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천국 미국, 골프 위기론 내막

9홀만 돌기 캠페인까지…“젊은이를 잡아라”

골프광 아빠의 “그래. 너무 실망하지 마라. 조금만 더 노력하면 90대에 진입할 수 있을 거야.” 한국의 주말 골퍼들 사이에 꽤 회자됐던 골프 유머 한 토막이다. 골프는 점수(타수)가 낮을수록, 남들보다 적게 쳐야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스포츠. 그래서 100점 만점 받은 딸을 ‘백돌이’(보통 파72 코스에서 100타 이상 치는 골퍼를 일컫는 말)로 여겨 분발을 촉구한 셈이다. 미국 골프업계는 요즘 이런 유머를 나누며 웃을 기분이 아니다. 골프인구가 계속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노년-미국, 청년-한국, 유아-중국
20·30대 ‘골프 무용론’이 치명타로

줄어드는 골프인구, 휘청대는 골프산업
“젊은 골퍼 못 잡으면 골프 미래 없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 언론들이 최근 “골프는 위기다. 이대로 계속 가면 골프의 미래도 없다”는 경고성 기사를 잇달아 게재했다.
특히 이른바 ‘밀레니엄 세대’로 불리는 10대 후반~30대 초반의 젊은 세대가 골프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현상이 심화하면서 골프업계에는 “젊은 골퍼를 잡아라”는 특명이 떨어졌다.
미국의 대표적 스포츠용품 매장인 ‘딕스(Dick’s)’는 7월 초 매장 내 골프코너에서 근무하던 티칭프로 등 골프 전문직원 400명 이상을 정리해고했다. 골프매장을 축소했고 그렇게 확보한 여유공간에 여성과 아이들 스포츠의류 코너를 확장했다. 딕스가 이런 결정을 내려야 했던 근본원인은 골프인구의 감소이다.

골프 예찬론자들
“오해하지 마라”

조 베디츠 전미골프재단(NGF) 회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 골프인구는 2003년 3000만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계속 감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0여 년간 500만 골퍼를 잃어 현재의 골프인구는 약 2500만명이지만 몇 년 안에 500만 골퍼가 또 떠날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전미스포츠용품협회는 더 비관적 숫자를 내놓았다. 미국 골퍼는 2009년 2230만명이었고, 지난해 1890만명으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NGF가 최근 18세 이상 1200명을 상대로 골프 인식 설문조사를 한 결과 57%가 골프에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다. 그들이 골프를 표현한 가장 대표적 단어가 ‘재미없다(boring)’였다.
미 언론들은 “골프 입문 연령대인 18~30세의 골프 인구가 지난 10여 년간 35% 정도 줄어든 것으로 파악된다. 이것이 골프 전체 인구 감소의 가장 직접적 이유”라고 지적했다.
스포츠피트니스산업협회(SFIA)의 통계에서도 18~34세 인구 중 골프를 하는 사람은 2009년에서 2013년 사이에 13% 감소한 반면, 마라톤 같은 달리기 인구는 29%나 증가했다. SFIA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이 젊은 세대 중 달리기·조깅 인구는 2400만명, 볼링은 1550만명, 골프는 650만명 수준이다. 골프인구는 요가 인구(1100만명)보다도 450만 명이나 적다.
젊은 세대가 골프를 외면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시간과 돈이 많이 든다 ▲일정 수준의 실력을 갖추기 어려워 성취감을 느끼기 힘들다 ▲달리기나 자전거 타기 같은 운동 효과가 없다 ▲함께 골프 칠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 등이다.
병원에서 접수 업무를 하는 브리트니 위크 씨(25)는 고교 때 골프를 즐겼지만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골프 칠 시간을 내기 어려워졌다. 위크 씨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주말에 시간이 나도 동갑내기 남편과 시간을 보낸다. 남편이 골프를 안 치니까 혼자 골프하긴 싫어서 결국 안 하게 되더라”고 말했다.
