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바리 전쟁 터진 전주 조폭 대해부

'6개파 150명' 목숨 걸고 복수혈전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최근 전북 전주에서 발생한 폭력조직간 살인사건을 두고 지역적인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한옥마을의 붐 등으로 타지인의 유입이 활발해진 전주는 오랜 세월 '토호조폭'이 유흥가를 장악해왔다. 경찰은 "개인 간의 감정 문제"라며 선을 그었지만 그 이면에는 결혼식장을 둘러싼 오랜 영역다툼의 가능성도 있다. 전주 조폭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해봤다.

지난달 23일 전주의 양대 조직폭력 원로들이 비밀 회동을 계획했다. 이들은 전주시내 도심에서 일어난 조직폭력배 피살사건을 두고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접선했다. 앞서 전주 월드컵파 실세인 최모씨는 오거리파 행동대원 또 다른 최모씨를 말다툼 끝에 흉기로 살해했다.

양대조직 원로
비밀리에 만나

용의자가 속해있는 월드컵파의 원로는 화해자리를 주선한 나이트파 원로와 같은 날 오후 5시께 전주 모처에서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단 이 자리에 오거리파 원로가 참석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들 중 규모 면에서 가장 큰 조직은 월드컵파이며, 그 다음이 나이트파, 세 번째가 오거리파라고 경찰은 전했다.

나이트파가 비밀회동을 주선한 배경으로는 살인사건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이 꼽혔다. 지난 22일 낮 결혼식장에서 월드컵파 최씨는 일부 오거리파 조직원이 자신에게 인사하지 않는 것을 보고 나무랐다. 그러자 오거리파 최씨는 "왜 우리 애들에게 시비를 거냐"며 최씨에게 맞섰다.

양측의 말다툼은 주먹싸움으로 번질 태세였다. 이때 중재에 나선 인물이 나이트파 간부급 조직원으로 알려진 A씨다. 해당 조직원은 두 최씨의 화해자리를 주선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들은 다시 시비가 붙었다. 끝내는 칼부림이 일어났다.


이날 오후 9시께 중화산동 한 명품관 앞에서는 날카로운 흉기에 우측 가슴이 찔린 오거리파 행동대원 최씨가 발견됐다. 최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과다출혈 등의 원인으로 숨졌다. 숨진 최씨를 찌른 월드컵파 최씨는 사건현장에서 바로 도주했다.

당시 목격자에 따르면 최씨를 포함한 건장한 체격의 남성 5명은 술집 앞에서 언성을 높이다 건물 옆 주차장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자주 오고가는 도심 한복판이었지만 이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한다. 큰 소리가 나더니 그곳에선 5분 만에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일대는 아수라장이 됐다.

범행 직후 최씨는 상대조직원을 살해할 당시 흉기를 건넨 추종세력(43·살인방조 등)은 놔두고 동료조직원(41·범인도피 등)의 도움을 받아 서울로 피신했다. 강남 한 식당에서 최씨는 일행 및 지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대책을 의논했다.

이로부터 이틀 뒤 최씨를 제외하고 범행에 가담한 모든 인물이 자수하거나 체포됐다. 이들 중 일부는 혐의를 부인했지만 구속을 면치 못했다. 그 사이 최씨는 경기도로 이동했다가 전주를 다녀가는 등 대담한 도피 행각으로 경찰을 괴롭혔다. 사건이 자칫 장기화될 무렵 한 통의 전화가 경찰서로 걸려왔다.

지난달 29일 전주완산경찰서는 최씨로부터 자수 의사를 확인했다. 오후 4시30분께 경찰서로 연락한 최씨는 "자수를 할 테니 저녁 무렵 효자동에 있는 집에서 만나자"고 했다. 실제로 최씨는 자택에 나타났다. 그곳에서 대기 중이던 강력계 형사들은 오후 8시20분께 최씨를 검거했다.

최씨는 경찰조사에서 "사건 당일 피해자 일행과 술을 많이 마셨다. 같은 동네 선후배이고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사이인데 내가 왜 흉기를 휘둘렀는지 모르겠다. 흉기로 최씨를 찔렀다"고 진술했다. 구치소에 수감된 최씨는 변호사를 선임해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붙잡은 최씨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해 사건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방침이다.

이번 살인사건에는 전주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폭력조직이 모두 연루됐다. 사건 당일 두 최씨가 찾은 결혼식장에선 나이트파 조직원의 결혼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이들은 10여년이 넘는 기간 동안 결혼식과 관련해 크고 작은 사건에 휘말렸다. 사람이 죽기도 했고, 심지어는 자살까지 했다. 관련한 내막을 살피기에 앞서 전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폭력조직의 현황을 확인해보기로 하자.


시내 도심서 일어난 폭력배 피살사건
월드컵·나이트·오거리파 비밀 회동


전주에는 모두 6개 폭력조직(월드컵파, 나이트파, 오거리파, 타워파, 북대파, 중앙시장파)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1983년 이후 결성됐다. 규모는 150여명 안팎으로 추산되고 있다.

