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스텔라>, <그래비티>와 비교하지 마라

"자리잡을 땅 찾아야 해" 인류에 생존 메시지의 화두 던졌다

[일요시사 문화팀] 김해웅 기자 = "우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별들 사이에서 우리가 어디쯤 있는지 궁금해하곤 했지. 하지만 이제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우리가 자리 잡을 땅이 어딘지 찾아야 해."

<인터스텔라>(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극중에서 '쿠퍼'(매튜 매코너헤이)는 이같이 말한다. 놀란과 함께 세 시간 동안 우주를 느끼고 극장을 나온 관객은 이 대사가 쿠퍼의 말이 아님을 알게 된다.

어쩌면 '하늘을 올려다보는 인간'은 놀란 자신이다. '땅을 보며 사는 인간'은 자신을 제외한 다른 영화감독이다. 놀란은 우회적으로 자신의 야망을 드러낸다. 놀란의 야망은 꿈으로 남지 않는다. 이것이 놀란과 그를 제외한 다른 감독의 차이다. 놀란은 <인터스텔라>를 통해 우주를 본다. 그는 인간이 가늠하기 힘든 무한대의 시공간을 꿰어 결국, 우주를 뛰어넘는 대서사시를 창조해 냈다.

가까운 미래, 지구는 더는 인류가 생존하기 힘든 곳이 됐다. 먹을거리를 구하기조차 힘든 이 땅에 남은 건 절망뿐이다. 테스트 파일럿 쿠퍼는 아들 톰(케이시 애플렉)과 딸 머피(매켄지 포이/제시카 차스테인)와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아간다.

어느 날 쿠퍼는 머피가 발견한 알 수 없는 표식을 따라 이동한 곳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나사(NASA) 본부를 발견한다. 나사는 쿠퍼에게 인류가 살 새로운 행성을 개척하기 위한 우주여행을 제안한다. 쿠퍼는 인류의 미래를 위해 가족을 남겨둔 채 우주로 떠난다.

<인터스텔라>는 영화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기술력으로 우주에 대한 시청각적 체험을 극대화했다. <인터스텔라> 이전, 우주를 가장 현실적으로 그렸다는 평가를 받는 <그래비티>(감독 알폰소 쿠아론)의 우주는 <인터스텔라>의 규모 앞에서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래비티>가 성층권 주변의 우주를 보여줬다면 <인터스텔라>는 화성과 토성을 지나 웜홀을 통해 태양계를 벗어나고 태양계 밖 행성들에서 블랙홀을 통해 5차원 세계까지 도달한다.


첫날 22만 돌파
예매율 80% 이상
'극장가 돌풍'

놀라운 건 놀란이 그리는 우주가 철저한 고증을 통해 완성됐다는 점. 놀란과 함께 각본 작업을 한 조너선 놀란(크리스토퍼 놀란의 동생)이 4년 동안 우주와 상대성이론을 공부했다는 이야기는 익히 알려졌다. <인터스텔라>에서 현재 물리학이 도달한 이론적 토대를 벗어난 설정은 없다. 이론을 시각화하는 작업은 또 다른 문제다.

이를 위해 놀란은 상상력 대신 현실을 더 철저히 반영하는 길을 택했다. 회전하면서 나아가는 우주선과 우주선끼리의 도킹 장면이 알 수 없는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이유는 그것이 실제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우주의 광경이 아름답고 따뜻해 보이지만, 잔인한 것 또한 같은 이유다. 놀란은 우주라는 세계 그 자체, 물리학 그 자체가 상상력을 통한 묘사보다 위대할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덕분에 <인터스텔라>는 우주선의 외형과 움직임, 우주선의 발진, 이 우주선이 지나는 우주, 행성들, 웜홀, 태양계 밖의 모습, 블랙홀, 블랙홀 안의 모습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로 천체물리학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이 사실은 놀란이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우주에 다가갈 수 있는 극점에 도달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인터스텔라>는 SF 장르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탑을 쌓기 위해 그 탑이 올라갈 수 있는 대지를 일군다. 놀란이 우주를 통해 이야기하는 건 인류의 구원은 새로운 행성에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을 그 행성으로 향하게 하는 '사랑'이라는 가치에 있다는 것이다. <인터스텔라>의 인간은 우주의 거대한 힘에 절망하지 않는다. 그보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어떤 것도 할 수 없을 때, 그 무력함에 눈물을 흘린다.

우주와 가족을 단선적으로 엮었다면 그저 뛰어난 기술력을 보여준 영화쯤으로 남았겠지만 <인터스텔라>는 우주의 무한함과 사랑의 숭고함 앞에 선 인간의 유한함을 보여줌으로써 이야기에 무게를 더한다. 인간이 아무리 우주를 휘젓고 다닐 수 있게 돼도 그들은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 앞에 무기력하다. <인터스텔라>의 페이소스가 극대화되는 지점은 시간을 어찌하지 못하는 인물들이 좌절할 때이다.

누군가는 세계와 인류에 대한 낙관과 긍정이 크리스토퍼 놀란답지 않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놀란은 세상을 근심할지언정 부정한 적이 없다. 방식이 달랐을 뿐 그는 영화를 통해 대개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haewoo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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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