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세금 안 내는 거물들 추적 ⑪이남종 룩엣유스 대표

불법임대로 도피자금 챙겼나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부는 항상 세수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돈이 없다"면서 만만한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기 일쑤다. 그런데 정작 돈을 내야 할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회피하고 있다.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정부가 걷지 못한 세금은 40조원에 이른다. <일요시사>는 서울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을 토대로 체납액 5억원 이상(법인은 10억원 이상)의 체납범을 추적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11화는 610억2000만원을 체납한 이남종 룩엣유스 대표다.

이남종 룩엣유스 대표(이하 이남종)는 2005년 4월부터 주민세 등 7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서울시가 징수할 체납액은 62억5300만원이다. 국세청의 자료에 따르면 이남종은 2004년부터 법인세 등 30건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 국세청이 거둘 체납액은 325억9200만원이다.

서울서 체납 2위

그러나 이남종은 10년째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 이남종은 자신이 운영했던 두 회사 명의로도 거액을 체납한 상태다. 룩엣유스는 2004년 11월부터 주민세 등 모두 37건의 세금을 내지 않았다. 서울시가 부과한 세금은 8억9200만원이다. 룩엣유스는 귀속 법인세 등 13건의 국세도 2002년부터 체납했다. 국세청이 환수할 세금은 212억8300만원으로 확인된다.

룩엣유스는 귀금속 및 관련 제품 제조를 업종으로 등록한 회사다. 2000년대 초반엔 의류잡화 수입업체로 더 유명했다. 회사 주소지는 부촌이 밀집된 서울 성북구 성북로였다. 현재 회사 사옥은 리모델링을 거쳐 고급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을 판매하는 곳으로 변했다. 같은 기간 부동산 소유주는 두 차례나 바뀌었다. 이남종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2006년 기준 감정가 34억원으로 평가받던 토지(총면적 709m²)와 건물(총면적 1379m²·지상 지하 각 2층)은 모두 이남종의 소유였다. 이곳을 본사로 200명에 가까웠던 룩엣유스 직원들은 2004년 8월까지 일했다. 당시 재직한 한 간부와 연락을 시도했지만 전화번호가 사라지고 없었다. 회사 대표번호도 없었다.


2004년 하반기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자 이남종은 건물 전체를 자신의 친동생인 이모씨에게 임대했다. 이씨는 압류에 의해 경매가 진행되던 2005년까지 해당 건물에서 여성전용클럽인 M사를 운영했다.

그런데 M사는 문제의 건물을 연예기획사 사무실 또는 작곡실로 재임대해 보증금을 챙기려 했다. 당시 건물 임대 공고를 보면 "사무실 관리비나 월세를 일체 받지 않겠다"고 쓰여 있다. 단 "저희 쪽의 요구사항과 당사자 분의 요구사항을 협의하고자 한다"고 적혀 있다. 여기서 언급된 요구사항은 입주 시 관련 부동산의 경매 사실을 모른 척 눈감아달라는 것으로 추정된다. 공고를 낸 M사의 직원과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남종은 서울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 최상위권에 올라있다. 체납액을 기준으로 조동만 전 한솔그룹 부회장에 이어 2위다. 국세청 기준으로는 22위를 기록 중이다. 23위에 오른 인물은 이동보 전 코오롱고속관광 대표다. 한때 재계를 대표했던 이들과 '세금 안내기'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셈이다.

서울시 38세금징수과는 "이남종에 대한 최근 조사가 없었다"고 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이남종의 집 주소지는 '서울 성북구 성북로 37'로 기재돼 있다. 해당 주소지는 일반 자택이 아닌 성북동주민센터로 확인된다. 어찌된 일일까.

서울시 62억5000·국세청 325억9000만원
패션업 큰손 소문 부도 직후 행방불명

이남종은 현재 주민등록이 말소돼 있다. 2010년 5월 발간된 서울시보를 보면 이남종의 주민등록이 말소돼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민등록 말소자의 주소지는 행정 편의상 관할 주민센터로 이전된다. 즉 이남종의 행방을 알 수 있는 길이 차단된 셈이다.

가족들도 그의 주거지를 모른다며 징세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 2004년 10월 룩엣유스는 500억원대 어음을 막지 못해 부도를 맞았다. 이후 이남종은 행방불명됐다.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해외 도피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과세당국 관계자는 "그렇게까지 했겠냐"며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이남종은 이른바 잘나가는 사업가였다.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현 가산동)에서 시작해 2002년 무렵 패션업계의 큰 손으로 자리매김했다. 마리끌레르, 키요토, MCM(구두에 한정), 미치코런던 등 중가브랜드를 국내에 수입 판매했다. 제화공장이 있던 서울 성동구를 거쳐 사옥을 성북구로 옮긴 뒤로는 2004년 여름까지 성공가도를 달렸다. 수출로만 2000만달러를 달성해 정부로부터 상을 받기도 했다.

특히 2013년 10월에는 김포공항청사 상가 입찰에 참가해 국내선 3·4층을 각각 5년 간 임대하기로 한국공항공사(이하 공항공사)와 단독 계약했다. 계약에 따르면 3층에는 패션관이 4층에는 명품관이 들어서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이남종은 상가 운영을 하며 약속한 월 2억여원의 임대료를 수개월 동안 공항공사에 지급하지 않았다. 이남종이 있을 당시 공항공사는 별다른 제제를 가하지 않았다. 봐준 것이다. 부도를 앞두고는 패션관에 입점한 상인들의 판매대금 약 7억원을 떼먹었다. 이남종의 공항청사 임대료 체납은 국회 국정감사 자료에도 인용됐다.

이후 국내선 명품관에는 구찌, 페레가모, 조르지오아르마니 등 명품브랜드가 입점했다. 남은 상인들이 땅을 쳤지만 이남종은 종적을 감춘 뒤였다. 이남종의 부동산에는 국가기관의 압류 처분과 은행권의 가압류, 개인 채권자의 근저당 설정이 이어졌다. 임대료를 받지 못한 공사를 비롯해 국민은행·외환은행 등 은행권과 애경백화점을 비롯한 민간기업, 국세청을 위시한 공공기관이 남은 그의 재산을 노렸다.

과세당국의 여러 노력에도 이남종의 은닉재산은 추가로 발견되지 않았다. 2003년 있었던 패션전문지와의 인터뷰를 보면 이남종은 국내에서 사업을 벌일 당시 홍콩 등 동남아 지역에 해외매장을 갖고 있었다. 더불어 이탈리아의 유명 디자이너를 2014년 6월께 영입했다는 기사가 확인된다. 하지만 실제 계약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디자이너 Massimo Zucchi씨는 삼성전자 등 국내 유명기업과 협업한 바 있다.

무리한 사업확장

패션업계에 따르면 이남종은 부도 직전까지 코스닥 상장을 추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직원들의 월급은 밀려 있었다. 매출 규모는 1000억원에 달했지만 자본에 비해 부채가 너무 많았다고 한다. 특히 MCM의 국내 판권을 갖고 있는 성주그룹과 마찰을 빚었다. 당시 몇몇 언론은 라이선스 분쟁 끝에 이남종이 30억원을 손해 봤다고 보도했다. 이 무렵 세무당국은 이남종의 무리한 사업 확장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세무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명품이 즐비한 청담동 쇼핑센터에 이어 대구 태평로에도 패션아울렛을 지으려 했던 이남종. 그의 무리한 사업 추진은 수백억원대의 빚을 남기고 끝났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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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