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제 골프장 위기 봉착 내막

재난 터질 때마다 골프장이 타깃 되는 대~한민국

“골프의 위기다.” 전국 주요 골프장이 세월호 참사 이후 직격탄을 맞은 지난 4월말 A골프장 K사장은 이같이 말했다. 성수기인 5~6월 예약률이 60%를 밑도는 곳도 있었고, 세월호 참사 7개월이 지난 지금도 예약률이 예년 수준에 못 미치는 상황이다. ‘국민이 슬픔에 빠져 있는 시기에 골프를 즐기면 안 된다’는 인식이 사회에 암묵적으로 퍼져 이용객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경기 파주에서 골프장을 운영하는 한 사장은 “재난이 터질 때마다 골프가 타깃이 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자본잠식 86곳, 대대적 구조조정 시급
16조원 시장, 스포츠산업 일자리 30%

문체부, 연간 400억원 부가금 폐지 시도
부담금 폐지→이용객 혜택 사실상 미미

골프는 다른 종목보다 산업적 파급효과가 큰 스포츠로 꼽힌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국내 골프산업은 2012년 기준 15조4250억원 규모(골프 시설·제조·서비스업 등 포함)다. 지난해에는 16조원이 넘은 것으로 추산된다.

여전히 친숙치 않은
‘사치 스포츠’골프

골프산업 종사자는 10만5300여명으로 전체 스포츠산업 종사자 수 34만2400여명의 30.8%에 달해 일자리 창출 효과도 크다. 박인비, 최경주 등 세계적인 선수들을 배출하며 국위선양에 한몫했으며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면서 확실한 인기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골프는 여전히 ‘사치 스포츠’라는 인식이 강해 국가적 재난이 있을 때마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으며 대중에게 여전히 친숙하지 않은 종목으로 남아 있다. 골프산업 종사자들은 이런 부정적인 인식을 털어내고 골프 인구가 늘어나야 국내 골프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문경안 볼빅 회장은 “미국처럼 골프가 대중화되면 골프장은 물론 골프용품 제조업체들까지 살아날 수 있다”고 말한다.
골프 대중화의 길목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히는 것은 골프장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이다. 회원제 골프장의 경영악화는 골프산업 생태계의 악순환 우려를 부르고 있다. 한때 골프장 사업은 인·허가만 따내면 대박이 났다. 자기자본 없이도 회원권을 팔아 모은 자금으로 공사를 마치면 예약이 어려울 정도로 손님이 몰렸다. 하지만 호시절은 옛말이 됐다. 입회금 반환 문제 때문에 경영난에 처한 회원제 골프장들이 줄줄이 법원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올 초 기준 법정관리대상인 골프장은 총 19곳이며 자본잠식 상태인 회원제 골프장도 86곳에 달한다. 서천범 한국레저연구소장은 “정부는 경영난을 겪고 있는 회원제 골프장들의 자연스러운 구조조정을 유도해야 한다”며 “국내 골프산업은 일반제(퍼블릭) 골프장 위주로 재편될 것”이라고 말했다.
10년 전인 2004년만 해도 퍼블릭 골프장은 회원제 골프장(132개)의 절반에 못 미치는 58개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말 231개까지 늘어 처음으로 회원제 골프장(230개)을 앞질렀다. 정부가 골프 대중화를 위해 대중 골프장에 일반세율을 적용한 것도 한몫했다.


