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후폭풍' 풀리지 않는 의혹 4

'게이트 키' 박지만이 쥐고 있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윤회 문건파동이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지난 1일 개시한 검찰 수사는 불과 2주 만에 청와대 행정관이었던 박관천 경정 쪽으로 칼끝이 모이고 있다. '십상시 회동'과 '박지만 미행설'은 모두 신빙성 없는 허위사실로 매듭지은 모양이다. 그러나 풀리지 않는 의혹은 여전히 남아 있다. '찌라시'로 치부하기에는 께름칙한 '거짓말'이 너무 많아서다. 아직까지 규명되지 않은 이번 파문의 쟁점 4가지를 차례로 짚어봤다.

박근혜정부의 비선 실세로 알려진 정윤회씨와 관련한 의혹은 크게 3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세계일보>가 보도한 '동향보고서'의 내용대로 정씨가 '십상시'의 좌장으로 정부 인사 등 국정에 개입했는지 여부. 둘째,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그룹 회장을 실제로 미행했는지 여부. 셋째, 부인이었던 최순실씨와 박 대통령, 그리고 정씨와의 인연이 지금껏 이어지고 있는지 여부다.

검찰 수사 경과를 지켜보면 이 가운데 국정개입 의혹과 미행 의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입장이 정리되고 있다. '십상시 회동'과 '박지만 미행설'은 모두 문건의 출처가 박관천 경정(전 청와대 행정관)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그런데 검찰 주장을 받아들인다 해도 풀리지 않는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베테랑 수사관'이었던 박 경정은 왜 있지도 않은 사실을 꾸며내 박 회장에게 흘린 것일까.

①박관천은 왜
문건 만들었나

상대적으로 실체가 불분명한 '박지만 동향문건'부터 살펴보자. 검찰은 박 경정이 '박지만 미행설'과 관련한 별도의 문건을 작성한 뒤 박 회장의 측근인 전모씨를 거쳐 박 회장에게 내용을 전달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박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시사저널>에 보도된 "미행 당사자로부터 자필진술서를 받아냈다"는 의혹은 부인했다. 그러면서도 "누군가로부터 미행당하고 있다는 의심이 들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박 회장이 미행을 의심하게 된 근거로 박 경정이 작성한 문건을 꼽았다.

박 경정은 청와대 행정관 재직 당시 고위공무원에 대한 암행 감찰이나 대통령 친인척 및 측근에 대한 관리 업무를 담당했다. 박 회장의 비서 역할을 했던 전씨와도 종종 왕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박 경정이 박 회장 주변 동향을 체크하는 과정에서 미행설과 관련한 첩보를 입수해 이를 전씨를 통해 확인했을 가능성이 있다.

십상시 회동·박지만미행설 작성 의도는?
김기춘 보고 받고 입장 돌변…누구 입김?

그러나 검찰은 "문건의 신빙성에 의문이 든다"며 "박 경정이 의도적으로 박 회장에게 미행설을 흘린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검찰의 판단대로 박 경정이 미확인된 미행설을 유포했다면 이는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이재만 총무비서관·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을 견제하기 위한 포석이었을 확률이 높다.

전씨는 박근혜정부 출범 후 조응천 당시 청와대 공직기관비서관의 추천으로 청와대 행정관에 발탁될 뻔 했다. 그러나 안 비서관의 반대에 막혀 '특채'가 좌절된 경험이 있다. 전씨가 3인방에 대해 '유감'을 갖고 있는 것을 염두에 뒀다면 정보가 흘러나가는 '게이트'로 전씨가 활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검찰이 정윤회 동향문건의 제보자로 특정한 박동열 전 대전지방국세청장도 문고리 권력의 인사 개입을 암시한 바 있다. 그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박 경정에 대해 "안 비서관이 (올 2월) 자기를 청와대에서 쫓아냈다고 생각해 앙금이 깊더라"고 말했다.

박 경정은 지난 1월 정윤회 동향문건을 작성해 조 비서관에게 보고한 뒤 불과 1달 만에 일선경찰서 정보과장으로 좌천됐다. 관련 배경을 놓고 정씨에 대한 뒷조사를 벌이다 문고리 권력에 찍혔다는 것이 정설처럼 여겨진다.


