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막힌 스토리> 울산 입양아 학대사건 전말

3세 아이 데려가 스트레스 풀었다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한 입양아가 양모로부터 상습적인 폭행에 시달리다 사망했다. 양모는 쇠파이프를 들고 입양아를 마구 내리쳤다. 심지어 고추를 탄 물을 먹이기까지 했다. 고작 25개월 된 여아에게 한 짓이었다. 이번 사건으로 허술한 입양심사와 사후 관리 문제도 수면위로 올랐다. 양부모는 서류를 위조해 입양을 받았다. 세 자녀 지원금을 받기 위해 입양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입양한 두 살배기 딸을 마구 학대해 숨지게 한 인면수심의 양모에게 경찰이 살인죄를 적용했다. 지난 4일 울산지방경찰청은 전모(25개월·여)양을 숨지게 한 양모 김모(46)씨를 수사한 결과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학대한 전모가 드러났다며 이처럼 밝혔다.

지원금 노리고?

김씨는 지난달 25일 오후 11시께 울산시 중구의 자신의 집에서 전양이 콘센트에 젓가락으로 장난을 치자 75mm짜리 철제 쇠파이프(행거지지대)로 전양의 머리와 팔, 다리 등을 30분간 때렸다. 또 매운 고추를 잘라서 물에 탄 뒤 강제로 마시게 하고, 샤워기로 찬물을 틀어 얼굴과 온몸에 뿌렸다. 전양은 양모 김씨가 자신을 폭행하는 것을 피하려다가 문과 방바닥에 머리를 부딪혔다. 

이튿날 오전 3시께 전양에게서 열이 나자 김씨는 좌약을 넣은 후 방치했다. 7시간 뒤 전양의 몸이 차가워지고 호흡이 고르지 못했지만 김씨는 스마트폰으로 멍을 지우는 방법을 검색했을 뿐 전양을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았다. 이후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달은 김씨는 26일 오후 3시35분께 119에 신고했다. 전양은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숨진 상태였다.

전양의 사인은 ‘외상성 경막하 출열’이었다. 부검 결과 외부 충격에 의해 머리뼈 속에 있는 경막 아래에서 피가 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부검 결과를 토대로 김씨가 전양의 머리를 때렸는지를 집중적으로 조사했지만 그런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씨의 학대는 상습적이었다. 김씨는 지난달 24일 친딸의 중학교 무용발표회에서 전양이 무대에 올라가 뛰어 다니고, 집으로 돌아와 닭고기를 먹던 중 침을 흘리자 손으로 머리 등을 수차례 폭행하기도 했다. 숨지기 바로 이틀 전이었다. 경찰이 김씨 주변인들을 조사한 결과 지난 7월부터 김씨 집에서 아기 우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 9월에는 울고 있는 전양에게 김씨가 고함을 치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진술도 나왔다.

김씨는 또 자신의 몸 쪽으로 품었던 전양을 바닥에 강하게 던지면서 “쟤 때문에 되는 일이 없다. 집에 들어오고 난 후부터 재수가 없다. 자녀 3명이면 지원금이 나온다던데 돈도 얼마 나오지 않더라”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훈육 차원에서 아이를 플라스틱 자로 5∼6차례 때렸을 뿐”이라며 다른 범행을 부인했다.

인근 주민들은 전양을 똑소리 나는 귀여운 아이로 기억하고 있다. 

김씨는 현재 별거 중인 남편과 함께 지난해 12월 전양을 입양했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입양 이유를 “아이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에게 친딸과 아들이 있지만 이들에 대한 학대 사실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김씨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과시욕이 심했고, 사치를 일삼았다는 주민들의 진술도 나왔다. 외출 시 늘 화려한 옷을 입고 지역 봉사활동을 다니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양모가 25개월 여아 상습폭행해 사망
쇠파이프로 때리고 매운 고춧물 먹여

