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자금' 국내 유입설 진상

김정일 공작금으로 선거 지원했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심판 과정에서 북한발 정치자금 의혹이 불거졌다. "현역 국회의원 2명이 북한에서 건너온 자금을 지원받아 선거에 출마했다"는 내용이다. 지난 21일 주체사상 이념서인 '강철서신'의 저자로 알려진 김영환씨는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정당 해산심판 청구 16차 공개변론에 정부 측 증인으로 출석해 이같이 주장했다. 그러나 의혹의 당사자인 두 의원이 법적대응을 불사하며 결백을 주장하고 있어 만만치 않은 파장이 예고되고 있다. 고도로 계획된 '종북몰이'일까. 아니면 밝혀지지 못한 '진실'이 있는 것일까.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다른 곳도 아닌 헌법재판소에서 관련한 증언이 나온 게 빌미가 됐다. 그리고 이 '말'을 하루 종일 특종으로 보도할 수 있는 'TV'가 있다는 게 과거와 다른 점이다.

민족민주혁명당(이하 민혁당) 총책이었던 김영환씨는 지난 21일 헌법재판소에서 구미가 당길 증언을 했다. 이날 김씨는 "1995년 지방선거에 출마한 이상규·김미희(현 통합진보당) 의원에게 각각 500만원씩 자금을 지원했고, 이 돈이 북한에서 받은 공작금이었다"고 말했다. 현역 국회의원이 과거 북한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주장에 언론은 관심을 기울였다.

김영환 '배신'
이석기 '감옥'

김씨는 1990년대 북한과 연계된 지하혁명조직 민혁당의 창당공신으로 알려져 있다. 다수 언론은 그를 '주사파의 대부'라고 칭하지만 이제 '대부'라는 수사는 적절치 않다는 게 '운동권'의 시각이다.

실제 김씨는 북한이 관리하는 점조직원에 불과했다. 지하조직의 핵심 인물들은 서로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심지어 서로의 얼굴도 모른 채 북한의 지령에 따라 움직이는 일이 잦았다.


서울대 82학번이었던 김씨는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북한의 주체사상을 공부했다. '독재자'에 맞서기 위해 또 다른 '독재자'를 흠모한 것이다. 그의 필명으로 사용된 '강철(Steel)'은 소련의 지도자 스탈린을 추종해 지어졌다고 한다.

김씨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1989년 김씨는 북에서 남파된 간첩 진운방(가명·현재 사망)과 접촉했다. 소련이 붕괴한 1991년 김씨는 북쪽에서 내려 보낸 잠수함을 타고 황해도 해주에 발을 디뎠다. 김씨는 북한이 제공한 헬기를 타고 김일성 주석이 있는 묘향산에 도착했다. 이 자리에서 김씨는 김 주석에게 남한지하조직 건설을 승인받았다. 남한으로 내려온 김씨는 1992년 3월 비밀조직 민혁당을 결성했다. 민혁당은 김일성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적시했다.

당사자 두 의원 결백 주장
"왜 수사 안했나" 강력 반발

김씨는 이 과정에서 북한으로부터 비밀리에 돈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당시 보도내용을 참조하면 북한은 공작금 명목으로 인천 강화도 인근에 미화 40만달러를 매립했다. 김씨는 이 돈을 땅에서 파낸 뒤 필요할 때마다 환전해 사용했다.

민혁당 중앙위원장(사실상 서열 1위)이었던 김씨는 당 하부조직에 1995년 지방선거와 1996년 총선에 입후보하라고 지시했다. 김씨는 해당 지시를 북한으로부터 받았다고 주장했다. 민혁당의 결정에 따른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성남에서는 김미희 의원이, 구로에서는 이상규 의원이 각각 시·구의원 후보로 출마했다. 김씨는 "이때 후보 1명당 500만원씩 자금을 지원했다"고 주장했다.

