본 5만원

지난 2월24일 점집을 찾았다는 남숙자(56·주부)씨는 “매년 연초가 되면 점집을 찾곤 한다”며 “올해로 33살이 된 아들이 여자친구가 없어 걱정이었는데 내년에 결혼운이 있다고 하여 한시름 덜었다”고 말했다. 덧붙여 “3인 가족이라 작년까지는 복채로 3만원씩 총 9만원을 냈는데, 올해는 15만원을 냈다”고 설명했다. 

‘복(福)’을 채간다는 의미에서 유래된 복채는 점술가에게 상담의 대가로 지불하는 금액을 말한다. 1980년대 이전까지는 쌀, 닭 등 현물에 준하는 농축수산물로 복채를 대신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1980년대 이후부터는 현금으로 복채를 지불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복채는 얼마가 가장 적당한 것일까. 기자가 직접 점집을 찾아 복채 가격을 알아봤다.

가장 먼저 강남역 주변의 노점 타로카드 점집을 찾았다. 질문을 던지자 점술가는 테이블 위에 타로카드를 나열한 후 7장을 뽑으라고 말한다. 질문에 대한 점괘를 들은 후 추가 질문을 하자 이번에는 타로카드 3장을 더 뽑으란다. 총 네 가지 질문을 던졌고 뽑은 타로카드를 해석함으로써 점괘를 들을 수 있었다. 복채가 얼마냐고 묻자 1만원이란다. 가격표에 적힌 ‘타로카드 5000원’에 대해 언급하자 ‘디테일 1만원’이라고 적힌 문구를 가리킨다. 가격표에는 종합운, 궁합, 신년운세, 나의성향, 관상의 경우 3만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주변인들로부터 소개 받은 소위 ‘용하다’는 점술가를 만나기 위해 새벽 5시 이태원 경리단길을 찾았다. 사전 현장 예약을 해야만 정오부터 순차적으로 상담이 가능한 곳이다. 두 번째 차례였기에 오후 1시 다시 점집을 방문한 기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무속인을 만날 수 있었다.

한참동안 기자의 얼굴을 본 무속인이 입을 열었다. 손님에게서 투영되는 영상을 통해 점괘를 말한다는 이 점술가는 20여분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줬다. 이후 심도 있는 대화로 남은 40분을 채웠다. 복채로 7만원을 지불했다.  

유명 역술인으로 꼽히는 한국역술인협회 백운산(유영대) 회장을 찾아갔다. 무속인 점술가와는 달리 말끔한 정장 차림이었다. 생년, 생월, 생일, 생시, 성명 등을 불러주자 백지에 한자를 차곡차곡 적어 나갔다. 이후 기자의 사주팔자에 대해 요목조목 설명해주었다. 이어 관상, 수상(손금), 성명의 역술을 풀이해줬다. 사주팔자 풀이만으로는 개인의 운명을 가늠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얼마를 내야 하냐고 묻자 합산 5만원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인터넷 및 SNS을 통해 점괘를 봐준다는 강준현(32)씨를 영등포역 부근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났다. 휴대전화 인터넷 검색창을 띄워 만세력에 기자의 기본정보를 입력한 후 사주팔자에 대해 풀이해줬다. 말솜씨가 유창하지는 않았으나 백운산 역술가의 풀이와 엇비슷하게 맞아 떨어졌다. 30여분간 이어진 점괘의 복채는 1만원이었다.  

일반적으로 거래되는 복채의 규모에 대해 조사해본 결과 지역 및 인지도에 따라 금액은 다소 차이가 났으나 노점 점집을 제외한 대부분의 점집에서는 평균 복채 5만원에 거래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역별 평균 복채를 살펴본 결과 서울·경기·인천 지역은 5만원, 지방은 3만원에 거래됐다.

골머리 근심거리…점술가 만나 해소
지역·인지도 따라 가격 '천차만별'

소위 ‘용하다’고 소문난 점술가와 영매한 지 2년이 되지 않은 무속인의 경우에는 10만원 이상의 복채를 지불해야 한다. 특히 무속인이 많이 밀집해 있는 경기도 동두천, 포천, 연천 지역과 충청북도 제천, 경상북도 영주의 경우에는 대부분 복채가 1만원이며, 최대 3만원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요시사> 998호 ‘일요초대석’에 소개된 점술가 정호근의 복채는 10만원으로 조사됐다. 노점 점집의 경우에는 대게 가격이 명시돼 있으며 상담 항목에 따라 5000원에서 3만원에 거래된다. 정확한 복채가 궁금할 때는 사전 예약 시 복채 가격을 물어보면 알려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한경신연합회 진선(최수진) 회장은 “점을 본다는 것은 유형의 상품을 구매하는 것과는 별개의 개념이다”며 “협회에서 회원들에게 권장하는 복채 금액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통상적으로 5만원에 거래되지만 복채는 점을 보려는 사람이 성의껏 건네는 것이므로 상담에 대한 만족도에 따라 적당한 금액을 지불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복채는 성의껏

한국무속신문사에 따르면 약 10여년 전 부산 온천장의 문수보살이 선거를 앞둔 정치인의 점괘를 봐준 대가로 1700만원의 복채를 받아 국내 최고가 복채 금액으로 조사됐다. 국내 유명 역술인도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둔 한 후보자의 점괘를 봐준 대가로 3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백운산 회장은 “걱정거리가 없는 사람은 점집을 찾지 않는 법이다”며 “통산적으로 5만원에 거래되지만 점괘가 마음에 들 때는 백단위의 금액을 건네는 손님도 있다”고 설명한다. 덧붙여 “간혹 현재 상황도 힘든데 점괘 결과가 더 최악인 경우가 있다”며 “이런 경우 복채를 받는 대신에 차비에 보태 쓰라고 돈을 건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드라마나 영화 속 장면에서 그려진 점술가는 점괘를 설명하는 도중 입을 다문다. 복채를 달라는 의미다. 이때마다 지폐 한 장씩을 건네면 보다 상세한 점괘를 풀이해 준다. 하지만 실제로 점술가에게 확인해 본 결과 그런 점술가는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방송용 연출 장면인 것이다. 그렇다면 복채는 어느 시점에 지불하는 것일까.  

