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후폭풍' 풀리지 않는 의혹 4

'게이트 키' 박지만이 쥐고 있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윤회 문건파동이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지난 1일 개시한 검찰 수사는 불과 2주 만에 청와대 행정관이었던 박관천 경정 쪽으로 칼끝이 모이고 있다. '십상시 회동'과 '박지만 미행설'은 모두 신빙성 없는 허위사실로 매듭지은 모양이다. 그러나 풀리지 않는 의혹은 여전히 남아 있다. '찌라시'로 치부하기에는 께름칙한 '거짓말'이 너무 많아서다. 아직까지 규명되지 않은 이번 파문의 쟁점 4가지를 차례로 짚어봤다.

박근혜정부의 비선 실세로 알려진 정윤회씨와 관련한 의혹은 크게 3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세계일보>가 보도한 '동향보고서'의 내용대로 정씨가 '십상시'의 좌장으로 정부 인사 등 국정에 개입했는지 여부. 둘째,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그룹 회장을 실제로 미행했는지 여부. 셋째, 부인이었던 최순실씨와 박 대통령, 그리고 정씨와의 인연이 지금껏 이어지고 있는지 여부다.

검찰 수사 경과를 지켜보면 이 가운데 국정개입 의혹과 미행 의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입장이 정리되고 있다. '십상시 회동'과 '박지만 미행설'은 모두 문건의 출처가 박관천 경정(전 청와대 행정관)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그런데 검찰 주장을 받아들인다 해도 풀리지 않는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베테랑 수사관'이었던 박 경정은 왜 있지도 않은 사실을 꾸며내 박 회장에게 흘린 것일까.

①박관천은 왜
문건 만들었나

상대적으로 실체가 불분명한 '박지만 동향문건'부터 살펴보자. 검찰은 박 경정이 '박지만 미행설'과 관련한 별도의 문건을 작성한 뒤 박 회장의 측근인 전모씨를 거쳐 박 회장에게 내용을 전달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박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시사저널>에 보도된 "미행 당사자로부터 자필진술서를 받아냈다"는 의혹은 부인했다. 그러면서도 "누군가로부터 미행당하고 있다는 의심이 들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박 회장이 미행을 의심하게 된 근거로 박 경정이 작성한 문건을 꼽았다.

박 경정은 청와대 행정관 재직 당시 고위공무원에 대한 암행 감찰이나 대통령 친인척 및 측근에 대한 관리 업무를 담당했다. 박 회장의 비서 역할을 했던 전씨와도 종종 왕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박 경정이 박 회장 주변 동향을 체크하는 과정에서 미행설과 관련한 첩보를 입수해 이를 전씨를 통해 확인했을 가능성이 있다.

십상시 회동·박지만미행설 작성 의도는?
김기춘 보고 받고 입장 돌변…누구 입김?

그러나 검찰은 "문건의 신빙성에 의문이 든다"며 "박 경정이 의도적으로 박 회장에게 미행설을 흘린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검찰의 판단대로 박 경정이 미확인된 미행설을 유포했다면 이는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이재만 총무비서관·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을 견제하기 위한 포석이었을 확률이 높다.

전씨는 박근혜정부 출범 후 조응천 당시 청와대 공직기관비서관의 추천으로 청와대 행정관에 발탁될 뻔 했다. 그러나 안 비서관의 반대에 막혀 '특채'가 좌절된 경험이 있다. 전씨가 3인방에 대해 '유감'을 갖고 있는 것을 염두에 뒀다면 정보가 흘러나가는 '게이트'로 전씨가 활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검찰이 정윤회 동향문건의 제보자로 특정한 박동열 전 대전지방국세청장도 문고리 권력의 인사 개입을 암시한 바 있다. 그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박 경정에 대해 "안 비서관이 (올 2월) 자기를 청와대에서 쫓아냈다고 생각해 앙금이 깊더라"고 말했다.

박 경정은 지난 1월 정윤회 동향문건을 작성해 조 비서관에게 보고한 뒤 불과 1달 만에 일선경찰서 정보과장으로 좌천됐다. 관련 배경을 놓고 정씨에 대한 뒷조사를 벌이다 문고리 권력에 찍혔다는 것이 정설처럼 여겨진다.


