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세금 안 내는 거물들 추적 ⑤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해외로 튀어 8년째 감감무소식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부는 항상 세수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돈이 없다"면서 만만한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기 일쑤다. 그런데 정작 돈을 내야할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회피하고 있다.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정부가 걷지 못한 세금은 무려 40조원에 달했다. <일요시사>는 서울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을 토대로 체납액 5억원 이상(법인은 10억원 이상)의 체납자를 추적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5화는 28억5100만원을 체납한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이다.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이하 정태수)은 1997년 1월부터 주민세 등 78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서울시가 징수할 체납액은 28억5100만원이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정태수는 1992년부터 증여세 등 73건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 누적된 체납액은 무려 2225억2700만원이다.

합쳐서 3000억

정태수는 국세청이 매년 공개하는 고액 체납자 명단 맨 꼭대기에 10년째(2004∼2013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주요 일간지들은 매년 12월만 되면 "정태수가 2000억원을 체납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정태수가 실제로 체납한 세금은 3000억원이 넘는다.

정태수의 차남 정원근(46)씨는 1997년부터 종합소득세 등 모두 40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국세청이 징세할 체납액은 35억6800만원이다. 3남 정보근(44)씨는 1997년부터 증여세 등 모두 13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체납액은 644억6700만원이다. 4남 정한근(42)씨도 1997년부터 증여세 등 15건의 세금을 내지 않았다. 한근씨가 체납한 세금은 293억8800만원이다.

정태수 일가가 떼먹은 세금은 국세청 기준으로만 3199억5000만원에 이르렀다. 여기에 배다른 자식인 장남 정종근(60)씨가 체납한 세금,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가 거둬갈 세금까지 더하면 실제 체납액은 3300억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이를 징세할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정태수는 해외로 도피한 뒤 행방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한보그룹에 정통한 관계자는 "정태수가 해외자원개발로 재기를 노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다. 정태수의 나이는 올해로 91살이다. 정태수를 실제로 만났다는 사람은 키르기스스탄에 있었다. 그와 접촉할 수단이 마땅치 않았다.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정태수의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는 상황이다.

정태수는 2006년 그가 설립한 강릉영동대학교의 교비를 횡령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정태수는 항소심 재판 중 치료를 핑계로 해외로 출국했다. 우리 사법당국은 정태수의 도피를 눈뜨고 지켜봤다. 정태수는 2007년 일본을 경유해 카자흐스탄으로 날아갔다.

정태수의 카자흐스탄행은 예견된 일이었다. 그는 2005년부터 "해외유전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언론에 떠벌렸다.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HB관리'라는 곳이 카자흐스탄 정부로부터 유전개발 제의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HB관리는 경비인력 10명을 관리했던 회사로 자원개발과는 아무 상관없는 용역업체였다. 월급 총액은 800만원가량이 지급됐는데 이런 회사에 강릉영동대는 용역비로 매달 3000만원을 몰아줬다. 남은 2200만원은 정태수의 용돈과 다름없었다.

이 무렵 정태수는 수행 비서를 두고 벤츠를 몰았다. 도피 전까지 서울 가회동 저택(2층 건물)에 살며 월세로만 4억8000만원을 지불했다. 출국금지가 돼 있었지만 미국·사우디아라비아 등 해외도 오갔다고 한다. 그런데도 과세당국은 손 놓고 있었다. 정태수 앞에 법은 무기력했다.

일가 체납액 3300억…소재 파악 안돼
영동대 잇단 불법에도 국고 환수 못해

정태수는 2003∼2005년까지 강릉영동대에서 모두 72억원을 횡령했다. 빼다 쓴 20억원은 회사 운영비로 탕진했다. 10억원은 소송비와 생활비로 남용했다. 강릉영동대 운영법인인 정수학원은 정태수 일가의 사유재산이다. 하지만 나승렬 전 거평그룹 회장 일가가 소유한 만강학원처럼 이를 강제환수할 법적 근거는 없다. 오히려 장남 종근씨는 2012년 현모 당시 이사장을 상대로 "학교 운영권을 내놓으라"며 강릉영동대에 내용증명을 보내기도 했다.

