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사각지대 '정당보조금' 사용실태 추적

"정당보조금 감사가 국회 탄압이라고?"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각 정당의 국고보조금 불법 사용 관행이 도를 넘어선 것으로 밝혀졌다. 정책개발비로 지급된 국고보조금을 당 지도부의 회식비나 화환 값은 물론이고, 심지어 유흥업소 술값으로도 사용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게다가 지난 33년간 1조원이 넘는 돈이 정당 국고보조금으로 지급됐지만 각 정당들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감사를 받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먹구구식 정당 국고보조금의 사용실태를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각 정당의 국고보조금 불법 사용 관행이 도마 위에 올랐다. 새정치연합의 평당원인 이충렬씨가 정당 국고보조금의 불법 사용 관행을 폭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씨는 지난 1991년부터 민주당(현 새정치연합) 당원으로 활동해왔다. 이씨의 폭로내용은 충격적이다. 정책개발비로 쓰여야 할 국고보조금을 당 지도부의 회식비나 술값 등으로 사용해놓고 영수증을 허위로 기재해 선관위에 보고해 왔다는 것이다.

줄줄 샌 혈세

국고보조금은 정치자금법에 따라 30%는 정책개발비에 사용해야 하고 여성정치발전과 지방 시·도당에도 각각 10%씩 사용해야 한다. 인건비·사무비·조직활동비로 사용할 수 있는 돈은 정해져 있다. 그러나 국고보조금을 실제 어디에 쓰는지는 사실상 당 마음대로라는 게 이씨의 증언이었다. 이씨는 이에 대해 “야바위판이 따로 없다”고도 했다.

정당 국고보조금은 불법 정치자금 축소 등을 명분으로 지난 1980년부터 시작된 제도다. 중앙선관위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내용을 보면 1980년부터 지난해까지 33년간 지급된 정당 국고보조금의 규모는 총 1조840억원에 이른다.

이처럼 엄청난 돈이 지급됐지만 구체적인 사용내역은 공개된 적이 없다. 정치자금법상 정당 국고보조금은 인건비, 사무실 운영비, 정책개발비, 당원 교육훈련비, 조직활동비, 홍보비, 선거관계비 등의 용도로만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정당 국고보조금에 대한 제대로 된 감사가 단 한 번도 실시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지난 2001년 김대중정부 말기에 참여연대가 정당 국고보조금을 감사하자는 캠페인을 벌이면서 감사원이 정당 국고보조금을 감사하려고 했지만 당시 야당이자 국회 다수당이었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은 정당 국고보조금에 대한 감사가 야당 탄압이라며 결사반대했다. 정권이 바뀌어도 마찬가지였다. 야당 탄압이라는 구호 앞에 정당 국고보조금 감사 추진은 늘 흐지부지 끝났다.

정당 국고보조금 문제에서만큼은 여야가 모두 공범이었다. 선관위도 이런 문제점을 인지하고 “(국고보조금을 포함한) 정당의 정치자금 수입·지출 총괄표와 지출 증빙서류 명세서를 선관위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정치자금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꾸준히 의견을 내오고 있지만 정치권의 외면으로 실현되지 않고 있다.

어느새 정당 국고보조금은 아무도 손을 댈 수 없는 ‘성역’이 돼버렸다는 설명이다. 오죽하면 정당에서 굴러다니는 국고보조금은 먼저 본 사람이 임자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국민 혈세로 딴짓 하는 여야
감사 한번 없이 1조원 '펑펑'


또 각 정당들은 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를 실시하거나 유세차를 빌리는 등에 국고보조금을 사용하는데 불투명한 재정구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부정부패가 생겨날 가능성이 크다. 정당 국고보조금이 사실상 감사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면서 지금 각 정당 내에서는 법률상 ‘횡령’이나 ‘배임’에 해당되는 일들이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정당 국고보조금에 대한 제대로 된 감사도 벌인 적이 없지만 중앙선관위는 간간히 정당 국고보조금의 불법사용 사례를 적발해 왔다. 그 사례들을 살펴보면 민주당(현 새정치연합)은 지난 2004년 정책개발비와 경상보조금 1억5200여만원을 세 차례에 걸쳐 인건비 등으로 돌려썼다.

법정한도를 넘겨 유급직원들을 고용하고 이들의 봉급으로 국고보조금 3억여원을 쓰기도 했다.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역시 초과 고용한 유급직원 인건비로 1억934만원을 전용해 사용하다 적발됐다. 또 네 차례에 걸쳐 영수증을 허위 보고해 1억2000여만원을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정당은 ‘정책개발비’로 술값을 냈다가 발각되기도 했다. 18대 국회에서 활동했던 창조한국당은 2009년과 2011년 심야시간대에 유흥업소와 맥줏집에서 회식비 명목으로 145만원을 지불한 뒤 정책개발비로 썼다고 허위로 보고했다가 적발됐다.