문건 내용을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직보한 조 비서관도 지난 4월 경질됐다. 보고서 제목은 '靑(청와대) 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측근(정윤회) 동향'이었다. 제목의 앞마디가 의미심장했다. '청와대 비서실장 교체설'이라는 도입은 김 실장을 겨냥한 문구로 풀이됐다. 거칠게 정리하면 김 실장에게 "문고리 권력을 걸러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②김기춘은 왜
사태 방관했나

지난 18일 박 경정은 체포 직전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에 대한 충성일지 모르겠지만, 충성은 하는 사람뿐 아니라 받는 사람도 알아야 하거든. 그렇기 때문에 회의감이 들고…"라며 "(문건이) 어떤 경위로 작성됐고 뭐가 문제인지. 언젠가는 내가 말할 날이 있을 거다. 그런 거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얘기하면 국민들이 놀랄 거야"라고 폭로전을 예고했다.

또 박 경정은 "조 비서관이 민감한 일들을 다 시켰다"는 말로 상부의 지시가 있었음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그럼에도 박 경정의 행위 동기는 의문투성이다. 반출된 문건을 복사한 한모 경위와 언론에 유포한 최모 경위(사망) 모두 경찰 내 손꼽히는 엘리트다. 이들이 위법 소지가 있는 문건 유출을 감행한 이유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자타공인 현 정부의 실력자는 김 실장이다. 그러나 김 실장은 정윤회·박지만 동향문건 사태 전후로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존재감도 미미하다. 김 실장의 당시 행적을 되짚어보자.

지난 8일 <동아일보>는 정윤회 동향문건 작성을 김 실장이 조 비서관에게 지시한 것으로 보도했다. 김 실장은 즉각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면서 기사를 쓴 <동아일보> 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김 실장으로부터) 누구에게도 지시한 사실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브리핑했다.

그렇지만 조 비서관은 검찰조사에서 "김 실장 혹은 홍경식 당시 민정수석 중 누군가가 내게 업무지시를 내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 대변인은 "김 실장이 (조 비서관으로부터) 구두보고를 받았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는 전언도 있어 양측의 진술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김 실장은 조 비서관의 보고가 '찌라시' 수준이어서 묵살했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김 실장의 표현대로 찌라시를 작성한 박 경정은 청와대에서 밀려났다. 문건이 유출되자 조 비서관은 물론 홍 수석까지 교체됐다. 말단 행정관도 여럿 바뀌었다. 그럼에도 최종 보고라인인 김 실장은 건재했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김 실장이 자신의 교체설과 관련한 첩보 수집을 지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문고리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정치공작'과 다름없다. 그럼에도 김 실장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어떤 이유인지 문건을 작성한 세력을 잘라냈다.

③세계일보는 왜
박지만 찾아갔나

이와 관련해 두 가지 가능성이 고개를 든다. 첫째, 보고 내용이 충분치 못해 VIP(대통령)의 마음을 돌리기 어렵다고 판단했을 가능성. 둘째, '특정한 의도'를 갖고 조 비서관 등을 '고의'로 내보냈을 가능성이다.

<세계일보>는 지난 4월초 전직 청와대 행정관들의 비위사실을 보도했다. 청와대는 이즘 민정수석실의 감찰보고서가 유출됐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세계일보>가 정윤회·박지만 동향문건을 입수한 시기도 4월 전후로 알려졌다. 그런데 얼마 후 세월호 참사가 터졌고 <세계일보>는 후속보도를 유예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문제는 이 다음이다. <세계일보>는 보고서에 등장하는 박 회장을 직접 대면했다. 지난 17일 <세계일보>는 "5월12일 박 회장을 만나 부인인 서향희 변호사 등과 관련한 청와대 문건을 전달했고, 약 1주일 뒤 문건 처리 경위를 문의하자 '문건은 정호성 비서관에게 줬고, 이는 김기춘 실장에게 보고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고 보도했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세계일보>가 왜 정씨는 놔두고 박 회장에게만 문건을 공개했느냐다. 정씨와 달리 박 회장과 관련한 내용은 기사화하지 않은 이유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문고리 권력을 쳐내기 위해 '누군가'가 박 회장을 음지밖으로 끌어낸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물론 이 '누군가'는 숨진 최 경위가 아니다. 최 경위는 유서에서 "경찰 생활을 하며 많은 경험을 했지만 이번처럼 힘없는 조직임을 통감한 적이 없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세계일보> 문건 입수 경위 미궁
청와대 노골적인 '정윤회 감싸기'