정태수는 해외로 도피하면서 자신의 간호업무를 위해 간호사를 4명이나 고용했다. 강릉영동대는 이들을 교직원으로 허위 채용해 급여를 지급했다. 이를 주도한 셋째 며느리 김정윤씨는 대법원에서 징역 1년을 확정판결 받았다. 당시 김씨는 남편 보근씨의 수행비서에게 2180만원의 급여를 교비로 지급했다. 카자흐스탄으로 간 시아버지(정태수)에게도 2920만원을 불법 송금했다. 또 김씨는 교비 6630만원을 사적으로 유용했고, 보근씨에게도 4400만원을 건넸다.


2013년 3월 보근씨는 대법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최근 보근씨는 부동산 개발 사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밀린 세금을 냈다는 얘기는 지금껏 들리지 않는다. 서울시를 상대로 "땅을 갖게 해달라"며 소송을 벌였다는 소식만 확인된다.

서울 송파구 장지동 일대 3만2000여㎡(약 9700평) 개발 부지를 놓고 정태수 일가는 2012년 환매권을 행사하려 했다. 환매권이 행사되면 시가 1000억원으로 평가받는 땅을 '단돈' 200억원에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법원은 "환매대금을 정해진 납부기한 내에 지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국세청과 서울시는 장지동 땅을 동시에 압류했다.

정태수 일가의 숨겨진 재산은 장지동 땅만이 아니었다. 서울시가 강제등기한 강남 대치동 은마아파트 땅 2000여㎡는 감정가 394억원으로 올 6월 공매에 나왔다가 유찰됐다. 1978년 31평형 매입가가 2000만원이었던 은마아파트는 현재 시세가 8억∼10억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강남 개발로 정태수가 챙긴 이득은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정확히 가늠되지 않고 있다.

인천, 경기도 용인, 안산, 충남 당진 등 그동안 언론이 확인한 땅만 10만평이 넘었다. 정태수가 부동산 개발을 염두에 두고 매입했던 땅들이다. 2005년 법원경매 기록에 등장한 용인 땅 가운데는 용도가 학교부지였던 곳도 있었다. 학교 운영을 핑계로 땅장사를 하려했던 정태수 일가의 민낯이 드러난 셈이다.

그들은 해외로도 돈을 숨겼다. 러시아 천연가스전 개발사업권을 매각한 뒤 남은 돈을 차명으로 스위스 은행에 예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아버지를 도와 자원개발에 참여했던 4남 한근씨는 전체 매각 대금(5790만 달러) 가운데 3270만달러(한화 323억여원)를 페이퍼컴퍼니를 경유해 빼돌렸다. 한근씨는 미국 등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확한 소재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막대한 부동산

정태수는 지난 2008년께 한국에서 범죄인 인도요청이 이뤄지자 옆 나라인 키르기스스탄으로 도주했다. 현지 고려인의 도움을 받아 '정수'라는 유한회사를 설립한 것이 서류상 확인되는 마지막 행보다. 도피 중에도 정태수는 한국으로 팩스를 보내 강릉영동대 소유권을 주장하는 등 변함없는 '노욕'을 부렸다. 차남 종근씨가 키르기스스탄 광산 사업을 돕고 있다는 소문이 있지만 이 또한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정태수 일가의 해외도피를 방관한 당국의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angeli@ilyosisa.co.kr>

 

[한보그룹은?]

