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세금 안 내는 거물들 추적 ⑬조동만 전 한솔그룹 부회장

자택에 현금뭉치 쌓아두고 "배째라"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부는 항상 세수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돈이 없다"면서 만만한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기 일쑤다. 그런데 정작 돈을 내야 할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회피하고 있다.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백억 원까지 정부가 걷지 못한 세금은 40조원에 이른다. <일요시사>는 서울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을 토대로 체납액 5억원 이상(법인은 10억원 이상)의 체납범을 추적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13화는 798억8700만원을 체납한 조동만 전 한솔그룹 부회장이다.

 

지난 2012년 11월 삼성그룹 창업자인 고 이병철 회장의 25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 부근 선영에서 이뤄진 추모식에 삼성그룹 일가 임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무리에는 조동만 전 한솔그룹 부회장(이하 조동만)이 있었다. 조동만은 이 회장의 장녀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의 차남으로 이날 형제들과 함께 선영을 참배했다.

이병철 외손자

삼성가라는 후광이 있지만 조동만은 상습·고액체납자다. 2004년 3월부터 10년 넘게 주민세를 체납했다. 서울시가 징세할 세금은 84억100만원이다. 조동만은 2000년부터 양도소득세 등 2건의 국세도 내지 않았다. 국세청이 공개한 체납액은 714억8600만원이다.

2013년 8월을 기준으로 조동만은 주민세 84억1300만원을 체납했다. 1년 사이 서울시에 1200만원을 납부한 것이다. 그러나 2012년과 비교하면 체납한 세금은 58억4800만원에서 25억여원이 늘었다. 서울시 38세금징수과는 "(2013년) 가택수색 이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며 "체납액이 많기 때문에 한 번에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동만은 2008년 6월부터 한 달에 250만원씩 밀린 세금을 납부하기로 했다. 그러나 1억5000여만원만 납부하고 나머지는 내지 않고 있다. 지난해 기자와 만난 한 인테리어 업계 관계자는 "한솔가 사람들이 집안 내부 구조를 바꾼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계약 주체가 누구인지는 밝힐 수 없다"고 양해를 구했다.


조동만의 집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그의 주소지로 등록된 서울 중구 장충동에 있는 고급 빌라를 찾았다. 해당 빌라는 조동만의 소유였다가 세금 문제로 압류돼 2004년 공매에 넘어갔다. 현재 빌라는 조동만의 매제가 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실거주자는 조동만이란 것이 과세당국의 판단이다.

바로 옆집은 조동만의 아내 이미성씨 명의로 돼 있다. 서울시 38세금징수과가 가택수색을 했을 당시 조동만은 이씨의 집과 매제의 집을 연결해 쓰고 있었다. 매제의 집에선 비밀금고가 발견됐다. 5만원권 수십장이 묶인 뭉칫돈이 쏟아졌다. 초고가 패션브랜드인 에르메스 의류도 있었다. 하지만 조동만은 "수입이 없어 세금을 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 15일 장충레지던스를 찾았을 때 빌라 관리인은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용역 계약을 맺은 지 얼마 안 돼서 모른다"고 회피했다. 그러나 관리인실 책상 곳곳에 붙어있는 메모들에는 '몇동 몇호 누구'의 명의로 된 사과박스 주문내역까지 꼼꼼히 기재돼 있었다. 지하 관리사무소를 찾았지만 반응은 다르지 않았다. "지금은 중국인이 살고 있다"는 엉뚱한 대답만 돌아왔다.

