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특위 흔드는 보이지 않는 손 추적

청와대는 '무관심' 새누리는 '흔들기'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겠다던 사람들이 달라졌다. 우여곡절 끝에 통과된 세월호특별법으로 진상규명의 희망이 이어지고 있지만 전망은 암담하다. 대통령은 무관심, 새누리당은 흔들기로 일관하고 있다. 안전한 나라에서 살고 싶다던 국민들의 열망은 '세금도둑적 작태'로 매도됐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손'은 누구일까.

올 10월 인천 송도에서 열리는 프레지던츠컵 대회. 박근혜 대통령은 얼마 전 이 골프대회의 명예회장으로 추대됐다. 박 대통령은 지난 3일 국무회의에 앞서 정홍원 국무총리, 최경환 경제부총리 등과 환담했다. 그리고 뜬금없이 '골프' 얘기를 꺼냈다. "프레지던츠컵 대회가 권위 있는 골프대회고 내가 명예회장으로 있다"며 "우리나라 골프가 침체돼 있으니 활성화에 힘써 달라는 건의를 여러번 받았다"고 한 것이다.

대통령 무관심
유족들 거리로

이 틈을 타 최 부총리는 맞장구를 쳤다. "국내에선 골프 관련 특별소비세·개별소비세가 붙어 침체돼 있고 사실은 외국에 가서 많이 한다"는 내용이었다. 박 대통령은 즉각 "방안을 마련해 보라"고 지시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정 총리는 "(그렇다면) 문체부 장관부터 (골프를) 치기 시작하시죠"라고 농담을 던졌다. 가뜩이나 '증세 없는 복지' 논란으로 뒤숭숭한 정국에서 박 대통령의 골프 발언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물론 지상파 언론에선 이를 거의 다루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비정상의 정상화'를 새해 국정기조로 언급했다. 비정상의 정상화는 세월호 참사 이후 박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서 직접 약속한 내용이다. 같은 날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선체인양을 촉구하며 경기 안산부터 진도 팽목항까지 19박20일간의 도보 행진에 나섰다.

공교롭게도 이날 극우 인터넷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이하 일베)의 한 회원은 '친구 먹었다'라는 제목으로 충격적인 게시물을 올렸다. 김모(20)씨와 조력자 조모(30)씨로 알려진 이들은 단원고 교복을 입고 어묵(오뎅)을 든 채 한 손으로는 일베를 상징하는 손모양을 하고 이른바 '인증샷'을 찍어 올렸다. 어묵은 일베 회원들이 세월호 희생자들을 비하할 때 쓰는 용어다.


경기 안산단원경찰서는 지난 6일 모욕 혐의로 김씨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조씨는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조사결과 김씨 등은 중고물품 거래 사이트에서 단원고 교복을 구입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밝혀졌다.

가이드라인 제시
특위 무력화 시켜

국민의 상식선에서 일베는 비정상에 가깝다. 그러나 이를 정상화할 의지는 없어 보인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9월을 마지막으로 공식석상에서 세월호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마지막 발언 내용은 ▲"세월호 사고의 문제점이 대부분 드러났고 관계자들도 문책을 당했다" ▲"진상조사위원회에 기소권과 수사권을 부여하는 것은 삼권분립과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일로 대통령이 할 수 없다"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로 요약된다.

정부 여당과 검찰은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이행했다. 여야가 합의한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세월호특위)에는 수사권과 기소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검찰은 대통령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일본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을 기소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세월호 참사를 언급하지 않았다. 국회 앞에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이틀 전부터 노숙하던 50여명의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게 단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 "대통령님 살려주세요!"라고 애걸했지만 유가족 수보다 경호원 수가 더 많았다. 박 대통령은 싸늘한 눈빛으로 쏘아보고는 그대로 차에 올랐다.

대통령 세월호참사 침묵…암묵적 가이드라인
친박계 김재원 세월호특위 내부문건 빼돌려

세월호의 '세'자도 꺼내지 않던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최근 소위 종북콘서트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우려스러운 수준에 달하고 있다"며 종북 논란을 지폈다. 황선·신은미씨가 연 통일콘서트 현장에 폭발물이 투척된 것에는 침묵했다. 2명에게 화상을 입히고 집기를 부순 혐의를 받고 있는 고등학생 오모(19)군은 최근 출소해 일베에 '인증글'을 남겼다. 반면 신씨 등은 국내에서 추방되거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이번 정부에서 박 대통령의 의중은 예외 없이 관철됐다. 만약 박 대통령이 세월호특위에 성역 없는 진상조사를 주문했더라면 어땠을까. 유가족이 또다시 400km가 넘는 고난의 행진을 했을 가능성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선 골프대회보다 못한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 세월호특위다. 대통령의 무관심은 다수 친박계 의원들이 세월호에서 등을 돌린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친박의 대표격인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당시 원내수석부대표)은 세월호특위를 겨냥한 거친 표현과 내부문서 빼돌리기로 논란이 됐다. 김 의원은 '세월호특위 설립준비단'(이하 설립준비단) 명의의 내부문건을 빼내 지난달 16일 "(세월호특위의) 세금도둑적 작태를 절대 용서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세월호특위 여당 추천위원인 조대환 부위원장(상임직 사무처장)과 세월호특위 실무협상 주체인 해양수산부를 통해 문건을 입수했다. 문건에는 세월호특위가 125명의 인력과 241억원의 예산을 쓸 수 있도록 정부와 협의 중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절차상 확정된 기안은 아니지만 김 의원은 언론을 통해 세월호특위를 '세금도둑'으로 낙인찍어버렸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김 의원에게 독대보고를 한 것으로 알려진 조 부위원장의 '친박' 이력이다. 조 부위원장은 박 대통령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의 발기인이다. 박근혜정부 출범 당시에는 초대 민정수석으로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조 부위원장과 김 의원은 나란히 검사 출신으로 확인된다.