▲1974년 한보상사 설립
▲1979년 은마아파트 분양, 한보종합건설(초석건설) 인수
▲1984년 금호철강(한보철강) 인수
▲1991년 수서비리 사태
▲1995년 당진 제철소 건립 추진
▲1997년 그룹부도 및 한보사태 발발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시가 돛을 올린 한강버스가 고장 끝에 결국 멈췄다. 과거 ‘아라호 사업’도 재조명되고 있다. 아라호 사업은 2010년대 초반 경인 아라뱃길을 중심으로 관광 활성화와 교통난 해소를 위해 인천시와 공동으로 수백억원을 들여 기획한 수상 교통 프로젝트였다. 아라호는 시민들의 외면과 운영 적자로 인해 자취를 감췄다. ‘반면교사’로 삼았던 걸까? 서울시는 한강을 따라 운행되는 수상 교통수단으로, 서울 전역을 연결하는 새로운 교통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으로 지난 18일 한강버스 운항을 시작했다. 여의도, 잠실, 뚝섬 등 주요 한강변 거점과 지하철역을 연계해 시민과 관광객 모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게 핵심이다. 관광이냐 출퇴근이냐 서울시는 한강버스를 통해 관광 교통수단을 넘어 서울을 ‘한강 중심의 스마트 모빌리티 도시’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열흘 만에 운항이 중단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9일 오전 시청에서 열린 주택 공급 대책 관련 브리핑 도중 “한강버스 관련 입장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며 “시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열흘 정도 운행 통해 기계적·전기적 결함이 몇 번 발생하다 보니 시민들 사이에서 약간 불안감 생긴 것도 사실”이라며 “이번 기회에 (운항을) 중단하고 충분히 안정화시킬 수 있다면 그게 바람직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시는 이날부터 10월 말까지 한강버스 시민 탑승을 중단하고 성능 고도화와 안정화를 위한 무승객 시범 운항을 한다. 시는 국내 최초로 한강에 친환경 선박 한강버스를 도입해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22일에는 잠실행 한강버스가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고, 같은 날 마곡행도 운항 준비 중 전기 계통에 문제가 생겨 결항했다. 26일에도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운항 중단과 재개가 반복되자 운항 중단을 결정했다. 과거 아라호의 값비싼 교훈을 남겼지만, 실패 요인을 분석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결과다. 한강버스 역시 또 하나의 혈세 낭비 사례가 될 수 있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아라호 사례를 철저히 분석해 이번에는 실질적인 시민 편익을 제공하고 지속 가능한 운영 모델을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강버스가 서울의 새로운 교통 패러다임으로 자릴 잡을지, 아라호의 전철을 밟을지는 향후 몇 년간의 운영 성과에 달려 있다. 서울시 아라호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첫 임기 때인 2010년 서울시가 예산 112억원을 들여 만든 2층 유람선으로 지난 2009년 5월부터 1년5개월을 들여 건조됐다. 오 시장의 지시로 건조된 아라호는 시민들에게 저렴한 요금으로 공연과 한강특화공원 관람이 동시에 가능한 선상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한다는 영리 목적보다 공공문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민자 유치 대신 재정이 투입된 사업이었다. 당초 아라호를 한강에서 인천 앞바다까지 운항하는 관광 크루즈선으로 활용하려 했으나 여덟 차례 시범 운항과 21회 시험 운항만 했을 뿐 사실상 사업은 중단됐다. 제작 당시부터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논란을 빚었던 아라호는 정식 취항도 해보지 못한 채 팔렸다. 실제 운행이 어려운 상황에서 보험료와 유지비 등 관리 비용에만 연간 1억원이 들어간다는 점도 매각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112억원 들여 29억원에 판 아라호 출항 나흘 만에 고장…오, 좌불안석 아라호가 정식 운항에 나서지 못했던 배경에는 서해뱃길 사업을 둘러싼 서울시와 시의회의 갈등도 있었다. 오 시장의 아라호 활용 계획에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인 시의회가 이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10월 고 박원순 전 시장이 취임 후 사업 타당성 문제로 매각을 결정하면서 오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이 백지화됐다. 결국 서울시는 아라호 매각을 결정한 후 지난 2013년 5월, 106억원의 예정 가격으로 매각 입찰에 나섰으나 응찰자가 없어 유찰됐다. 이후 2차 입찰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알만한 이들은 알겠지만, 선박 사업은 수요를 찾기 어려운 사업 중 하나다. 결국 서울시는 3차 매각 입찰에서 최초 예정 가격에서 10% 인하된 95억원으로 깎았지만 이마저도 입찰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같은 해 11월, 4차 매각에서 15% 인하된 90억원에 입찰을 시도했지만 응찰자가 없어 가격 인하의 효과는 전혀 없었다. 