스포츠 평론가인 맷 파월 씨는 “골프는 느리고, 플레이하는 데 시간이 많이 든다. 또 비싸다.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은 스포츠”라고 말했다. 특히 초보자가 일정 수준의 실력을 갖추려면 많은 시간이 들고 상당한 수모를 겪어야 하는 점도 젊은 세대가 외면하는 주요 이유이다.
최근 골프 관련 조사들을 보면 골프를 자주 치는 골퍼의 평균 연령은 계속 높아지고, 젊은 층에서는 골프를 치는 횟수가 점점 줄고 있다. 65세 이상 골퍼는 일주일에 1회 이상 골프를 즐기는데, 29세 이하는 1년에 평균 7회 라운드 하는 데 그쳤다.
미국골프협회의 마이크 데이비스 국장은 “골프 관련 모든 통계를 종합해볼 때 가장 관심을가져야 할 부분은 결국 젊은 골퍼의 확보”라고 강조했다.
<WSJ>는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9홀 캠페인(Play 9 campaign)’이 전개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18홀을 소화하기에는 시간도, 돈도 부족한 젊은이들을 겨냥해 ‘9홀 경기’를 활성화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 것이다. NGF의 통계에 따르면 카트비를 포함한 9홀 그린피는 23달러(약 2만4000원), 18홀은 52달러(약 5만4000원)였다.
‘넥스트젠골프’ 등 젊은 골퍼의 확보에 주력하는 단체들은 “젊은 세대에 맞게 빠른 속도로 진행할 수 있는 ‘퀵 골프’, 홀 크기를 피자 크기(지름 12인치)만큼 크게 만들기 등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골프 업계는 25세 동갑내기인 로리 매킬로이, 리키 파울러 같은 젊은 골프 스타에 대한 기대도 크다. 특히 이들의 활약이 ‘골프는 시간 많고, 나이 많은 늙은이의 스포츠’란 인식을 개선하고 젊은 세대를 골프로 끌어들이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WSJ>가 ‘골프의 위기’를 보도하자 독자 투고란에 골프 예찬론자들의 반론이 곧바로 올라왔다. 애틀랜타에 사는 로슨 글렌 씨는 “골프는 원래 배우는 데도, 실제 경기를 하는 데도 시간이 많이 든다. 세상의 가치 있는 일들이 대부분 그렇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골프로 맺은 관계들은 더욱 의미 있고 더 오래간다”고 강조했다. 플로리다에 사는 필립 존슨 씨는 “골프는 게임이지, 스포츠가 아니다”는 논리를 폈다. 농구나 테니스처럼 스태미나 혹은 힘이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 당구나 체스처럼 정확성과 능숙함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존슨 씨는 “골프는 3시간 넘는 동안 골프 클럽을 80회 안팎 휘두르는 게 운동의 전부”라며 “18홀 다 돌고 맥주 한잔하는 ‘19홀의 유혹’까지 있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중년 남자의 나온 배를 ‘골프 배’라고 부르기도 한다.
10대 고교생인 맬러리 브렛슨 양도 골프 옹호론자다. 학교 골프팀의 일원인 그녀는 “골프는 평생 즐길 수 있는 스포츠”라며 “나는 70대 중반의 할아버지와도 동반 라운드를 한다. 우리 집안 모두가 골프를 한다”고 말했다.


거대한 블루오션
중국 골프산업

2030 세대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이유로 골프를 외면하자 미국골프협회(USGA)는 ‘매주 수요일에 9홀 경기를 펼치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일본 역시 경기 침체, 고령화 등의 이유로 몇 년째 골프산업이 침체기를 겪고 있다.
다양한 레저 활동에 몰두하는 젊은 층이 골프장을 향한 발길을 끊은 것도 주된 이유로 꼽힌다. 일본골프장경영자협회는 올해 3월 말까지 ‘골프 20’이라는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20세가 되는 청년들에게 골프를 접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주는 것이 목표다.
