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세금 안 내는 거물들 추적 ⑨홍달수 성림교회 장로

돈 없는 체납왕 교회선 전도왕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부는 항상 세수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돈이 없다"면서 만만한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기 일쑤다. 그런데 정작 돈을 내야할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회피하고 있다.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정부가 걷지 못한 세금은 무려 40조원에 달했다. <일요시사>는 서울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을 토대로 체납액 5억원 이상(법인은 10억원 이상)의 체납자를 추적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9화는 71억3800만원을 체납한 홍달수 성림교회 장로다.

홍달수 성림교회 장로는 2011년 1월부터 지방소득세를 내지 않았다. 서울시가 징수할 체납액은 6억5900만원이다. 국세청의 자료에 따르면 홍 장로는 2009년부터 종합소득세 등 모두 4건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 누적된 체납액은 64억7900만원이다.

71억원 체납

서울시는 2014년 공개한 체납자 명단에서 홍 장로의 나이를 77살로 기재했다. 반면 국세청은 자체 전산에서 홍 장로의 나이를 76살로 표기했다. 어디 쪽의 자료가 맞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서울시가 작성한 명단의 정확성이 더 높다.

국세청은 "특정 시점을 기준으로 명단을 전산에 올리면 수치를 수정하거나 체납자를 취합해 (언론에) 공개하지 않는다"고 했다. 반면 서울시는 변동된 체납액, 체납자의 나이·주소 등을 수정해 1년마다 공개하고 있다. '명단 공개의 취지를 봤을 때 자료의 정확성을 높이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국세청에 물었다. 국세청 관계자는 "내부 기준에 따라 처리할 뿐"이라고 답했다. 정확도를 높일 의사는 없어보였다.

실제로 지난 7화에서 다룬 전길동씨(아한실업)의 나이는 국세청 명단과 서울시 명단에서 무려 7살이나 차이를 보였다. 등록 주소지도 서울 서초구와 경기 성남시로 달랐다. 6화의 주인공인 김태형씨(해동갤러리)도 마찬가지였다. 주소지와 나이가 다르게 적혀 있었다. 2화에서 취재했던 설원식씨의 경우는 대한방직 명예회장이란 직책이 빠져 있었다. 국세청은 "체납 사유가 기업 활동이 아니었기 때문에 넣지 않았다"고 했다.


홍 장로의 직업란에는 유일주택이 쓰여 있었다. 업종은 부동산이다. 홍 장로는 과거 한 부동산 사업에 손을 댔다가 체납자 신세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홍 장로의 주소지로 등록된 서울 성동구 일대를 뒤졌다. 홍 장로의 집은 하왕십리동 금호베스트빌 단지에 있었다.

국토교통부가 공개하는 부동산 실거래가를 보면 금호베스트빌은 전용면적 59.79∼84.97㎡ 아파트 1채가 2억9000만∼3억7500만원에 거래되고 있었다. 홍 장로 혹은 부인 소유의 아파트라면 이미 압류가 들어가 있을 터였다.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홍 장로와 두 차례에 걸쳐 통화했다. 그는 지난해 있었던 첫 번째 통화(11월25일)에서 "아파트가 경매에 넘어가 팔리면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홍 장로는 이른바 '거물'로 부르기 어려운 체납자다. 그런데 전체 체납액은 71억3800만원으로 체납액 기준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홍 장로는 "주택 개발 사업에 명의를 빌려줬다가 체납자가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대)스위스저축은행으로부터 받을 돈이 있다"고 강조했다.

현대스위스저축은행(현 SBI저축은행)은 회장인 김광진씨가 4000억원대 배임과 100억원대 횡령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는 등 심각한 위기를 경험했다. 당시 김씨는 차명 차주 및 법인에 1100억원대 대출을 해준 뒤 이를 횡령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또 담보를 받지 않거나 미분양 주택·상가를 담보로 부실대출을 해줘 계열 은행에 4400억원 상당의 손실을 끼친 혐의도 받았다.

