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입찰' 교보생명 갈지자 노림수

한다 안한다 간보다 ‘시치미 뚝’

[일요시사 경제2팀] 박효선 기자 =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 자신의 오랜 꿈을 눈앞에서 놓쳤다. 오너 금융사에 대한 당국의 ‘부정적 기류’ 탓이라고 하기엔 모든 상황이 교보생명에 유리하게 돌아갔다. 오히려 여론은 정부의 우려를 질타했다. 우리은행 내부에서조차 중국계에 넘어가느니 차라리 교보생명이 낫다는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신 회장은 망설였다. 그의 줏대 없는 행보는 M&A시장을 실망시켰다. 올해 게임은 끝났고, 그의 걸음은 여기까지였다.

우리은행 유력 인수 후보로 거론됐던 교보생명. 입찰참여를 저울질 하다 결국 불참했다. 정부가 네 번째 시도한 우리은행 경영권 매각은 무산됐다. 신창재 회장이 다섯 번째 우리은행 민영화 작업에 재차 나설지 의문이다. 하지만 이번과 같은 어정쩡한 태도로 나온다면 똑같은 벽에 부딪힐 것으로 보인다.

돈 없는데 왜?
머뭇거린 이유

그동안 신창재 회장은 우리은행에 대한 인수 의지를 강하게 피력해왔다. 올해 초에는 아예 우리은행에 경영권 인수 의지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유지경성(有志竟成)을 신년 화두로 제시하기도 했다. 이루고자 하는 뜻이 있으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사자성어다. 그는 “은행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10년 전부터 해왔습니다”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그렇게 교보생명의 우리은행 입찰 참여는 기정사실이 됐다.

정부와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지난6월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한 우리은행 지분(56.97%)을 쪼개 팔기로 결정했다. 경영권지분(30%)과 소수지분(17.98%)으로 나눠 일반 경쟁 입찰과 희망 수량 경쟁 입찰 방식으로 매각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오후 5시에 마감한 우리은행 경영권 매각(지분30%)을 위한 일반경쟁 입찰에 교보생명은 불참하기로 했다. 중국 안방보험만 입찰에 참여해 정부가 강조했던 유효경쟁은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입찰은 무효됐다.


입찰 마감직전 교보생명은 “해외공동투자자 및 컨설팅사와 우리은행 지분인수 타당성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문제가 제기됨에 따라 이번 인수참여를 유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신 회장은 1년도 안 돼 자신이 한말을 뒤집은 셈이다.

마감 직전까지 왔다 갔다 줏대 없는 행보
‘머뭇머뭇’ 결국 백기…태생적 한계 지적

교보생명이 함구하고 있어 입찰을 포기한 구체적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크게 세 가지 해석이 나온다.

우선 부담스런 인수가격이다. 우리은행 경영권 매각 예상가는 3조원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현행 보험법상 보험사는 자산의 3% 이상을 투자할 수 없다. 교보생명이 우리은행 인수를 위해 직접 조달 가능한 자금은 약 1조3000억원(자산의 3%)에 그쳐 나머지 1조7000억원을 외부에서 조달해야 했다.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이에 따라 교보생명은 자금마련을 위해 해외투자자들과 접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재무적투자자(FI)를 모으기는 쉽지 않았다. 교보생명 재무담당 전무가 입찰 전날까지 홍콩과 대만 등 해외 출장을 감행하면서 우리은행 인수전 참여를 끝까지 고민한 것으로 전해졌다. FI를 모집하기 위해 막판까지 애를 썼지만 결국 실패했다. 일부 투자자가 발을 빼면서 입찰 참여가 불발됐다는 해석이다.

무엇보다도 인수 포기의 또 다른 배경은 교보생명의 지배구조에 있다. 교보생명이 오너 금융사라는 현실적 한계가 입찰을 결정하는 데 발목을 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교보생명은 신창재 회장이 34%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신 회장이 교보생명의 개인 최대주주라는 점이 향후 우리은행 경영권 지분 인수에서 특혜 시비나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당국에서는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이유로 우리은행 매각에 호의적이지 않은 태도를 보였다.


실제로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금융위가 교보생명에 오너 금융사는 우리은행의 주인으로 적절치 않다는 견해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국내 대표 은행을 개인 대주주에게 넘기는 데 따른 특혜 시비 등 정치적 논란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보험회사(제2금융권)가 은행(제1금융권)을 소유할 수 있느냐는 법률적 문제에 봉착한 당국은 교보생명의 우리은행 인수를 부담스러워했다. 이런 분위기를 간파한 교보생명이 알아서 입찰을 포기한 것이라는 시각이다. 신 회장이 그동안 입찰 참여를 쉽게 결정하지 못한 이유도 이러한 교보생명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지나친 꼼꼼
결정력 부족

하지만 이유를 막론하고 결국 신 회장의 의지가 약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번이 절호의 기회였다. 모든 판은 교보생명에 유리하게 돌아갔다. 다른 경쟁자도 없었다.