문건 내용을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직보한 조 비서관도 지난 4월 경질됐다. 보고서 제목은 '靑(청와대) 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측근(정윤회) 동향'이었다. 제목의 앞마디가 의미심장했다. '청와대 비서실장 교체설'이라는 도입은 김 실장을 겨냥한 문구로 풀이됐다. 거칠게 정리하면 김 실장에게 "문고리 권력을 걸러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②김기춘은 왜
사태 방관했나

지난 18일 박 경정은 체포 직전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에 대한 충성일지 모르겠지만, 충성은 하는 사람뿐 아니라 받는 사람도 알아야 하거든. 그렇기 때문에 회의감이 들고…"라며 "(문건이) 어떤 경위로 작성됐고 뭐가 문제인지. 언젠가는 내가 말할 날이 있을 거다. 그런 거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얘기하면 국민들이 놀랄 거야"라고 폭로전을 예고했다.

또 박 경정은 "조 비서관이 민감한 일들을 다 시켰다"는 말로 상부의 지시가 있었음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그럼에도 박 경정의 행위 동기는 의문투성이다. 반출된 문건을 복사한 한모 경위와 언론에 유포한 최모 경위(사망) 모두 경찰 내 손꼽히는 엘리트다. 이들이 위법 소지가 있는 문건 유출을 감행한 이유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자타공인 현 정부의 실력자는 김 실장이다. 그러나 김 실장은 정윤회·박지만 동향문건 사태 전후로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존재감도 미미하다. 김 실장의 당시 행적을 되짚어보자.

지난 8일 <동아일보>는 정윤회 동향문건 작성을 김 실장이 조 비서관에게 지시한 것으로 보도했다. 김 실장은 즉각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면서 기사를 쓴 <동아일보> 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김 실장으로부터) 누구에게도 지시한 사실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브리핑했다.

그렇지만 조 비서관은 검찰조사에서 "김 실장 혹은 홍경식 당시 민정수석 중 누군가가 내게 업무지시를 내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 대변인은 "김 실장이 (조 비서관으로부터) 구두보고를 받았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는 전언도 있어 양측의 진술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김 실장은 조 비서관의 보고가 '찌라시' 수준이어서 묵살했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김 실장의 표현대로 찌라시를 작성한 박 경정은 청와대에서 밀려났다. 문건이 유출되자 조 비서관은 물론 홍 수석까지 교체됐다. 말단 행정관도 여럿 바뀌었다. 그럼에도 최종 보고라인인 김 실장은 건재했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김 실장이 자신의 교체설과 관련한 첩보 수집을 지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문고리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정치공작'과 다름없다. 그럼에도 김 실장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어떤 이유인지 문건을 작성한 세력을 잘라냈다.

③세계일보는 왜
박지만 찾아갔나

이와 관련해 두 가지 가능성이 고개를 든다. 첫째, 보고 내용이 충분치 못해 VIP(대통령)의 마음을 돌리기 어렵다고 판단했을 가능성. 둘째, '특정한 의도'를 갖고 조 비서관 등을 '고의'로 내보냈을 가능성이다.

<세계일보>는 지난 4월초 전직 청와대 행정관들의 비위사실을 보도했다. 청와대는 이즘 민정수석실의 감찰보고서가 유출됐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세계일보>가 정윤회·박지만 동향문건을 입수한 시기도 4월 전후로 알려졌다. 그런데 얼마 후 세월호 참사가 터졌고 <세계일보>는 후속보도를 유예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문제는 이 다음이다. <세계일보>는 보고서에 등장하는 박 회장을 직접 대면했다. 지난 17일 <세계일보>는 "5월12일 박 회장을 만나 부인인 서향희 변호사 등과 관련한 청와대 문건을 전달했고, 약 1주일 뒤 문건 처리 경위를 문의하자 '문건은 정호성 비서관에게 줬고, 이는 김기춘 실장에게 보고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고 보도했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세계일보>가 왜 정씨는 놔두고 박 회장에게만 문건을 공개했느냐다. 정씨와 달리 박 회장과 관련한 내용은 기사화하지 않은 이유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문고리 권력을 쳐내기 위해 '누군가'가 박 회장을 음지밖으로 끌어낸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물론 이 '누군가'는 숨진 최 경위가 아니다. 최 경위는 유서에서 "경찰 생활을 하며 많은 경험을 했지만 이번처럼 힘없는 조직임을 통감한 적이 없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세계일보> 문건 입수 경위 미궁
청와대 노골적인 '정윤회 감싸기'

