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초폐기 수사로 본 '정치검찰' 오명 잔혹사

'대통령과 맞장' 패기 어디갔나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지록위마. 검찰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했다. '사초(史草) 폐기' 수사는 삭제돼야 할 초본을 대통령기록물로 해석한 검찰의 '의도된 실수'였다. "야당을 겨냥한 무리한 기소였다"는 의견이 지배적인 가운데 중립성을 잃어버린 검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참여정부 당시 대통령의 치부를 파헤쳤던 검찰은 '이명박근혜정부'를 거치면서 '정치 검찰'이란 오명을 자초했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 참여정부 초기 '검사들과의 대화'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 말이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적개심은 TV를 통해 여과 없이 송출됐다. 정권이 바뀌고 노 전 대통령은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됐다. 검찰은 되는대로 피의사실을 흘렸다. 언론은 받아 썼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후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대한민국은 고인을 기리는 노란 물결로 출렁였다.

노무현과 악연
정치검찰 전락

검찰은 김영삼정부가 하나회를 숙청하자 손꼽히는 권력기관으로 부상했다. 정치권은 정적을 제거하고자 할 때 검찰을 이용했다. '정치 검찰'이란 표현은 역대 정부마다 예외 없이 등장했다. '정치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에 관대하고, 지난 권력에 가혹한 검찰을 꼬집는 대명사가 됐다.

하지만 이들이 늘 살아 있는 권력의 시녀였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03년 있었던 대선자금 수사는 오히려 살아 있는 권력에 가혹했다. 안대희 전 대법관(당시 대검 중수부장)은 청와대와 각을 세우며 뚝심 있게 수사를 밀어붙였다. 당시 안 전 대법관은 '국민 검사'란 애칭을 얻었다.

16대 대선자금 수사는 SK 비자금 수사에서 시작해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차떼기 대선자금 수사로 확대됐다. 한나라당은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삼성에서 370억원, LG에서 150억원, 현대자동차와 SK에서 각각 100억원씩을 받았다. '4대 기업'의 후원금만 720억원에 이르렀다.


한화, 대한항공, 대우건설, 금호, 롯데(이상 금액순) 등 대기업도 10억∼40억원의 대선자금을 건넸다. 당비 형식으로 모은 13억원의 비자금까지 더하면 한나라당의 불법 대선자금은 848억원에 달했다.

한나라당은 '표적 수사'라고 반발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노무현캠프가 한나라당 대선자금의 10분의 1을 더 썼다면 사퇴하겠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노 전 대통령의 말은 독이 됐다. 당시 수사를 총괄했던 송광수 전 검찰총장(33대)은 퇴임 후 숭실대 강연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 불법 대선자금의 10분의 1보다 더 썼다면 그만두겠다'고 했지만 검찰은 10분의 2∼3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진보에겐 가혹
보수에겐 관대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노무현캠프의 대선자금 규모는 113억6200만원이었다. 삼성만 놓고 봤을 때는 10분의 1보다 적었다. 삼성은 30억원을 노무현캠프에 전달했다. SK의 후원금은 10억원으로 정확히 10분의 1이었다. 이외에도 금호, 현대자동차, 롯데, 대한항공(이상 금액순) 모두 한나라당보다 적은 정치후원금을 노무현캠프에 건넸다. 친노무현 그룹으로 알려진 태광실업조차 한나라당에 두 배 더 많은 돈을 후원했다.

그러나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10분의 1' 발언에 분개했다고 한다. 수사의 칼날을 현 정권에 들이민 이유다. 송 전 총장은 같은 강연에서 "더 눈에 불을 켜고 찾았다"고 회고했다. 노 전 대통령이 "(후원금을 건넨) 기업인을 처벌하지 않았으면 하는 희망을 갖고 있다"고 말하자 안 전 대법관은 "말 그대로 희망사항이 아닌가"라고 되받았다. 박근혜정부 들어 청와대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금과옥조로 지켜온 지금의 검찰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당시 안 전 대법관은 최도술씨(당시 청와대 총무비서관)가 부산지역 중소기업들로부터 걷은 3억3700만원을 비롯해 썬앤문그룹, 대아건설, 서해종건이 건넨 대선자금까지 찾아냈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은 "노 전 대통령의 외압으로 수사가 축소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발끈한 안 전 대법관은 "입증된 대로 기소하고 발표했다"며 "검찰이 한나라당 쪽 피의자들보다 노무현캠프 쪽 피의자들을 더 오래 붙잡아놓고 조사하는 것을 본 한나라당 쪽 변호인단이 '지독하다'고 얘기할 정도였다"고 반박했다.

참여정부 시절 검찰은 '독립성'의 상징이었다. 2004년 3월 검찰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촛불집회' 참가자들에게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이를 보고 받지 못한 강금실 당시 법무부장관은 진장조사를 지시했다. 그러자 송 전 총장은 "조사하고 싶으면 나를 조사하라"고 배짱을 부렸다. 송 전 총장은 2년 임기를 마치고 정상 퇴임했다.


후임으로 내정된 김종빈 전 검찰총장(34대)은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과 대립각을 세웠다. 김 전 총장은 2005년 10월 '6·25는 통일전쟁'이란 발언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은 강정구 동국대 교수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려 했다. 하지만 천 전 장관은 수사 지휘권을 발동해 불구속 수사 방침을 전달했다. 김 전 총장은 "구속수사가 옳다"고 고집했다. 결국 김 전 총장은 '자진 사퇴'란 초강수를 꺼내들었다.

