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카카오 vs 검찰 전면전 막후

'사찰 힘겨루기' 국민은 누구 편?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과 관련한 의혹이 사찰정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장외에선 인터넷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을 공식화한 검찰과 감청영장을 불응한 다음카카오 간에 힘겨루기가 진행 중이다. '내가 나눈 대화가 누군가에 의해 감시당할지 모른다'는 우려는 이른바 '카카오톡 엑소더스(탈출)' 현상으로 가시화됐다. 검찰과 다음카카오는 한 목소리로 "사찰은 있을 수 없다"고 항변 중이다. 그러나 이를 눈감고 믿기엔 수상한 구석이 너무 많다.

지난해 내부고발자 에드워드 스노든은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충격적인 감청 사실을 폭로했다. 세계 각국에 있는 민간인의 휴대전화나 이메일 등 통신내용은 미국 정부에 의해 무단 감청되고 있었다. 구글, 페이스북 등 미국 내 서버를 두고 있는 IT회사의 광범위한 정보들은 모두가 감청 대상이 됐다. 국가 권력은 임의로 세계 시민들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정부가 당신의
사생활 엿본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국가권력에 의한 불법 감청 의혹이 불거졌다. 의혹의 핵심은 '국민 메신저'로 불리는 카카오톡에 대한 실시간 검열 여부였다. 검열의 주체는 검찰과 국정원 등 이른바 권력기관으로 대변되는 정부였다.

지난달 18일 대검찰청은 인터넷 포털사이트와 같은 공개된 인터넷 공간을 상시 모니터링(검열)하겠다고 밝혔다. "허위사실이 유포됐을 경우 수사에 착수하겠다"고도 했다. 같은달 25일 서울중앙지검은 '사이버 허위사실 유포 전담팀'까지 구성했다.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과 관계된 의혹이 제기된 것에 대한 대응으로 풀이됐다.

검찰은 당시 모니터링 대상에 카카오톡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불과 5일 뒤인 30일 노동당 정진우 부대표는 검·경으로부터 카카오톡 대화를 수색당한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이후 사이버 실시간 검열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커지면서 카카오톡 사용자들의 탈퇴 행렬이 이어졌다.


카카오톡을 관리하는 다음카카오는 이달 1일 "어떤 서비스도 국가기관의 정당한 법 집행을 따라야 한다고 본다" 혹은 "검찰이 부르는데 안 갈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반응으로 성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다음카카오가 경찰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기관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메시지 내용을 분류해서 전달했다는 보도까지 이어졌다. 인터넷에선 '사이버 망명'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고, 카카오톡의 대안으로 부상한 독일 메신저 텔레그램 이용자 수는 1주일 사이 100만명이나 증가했다. 마침내 다음카카오가 입장을 바꿨다.

이석우 다음카카오 공동대표는 지난 13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폭탄선언을 했다. 수사기관의 카카오톡 감청영장에 불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문제가 됐던 대화내용 서버 저장 기간도 최대 3일로 축소해 정보유출이 없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대외적으로 다음카카오는 지난 7일부터 수사기관의 감청영장 추가 집행에 응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의 기자회견은 IT업계를 넘어 사회 전반에 거대한 파장을 불렀다. 몇몇 언론은 "초법적 발상으로 사법기관의 권위에 도전한 것"이라며 공격했다. 검찰도 발끈했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법치국가에서 법을 지키지 않겠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며 다음카카오를 비난했다.

그럼에도 다음카카오는 입장을 번복하지 않았다. 지난 1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국정감사에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한 이 대표는 수사기관의 감청영장에 불응하겠다는 의사를 거듭 밝혔다. 이 대표는 "실시간으로 (대화내용을) 모니터링하기 위해서는 실시간 감청설비가 필요한데 저희는 그런 설비가 없고, 그런 설비를 갖출 의향도 없다"며 "실시간 감청은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또 '감청영장 집행에 불응하겠다는 말이냐'는 새누리당 의원들의 질문에 대해선 "감청영장이 들어왔을 때 1주일 단위로 대화를 모아 제공했던 방식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과거에는 감청영장의 취지를 적극적으로 해석해 영장의 효력이 발생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협조를 했지만 (지금은) 그와 같은 방식에 대해 많은 우려가 있어 (협조가) 어렵게 됐다"고 답했다.