이 캠페인에 따르면 1994년 4월2일부터 1995년 4월1일에 태어난 사람은 신청을 통해 골프장 9홀 무료 라운드, 골프 연습장 1시간(공 100개) 무료 이용, 렌털 클럽 무료 이용 등의 혜택을 볼 수 있다. 일본골프장경영자협회는 ‘20세 청소년은 미래 일본 골프계를 담당할 주역’이라는 슬로건까지 내세웠다.
국내 골프 상황은 미국, 일본과는 사뭇 차이가 있다. 통계청의 조사 결과 2004년과 2013년의 연령대별 골프장 이용 횟수를 비교하면 20대와 30대는 늘어난 것으로 드러난 반면 40대부터 60대 이상까지는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대의 연간 골프장 이용 횟수는 10년 전 3.7회에서 5.1회로 증가했다. 50대와 60대의 이용 횟수는 평균 3회 가까이 줄었다.
소득 수준이 높은 중년 이상의 골프 인구가 여전히 청년층보다 많기는 해도 그 격차가 줄어 들고 있다. 선진국 골퍼의 연간 골프장 이용 횟수는 미국이 17~18회, 일본이 13회 정도로 알려졌다.
서천범 한국레저산업연구소 소장은 “지난 상반기 골프장 내장객은 줄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평일과 주말 비수기 시간대 입장료 대폭 할인 정책으로 진입장벽이 낮아졌고 젊은 계층의 골퍼들이 꾸준히 골프장을 찾은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토털골프문화기업 골프존이 지난해 초 IPSOS코리아와 전국 15개 시도의 20~59세 성인 남녀 5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결과에서도 30대 젊은 직장인을 중심으로 골프 저변이 확대된 것으로 나왔다.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스크린골프가 유행하면서 실제 골프장 라운드로 연결되는 사례가 늘어난 영향으로 보인다.
이 같은 패턴은 한국에서만 발견되는 독특한 현상이라는 게 골프산업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 조사에서 지난해 연령대별 신규 골퍼는 20대(26.7%)와 30대(35%)가 두드러졌으며 50대(5.4%), 60대(2.1%)는 미미했다.
20, 30대가 필드의 ‘큰손’으로 떠오르면서 국내 골프장과 용품업체들도 이들을 타깃으로 삼아 집중적인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있다. 드레스코드를 완화해 반바지 라운드를 허용하거나 악천후에서는 플레이한 홀까지만 그린피를 지불하는 ‘홀별 정산제’, 요일과 시간대에 따른 탄력요금제 등을 도입해 젊은 층의 호평을 받았다.
인터넷이나 공동구매를 통해 부킹 문제를 해결하고 저렴하게 라운드를 즐길 수 있는 기회도 늘었다.
젊은 층의 골프인구 증가는 올 시즌 황금기를 맞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갤러리 수는 2013년 같은 기간보다 30%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 베어즈베스트골프클럽에서 열린 기아한국여자오픈은 4만명 가까운 관중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흥행 열기는 KLPGA투어에 탄탄한 실력과 외모까지 갖춘 어린 스타들이 쏟아지면서 젊은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한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는 어르신들을 위한 무대라는 평가 속에 인기가 떨어졌다. 새 얼굴이 드물었고 한국을 비롯한 호주, 스웨덴 출신의 이방인들이 지배했던 탓이다. LPGA투어가 인기를 회복한 데는 폴라 크리머, 미셸 위, 렉시 톰슨 등 20세 전후의 미국 출신 선수들이 활약하면서 팬들의 연령대가 낮아진 이유도 있다.
국내 골프용품 시장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골프웨어는 전통적인 중후한 느낌에서 벗어나고 있다. 패션성과 기능성이 강화된 스타일이 30, 40대를 중심으로 인기몰이에 나서고 있다.