사실 정당이 선관위에 보고하는 회계 내역은 매해 같은 양식에 따라 이뤄지기 때문에 적발되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다. 국고보조금을 법정용도 외에 사용했더라도 영수증을 허위로 기재한 뒤 정책개발비로 썼다고 보고하면 그만이다. 게다가 선관위도 큰 문제가 있지 않으면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간다. 국회가 선관위에 대한 국정감사라는 칼자루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 정당 국고보조금에 대해 제대로 감사를 벌인다면 불법사용 사례는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것이 정치권 인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씨는 이와 관련 한 언론 인터뷰에서 흥미로운 주장도 했다. 이씨는 “새정치연합이 과거 내부 감사를 통해 정당 국고보조금 문제를 확인한 것으로 안다”며 “2010년 지방선거와 전당대회를 치르고 나서 감사보고서가 작성됐지만 그냥 덮었다고 들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범법사실이 기록돼 있는 걸로 안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특히 야당에서 정당 국고보조금 불법유용이 더 심각하다고 증언했다. 야당은 선거 때마다 분당과 통합을 반복하다보니 그 과정에서 조직이 비대해지고 인건비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씨의 주장에 따르면 정책개발비가 매년 수억원씩 인건비로 전용된다는 소문이 당내에 파다했다고 한다.

거세지는 개혁 요구

상황이 이쯤 되자 여야 내에서 정당 국고보조금 집행 관행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새정치연합 조경태 의원은 내년 전당대회에 국고보조금 사용내역 공개를 공약으로 걸고 출마할 예정이다.

