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천외' 모뉴엘 상납수법 백태

관피아 살살 녹인 ‘황제 접대’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1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다 지난해 돌연 법정관리를 신청한 가전업체 모뉴엘이 8억여원의 뇌물로 3조원대 사기대출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모뉴엘은 7년간 금융권 관계자들을 상대로 답뱃갑이나 비눗갑, 휴지상자 등에 뇌물을 담아 전달하는 기상천외한 신종수법을 동원해 전방위적인 금품·향응 로비를 펼쳤다. 모뉴엘의 몰락 뒤엔 관피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지난해 파산 선고를 받은 ‘로봇 청소기’로 유명한 중견 가전업체 모뉴엘이 8억원의 뇌물을 뿌려서 무려 3조4000억원대의 사기대출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사과상자를 사용하던 과거와 달리 담뱃갑과 휴지 상자 등을 이용해 뇌물액수의 4000배가 넘는 금액을 손에 쥐었던 것이다.

진화된 로비
 
지난달 25일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 제2부(부장 김범기)는 모뉴엘의 사기 대출 행각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회사 박홍석 대표(53·구속기소)가 한국무역보험공사와 한국수출입은행 등 금융권 관계자들에게 “대출과 여신 한도를 늘려 달라”는 청탁과 함께 금품을 건넨 단서를 잡고 박씨를 특경법 사기, 허위유가증권작성·행사,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뇌물공여, 배임증재 등 혐의를 적용해 추가기소했다.
 
박씨의 로비 행각은 치밀했다. 검찰 조사결과 박씨는 담뱃갑이나 비눗갑에 500만∼1000만원어치 기프트카드를 넣어 건네거나 5만원권 현금을 과자·휴지·와인 상자 등에 넣어 1회에 3000만∼5000만원씩 전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뿐만 아니라 로비 대상자를 모뉴엘의 협력업체에 고문으로 위장 취업시켜 임금 명목으로 금품을 제공하고, 서울 강남의 유흥주점에서 하룻밤 접대비로 1200만원을 사용하기도 했다. 모뉴엘이 이런 식으로 뿌린 로비자금만 모두 8억600만원이다. 무역보험공사, 수출입은행 등의 로비 대상자 중에는 자신의 자녀를 모뉴엘에 취업시키거나 유흥주점에서 술을 마신 뒤 모뉴엘 측에 술값을 대납시킨 경우도 있었다. 관피아의 전형을 보여줬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이러한 전방위적 로비 덕분에 모뉴엘의 무역보험 한도액은 2011년 950억여원에서 2013년 300억여원으로 늘었다. 수출입은행의 여신 한도액 역시 2011년 40억원에서 지난해 1131억원으로 30배 가까이 증가했다. 특히 해외수입자로부터의 수출대금 회수를 수출입은행이 책임지는 금융상품인 수출팩토링으로 2013년 419억원, 2014년 840억원을 더 지원받았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1월 박 대표와 모뉴엘 임원들을 관세법 및 외국환거래법 위반, 국외재산 도피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담뱃갑에 기프트카드, 휴지상자엔 현금 가득
하룻밤 술값 1200만원…자녀 유흥비 대납도
 
이로써 모뉴엘의 대표 박씨를 포함해 부사장 신모(50·구속기소)씨, 재무이사 강모(43·구속기소)씨, 조계륭 전 무역보험공사 사장(60), 수출입은행 비서실장 서모(54)씨 등 한국무역보험공사 전·현직 임직원과 한국수출입은행과 서울 역삼세무서, KT 자회사인 KT ENS 간부까지 포함해 모두 13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미국으로 달아난 무역보험공사 전 영업총괄부장 정모(48)씨는 기소중지하고 범죄인인도청구 절차를 준비 중이다. 그는 모뉴엘 법정관리 신청 직전 사표를 내고 국외로 도피했다.
 