월드컵파는 작은 폭력서클로 시작해 전주 중앙동을 거점삼아 성장했다. 1980년대까진 중앙동에 있는 '월드컵 나이트클럽'이 주된 수익원이었다. 월드컵파의 대항마로 결성된 조직은 나이트파다. 나이트파는 전주관광호텔을 무대로 성장했다.

오거리파는 당시 상가와 주점 등이 밀집해 있던 '오거리'를 중심으로 등장했다. 타워파와 북대파는 각각 금암동을 거점으로 결성됐다. 중앙시장파는 비교적 최근 생겨났으며, 시장을 중심으로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30년 넘게 조직을 이끌고 있는 각 조직 보스와 부두목, 행동대원 등은 대부분 폭력전과가 있다. 이 가운데는 전과 10범이 넘는 보스도 있다. 두목들의 나이는 주로 40대 후반에서 50대 후반까지로 전해진다. 큰 두목들은 외형상 자영업과 건설업 등에 종사하고 있다. 이들은 이른바 '회장님'으로 불린다.

일부 보스들은 서울과 경기, 충남 등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일부 간부는 수배 중이거나 교도소에 수감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에 따르면 타 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는 보스들은 정기적으로 전주에 내려와 조직을 관리하고 있다. 보스가 수감 중인 경우에는 부두목 등이 대리로 조직을 움직인다.

행동대원은 조직원 가운데 활동이 가장 왕성한 중간급인 30∼40대 조직원으로부터 정보를 얻은 뒤 보스에게 연락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고급 세단을 끌고 다녔던 이들은 1990년대 '범죄와의 전쟁'을 계기로 과거만큼의 세를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경찰은 밝혔다. 1980년대만 해도 조직 간의 '나와바리(구역) 싸움'은 매우 치열하게 전개됐다.

지역경기 어렵자
잔혹범죄 증가해

자금을 만들기 위해 조직원들은 '업소를 지켜준다'는 명목으로 구역에 있는 업소에서 월정금을 뜯었다. 자신들의 구역을 침범하는 타 조직원은 거침없이 응징했다. 특히 월드컵파와 나이트파의 세력다툼은 선혈이 낭자했다. 도심 한복판에서 유혈 난투극은 끊이지 않았다.

전주 한성여관 살인사건, 명동여관 살인사건 등 이들의 나와바리 싸움은 199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다. 이들은 1984년 무렵 전주백화점을 중심으로 유흥가를 양분했으나 이후에도 크고 작은 세력다툼을 벌였다. 6년 후에는 '서울 강남병원 응급실 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 검·경의 수배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정부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자 각 조직원들은 하나둘 서울로 향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전주의 지역 경기가 어려워진 것도 상경의 한 이유였다. 경찰이 단속의 고삐를 죄자 자금줄이었던 업주 월정금이 자취를 감췄다.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자 이들은 전주를 넘나들며 불법을 일삼았다.

지난해 충남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수십억원대의 도박판을 벌인 혐의로 월드컵파 조직원 홍모씨 등 9명을 구속했다. 홍씨 등은 대전 유성구 송정동의 한 식당을 빌려 회당 수백만원씩 이른바 '아도사키' 도박판을 벌이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망을 보는 '문방'과 높은 이자로 돈을 대주는 '꽁지' 전문 도박꾼을 관리하는 '총책' 등 역할을 나눠 회당 70여명을 도박판에 끌어들였다. 월드컵파는 대전의 지역 조폭과 연계해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해 전주 조폭 김모씨는 주류사업에 투자하면 거액의 이익금을 벌 수 있다고 속여 수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구속됐다. 김씨는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지인 B씨 등 3명에게 4억4000만원의 투자금을 받아 챙긴 것으로 밝혀졌다. 같은 기간 김씨는 "빌려준 돈을 달라"고 말한 채무자를 폭행해 부상을 입힌 혐의도 함께 받았다.

보복폭행에 살인까지 '피 튀는 싸움'
심상찮은 동향…80년대부터 이권다툼

지난달 전주에서 만났던 한 지역사업가는 "영화제나 한옥마을로 외식·숙박·유흥업이 잘되면서 서울 자본이 대거 지역으로 유입됐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전주 조폭이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는 것이다. 돈이 달린 조폭 중 일부는 끔직한 범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지난 2012년 한 전직 조폭은 현직 조폭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사건 발생장소는 중화산동에 있는 번화가였다. 이번 살인사건 현장과 멀지 않은 곳으로 확인된다. 전직 조폭은 "돈이 없다고 날 무시해 친구를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올해 초에는 자신과 동거한 10대 여중생을 살해한 조폭이 아파트 옥상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고가 있었다. 30대 초반인 박모씨는 전과 40범으로 교도소 출소 후 노래방 도우미를 알선하며 생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박씨는 동거녀 C양(15)에게 도우미 일을 종용하다가 C양이 이를 거부하자 병원로비에서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했다. 경찰의 포위망이 좁혀오자 박씨는 아파트 19층 아래로 투신했다.