그러다 서울시는 지난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지 못하자 결국 임대 쪽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아라호가 정식 운항도 못한 채 6년 넘게 여의도 한강공원 선착장에 방치되면서다. 서울시가 제시한 사업 기간은 연말까지 8개월이고 한 차례 1년간 계약을 연장할 수 있었다. 당시 최저 임대료는 2억6300만원이었다. 아라호는 임대 사업을 시작해 건조 6년 만에 빛을 봤지만, 운항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강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던 아라호는 지난 2016년 민간업체인 레츠고코리아가 임대사업권을 낙찰받아 3년간 운영하다가 2018년 이랜드그룹 계열사 이랜드크루즈로 사업권을 넘겨줬다. 이랜드크루즈가 사업권을 따낸 시점은 지난 2018년 3월이지만 실제 운영은 2019년 6월부터 시작됐다. 이전 사업자인 레츠고코리아가 서울시의 계약 위반을 주장하며 유람선과 시설물 반환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랜드크루즈는 1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지난 2019년 6월부터 운영을 시작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아라호의 임대 운영 사업을 1년 만에 접어야 했다. 애물단지 전락하나 이랜드크루즈는 임대계약 갱신청구권(1년)마저 포기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무렵부터는 주식회사 수가 임대사업권을 이어받았다. 이후 마지막으로 인더라인25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사업하는 조건으로 서울시와 지난 2022년 12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1년 단기 임대계약이 종료된 이후에도 인더라인25가 철거하지 않아 서울시는 골머리를 앓았다. 아라호 운항은 멈췄지만, 선착장을 한 달째 무단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더라인25는 계약 연장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서울시는 인더라인25를 상대로 명도소송, 점유 이전 금지 가처분, 행정 가처분 등 소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아라호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수요 예측 실패와 운영비 부담이었다. 당시 서울시는 아라호가 연간 수십만명의 승객을 유치할 수 있다고 예상했으나, 실제 이용객은 예측치의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 노선 설계가 시민들의 일상적인 통근이나 이동과 잘 맞지 않았고, 요금 역시 육상 교통수단에 비해 비쌌다. 결과적으로 관광객 유치에도 한계가 있었고,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아라호는 철수될 수밖에 없었다. 아라호는 건조한 지 15년 만에 민간에 팔렸다. 지난 1월 서울시 한강 유람선 아라호는 5차례 입찰 끝에 약 28억5780만원에 팔려 민간업체에 인도됐다. 2013년부터 총 9번의 입찰을 시도한 결과 3분의 1 가격에 달하는 헐값에 팔린 셈이다. 당시 서울시에 따르면 아라호는 2024년 11월 말 공개입찰을 진행한 뒤 지난달 주식회사 마이랜드와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길이 58m에 688톤 규모의 아라호는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과 서강대교 남단을 오갔다. 승객은 총 310명까지 태울 수 있다. 음악회, 공연, 결혼식, 영화 상영을 위한 시설도 보유했다. 선착장에는 편의점, 치킨집 등 부대시설도 있었다. 아라호는 건조 후 15년 만에 매각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후임 고 박원순 시장이 2012년 사업을 백지화하면서 5년간 방치됐다. 2013년 5월 처음으로 공개입찰에 넘겨졌다. 시는 같은 해에만 총 4번의 입찰을 추진했으나, 입찰자가 없어 매번 무산됐다. 실패했지만 이번엔 달라? 서울시는 수의계약 방식으로도 매각을 시도했으나, 매각사의 자금 동원 문제로 불발됐다. 이에 시는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는 대신 민간 위탁하는 방향을 택했고, 2017년부터 민간 위탁을 통해 운영했다. 하지만 임대계약이 만료되면서 지난해 5월 말부터 운항이 중단됐다. 그러자 시는 다시 매각을 시도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총 5차례의 입찰을 진행했고, 같은 해 11월 말 입찰자가 나와 12월 매각 계약을 맺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그간 아라호의 위탁 운영은 선박 운항이 아닌 선착장 내 치킨집 등 부대시설 위주로 돌아갔다”며 “자연스레 선박도 노후화되고, 전반적으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다시 매각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법적 분쟁으로 얼룩진 아라호를 통해 한강에 배 띄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지만, 이번엔 다르다고 한다. 서울시는 이번 한강버스 사업에서 아라호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3가지 전략적 과제를 내세우고 있다. 먼저, 실제 수요 기반의 노선 설계를 강조했다. 