‘타이틀리스트 어패럴’은 프로들의 피드백을 반영해 제품 소재, 디자인, 패턴에서 만족도를 높인 덕분에 ‘나도 선수처럼 입고 싶다’는 젊은 주말 골퍼들의 환영을 받았다. 타이틀리스트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점의 월 매출액은 의류 2억5000만원을 포함해 3억원을 넘기기도 했다. 눈에 띄는 옐로, 블루, 네이비, 레드 등 원색의 골프 웨어와 골프화도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

실력·외모 겸비한
어린 스타들 필수

중국은 골프산업의 거대한 블루오션으로 꼽히고 있다. ‘녹색 아편’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중국에서 골프는 서방 자본가의 퇴폐적인 스포츠로 낙인 찍혀 외면받았다.
30년 남짓한 짧은 역사 속에서 중국 골프장은 800개를 넘어섰으며 18홀 기준으로는 1200군데를 돌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골프협회는 현재 300만명 수준인 중국 골프 인구가 2020년 20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했다.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골프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것을 계기로 중국의 우수선수 발굴, 골프산업 발전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과시욕이 강한 중국 특유의 문화와 귀족 스포츠라는 골프의 이미지가 잘 맞아떨어져 단기간에 부를 축적한 중국 젊은 계층에 골프가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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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재명정부가 내란을 방조하거나 간접적으로 가담한 이들을 가리기 위해 TF를 구성했다. 내년 1월까지 공무원 75만명을 대상으로 참여·협조 여부를 조사한다. 일부 기관은 자체적으로 판단해 TF를 구성하는 걸 두고 고민하고 있다. TF는 강제성이 없으며, 이미 조사를 끝내 인사에 반영한 기관도 존재한다. 헌법 존중 정부 혁신 TF(태스크포스)는 중앙행정기관 49곳에 구성됐다. 구체적으로 각 부처 25곳이 포함됐다. TF는 총 48개다. 활동 목표가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각 기관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상 내란 특검팀(조은석 특별검사)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것이다. 방조·간접 가담자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달 24일 TF 실무 책임자들과 첫 간담회를 갖고 “TF의 조사 활동은 대상, 범위, 기간, 언론 노출, 방법 모두 절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절제하지 못하는 TF 활동과 구성원은 즉각 바로잡겠다”면서 “TF 활동의 유일한 목표는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 TF는 공무원 75만명의 ‘내란 참여·협조’ 여부를 개인 휴대전화까지 제출받아 조사한다는 방침 등이 인권침해란 논란이 일었다. 총리실에 설치된 ‘총괄 TF’는 이날까지 부처 25곳을 포함한 기관 49곳에서 TF 48개가 출범했다.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로 구성된 총리실에 단일 TF가 설치되면서 TF 숫자는 하나 줄었다. TF는 대부분 10~15명으로 구성됐지만, 전체 인원이 많은 국방부(53명), 경찰청(30명), 소방청(19명) 등은 대규모 조사단을 꾸렸다. TF 48개의 총인원은 정부 내부 인사 536명을 포함해 661명에 달한다. TF 48개 중 32개에 외부 인사 125명이 참여했고 그중 76명(60.8%)은 법조인, 31명(24.8%)은 학자, 18명(14.4%)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TF는 ‘내란의 사전 모의나 실행, 사후 정당화, 은폐’를 한 공무원은 ‘내란 참여’로, ‘내란의 일련의 과정에 물적·인적 지원을 도모하거나 실행’한 공무원은 ‘내란 협조’를 한 것으로 보기로 했다. 적발된 공무원에게는 내년 2월13일까지 ‘징계’나 ‘승진 배제’ 같은 인사 조치할 방침이다. 또 ‘내란 행위 제보 센터’를 설치해 동료 공무원들에게 제보·투서를 받고, 의심 공무원은 개인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의혹이 상당하다고 판단되면 대상자의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들여다볼 예정이다. 의혹이 상당한 데도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수사 의뢰까지 가능한 선을 정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TF 조사 권한을 두고 이견이 나온다. 형사가 아닌 행정 절차이지만 일반적인 조사가 아닌 만큼 행정법이 지켜져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무원 75만명 전방위 조사 문제없나 형소법 원칙 유명무실…권력남용 소지 한 서초동 변호사는 “영장 없는 조사를 두고 많은 문제 제기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르면 인사상 불이익으로 압박하거나 진술을 강요하면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될 수 있다. 