서울시 6억6000만원·국세청 64억8000만원
스위스저축은행 부실 과정서 피해 황당 주장

홍 장로는 관련 주택대출에 명의만 빌려줬을 뿐 사업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금전문제가 생기자 사업자들은 자신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해외로 도피했다고 주장했다. 홍 장로는 "주택사업을 주도했던 기업인 가운데 외국인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홍 장로의 주장대로라면 그는 부실대출의 피해자였다.

하지만 홍 장로는 이 같은 사정을 과세당국에 뒤늦게 알렸다고 했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증거도 내놓지 못했다. 예금, 보험, 연금까지 모두 압류됐는데 수입도 없이 살고 있다고 했다. 홍 장로는 '자녀들이 도움을 주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런 것 없다"고 답했다.


두 달이 흐른 1월20일 홍 장로는 기자와의 두 번째 통화에서 "스위스저축은행 재판(현재 1심)이 끝나면 체납액을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그러나 저축은행 측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내부적으로 확인해 보니 남아 있는 어떤 채무도 없었고, 지금으로선 관련이 없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홍 장로는 지난 통화와 달리 "자녀들과 같이 살고 있다"고 말을 바꿨다. 그는 "보증인의 도움으로 지금은 월세를 내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통화 연결 당시 홍 장로는 경기 수원에서 열린 한 기독교행사에 참석하고 있었다. 홍 장로는 지난해 여름 남양주에서 열린 교회수련회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작은 교회들이 연합 형태로 공동개최한 수련회에서 홍 장로는 자신의 신앙을 간증했다.

홍 장로는 서울에 있는 성림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공식직함은 원로장로다. 지난해 성림교회가 제작한 소식지를 보면 감사헌금을 낸 것으로 돼 있다. 세금을 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서울노회가 펴낸 책자(2013년 26호)에서도 홍 장로가 등장한다. 홍 장로는 교회 안팎에서 '전도왕'으로 통했다.

홍 장로는 20대의 많은 시간을 중동에서 보냈다. 현지 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에 눈떴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성림교회와의 의리도 지켰다. 1985년부터 올해로 정확히 30년째 교회를 다니고 있다.

기자는 홍 장로에게 '장로가 되려면 헌금을 많이 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일부 대형교회에선 집사·권사·장로 등 직급별로 안수헌금을 내는 일이 관습화돼있다. 그러나 홍 장로는 "헌금을 내서 장로가 된 것이 아니라 교회가 부탁해서 자리를 맡은 것"이라고 말했다.

석연찮은 이유

교회 소식지에 따르면 홍 장로는 7년 전 중병을 앓은 병력이 있다. 하지만 홍 장로는 "하나님께서 고쳐주셨다는 믿음으로 오늘도 꿋꿋하게 전도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했다. 홍 장로의 말을 믿는다면 그는 의도치 않은 실수로 세무당국의 표적이 됐다. 서울시38세금징수과는 그의 자택을 불시에 수색했다. '억울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홍 장로는 '허허'거리고 웃었다.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세청 '구멍 징세' 실태

국세청이 사망한 사람들에게 국세를 잘못 부과한 탓에 1300억원에 가까운 세금이 체납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지난해 9월 국세청에 대한 기관운영감사를 실시한 결과 모두 12건의 감사결과를 조치했다고 지난 20일 밝혔다.

감사원에 따르면 국세청은 생존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거나 사망 사실을 알면서도 2000년 이후 1940명의 사망자에게 812억여원(3616건)의 세금을 잘못 부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망자에게 부과돼 체납된 세금은 가산금까지 포함하면 1298억여원에 달했다. 특히 사망자 가운데 884명은 1000만원 이상의 상속재산이 있었지만 국세청은 상속자에게 세금을 부과하지 않고 방치해 왔다.

국세청은 또 지난 2013년 8월 세금 불성실 신고자 1487명을 대상으로 '주식 변칙증여 기획점검'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30명이 5억9500여만원의 양도소득세 및 증여세를 탈루한 혐의가 있었음에도 이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채 기획점검을 종결한 것으로 밝혀졌다.


아울러 국세청은 5000만원 이상을 체납하고도 해외에서 5만달러 이상의 부동산을 취득한 혐의가 있는 고액체납자 11명에 대해 출국금지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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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