인천 계산동에 위치한 칠성사의 변성은 무속인은 “상담 전, 중, 후 아무 때나 복채를 지불해도 문제될 것은 없다”며 “상담자가 점괘의 만족도와 복을 채가려는 마음에 따라 복채 지불액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상담이 끝난 후 복채를 지불할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대한역술인협회, 대한경신연합회, 한국무속협동조합의 발표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점술가는 역술인 30만명, 무속인 23만명으로, 총 53만명(노점 점술가 제외)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무속인 점집을 찾는 경우 복채 이외에도 기도, 부적, 굿 등의 추가 비용이 소요되기도 한다. 기도 비용은 30만∼50만원, 복사본 부적을 제외한 부적 비용은 30만∼80만원, 굿 비용으로는 350만∼1000만원이 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기점, 사기굿 많아

부적은 액운을 퇴치하거나 예방하기 위해 제작된다. 매년 고액 부적에 의한 사기 사건 소식이 끊이지 않고 언론을 통해 보도된다. 지난해 2월에는 아들의 앞날이 잘 풀리려면 부적을 써야한다는 명목으로 555만5000원짜리 부적을 써준 무속인이 사기 혐의로 붙잡혔다.

이 무속인은 지난 2008년 2월에도 남편이 죽을 지도 모른다고 위협해 1999만9990원의 부적을 써준 혐의를 받은 바 있다. 부산지검은 “무속행위를 할 의도가 없고, 효과도 믿지 않으면서 상대방을 속여 부정한 이익을 취할 경우에는 사기죄가 성립하지만, 부적을 쓴 뒤 원하는 목적이 달성되지 않았다고 해서 속인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무속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보통 수도권 5만원, 지방 3만원
유명인, 일반인보다 비싸게 받아


굿은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노래와 춤으로 길흉화복 등 인간의 운명을 조절해 달라고 빌기 위해 이뤄진다. 굿의 형태는 이용 목적에 따라 다양하나 대표적으로 조상굿, 산신굿, 서낭굿, 병굿(우환굿), 재수굿(운수굿) 등을 들 수 있다.

지난해 9월에는 30대 여성이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합격 기원 재수굿을 500만원 들여 벌였다가 시험에 불합격하자 사기죄로 무속인을 신고했으나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난 사례가 있다. 재판부는 마음의 위안이나 평정을 얻기 위해 굿을 하는 경우이므로 사기라고 보기 힘들다고 판결했다. 지난해 2월에는 모 건설업체 사장이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무속인에게 공사 도중 사고가 나지 않도록 5000만원짜리 재수굿을 의뢰했다.

실제로 공사 중 인부 사고가 나지 않자 타운하우스 관련 신사업과 관련 1억5000만원의 재수굿까지 의뢰했다. 하지만 이 타운하우스 사업은 시작도 하기 전에 좌초되고 말자 뒤늦게 사기 굿임을 깨닫고 사기죄로 무속인을 신고했다. 그동안 건설업체 사장이 무속인에게 건넨 굿 의뢰 액수는 1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안겼다.

 

TV 방송에 여러 차례 소개되며 유명세를 탄 강남의 한 무속인은 지난해 2월 한 증권전문가로부터 30여 차례에 걸쳐 17여억원의 굿비를 챙겼다.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한 증권전문가가 사업 번창을 목적으로 재수굿을 의뢰해 온 것이다. 증권전문가는 굿비를 마련하기 위해 투자자들에게 주식 투자를 명목으로 투자금을 받아 개인용도로 사용했으며 사기 혐의가 인정돼 2년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한국무속인협동조합 김준옥 조합장은 “무속인의 말을 무시하기에는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신기한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며 “그렇다고 해서 너무 무속인의 말에 현혹되지 말고 무리한 금액을 요구할 때는 과감하게 거부할 줄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덧붙여 “위협적인 말투로 누군가가 죽을 지도 모른다고 공갈 협박하는 무속인은 대부분 사기 무속인이다”며 “점을 보러 갈 때는 주변 지인들이 추천하는 점술가를 찾아가는 게 사기를 피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고 강조했다.


억 단위 굿

한편 최근 영아를 둔 학부모들 사이에서 지문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수상학(손금) 중 하나인 지문점을 통해 타고난 성격과 성품, 적성을 알 수 있어 자녀의 적성 교육에 참고하는 학부모가 늘고 있다. 지문점은 정기문(감성형), 반기문(창의형), 쌍기문(조정형), 두형문(지도자형), 호형문(안전형)의 다섯 가지로 구분되며 각 손가락별로 지문 분석을 통해 보다 상세한 점괘를 알 수 있다.  

3세 아들을 둔 허선영(32·직장인)씨는 “아들의 지문은 호형문 형태로 사무 능력과 관리 능력에 뛰어나며 안정적인 성향을 지녔다고 말해주더라”며 “공무원, 교사 등 책상에 앉아 서무 관련 업종으로 나아갈 것을 추천 받았다”고 말했다.

 

<evernur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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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