최소한의 범위를 규정하고 조사해야 하는데 TF가 정한 선이 어느 지점까지인지가 핵심일 것 같다”고 조언했다. 국회도 과거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2년 발간한 ‘권력적 행정조사의 쟁점 및 개선 과제’ 보고서에서 행정조사 과정에서 영장주의·진술거부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행정조사에서 수집된 자료가 수사기관으로 넘어가 형사 처벌 근거로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형사소송법상 원칙이 유명무실해지고, 국가권력이 남용될 소지도 있다. 업무용 PC나 이메일에서는 변호사와 상담한 내용까지 확보되는 사례도 있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행정조사 위법성과 관련해서는 판례도 존재한다. 지난 2012년 서울고법은 기관이 업무용 휴대전화 통화 기록과 문자메시지를 동의 없이 확보해 공무원을 해임한 사건에서 이를 위법한 증거수집으로 보지 않았다. 법원은 기관이 통신비를 부담했고, 감사 목적이 공익적이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상고를 기각했다. 조직 내부 감사는 세무조사·공정거래위원회 조사·근로감독 등과 달리 별도의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아 조사의 한계 역시 모호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 차원의 대규모 내부 감사가 법적 문제를 일으킨 선례 역시 많지 않다. 민간인의 TF 참여도 새로운 논란이다. 정부는 감사부서 공무원 외에 민간인을 포함하거나 아예 외부 전문가로만 구성된 TF를 둘 수 있다는 지침을 내렸다.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민간인이 공무원에 대해 조사권을 행사하는 셈인데, 정부는 TF 설치를 위한 별도 입법을 마련하지 않았다. 논란 불구 조사 시작 공직사회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조사 기준이 모호해 억울한 문책 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반면 계엄을 방관했거나 동조한 세력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핵심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관은 기획재정부·국방부·행정안전부·경찰·검찰·법무부 등이다. 기재부의 경우 최상목 전 기재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겸했다. 최 전 장관이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비상입법기구 예비비 편성 등 계엄 지시 문건 등을 받고 1급 고위직들을 소집해 회의를 연 바 있어,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이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김동일 전 예산실장과 신중범 전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등이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아시아거시경제감시기구(AMRO)로 파견되기 직전 명예 퇴직금을 수령한 것을 두고 ‘해외도피’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외교부는 이번 국감에서 비상계엄 직후 대통령실이 외교부 장관 명의로 ‘합법적 계엄’이란 내용의 공문을 주미한국대사관에 보내고, 이를 ‘3급 기밀’로 지정한 점을 지적받은 바 있다. TF가 가동되면서 외교부 인사는 사실상 ‘중단’ 상태다. 외교부는 애초 올해 말까지 1급 인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TF 활동이 시작되면서 어렵게 됐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동안 외교부 실·국장 및 재외 공관장 인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부 인사는 특임 대사 임명과도 맞물려 있지만 인사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특히 현 정부는 특임 대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외교부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임 대사는 직업 외교관이 아닌 전문가·정치인·학자 등을 대통령이 재외공관장으로 임명하는 제도다. 주요 공관장 인사가 늦어지면서 사안이 터졌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불법구금 사태 당시에도 조지아주를 관할하는 주애틀란타총영사직은 공석이었고, 캄보디아 사태 때도 주캄보디아 대사직이 비어있었다. 필요는 한데… 이중 감사 검찰 TF는 최근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다음 달 12일까지 제보용 익명 게시판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통해 관련 제보를 받겠다고 공지했다. 