박 회장은 최근 검찰조사에서 "정씨와의 권력암투설은 사실이 아니며, 문건을 직접 청와대나 국정원에 전달한 바 없다"고 못박았다. 이에 대해 조 비서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청와대에서 나온 후) 문건 유출 사실을 접했고 이를 고민 끝에 박 회장에게 알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조 비서관은 "김 실장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에 박 회장에게 문건을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이때가 5월 중순~말이다.

아무 조치가 없자 조 비서관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근무하고 있던 오모 행정관에게 사진으로 찍은 문건 100여장을 건넸다. 6월 초 오 행정관은 정 비서관에게 달려가 유출된 문건 사진을 제보했다. 이는 청와대도 직접 시인한 부분이다.

다른 사실은 제쳐두고 정 비서관이 상당한 '실세'라는 것에는 이론이 없어 보인다. 대통령의 친족과 관련한 민감한 비위 내용을 정 비서관에게 먼저 알린 것이다. 조 비서관은 얼마 후 청와대 민정수석실로부터 '(문건을 보낸) 의도가 뭐냐'는 전화를 받았다고 밝혔다. 관련 사실을 제보한 오 행정관은 대기발령 조치됐다. 나아가 청와대는 조 비서관을 주축으로 한 '7인 모임'의 일원으로 오 행정관을 특정했다.


④청와대는 왜
정윤회 지켰나

청와대는 이번 문건파동이 불거진 후 민간인인 정씨의 '주장'을 인용해 힘을 보탰다. 수사 가이드라인까지 검찰에 제시하며 사건을 '마사지'했다. 검찰에 출두한 정씨는 모든 국민이 보는 앞에서 "이 엄청난 불장난을 누가 했는지 다 밝혀질 것"이라며 호언장담했다. 검찰은 정씨의 국정개입이 사실이 아니라고 대변했다.

그러나 정씨가 청와대와 특수한 관계에 있다는 것만큼은 부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비선인 RO조직의 실체를 부인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과 십상시 회동의 실체를 부인한 정씨의 모습은 묘한 지점에서 오버랩된다.

정씨는 최초 언론 인터뷰에서 "3인방과 연락한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미행설이 불거진 후 이 비서관을 통해 '사실 확인'을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씨와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이 비서관은 문화체육관광부 국장급 인사에까지 개입한 의혹을 받고 있다. 이들은 나란히 검찰조사에서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

정씨와 관련한 핵심 의혹 가운데 하나는 박 대통령과의 인연이 지금껏 이어지고 있는지 여부다. 반드시 십상시 회동이 아니어도 전화 한 통이면 국정에 개입하는 데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정씨 입장에선 청와대 내부의 권력다툼이 자신에게까지 번진 것에 억울함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불장난'을 시작했는지 청와대는 알릴 필요가 있다. 경찰관 3명이 꾸민 자작극이라고 하기엔 변명이 너무 궁색하다.

지난 18일 <채널A>는 "박 경정이 지난 6월 정씨와 만나 당시 혼인관계에 있던 아내 최씨의 사생활 정보를 알려줬다"고 보도했다. 자리에서 박 경정은 십상시 회동의 제보자인 박 전 청장을 거론하며 "당신의 부인과 가깝게 지낸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임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정씨를 떠본 것으로 추측된다.

미심쩍은 것은 그 다음이다. 최씨와 박 전 청장의 사생활 관련 의혹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 조사 결과 '사실 무근'으로 판명됐다"는 것이 후속 보도다. 민간인인 최씨의 사생활을 왜 청와대가 들여다봤던 것일까. 수수께끼는 아직 풀리지 않았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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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