박 회장은 최근 검찰조사에서 "정씨와의 권력암투설은 사실이 아니며, 문건을 직접 청와대나 국정원에 전달한 바 없다"고 못박았다. 이에 대해 조 비서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청와대에서 나온 후) 문건 유출 사실을 접했고 이를 고민 끝에 박 회장에게 알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조 비서관은 "김 실장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에 박 회장에게 문건을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이때가 5월 중순~말이다.

아무 조치가 없자 조 비서관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근무하고 있던 오모 행정관에게 사진으로 찍은 문건 100여장을 건넸다. 6월 초 오 행정관은 정 비서관에게 달려가 유출된 문건 사진을 제보했다. 이는 청와대도 직접 시인한 부분이다.

다른 사실은 제쳐두고 정 비서관이 상당한 '실세'라는 것에는 이론이 없어 보인다. 대통령의 친족과 관련한 민감한 비위 내용을 정 비서관에게 먼저 알린 것이다. 조 비서관은 얼마 후 청와대 민정수석실로부터 '(문건을 보낸) 의도가 뭐냐'는 전화를 받았다고 밝혔다. 관련 사실을 제보한 오 행정관은 대기발령 조치됐다. 나아가 청와대는 조 비서관을 주축으로 한 '7인 모임'의 일원으로 오 행정관을 특정했다.


④청와대는 왜
정윤회 지켰나

청와대는 이번 문건파동이 불거진 후 민간인인 정씨의 '주장'을 인용해 힘을 보탰다. 수사 가이드라인까지 검찰에 제시하며 사건을 '마사지'했다. 검찰에 출두한 정씨는 모든 국민이 보는 앞에서 "이 엄청난 불장난을 누가 했는지 다 밝혀질 것"이라며 호언장담했다. 검찰은 정씨의 국정개입이 사실이 아니라고 대변했다.

그러나 정씨가 청와대와 특수한 관계에 있다는 것만큼은 부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비선인 RO조직의 실체를 부인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과 십상시 회동의 실체를 부인한 정씨의 모습은 묘한 지점에서 오버랩된다.

정씨는 최초 언론 인터뷰에서 "3인방과 연락한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미행설이 불거진 후 이 비서관을 통해 '사실 확인'을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씨와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이 비서관은 문화체육관광부 국장급 인사에까지 개입한 의혹을 받고 있다. 이들은 나란히 검찰조사에서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

정씨와 관련한 핵심 의혹 가운데 하나는 박 대통령과의 인연이 지금껏 이어지고 있는지 여부다. 반드시 십상시 회동이 아니어도 전화 한 통이면 국정에 개입하는 데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정씨 입장에선 청와대 내부의 권력다툼이 자신에게까지 번진 것에 억울함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불장난'을 시작했는지 청와대는 알릴 필요가 있다. 경찰관 3명이 꾸민 자작극이라고 하기엔 변명이 너무 궁색하다.

지난 18일 <채널A>는 "박 경정이 지난 6월 정씨와 만나 당시 혼인관계에 있던 아내 최씨의 사생활 정보를 알려줬다"고 보도했다. 자리에서 박 경정은 십상시 회동의 제보자인 박 전 청장을 거론하며 "당신의 부인과 가깝게 지낸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임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정씨를 떠본 것으로 추측된다.

미심쩍은 것은 그 다음이다. 최씨와 박 전 청장의 사생활 관련 의혹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 조사 결과 '사실 무근'으로 판명됐다"는 것이 후속 보도다. 민간인인 최씨의 사생활을 왜 청와대가 들여다봤던 것일까. 수수께끼는 아직 풀리지 않았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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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