장충대 일대는 이른바 '삼성타운'으로 불린다. 장충레지던스 맞은편에는 신라호텔이 있고, 장충레지던스 바로 옆 건물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주거지로 알려져 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도 장충레지던스 인근에 토지와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 장충레지던스 건물에는 조동만의 모친인 이 고문과 큰형인 조동길 한솔그룹 명예회장 등 한솔그룹 일가가 거주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시 84억원 국세청 715억원 체납
한솔텔 전매차익 1900억 빼돌려 구속

조동만은 고액 체납자이지만 아내와 자녀는 부유하다. 아들 조현승씨는 한솔그룹 계열사인 한솔인티큐브 지분 9.98%(137만6300주)를 보유하고 있다. 주식 가치는 1월16일 기준 30여억원에 달했다. 아내 이씨도 주식부자다. 한솔인티큐브 지분 5.72%(78만8525주)를 갖고 있다. 주식 가치는 17억여원으로 환산됐다.

한솔인티큐브의 최대주주는 지분 22.36%(308만2877)를 갖고 있는 한솔PNS다. 조동만은 2000년대 초반 한솔PNS의 회장이었다. 현재 한솔PNS는 한솔그룹 지주회사인 한솔홀딩스가 지분 46.07%로 최대주주에 올라 있다. 한솔가 누구도 개인 주식은 갖고 있지 않다. 때문에 여전히 한솔PNS의 실질적인 사주가 조동만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그러나 과세당국은 한솔PNS의 주식이 조동만의 사유재산이라는 주장에 대해 입증할 수 없었다고 했다.


조동만은 1990년대 중반부터 IT사업에 진출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젊은 기업가 모임 '브이소사이어티'에서 주축으로 활동했다. 업계 평판은 '외향적이고 쾌활한 오너'였다고 한다. 조동만이 언론에 등장한 것은 IMF 전후로 확인된다. 김영삼정부 시절 조동만은 대통령의 아들인 김현철씨에게 15억원의 뇌물을 건넸고, 현철씨의 비자금 70억원을 관리하다가 검찰에 적발됐다.

앞서 조동만은 개인휴대통신(PCS)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권력에 줄을 댄 것으로 의심 받았다. 조동만은 한솔그룹의 신성장동력을 이동통신사업에서 찾았다. 결과적으로 이동통신사업은 막대한 부가가치를 낳았다. 하지만 한솔그룹은 그 과실을 따먹지 못했다. 2004년 조동만은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구속됐다.

1999년 4월 한솔텔레콤 대주주였던 조동만은 자회사 한솔앰닷컴 주식 588만주에 대해 신주인수권(BW)을 헐값에 인수했다. 한 주당 가격은 200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같은 해 10월 조동만은 주당 7000원씩 신주인수권을 행사해 가격을 부풀린 뒤 2000년 6월 2350억원을 받고 KT에 주식을 매각했다. 검찰이 파악한 전매차익은 1900여억원에 달했다. 이는 한솔텔레콤에 돌아가야 할 전매차익을 자신에게 빼돌린 범죄였다.

이후 조동만이 처분한 주식이 추가로 발견됐다. 국세청은 조동만에게 양도소득세를 가중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조동만은 주식매각 차익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자신에게 과세된 세금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2004년 3월 서울시는 조동만에 대해 주민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그의 명의로 된 모든 재산이 압류됐다.

2013년 정부가 발표한 기간통신사업자 명단에는 한솔아이글로브가 남아 있었다. 조동만은 한솔그룹 부회장보다 한솔아이글로브 회장으로 소개되는 일이 더 많았다. 한솔그룹 측도 "조동만이 따로 IT사업군을 분리해 나갔음으로 그룹과는 관계없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혀왔다.

수천억 빼돌려

그러나 외부에선 여전히 조동만을 한솔그룹 후계자 가운데 한 명으로 보고 있다. 조동만의 아들 현승씨는 지난 1월 이른바 '황제 병역' 논란으로 검찰에 고발됐다. 현승씨에게는 한솔그룹 3세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현승씨는 공황장애와 대인기피증을 이유로 대체복무 중인 방위사업체에 주 1~2회씩 출근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업체 측은 현승씨를 위해 별도의 사무실을 제공했다. 한솔그룹 3세가 아니었다면 이런 특혜가 가능했을까.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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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