조폭과 가까운 전직 경찰 관계자는 "여자가 낀 사업을 조폭이 포기할 수 없다"며 "특히 결혼과 관련한 사업에도 조폭이 진출해 있지만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일례로 결혼정보업체를 가장한 성매매 알선·공급세력을 꼽기도 했다.


전주의 경우 채무 갈등을 겪던 한 예식장 사장이 채권자 2명을 살해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있었다. 숨진 사장은 자신과 안면이 있는 조직을 움직여 채권자 D(55), E(44)씨를 살해했다.

조폭 출신으로 알려진 D씨 등은 앞서 사장을 두 차례 납치·폭행하는 등 "돈을 내놓으라"며 협박했다. 이에 사장은 조폭인 아들까지 동원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후 사장과 두 채권자는 모두 1t 냉동탑차 안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운전석에는 '채권자 두 명을 먼저 보내고 나도 뒤따라 생을 마감하겠다'는 내용의 유서가 있었다. 조직 간의 처절한 생존 암투였던 셈이다.

전주 조폭은 유독 결혼식장에서 사고를 일으켰다. 몇 년 전 서울 한 웨딩홀에서 서울 조폭과 시비가 붙었을 때는 전주 조폭의 웨딩사업 진출로 보는 시각이 있었다. 이번 사건 역시 과거 예식장을 둘러싼 앙금이 쌓였다가 터진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경찰은 "조직 간의 충돌이 아니라 개인 간의 감정 문제가 발단이 된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자수 앞두고
무슨 꿍꿍이

최근 조폭을 겨냥한 대대적인 단속이 부활한 가운데 양대 두목의 비밀회동은 중요한 포인트를 시사한다. 경찰의 칼을 빌려 군소조직을 정리하려는 것은 아닌지. 아직도 조폭을 추종하는 F씨는 "곧 나와바리 전쟁이 불붙을 수 있다"며 의견을 전했다.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전국구 접수' 전주 월드컵파 거물 두목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

지난 8월 660억원 규모의 면세담배 유출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사건의 중심에는 전주 월드컵파 조직원 김모(39)씨가 있었다. 김씨는 담배 구매업자, 무역업자 등과 공모해 면세담배 2933만여갑을 빼돌렸다. 김씨는 밀수한 담배를 국내로 유통한 총책이었다.

월드컵파는 전주 나이트파와 더불어 전북 지역 최대조직으로 꼽힌다. 시기상으로 월드컵파가 먼저 결성되고 이에 대항하기 위해 나이트파가 생겨났다고 한다.

전성기 때 조직원은 100명 남짓해 그리 크지 않은 규모다. 하지만 월드컵파가 전국구에 준하는 명성을 갖게 된 이유가 있다. 두목 주모씨의 화려한 이력이다.

주씨는 지난 범죄와의 전쟁으로 구속돼 실형을 살았다. 검찰은 주씨에게 범죄단체 수괴죄를 적용했다. 당시 검찰의 기소 내용을 보면 주씨는 상당한 '거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먼저 주씨는 1980년대 전북승마협회 부회장직을 맡아서 사회고위층과 어울렸다. 1987년 4월 통일민주당 창당방해사건인 일명 '용팔이사건'에 연루되는 등 정치권과 연을 맺었다.

지역에서는 골재채취회사 등을 운영하며 사업가 행세를 했지만 88 서울올림픽을 전후로 서울 강남·이태원 일대 유흥가에 진출했다. 주 수입원은 슬롯머신 사업이었다. 이 과정에서 월드컵파는 경쟁조직을 제거할 목적으로 강남 모 병원 응급실에서 나이트파 조직원을 무참히 살해했다.

월드컵파는 소규모 폭력서클로 출발했다. 전주 완산구에 있는 나이트클럽 '월드컵'을 접수하면서 월드컵파란 이름을 갖게 됐다. 월드컵파가 급성장한 배경에는 부두목 김모씨의 역할이 컸다. 김씨는 일대 어느 조폭보다 폭력적이며 잔인했다고 한다. 김씨의 '주먹'에 힘입어 주씨는 일대 상권을 손쉽게 거머쥘 수 있었다.

비슷한 시기 몸집을 불린 나이트파와는 수차례 칼부림을 벌여 수십명이 죽거나 다쳤다. 1983년과 1984년 연이어 살인사건이 발생했고, 1989년에는 보복살인이 오가며 '피바람'이 불었다. 당시 월드컵파 조직원 4명은 나이트파 두목 김모씨의 친구에게 가스총을 쏘는 등 충격적인 범행으로 시민을 경악시켰다.

1990년 8월 주씨의 구속 후 월드컵파의 외형은 급격히 축소됐다. 그러나 일부는 서울과 경기로 거주지를 옮겨 아직도 폭력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주로 자영업이나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개별 조폭들이 정관계와 유착해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실제로 지난 2005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월드컵파가 모 정치인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대법관에 오른 변호사는 월드컵파 두목 주씨를 변호했다가 구설에 휘말렸다. 또 월드컵파 조직원은 수감생활 중 알게 된 교도관을 꾀어 수억원을 투자받은 뒤 반환을 요구하는 교도관을 폭행해 언론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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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