새누리당 이인제 최고위원도 “각 정당에는 예산 편성이라고 하는 개념이 아예 없기 때문에 국고보조금이 쌈짓돈처럼 사용되고 있다”며 “국고보조금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국가 예산과 똑같이 당 예산도 편성과 의결, 집행 과정이 공개되고 감시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외국의 사례를 들여다보면 미국의 경우는 각 정당에 지급되는 국고보조금은 물론이고 의원 개개인의 재정 입출금 내역까지 모두 선관위를 통해 공개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쌈짓돈처럼 사용되어 왔던 정당 국고보조금을 수술대에 올려놓고 개혁할 때라는 지적이다.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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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APEC 정상회의(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이하 정상회의)가 경북 경주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20개 나라 정상이 초청 대상으로, ‘외교 슈퍼 위크’가 시작된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각국의 강경파들이 경주로 모이면서 서로 어떤 합을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관세 문제가 급물살을 탔다. 지난 7월 협상 시한 하루를 앞두고 한미 간 무역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지 약 세 달 만이다.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세 협상이 매끄럽게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노브레이크 미국 관세 쟁점은 한국이 상호 관세를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약 500조원)에 대한 지불 방식이다. 한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줄이고 투자 기간을 늘리겠다는 방침이지만,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최대한 현금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현금 선불 투자를 고집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지가 협상 타결의 관건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상회의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까지도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큰 틀에서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세밀한 부분이나 주요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 등 의견이 모이지 않은 탓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각)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회담한 뒤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김 실장은 ‘마지막 쟁점이 조율됐느냐’는 특파원들 질문에 “쟁점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두 개라고 했고, 아주 많지는 않다”며 “오늘 남아있는 쟁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진전이 있었다. 만나면 조금 더 상호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고 답했다. 양국의 대면 협의가 사실상 이날 종료되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두 사람의 결단만 남았다. 미중 간의 관세 협상 결과와 이번에 이뤄질 두 정상의 만남이 한국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중국과 미국은 지난 4월부터 보복 형식으로 서로를 향해 관세 허들을 높여갔다. 그러던 중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면서 질주하는 미국에 제동을 걸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100% 관세를 추가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관세 전쟁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추가 관세가 현실화하면 중국이 미국에 내야 할 관세는 157%에 달하는 만큼 미중 간의 팽팽한 대립이 이어졌다. 좁히지 못한 ‘디테일’ 막판 협상 난항 이 “우리는 동맹…상식과 합리성 공유” 중국이 밸브를 잠그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희토류와 핵심 광물 공급 협력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는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 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일본도 일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희토류 삼각 동맹이 이뤄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백악관 로즈가든 클럽에서 주재한 오찬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국에서 만나 많은 것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대화의 여지를 열어뒀다. 이어 “우리가 협상에서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나는 시 주석과 좋은 합의를 하고 싶고, 시 주석이 중국을 위해 좋은 합의를 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 합의는 공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 한국 경제 성장률을 비롯해 수출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전망과 관련해 “조정·교정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펀드를 둘러싼 이견에 대해서는 “결국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왜냐하면 우리는 동맹이며 서로 상식과 합리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11년 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방한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직 한중 관계에 큰 잡음은 없지만 훈풍이 불지 않는 만큼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한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대해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정부의 첫 주중대사인 노재헌 신임 대사는 “(시 주석의) 국빈 방문이 계획됐기 때문에 한중 관계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한다”며 “양국 지도자 간에 우호와 신뢰 관계를 다시 굳건히 하고 그 초석 위에서 한중 관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친하지?” 서먹해진 중국 이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시험대에 놓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에 초청받았지만 의전 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신 자리했다.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여 여부를 놓고 국민의힘이 친중 프레임을 굳히자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앞서 백악관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축사를 하던 중 뜬금없이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 우려”라며 중국을 향해 견제구를 날렸다. 한국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임을 강조할 경우 미국이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한중 관계 개선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인 만큼 한국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 김지수 한반도 미래경제 포럼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나오던 때랑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안보와 경제가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런 점에서 미국이 더 중요해졌다”고 봤다. 이 대통령 역시 안미경중 노선에 대해 “과거처럼 그런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나아가 봉쇄 정책을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몇 년 사이 자유 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미국의 정책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 고 부연했다. ‘여자 아베’ 경주 데뷔 김 대표는 “미국의 최대 경쟁국은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중국을 제어하기 위해 한국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유리한 전략을 모두 취하고 있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중국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미국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중국을 적대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으로 한국 전역에 퍼진 반중 혐오 시위도 고려 대상이다. 최근 국민의힘 등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반중 정서가 확대되면서 외교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노 대사는 중국 주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주중대사관을 상대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 내 반중·혐중 시위를 묻는 말에 “당연히 우려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고 양국 국민의 우호 정서 함양·증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근거 없고 음모론에 기반한 행위에 대해서는 조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시적 비자 면제 정책에 대한 자국민의 우려에 대해서도 “불법 체류 현황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범죄 같은 부분은 입국자 등을 잘 지켜보면서 필요하면 단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 21일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는 이번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본격 대외 행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 성향이 짙은 탓에 한일 관계가 틀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권 초기인 만큼 우호적 태도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10선 의원으로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일본 정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비세습 여성 정치인으로 강경 보수 성향이라는 평가와 함께 입지를 다져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4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당권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1999년부터 자민당과 협력해 온 중도 보수 성향인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해 표가 분산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강경 보수 성향이자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를 새롭게 끌어들이면서 극적으로 총리직에 당선됐다. 서로 싫다는 미·중, 사이에 낀 한국 일본까지 강경파 ‘폭풍 속 한반도’ 이 대통령은 신임 일본 총리가 선출된 것에 대해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경주에서 총리를 직접 뵙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우리는 새로운 한일 관계의 60년을 열어가야 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 역시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중대한 시기에 총리와 함께 양국 간, 그리고 양 국민 간 미래지향적 상생 협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 아울러 셔틀 외교를 토대로 양국 정상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훈훈한 축하 인사와 달리 한일 관계는 다시 시험대에 놓였다. 온건하다고 평가받았던 이시바 시게루 내각 체제만큼 협력 기조가 이어질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2021년 총재 선거 당시 고 아베 전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신임 보수 전사로 떠올랐다. 이번 총리 선거에서 역시 아베 전 총리의 파벌로 형성된 아베파의 지지가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현지 신문은 자민당의 연정 상대가 공명당에서 유신회로 바뀌면서 다카이치 내각의 보수색이 선명해졌다고 해석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부터 야스쿠니 신사를 꾸준히 참배해온 만큼 한국 과거사와 독도 영토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놓고 이정부와 충돌할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에 보여준 강경 보수 행보는 우익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한일 외교에 있어서는 이시바 내각과 마찬가지로 온건한 노선을 택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에 우호적인 뜻을 내비쳤으며 가을 예대제 기간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것으로도 전해진다. 한일 관계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다카이치 총리의 온건 행보가 일시적일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역대 총리들이 그랬듯 지지율이 떨어지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반한 감정을 부추겨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유도할 것이란 점에서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이 국가 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미, 한중, 미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릴 가능성이 크고 비핵화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남·북·미 간의 대화 물꼬를 튼다면 경주를 무대로 ‘평화 한반도’ 기조를 형성하는 일등 공신 역할을 노릴 수 있다. 눌리거나 손잡거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이 대통령에게 가장 큰 변수는 아무래도 미국이다. 각 국가 정상마다 성향도 다르고 원하는 바도 다른 만큼 미국부터 삐끗하면 차후 일정도 줄줄이 꼬인다”면서 “조급하게 나서면 될 일도 안 되는 게 외교 문제다. 한국은 한국만의 강점이 있다. 우리 쪽에서도 몇 가지 카드가 있을 테니 지금으로서는 정부를 믿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필 지금? 미사일 쏜 북한 속내 지난 22일 북한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미·한중 정상회담 등에서 북한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미국을 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한미군과 우리 군의 반응이 엇갈린 점 역시 주목된다. 주한미군은 미국의 한미 동맹에 대한 공약이 굳건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불법적이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북한에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우리 군은 통상 해오던 미사일 발사 규탄 성명을 내지 않았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정부가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만큼 이를 의식해 톤 조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