또 관광 중심이 아닌, 출퇴근·생활 교통을 고려한 정류장 배치, 그리고 지하철·버스 환승과의 연계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요금 체계를 내세우기도 했다. 기존 대중교통과의 환승 할인을 적용하고, 관광·레저용 프리미엄 서비스와 생활 교통 요금제의 이원화를 강조했다. 또 탄소 배출을 최소화한 전기·수소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했고, 실시간 교통 정보 제공 및 안전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한다. 서울시가 한강버스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들인 초기 사업비는 약 542억원으로 향후 발생할 총 사업비는 약 1500억~1750억원으로 예상된다. 아라호 사업비보다 10배가량 많은 혈세가 투입될 예정이다. 한강버스는 출·퇴근용 선박인 만큼 이용객을 충족하기 위해 여러 척의 선박이 필요하다. 지난해 3월 한강버스 운영사는 6척의 선박을 납품받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현재는 첫 출항 이후 3척이 운항 중이며, 향후 6척의 선박이 모두 납품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선착장 시설, 운영 시스템, 접근성 개선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소가 포함돼 총사업비가 1000억원대 중반까지 증가한다. 묻지 마 10배로 베팅 6시에 나와야 9시 출근 아라호는 ‘유람선 제작’이 중심이고, 공연시설 등이 포함된 문화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의 선박이었다. 시설 설계가 크고 복잡한 부분이 있지만, 수량이 하나라 규모 면에서 제한적이기에 한강버스와 다르다는 결론이다. 반면, 한강버스는 여러 척의 선박을 건조해야 하고, 선착장 설치 또는 보수도 그만큼 갖춰져야 한다. 또 전기 또는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한 만큼, 유지비용도 클 뿐만 아니라 홍보, 안전, 시험 운항 등 여타 부대 비용에 민간투자금 및 보조금 등이 혼합돼있어 사업비 증액은 여러 원인으로 발생한다. 한강버스 사업비가 초기 대비 크게 증가한 이유로 업체 선정 과정에서 계약 조건, 예상보다 오래 걸린 공정률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를테면 선박 제작 능력이 있는 업체와 없는 업체 간의 차이를 분석했는데, 일부 업체는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준비가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아 계약이 무산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강버스는 대중교통 기능이 강조되면서 ‘출퇴근 수단’ ‘교통망 보완’ 등의 역할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초기 투자비가 크더라도 지속 운영을 통한 수요 확보가 전제된다. 하지만 계획 대비 수요가 예상만큼 확보될지, 운영비와 적자 보전 부담이 얼마나 될지는 논란 중이다. 한편, 한강버스는 정식 운항 나흘 만에 선박의 방향타 고장 등으로 잇따라 멈춰 승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지난 23일 기준 누적 탑승객이 1만명을 돌파하는 등 시민들의 큰 관심을 받은 한강버스가 정시성 확보가 중요한 대중교통수단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매체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후 7시쯤 옥수선착장을 출발한 잠실행 한강버스가 강 한가운데서 20여분간 멈춰섰다. 결국 승객들은 종착지까지 가지도 못하고 도중에 내려야 했다. 한강버스 운영사는 고장 선박을 뚝섬 선착장에 접안한 뒤 승객들을 모두 하선시켰고, 뚝섬에서 잠실까지 구간의 운항을 취소했다.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나흘 만에 발생한 일이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안내 방송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탑승객은 “20분이 넘게 서 있었고, 안내 방송이 안 나오고 승무원도 안 계시고…. (뚝섬 선착장) 도착하기 2~3분 전에 승무원이 ‘이 배 잠실까지 안 간다’고 뚝섬에 다 내리셔야 된다고…”라고 말했다. 이 사고와 별개로 같은 날 오후 7시30분에 잠실 선착장을 출발할 예정이었던 마곡행 한강버스는 선박 고장으로 아예 결항됐다. 그 바람에 강서 방향으로 이동하려던 시민들은 황급히 다른 교통수단을 찾는 등 불편을 겪어야 했다. 승부수? 무리수? 서울시는 두 선박 모두 전날 밤 안정화 조치를 거쳐 다음 날인 23일 운항에는 차질이 없다고 밝혔다. 또 선내 안내 방송이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선 한강버스 운영사가 이상을 감지한 뒤 원인을 파악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려 안내에 일부 지연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현재 한강버스는 마곡-망원-여의도-압구정-옥수-뚝섬-잠실 28.9km 구간을 상하행 7회씩 총 14회(첫차 11시) 운항하고 있다. 소요 시간은 마곡에서 잠실까지 127분이다. 여의도에서 잠실까지는 80분이다. 추석 연휴 이후인 다음 달 10일부터는 출퇴근 시간 급행 노선(15분 간격)을 포함, 평일 기준 왕복 30회로 증편한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