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특집> ④재벌 총수들의 세뱃돈 백태

'핏줄은 달라' 수천만원 주식 선물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조선시대 기록물을 살펴보면 설날에 '세뱃돈'을 주고받았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세뱃돈 풍습은 중국에서 건너온 것으로 추정된다. 새해 덕담과 함께 '돈을 많이 벌라'는 뜻의 붉은색 봉투를 준 것이 그 유래라고 한다. 봉투야 어찌됐든 우리나라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번 집단은 재벌이다. 다가올 설을 앞두고 재벌 총수들의 세뱃돈이 그간 어떻게 지급됐는지 살펴봤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 2005년의 일이다. 새해 첫날 전두환 전 대통령은 세배하러 온 보육원생들에게 세뱃돈을 건넸다. 액수는 무려 100만원이었다. 대통령 재임 당시 수천억원의 '퇴직금'을 챙긴 것으로 알려진 전 전 대통령은 씀씀이가 남달랐다.

전 전 대통령의 그 많던 돈은 어디서 난 것일까. 재벌 총수들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게 정설이다. 그럼 총수들의 천문학적인 상납금은 어디서 난 것일까. 여러 방법이 있긴 했지만 주로 노동자를 착취해 돈을 만들었다고 봄이 타당할 것이다.

당시만 해도 휴일이 없던 노동자에게 '유이'한 연휴는 설과 추석이었다. 특히 설에는 '사장님'으로부터 받은 교통비가 밑천이 됐다. 인심 좋은 사장님은 교통비에 '세뱃돈'과 다름없는 상여금을 얹어주기도 했다. 정경유착이 일상화돼 있던 시절엔 일부 '회장님'이 정치인에게 세배하러 갔다가 도리어 세뱃돈을 쥐어주고 나왔다는 '전설'이 있다.

[훈남형]

그랬던 해가 바뀌어 또 다시 설이 찾아왔다. 얼어붙은 경기는 사장님의 호주머니를 가볍게 했다. 중소기업의 44%가 설 보너스 지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반대로 회장님의 주머니는 두둑하다. 사내유보금을 수백조원씩 쌓아놓고 있다. 과거와 달리 재계의 힘이 세져 권력자에게 상납당할 일도 없다. 그렇다면 오늘날 재벌 총수들의 '세뱃돈'은 누구에게 건네지고 있을까.


올 1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그룹 여직원들에게 '순수한 세뱃돈'을 줘 관심을 끌었다. 주력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 임직원 350여명과 서울 북한산 산행에 나섰던 박 회장은 120여명의 여직원으로부터 세배를 받고 1인당 10만원씩 세뱃돈을 줬다.

반면 남자들의 세배는 받지 않았다. 그룹 관계자는 "박 회장이 매년 초 여직원들에게 세배를 받는 것은 오래된 관행"이라며 "세뱃돈은 박 회장의 사비로 지급됐다"고 밝혔다. 업계에 따르면 박 회장은 지난 2006년부터 여직원들에게 세뱃돈을 지급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실속형]

삼성은 설을 맞아 200억원어치의 전통시장 상품권을 구매했다. 이들 상품권은 설 연휴동안 회사 사업장에 출근해서 일하는 임직원과 직원들에게 지급될 예정이다.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삼성그룹 일가는 구정이 아닌 신정을 쇠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2013년과 2014년 모두 해외에서 명절을 보냈다. 올해는 병원에서 명절을 맞고 있다. 와병 중인 이 회장이 자녀에게 세배를 받거나 직접 세뱃돈을 건넬 일은 없어 보인다.

LG 역시 전통시장 활성화를 명목으로 온누리상품권을 구매했다. 지난해에는 설과 추석을 합쳐 170억원의 온누리상품권을 협력사와 그 직원들에게 지급했다. 구자경 명예회장을 비롯한 LG그룹 일가는 신정을 쇄 구정엔 별다른 교류가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12월 <한국경제>는 범LG가 풍습으로 자녀·손자에 대한 '세뱃돈 상한제’가 있다고 보도했다. '검소함을 체득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이들 대부분은 이미 예비 주식부자다.

[주식증여형]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신정을 앞두고 자신의 양자인 구광모 당시 LG 시너지팀 상무에게 3대 주주자리를 내줬다. ㈜LG는 지난해 12월말 공시를 통해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이 ㈜LG 지분 190만주를 구 상무에게 증여했다고 알렸다. ㈜LG의 지분 5.83%를 보유하게 된 구 상무는 아버지인 구 회장과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에 이어 ㈜LG의 3대 주주로 등극했다. 아들 입장에선 새해를 맞아 두둑한 ‘세뱃돈’을 받은 셈이다.


[선심형]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지난 2006~2007년 설 연휴 당시 지인들에게 와인을 선물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해에도 현 회장은 자택에서 휴식을 취하며 지인들에게 나눠 줄 선물을 고민했다고 한다.

훈남형·실속형·증여형·선심형 등 다양
일반 국민들과 달리 재벌가 양력설 선호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이하 현대차그룹) 회장은 구정마다 장남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에게 세배를 받고, 선친이 묻힌 경기 하남 창우리 묘소를 찾는 게 일과처럼 돼 있다. 올해 현대차그룹은 1조2300여억원을 협력사 지원금으로 마련했다. 설 연휴를 앞두고 협력사 사정을 고려해 납품대금 지급예정일보다 앞당겨 돈을 풀겠다는 설명이다.

지난 2012년 <오마이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17년차 현대차그룹 생산직 직원 A씨는 같은 해 1월 설날 귀향비와 상여금 명목으로 195만원을 수령했다. 하지만 A씨는 평소 밤낮 교대로 각 10시간, 토요일은 14시간씩 일해야 했다. 언론들은 그를 가리켜 '귀족 노동자'라고 했다.

[기브앤테이크형]

대부분의 재계 총수는 구정보다는 신정을 쇠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현대, LG, SK 등 재벌가는 양력설(신정)에 가족들이 회동한다. 반면 롯데가는 음력설(구정)을 쇠는 것으로 전해졌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은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음력설을 보냈다고 한다. 그렇지만 신 회장은 설 연휴에도 출근하며 돈을 벌었다.

그래서인지 롯데마트는 이번 설 연휴 대부분의 매장이 정상 영업한다. 전국 113개점 가운데 91개 점포가 영업하며, 나머지 22개 점포만 휴점한다. 유통체인을 갖고 있는 기업들 대부분은 설 대목에 자사 상품권을 선물하고 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기 때문에 이곳저곳 세배하러 다니지 않겠냐는 의견이 있었다. 그렇지만 신세계 이마트 113곳의 직원 수천여명은 설 당일 포함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일한다.

[여론친화형]

한화그룹은 약 60억원 규모의 지역특산품을 매입해 자사 고객 및 협력업체 직원들에게 돌린 것으로 전해졌다. 임직원들에게는 차례 비용으로 쓰라며 현금을 지급하기로 결의했다. 김승연 회장이 '의리의 경영인(?)'으로 불리는 이유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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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