단장은 구자현 검찰총장 대행이 김성동 대검 감찰부장과 주혜진 대검 감찰1과장이 각각 부단장과 팀장을 맡아 10여명이 참여했다. 법무부에 설치된 TF 역시 같은 날 공지를 게시했다. 법무부에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TF 단장을 맡고 내외부 인사 10여명이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법무부는 내부 익명 게시판을 통해 제보를 접수하는 한편, 검찰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개설해 운영할 예정이다. 경찰은 경무관 승진, 총경 인사를 앞두고 숨죽이는 분위기다. 앞서 계엄 수사로 조지호 경찰청장 등 수뇌부가 재판에 넘겨졌지만, 계엄 당시 국회 출입 통제나 체포조 투입에 관여됐던 간부 상당수는 기소를 피했다. 국방부는 이중 감사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12개 기관을 대상으로 내부 감사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취임 직후 감사관실 주도로 중령급 이상 간부를 전수 조사해 지난주 보고서를 대통령실에 제출했고, 이는 이번 3성 장군 인사에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총리실의 지시에 따라 기존 감사자료를 제출하는 수준에서 협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관실은 조사본부를 합류시켜 TF를 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국방부의 자체 감사는 합참 현역 장교뿐 아니라 본부 군무원과 민간 공무원까지 포함한 대대적 감사였다. 지난 9월 진영승 합참의장 취임 이후, 권대원 합참차장을 제외한 합참 장군 전원과 2년 이상 근무한 중령·대령에 대한 대규모 인적 쇄신이 실제로 단행됐다. 합참의 지시에 따라 장교들의 진급이 보류되거나 보직이 변경됐다. 국정원은 이미 이종석 국정원장 취임 이후 직원들의 비상계엄 관련 여부 등 내부 조사를 마쳤다. 특히 의무적으로 TF를 구성해야 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정원은 지난 8월 첫 1급 인사를 단행하고 최근까지 2∼4급 인사를 마무리했다. 애매한 의혹 제기 투서 남발 우려 일부 기관 자체 판단 별도 TF 설치 이 인사는 이 원장 취임 이후 진행한 내부 조사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정원은 이 원장 취임 두 달 만인 8월 1급 간부 20여명의 인사를 단행하면서 그간 정권이 바뀐 뒤 1급 간부를 모두 교체하던 관행과 달리 윤석열정부에서 임명된 간부들을 일부 유임시켰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TF 설치를 두고 대통령실이 직접 관리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본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임 국정원장이 취임하면 국정원은 윗선 지침이 없어도 원장 지시하에 내부적으로 감찰이나 조사를 철저하게 해 왔다”며 “대통령실에서 직접 관리해 TF 조사가 이뤄져도 추가로 드러날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지난달 4일, 국정원 국정감사 이후 브리핑에서 “국정원이 불법적 비상계엄 상황에서 내란·외환 정보수집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했다”면서 “국정원은 국정원법 4조에 따라 내란죄·외환유치 관련 자료를 특검에 이미 제출했고 계엄 시 국정원 역할 재정비와 실효적 안보조사체계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권침해 진정이 들어온 기구를 인권위가 설치하면 모순”이란 이유로 TF 설치를 거부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TF 구성 반대 의결 과정에서 절차상 흠결이 지적되자 다음 전원위원회에 다시 상정해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인권위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등 독립기관은 TF 설치를 자율적으로 판단하기로 정해졌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제21차 전원위원회에서 “정부에서 부처 내 헌법존중 TF를 자율적으로 만들라는 권고가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위원들에게 물었다. 이에 한석훈 위원이 구두로 안건 발의를 제안했다. 이후 안건 발의자로 참여한 김용원·이한별 위원 포함 발의자 세 명과 강정혜·김용직 위원, 안 위원장 등 6인이 ‘TF 구성 반대’에 손을 들면서 의결됐다. 부역자 남았나 인권위 안팎에선 자율적 설치라고 해도, TF 설립 취지에 비쳐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위원들이 안건을 즉석에서 상정해 반대 의결까지 한 건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반대 의견을 낸 안 위원장과 김용원 위원 등은 지난 2월 ‘윤석열 방어권 안건’ 의결에 찬성해 특검에 내란 선동·선전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