김씨 주장에 신빙성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관련 보도와 민혁당 사건 판결문을 일부 참조했다. 훗날 김씨는 민혁당 사건에 연루돼 이른바 '사상전향'을 하게 된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김씨가 체포될 당시 민혁당 중앙위원회는 모두 3명으로 구성돼 있었다. 지금은 수학강사인 하모씨와 대형로펌 소속 변호사가 된 박모씨, 그리고 김씨가 중앙위원회 멤버였다.

이들 중 김씨는 북한으로부터 직접 지령을 받아 조직을 장악했다. 민혁당 사건에서 국정원은 주사파 조직인 '반제청년동맹'을 민혁당의 전신으로 지목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조직의 총책은 하씨였다고 전해진다.


과거 한총련 지근에서 활동했던 한 관계자는 "199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북한과 직접 접선하는 연락책이 있었다"며 "하지만 그들만의 후계구도가 명확해 후계자로 낙점되지 못하면 누가 연락책인지 알 수 없었고, 외부로도 그 사실을 발설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당시 운동권 문화 특성상 북한과 직접 연락을 취하는 비밀 조직원이 이른바 '판'을 주도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여러 사정을 종합할 때 북한을 다녀온 김씨가 조직의 최종 결정권자였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김씨는 1995년 민혁당 자진 해산을 결정한다. 북한정권에 회의감을 느꼈다는 게 주된 이유다. 박씨 역시 해산에 동의했다. 하지만 하씨는 신념에 따라 끝내 해산을 거부했다. 이후 하씨는 1999년 민혁당 사건 핵심인물로 지목돼 법원에서 징역 8년형을 선고받고 복역(2003년 참여정부 당시 특별사면)했다.

일부 보수언론은 과거 하씨가 민혁당 중앙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하부조직인 경기남부위원회를 장악했었다는 점을 들어 통합진보당 내분사태의 배후로 엮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경기남부위원회의 위원장은 내란선동죄로 수감된 이석기 의원이었다.

그러나 하씨는 2012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보수언론이) 나를 도구로 이용해 북과 연결시키는 수단으로 쓰고 있다"며 "지난해 아버님 상 당했을 때 문상 온 것 말고는 이석기 의원과 10여년 동안 만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기록 있는데
믿을 수 있나

그런데 하씨는 김씨에 의해 또 다시 과거로 소환됐다. 먼저 김씨는 1995년께 문제의 자금을 하씨를 통해 이상규 의원에게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또 김씨는 같은 기간 하씨를 통해 이석기 의원에게 돈을 건넸는데 이 돈이 결국 김미희 의원에게 전달됐다고 주장했다. 이때 이상규 의원은 민혁당 수도남부지역사업부장을 맡고 있었다. 이상규 의원과 김씨는 서울대 법대 선후배 사이며 같은 서클에서 활동한 바 있다.

1999년 <한겨레>와 <동아일보> 등이 보도한 민혁당 사건 수사결과를 종합하면 김씨는 1995년 지방선거에서 이상규 당시 후보 등에게 500만∼1000만원을 지급했고, 1996년 총선에서는 이모씨 등에게 1000만원을 지급했다. 자금을 받은 것으로 의심된 사람은 모두 6명이었고, 재판 과정에서 이상규 의원의 이름은 실제로 등장한다. <민중의 소리>는 "김씨가 1995년 지방선거에서 이상규 당시 후보를 포함한 3명에게 각 500만원을, 1996년 총선에서는 이모 후보 등 2명에게 각 1000만원을 지원한 것으로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단 김미희 의원은 판결문에 언급되지 않았다. 김씨는 복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재판기록에 김미희 의원의 이름이 명시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또 김씨는 "김미희 의원이 민혁당 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북한 돈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20년 가까이 지난 일인 데다 자금 흐름이 불분명해 이 돈이 실제로 전달됐는지는 돈을 주고받은 당사자만이 알 수 있다. 한 가지 의문점은 김씨가 1996년에도 부산지역 총선에 출마한 이씨에게 자금을 대줬다는 사실이다. 김씨는 1995년께 민혁당 해산을 선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김씨가 민혁당 활동에서 손을 뗀 시기는 이보다 늦은 1997년께로 추정된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후 민혁당 당원들은 대부분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이렇듯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했던 민혁당 사건은 1998년 남한으로 내려왔던 진운방이 북한으로 돌아가려다 사망하면서 새 국면을 맞았다. 당시 진운방은 타고 있던 반잠수정 안에서 남한군의 공격으로 최후를 맞았다. 3개월이 지난 1999년 1월 인양된 반잠수정 안에선 북쪽이 작성한 각종 암호문이 나왔고, 이 가운데는 민혁당과 관련한 핵심 정보가 있었다. 국정원은 자체 해산한 민혁당을 상대로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중국 체류 중이던 김씨는 한국으로 입국해 자수했다. 김씨는 사상전향서를 쓰고 공소보류 처분을 받았다. 함께 활동한 조유식(현 알라딘서점 대표)씨 등도 수사에 협조한 대가로 기소되지 않았다. 민혁당 해체 후 조직 재건에 나섰던 하씨 등 일부만이 중형을 선고 받았다.