하지만 퍼블릭 골프장의 양적 확대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서 소장은 “회원제에서 평일에 골프를 치려면, 입장료·카트피·캐디피를 모두 합쳐 1인당 21만원은 있어야 하고 퍼블릭도 16만원이 든다”며 “여기에 4만~5만원 정도만 내리면 국민들도 부담 없이 골프를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골프장에서 시행하고 있는 캐디·카트 선택제를 도입하면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골퍼들을 중심으로 ‘골프소비자운동’도 일고 있다. 사단법인을 추진하고 있는 이 단체는 간식, 음료수를 판매하는 ‘그늘집’의 바가지요금 등을 개선해야 할 사항으로 꼽았다. 또 골프장을 개방해 지역사회와 가족들의 놀이터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해 상반기 8조원 재정 부족 사태에도 불구하고, 문체부가 한해 수백억원 규모의 기금 재원인 골프장 부가금을 폐지하겠다는 법안을 입법 예고한 것으로 드러나 비판을 받고 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박주선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최근 공개한 자료를 보면 문체부는 지난 7월3일 골프장 부가금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의 ‘국민체육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입법 예고했다.
회원제 골프장 입장료에는 그린피 외에 세금이 포함돼 있다. 개별소비세와 교육세·농특세·부가가치세 등을 합쳐 1인당 2만1120원의 세금에다 그린피 액수에 따라 1000~30 00원의 ‘골프장 입장료 부가금(국민체육진흥기금)’이 매겨진다.
2009년 200억원, 2010년 194억원이었던 골프장 부가금은 2011년 418억원, 2012년 433억원으로 대폭 증가했으나, 부가금 징수를 중단한 지난해의 경우 체납액 25억원만을 징수했다.
하지만 부가금 징수 중단 조치가 법률적 근거 없이 진행됐다는 국회의 지적 이후 문체부는 올해 2월부터 부가금 재징수에 나섰다. 올해 4월 말까지 징수한 부담금 총액은 총 49억4600만원으로 당초 계획(7억5000만원)보다 6배 넘게 징수했다.

법원 문 두드리는
회원제 골프장

문체부는 입법예고문에서 “친환경 대중골프장 건립사업 종료에 따라 부가금 징수를 폐지한다”고 했으나 골프장 부가금의 사용 목적은 친환경 대중골프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문체부가 박주선 의원에게 제출한 ‘골프장 부가금의 사용내역’ 답변자료를 보면 부가금 징수금은 기금의 다른 수입 등과 함께 생활체육, 전문체육, 국제체육교류, 장애인체육회 지원, 대중골프장 조성 등 국민체육진흥사업에 지원된다. 특히 문체부는 이 같은 골프장 부가금 조항을 삭제하는 법률개정 계획을 꼭꼭 숨겨왔다.
정부는 국회법 제5조의 3에 따라 매년 1월31일까지 해당연도에 제출할 법률안에 관한 계획을 국회에 통지하여야 하며, 그 계획을 변경한 때에는 분기별로 주요사항을 국회에 알려야 한다. 하지만 문체부가 국회에 제출한 ‘2014년 법률안 국회 제출 계획’에는 골프장 부가금을 삭제하는 국민체육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빠져 있었다.
박주선 의원이 공개한 문체부의 ‘20 15년도 예산요구서’를 보면 문화부의 2015년 기금 수입 계획 중 ‘골프장 부가금 397억원’이 편성돼 있다. 하지만 정부 입법 계획대로 국민체육진흥법이 개정돼 내년부터 시행될 경우 당장 397억원 규모의 예산 공백이 발생함은 물론 앞으로도 매년 400억원 규모의 예산이 사라지는 셈이다.
박 의원은 “작년 8조, 올해 상반기 10조원의 세수 부족으로 ‘신용카드 공제 축소’ 등을 검토하는 정부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골프장 이용객에게 부과되는 1000~3000원의 부가금을 깎아주기 위해 400억원 규모의 세수 공백을 추가로 야기하고 있있다”고 강조했다.
또 “문체부는 400억원 규모 세수를 통한 공익보다 ‘골프장 이용객 3천원’을 더 중시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면서 “국회에 통지하지도 않은 정부입법 계획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가금 삭제 계획
꽁꽁 숨긴 이유는?

한편 문체부의 2013년 12월 골프장 부가금 폐지 후 요금 삭감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회원제 골프장 186개소 가운데 2곳 중 1곳(56%)은 입장료를 동결 또는 인상해 부담금 폐지로 인한 골프장 이용객의 혜택은 사실상 미미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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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