'대선자금 수사'로 노무현과 대립각
'정치 검사' 박근혜정부서 승승장구

정권이 바뀌고 검찰은 이명박정부에 줄을 섰다. 노 전 대통령은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이명박정부는 청와대 민정수석을 고등검사장 이상의 검찰 고위직으로 임명했다. 검찰은 살아있는 권력을 지키는 한편 참여정부에 대한 '청산 작업'에 돌입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연루된 BBK 주가조작 사건은 무혐의 처분됐다.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에 대한 수사도 무혐의 종결됐다. 민간인 불법사찰 파문은 황당했다. "증거 인멸에 상부 지시가 있었다"고 폭로한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주무관만 유죄(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를 판결 받았다. <검사님의 속사정>이란 책을 펴낸 이순혁 기자는 당시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적당히 하라'는 검찰 수뇌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하명수사 받아
검찰총장 후보로

참여정부 인사들에게는 가혹했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은 배임 혐의로 기소됐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수사팀 소속 관계자는  "우리 입장에선 최선을 다해 수사했다"며 "전담 인력만 100여명 가까이 됐는데 그 많은 사람들의 눈을 어찌 속일 수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들에게 무죄를 최종 판결했다.

이명박정부 시절 검찰 수뇌부는 이른바 TK·고대 인맥으로 채워졌다. 수뇌부에 줄을 댄 김광준 검사(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는 수억원대 뇌물수수 사건에 연루돼 실형을 선고 받았다. 망가진 검찰은 '벤츠 여검사' '스폰서 검사' '성추문 검사' 사건 등으로 잇달아 망신당했다.

그렇지만 권력으로부터 이른바 '하명수사를 받은 검사는 인사 때마다 승승장구했다. 미네르바 사건을 지휘한 김수남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이명박정부 말기 서울남부지검장으로 승진했다. 박근혜정부 들어선 검찰 '넘버2'인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영전했다. 지난 6일에는 대검 차장으로 발탁돼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 유력시되고 있다.

MBC <PD수첩> 사건을 수사한 전현준 전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장은 검찰 내 요직인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을 거쳐 이명박정부 말기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발령 났다. 그는 수원지검 안산지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이번 인사에서 서울중앙지검 1차장으로 복귀했다.

MB정부 들어 참여정부 출신 줄줄이 폭격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 주도 채동욱 보복

박근혜정부 들어 검찰은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입었다. 현 정부의 '리지터머시(정통성)'를 건드린 채동욱 전 검찰총장(39대)이 혼외아들 의혹으로 낙마한 것이다.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는 시작부터 내부 견제에 직면했다. 수사팀에 속한 일부 검사조차 수사를 노골적으로 방해했다고 전해진다.

2013년 6월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참여정부 당시 천 전 장관이 그랬던 것처럼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하지만 대학교수 개인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과 국가기관의 조직적 대선개입 사건은 사안이 가진 무게가 달랐다.


황 장관은 수사 대상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지 않도록 압박했다. 하지만 특별수사팀 입장에서 범죄 사실은 명백했다. 채 전 총장은 황 장관과 맞섰다. 참여정부 이래 정치적인 사건에서 소신을 지킨 지휘부는 채 전 총장이 유일했다.

우여곡절 끝에 채 전 총장은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채 전 총장은 <조선일보>의 '혼외아들' 보도 직후 옷을 벗었다. <조선일보>의 보도 배경에 청와대 차원의 '뒷조사'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검찰은 '윗선'을 밝히지 못했다. '법률가의 양심'으로 끝까지 수사를 밀어붙인 윤석렬 전 특별수사팀장은 '항명 파동'으로 좌천됐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1심 판결의 요지는 "정치개입은 했지만 대선개입은 없었다"이다. 판결 직후 '지록위마'란 사자성어가 법원 내부 게시판에 올라왔다. 지난 2013년 8월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지난 대선 동안 국정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고, 선거에 활용한 적도 없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2심은 원 전 원장의 선거법위반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신상털기'를 당한 채 전 총장은 여전히 은둔 중이다.

굵직한 수사마다
새누리당 면죄부

후임인 김진태 검찰총장(40대)은 이명박정부 때 있었던 정치 검찰의 행로를 답습하고 있다. 정국을 흔들었던 정윤회 국정개입 파문은 대통령이 내린 가이드라인에 따라 마무리됐다. 청와대 문건 유출은 국기문란으로 규정됐다.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은 대통령기록물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됐다.

그런데 이번 '사초 폐기' 사건에서 법원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초본'이 대통령의 승인을 얻지 않은 문서이기 때문에 대통령기록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참여정부 인사인 백종천 전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과 조명균 전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은 지난 6일 무죄를 선고 받았다. 이는 대통령의 결재를 얻지 않은 청와대 문건은 대통령기록물이 아니라는 판단의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


실제로 검찰은 회의록 유출 혐의를 받았던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서상기 의원, 권영세 당시 주중대사, 남재준 전 국정원장에 대해 모두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관련 회의록에 대해 대통령기록물이 아니라고 자체 규정했다. 참여정부가 당시 국정원에 보관토록 한 '회의록'임에도 같은 문건에 다른 법리를 적용한 것이다.

나아가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두 비서관에게 지시해 회의록을 일부러 폐기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생전 노 전 대통령은 '검사들과의 대화'에서 검찰의 미래를 예견했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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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