금융당국의 부정적 시각도 있었지만 분위기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금융위의 우려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컸다. 성장의 한계에 이른 국내 은행산업에 새로운 변화를 막으려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일각에서는 중국 안방보험이 ‘차이나 머니파워’를 앞세워 입찰가를 높게 써냈을 가능성을 우려해 교보생명이 일부러 입찰에 불참해 ‘판’ 자체를 깬 것이라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또 업계 안팎에서는 당국이 일부러 교보생명을 이용해 판을 키우려 했다는 이야기도 회자됐다. 사실상 다른 국내 금융사를 끌어들이려고 분위기를 형성했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당초 교보생명의 인수를 반대했던 우리은행 내부에서도 중국계 금융사가 들어오느니 차라리 국내 보험사가 낫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우리은행 인수에 적극적이었던 국내 금융사는 교보생명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이번 입찰은 교보생명에 절호의 기회였다.

이런 상황에도 신 회장을 눈치를 보며 기다렸다. 그러다 금융위가 부정적인 기류를 보내면서 사실상 게임은 끝났다.

교보생명은 과거에도 우리은행 인수 도중 발을 뺐다. 이리저리 재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중도에 포기했다. 지난 2011년 우리금융 민영화 당시에도 인수전에서 발을 뺐다. 2012년에도 교보생명은 컨소시엄을 구성해 막판까지 우리은행 인수 참여를 고민했다. 당시에도 인수 의지는 있었지만 정치권의 민영화 반대와 유효경쟁 실패로 꼬리를 내렸다.

신 회장은 창업주이자 아버지인 신용호 전 명예회장으로부터 교보생명을 물려받았다. 회장에 오른 후 교보생명을 견실하게 키워냈다. 그는 위험관리에 강했다. 의학도 출신인 그의 꼼꼼함 태도 덕분이었다. 그만큼 원칙을 중요시하고 개인적 성향이 강한 오너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의 지나친 꼼꼼함은 M&A시장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됐다. 선택의 순간에는 결정적 한방을 날리지 못했다.

일각에선 신 회장이 은행과 보험을 아우르는 초대형 금융그룹의 주인 자격이 부족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큰 야망에 비해 결단력이 부족하다는 시각이다. 입찰에 불참하기로 하고도 인수 포기 여부조차 명확하게 내놓지 않았다. ‘포기’가 아닌 ‘유보’라는 표현을 사용해 우리은행 경영권 인수에 미련을 남겨뒀다.

신창재 회장은 양치기 소년?
입장 번복…시장서 신뢰 잃어


신 회장에게 은행업 진출은 10년 숙원이었다. 종합금융그룹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유일무이한 대안이기도 했다. 우리은행 인수를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생각이었다. 특히 제로금리 시대에 도달하면서 생보업계는 장기 불황에 빠졌다. 지속되는 실적악화에 교보생명의 지위도 위태로워졌다.

최근 교보생명은 실적 침체에 따른 진통을 겪고 있다. 실적은 2009년 6800억원, 2010년 8600억원에 달했던 영업이익이 2011년 7900억원, 2012년 6100억원으로 감소 추세다. 게다가 올해 오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하기도 했다. 신 회장이 취임한 2000년 5월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창립 50주년이었던 2008년 신 회장이 야심차게 선언했던 ‘2015년 자산 100조원’ 달성은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내년까지 교보생명이 자산 100조원, 연간 1조원의 당기순이익을 창출하는 기업이 될지 의문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신 회장이 우리은행 인수를 적극적으로 표명한 것도 목표를 이루기 위한 포석이었다.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신 회장의 복안이 우리은행 인수였지만 올해는 실패했다.

제로 금리에
생보사 악화

전직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제로금리 시대가 오면서 생보사는 위기를 맞이했고, 경쟁 없는 우리나라 은행 시장은 낙후됐다”며 “당국에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금융당국이 겁내는 것은 이해하지만 교보생명 뿐 아니라 보험사, 증권사도 은행을 가질 수 있도록 당국은 판을 열어둬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내년에 다시 우리은행 경영권 매각에 나설 전망이다. 신 회장은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신 회장이 정말 은행업에 의지가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분위기와 상황을 만들어가는 작업이 절실해 보인다.

 


<dklo216@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