경찰은 “연약하고 저항할 힘이 없는 아이를 지속적으로 폭행한 것은 사망할 것을 알면서도 학대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해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경찰은 또 김씨가 지난해 12월 전양을 입양하는 과정에서 조건에 충족하고자 부동산임대차계약서 등을 위조한 사실을 확인,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도 적용키로 했다. 그리고 이와 별도로 별거중인 김씨의 남편 전모(50)씨를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전씨가 전양의 친권자인 양아버지로서 보호, 양육, 치료, 교육 등의 의무를 어기고 양육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도시가스가 끊기고 단전·단수가 되도록 방치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전양이 어떻게 입양기관에 보내졌고, 친부모가 누구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는 상태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느슨한 입양 절차와 심사가 도마에 올랐다. 김씨가 전양을 입양하는 과정에서 위조한 서류를 관련 기관에 제출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입양은 ▲입양을 원하는 부모의 신청과 서류 제출 ▲입양부부 가정조사 ▲가정법원의 입양허가 ▲입양아 인도와 사후관리 등 크게 4단계로 진행된다.

신청과 서류 제출 단계에서는 가족관계증명서 등 기본서류와 함께 재산과 직업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시해야 한다. 이어 예고 방문과 불시 방문 등 최소 2회 이상의 가정조사가 이루어진다. 여기까지 아무 문제가 없으면 법원의 허가가 떨어진다. 입양 이후에도 부모와 입양아의 상호 적응상태 관찰 등 사후관리를 받아야 한다. 

김씨 부부는 올해 1월 입양을 신청하면서 부동산임대계약서와 재직증명서 등을 함께 제출했다. 그러나 이 서류들은 모두 김씨가 위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주택, 자영업을 하는 남편의 사무실, 한때 운영한 식당 등 3곳의 임대계약서를 냈는데 모두 계약금액을 고친 것으로 확인됐다.

주택은 실제로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5만원’인데 서류상으로는 ‘전세 3500만원’으로 고쳤다. 사무실은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40만원’이지만 ‘전세 5000만원’으로, 식당은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150만원’이지만 ‘전세 6000만원’으로 각각 바꿨다. 김씨가 위조한 계약서만 보면 부동산 임대보증금만 총 1억4500만원에 달한다. 표면적으로는 상당한 자산가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김씨의 살림살이는 달랐다. 주택 월세가 약 10개월이나 밀렸고, 도시가스비나 전기료가  수 개월 연체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또 현재 울산의 한 무용협회에 소속돼 경제적 활동을 하는 것처럼 재직증명서를 제출했다. 이 역시 수년 전 서류를 위조해 만든 것이라고 경찰은 설명했다.

현행법은 입양 부모의 자격조건으로 ‘양자를 부양하기에 충분한 재산이 있을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결국 김씨는 이 조건을 충족하기 서류를 위조했고, 지난 6월 법원으로부터 입양허가를 받았다.

제도 맹점 드러나

입양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김씨 부부가 별거 중이었다는 사실도 논란이다. 김씨가 전양 등 3명의 자녀와 집에서 살고, 남편은 사무실에서 생활해왔다. 왕래는 했지만 화목하지 않았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그러나 김씨 부부는 이런 사실을 숨겼다. 경찰은 입양절차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조사했지만 범죄 의도를 확인할 수 없어 혐의적용이 어렵다고 밝혔다. 

‘공개입양’은 부모 자산이나 직업 등을 주위에 확인할 수 있어 입양 절차의 신뢰성이 확보되지만, ‘비공개입양’의 경우 비밀 유지가 최우선 조건이어서 검증과 심사가 비교적 허술하다는 단점이 있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칠곡계모 사건은?
 

여덟 살 난 의붓딸을 때려 숨지게 한 ‘칠곡 계모’에게 열두 살 된 언니를 학대한 혐의가 추가돼 징역 15년이 구형됐다.
 
지난 3일 대구지검은 대구지법 제21형사부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임모(36)씨에 대해 강요와 아동복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15년을, 친부 김모(38)씨에게는 징역 7년을 각각 구형했다.

칠곡계모사건은 지난해 8월 경북 칠곡군에서 계모에게 상습적으로 폭행을 당한 김양이 복통을 호소한 뒤 병원에 실려와 그대로 숨지면서 알려지게 됐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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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