당시 수사망을 피해 은신한 이석기 의원은 2002년 체포돼 반국가단체구성 혐의 등으로 뒤늦게 실형(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관련 재판에서 이석기 의원은 "민혁당 경기남부위원회는 존재하지 않는 조직"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부인이 증인으로 나서 민혁당 활동을 진술한 사실이 결정적인 증거로 채택됐다고 전해진다. 당시 이석기 의원이 북한 자금을 받아 선거에 활용한 혐의는 판결문을 통해 확인되지 않았다. 이석기 의원과 그의 부인은 민혁당 사건 후 법정 이혼했다.

통진당 해산심판 과정서 의혹 제기
김영환 정부 증인으로 출석해 발언


김씨의 증언 다음날 김미희·이상규 의원은 허위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김씨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지난 22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씨는 본인의 새빨간 거짓말에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며 "허무맹랑한 종북선동에 연민의 정마저 느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이번 망언은 검찰과 법무부, 국정원이 공모해 진보당을 없애려는 해산 선동"이라고 규정하고 "김영환의 망언에 대해 향후 법적인 책임을 물어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전했다.

두 의원은 언론사에 배포한 보도자료에서도 "김씨의 주장은 허위사실"이라며 "진술이 그대로 인용 보도되면서 진위와 관계없이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당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향후 김씨가 한 증언의 진위 여부가 가려질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통진당 반발
김영환 고소


이상규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북에서 준 자금으로 20년 전에 선거를 치렀다고 한다면, 왜 저는 단 1원도 구경을 못 했느냐"며 "그 자금 당장 갖고 오라"고 비판했다.

또 YTN과의 전화 인터뷰에서도 "만약 그런 돈을 기부해 준 사람이 있다면 (현행법 위반으로) 조사를 받았어야 했는데 조사를 받지 않았다"며 "통합진보당은 북한을 추종하거나 폭력혁명노선을 추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날을 세웠다.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미희-<TV조선> 무슨 일이…

통합진보당 김미희 의원은 지난 22일 '신분 속인 기자와 TV조선에 공식사과 촉구'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최모 기자는 이날 오전 11시 카메라기자 등과 함께 의원실로 들어와 연합뉴스에서 왔다며 전날(21일) 김영환씨가 증언한 것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했다.

하지만 김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입장을 밝힐 것"이라며 인터뷰에 불응했다. 이어 "명함을 달라"고 했다. 하지만 최 기자는 "명함이 없다"며 서둘러 의원실을 나갔다. 김 의원은 "이로부터 13분 후 최 기자가 의원실로 전화를 걸어 사실은 TV조선기자인데 인터뷰를 거절할까봐 연합뉴스라고 속였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보도자료에서 "사전 약속 없이 들이닥친 것도 모자라 자신의 신분을 속인 것은 기자윤리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의원에 대한 모독이며 사기다"라며 "최 기자와 소속언론사인 TV조선에게 강력히 항의하는 바이며, 진심어린 공개사과를 촉구한다"고 전했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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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