검찰 관계자는 “국책 금융기관 일부 임직원의 심각한 도덕적 해이로 인해 제도의 근본 취지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관계기관의 제도 개선에 협력하고 유사한 무역금융 비리를 엄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뉴엘의 파산으로 상환이 불가능해진 5500억원은 결국 국책 금융기관을 포함한 은행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이 가운데 한국무역보험공사의 보험·보증액은 3428억원이다. 이 돈은 주로 M&A 자금이나 회사 운영비, 연구개발비, 제주사옥 건축비, 커미션, 직원 월급 등에 사용된 것으로 검찰 조사결과 확인됐다. 한국무역보험공사는 이에 반발하며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모뉴엘 사기대출 사건 관련 시중은행이 청구한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부 은행은 법적 대응은 물론 앞으로 한국무역보험공사 보증서 대출 자체를 거부할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어 애꿎은 중소기업들의 피해가 우려된다.
 

박 대표 등은 2007년 10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저가의 홈시어터 컴퓨터(HTPC) 가격을 부풀려 작성한 허위 수출채권을 꾸미고 허위 수출로 발생한 수출대금 채권을 금융기관에 판매하는 수법 등으로 시중은행 10곳에서 3조4000억원을 불법 대출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의 수법은 이른바 ‘회전 거래’로 빚으로 빚을 막는 ‘카드 돌려막기’와 동일했다. 박 대표는 수출대금 채권의 상환기일이 다가오면 또 다른 허위 수출을 꾸며 대출받은 돈을 해외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를 거쳐 수입업자에게 송금, 대금을 결제하도록 했다.

몰락한 벤처
 
이 과정에서 은행에서 대출 실사를 나오면 실제 제품을 만드는 것처럼 꾸미는 치밀함도 보였다. 2008년부터 6년여간 허위 수출입거래를 매출과 순이익에 포함시켜 2조7000억원 상당을 부풀려 회계분식을 한 사실도 드러났다.
 
모뉴엘은 로봇청소기와 홈시어터 컴퓨터(HTPC) 등으로 급성장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가 2007년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기조연설에서 주목할 회사로 지목해 지명도를 높인 바 있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모뉴엘 사기’ 850억 지킨 은행원 스토리
 
우리은행은 모뉴엘에 850억원을 대출해줬다 회수 결정을 내려 손해를 피해갔다. 대출 회수 결정을 내린 담당자는 기술금융팀 계약직 직원 강윤흠 차장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으고 있다. 강 차장은 지난달 28일 <한수진의 SBS전망대>에 출연, “우리은행은 당시 모뉴엘의 주거래 은행이었고, 모뉴엘은 이자도 꼬박꼬박 내는 등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모뉴엘의 재무재표상 의심이 가는 부분이 있었다. 주위에서 모뉴엘 제품을 샀다거나 좋은 평가를 준 사람들도 거의 없었다. 미국에서 주로 판매를 하고 있다는 게 그 이유였는데, 미국의 쇼핑몰들을 다 돌아봤지만 모뉴엘 제품을 구하기 어려웠다. 거기서 의심스러웠던 부분이 더욱 커졌다”고 모뉴엘 뒷조사 배경을 밝혔다.
 
이어 강 차장은 “모뉴엘의 구조가 홍콩을 통한 제 3국 수출구조였다. 그렇기 때문에 모뉴엘이 가지고 있는 수출 신용증은 대부분 홍콩에서 받은 거였다. 거기엔 최종고객이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기존의 은행 거래상에서는 신용성이 있기 때문에 거래가 됐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최종고객의 실체가 나타나지 않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해외 최종 고객과 크로스 체크가 되어야 하는데 그 부분이 안됐고, 대출금 회수를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회사의 손해를 막은 강 차장은 이후 포상금 300만원과 함께 정규직 전환을 약속받았다. 매년 재계약을 하며 눈치를 보던 마흔 둘 ‘미생’에서 ‘완생’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게 된 것이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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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