김 의원의 발언을 시작으로 조 부위원장은 설립준비단 해체를 발의했다. 세월호특위와 달리 설립준비단은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설립준비단이 해체될 경우 세월호특위의 실무 진행은 마비될 수밖에 없었다. 세월호특위는 다수의 의견으로 해체안을 부결시켰다.

그러자 조 부위원장은 설립준비단에 파견돼 있던 담당공무원(해양수산부 소속 3명, 행정자치부 소속 1명)을 지난달 23일 원대로 복귀시켰다. 이들은 설립준비단과 정부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세월호특위는 출범도 하기 전 이렇게 한 달을 삐거덕댔다. 두 '친박'의 노골적인 흔들기가 표면화된 결과였다.

갈수록 첩첩산중
사무실도 뺏길 판

기자는 지난 2일 설립준비단 사무실이 있는 서울지방조달청 청사를 찾았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추천한 상임위원인 박종운 설립준비단 대변인은 당시 상황과 관련해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보단 대화로 잘 풀어가고 싶다"며 입을 열었다.

이날 박 대변인은 "이석태 세월호특위 위원장(유가족 추천)과 조 부위원장이 공무원 재파견에 합의했다"며 "공문을 보냈으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4일 공문에 응답한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 3명은 설립준비단에 합류했다. 하지만 행정자치부 공무원은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변인은 "상대적으로 세월호특위 운영에 보수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조 부위원장 등 여당 추천위원과 반대 성향의 다수 위원들이 토론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일부 위원들이 세월호특위의 출범을 가로막는다면 위원장이 다수 의견을 받아 정무적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문제는 당면한 논의가 합의점을 찾기는커녕 여권의 '힘빼기'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박 대변인은 세월호특위의 핵심으로 '독립성'을 꼽으면서 조 부위원장이 가져간 문건은 당초 같은 달 19일에 반대의견을 듣기로 돼 있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정리하면 세월호특위가 내부 협의를 목적으로 초안을 만들자 조 부위원장이 이를 빼돌려 엉뚱하게도 김 의원과 논의를 한 것이다.

조 부위원장은 지난 4일 열린 전체간담회에서 이 같은 우려를 현실화했다. 초안 기준으로 240억원이었던 예산을 130억원으로 깎은 것이다. 이는 해양수산부가 제시한 158억원, 기획재정부가 제시한 120억원의 예산보다 실질적으로 낮은 금액이다. 각 부처가 내놓은 예산안에는 직원 인건비와 조사 활동비, 건물 임대료 등이 빠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설립준비단이 임시로 쓰고 있는 사무실 임대계약은 이달 중순 종료된다. 박 대변인은 "공공기관 소유의 사무실 대관을 추진하고 있지만 중앙부처(기획재정부 포함)들이 '안 된다'고 해 막막하다"고 말했다.

현재 점유자도 없고 예약마저 없는 빈 공간이지만 정부는 무슨 이유인지 대관 얘기에 손사레를 치고 있다. 답답한 마음에 민간 사업자가 운영하는 빌딩에 입주하는 것도 고려했지만 이 경우 비싼 임대료가 장기적으로 부담이다.

조대환, 새누리당에 수시로 정보 보고
'세월호 인양' 예산낭비 공세로 좌절?

새누리당이 추천한 황전원 세월호특위 위원(비상임)은 지난 5일 또다시 설립준비단을 흔들었다. 황 위원은 지난 18대 대선에서 박근혜캠프 공보특보를 지낸 '친박'이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설립준비단에 참여하고 있는 민간위원의 법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황 위원의 주장대로라면 설립준비단에서 진행하고 있는 여러 협의는 무효화될 수 있다. 현재 설립준비단은 세월호특위의 예산과 직제, 시행령 등을 관련 부처와 협의 중이다.

또 다른 문제는 여당의 협조가 없는 한 세부안이 협의되기도 힘들뿐더러 작성된 안을 정부 차관회의와 국무회의를 거쳐 대통령의 승인까지 받아야 된다는 점이다. 안건 제출 후 중간에서 이런저런 핑계로 통과를 지연시키면 세월호특위는 정상적인 조사활동에 돌입할 수 없게 된다. 더구나 각 위원들이 대통령으로부터 정식으로 임명장을 받아야 하는데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떠났을 경우 또다시 시간을 허비할 수 있다.

세월호 인양
비용이 관건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인 <금요일엔 돌아오렴>에서 2학년4반 박수현 학생의 아버지인 박종대씨는 세월호특위의 '중요한 부분'을 이렇게 짚었다. 임의로 요약하면 첫째 세월호특위의 인적구성, 둘째 빠른 시일 내에 발족이 가능하도록 할 것, 마지막으로 세월호특위가 잘 운영되고 있는지 감시할 것이다.

현재 세월호특위에는 세월호 참사 직후 일베 게시글을 퍼날랐던 차기환 위원(새누리당 추천·비상임)이 있다. 차 위원이 속해 있는 행복한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행변)은 국정원의 변호를 전담한 바 있다. 해양수산부 한 공무원은 대통령 임명을 위한 세월호특위 위원들의 인사자료를 고의로 누락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설립준비단에서 불거진 여러 문제들은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정부 여당의 노골적인 방해 속에 세월호 선체인양 문제도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특위에는 법률상 인양문제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다만 박 대변인은 사견임을 전제로 "전체 인양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체인양은 실종자와 그 가족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진상규명과 사회적 갈등해소에 필요한 전제조건이다. 그러나 박 대변인은 "혹시 인양비용이 부풀려져 언론에 알려지면 정치 쟁점화 될까 두렵다"면서 "국민적인 관심과 합의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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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