'대통령 7시간' 도화선…국가권력 감청 의혹
카카오 영장불응 선언…사법기관 압박 임박
정권의 호위무사 개인정보 노린다


덧붙여 이 대표는 감청의 근거가 되는 통신비밀보호법의 허점을 지적한 뒤 "법률을 엄격히 해석하면 감청장치를 서버에 부착해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런 방식을 쓸 수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의 이날 증언을 종합한 내용은 ▲다음카카오는 현재 설비만으로 카카오톡을 감청할 수 없고 ▲앞으로도 감청에 필요한 장비를 설치할 계획이 없으며 ▲실시간 감청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므로 ▲감청영장 집행에 협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발언은 수사당국과 힘겨루기를 하더라도 법적 문제는 없다는 자신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실제로 감청을 통해 수집하고자 하는 정보는 미래의 통신내용이지만 영장집행 과정에서 수사기관이 쥐게 되는 정보는 송·수신이 완료된 과거의 대화내용이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면 법률상 감청은 타인의 대화(통신)를 엿듣거나 엿보는 걸 의미한다. 그런데 법원은 감청할 수 있는 대상을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통신'으로 규정하고 있다. 유선통화나 공개회담과 같은 '목소리'가 들어간 대화가 주된 감청의 대상이다.

위기의 카카오
검과 힘겨루기

그러나 카카오톡은 실시간 대화(메시지)가 오가지만 이걸 엿보는 일이 쉽지 않다. 다음카카오는 실시간 감청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다음카카오는 수사기관이 영장을 들고 오면 서버에 저장된 대화내용을 모아놨다가 며칠 뒤 전달하는 방법으로 협조했다.

그런데 엄밀한 의미에서 송수신이 완료된 대화는 '실시간'이 아니기 때문에 감청이 아닌 압수수색의 대상이다. 압수수색영장은 감청영장보다 발부 조건이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다음카카오는 그동안 수사기관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협력했지만 지금부터는 '잘못된 관행'을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셈이다.

그렇다면 다음카카오는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수사기관과 공조했던 것일까. 가령 수사기관의 내사망에 오른 A씨가 있다고 해보자. 수사기관은 A씨가 범죄를 벌였다고(혹은 벌일 것이라고) 의심한 시기에 관한 통신내용을 다음카카오에 요청한다. 그 시기는 사건에 따라 미래가 될 수도 있다(예를 들면 내란음모).

요청을 받은 다음카카오는 특정된 시기 A씨가 나눈 카카오톡 대화내용(송·수신 일체) 및 대화를 나눈 상대방 아이디와 전화번호 등을 수사기관에 제출한다. 여기서 문제는 범죄와 무관한 사람들의 아이디 및 전화번호까지 무차별적으로 수사기관에 제공된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문제는 다음카카오의 주장대로 실시간 감청은 불가능하지만 실시간에 근접한 감청은 지금껏 해왔고 앞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에 있다. 만약 법원이 '앞으로 한 달간 A씨가 나눈 대화를 증거로 제출하라'는 영장을 발부하면 다음카카오는 같은 기간 A씨의 대화내용을 수사기관에 제출할 수 있다.

 이는 수사기관 입장에서 채집된 대화내용을 며칠 뒤 확인할 뿐이지 실시간으로 감청했을 때와 효과가 다르지 않다. 더구나 감청영장은 피의자뿐 아니라 가족 등 주변인까지도 적용이 가능한 편의성이 있다.

국내 '포렌식' 권위자이자 IT전문가인 김인성 전 한양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자신의 SNS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실시간에 가까운 감청이 가능하다"고 확인했다. 김 전 교수는 지난 2012년 9월 국정원이 발부받은 국가보안법 피의자 홍모씨에 대한 '통신제한조치 집행조서'를 근거로 제시하며 "국정원이 2012년 8월18일부터 9월17일까지 한 달간 홍씨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감청했다"고 설명했다.

조서에 따르면 국정원은 홍씨의 카카오톡 대화내용을 자신들이 제공한 보안메일로 수신했다. 이렇게 채집한 증거는 법정에 증거로 제출됐으며 홍씨가 대화한 상대도 고스란히 노출됐다. 국정원 등 수사기관은 최대 2개월까지 통신제한조치를 허가받을 수 있다.


지난해 '철도 민영화 저지' 파업에 참여했던 이용석 철도노조 부산본부장은 카카오톡 로그인 기록과 실시간 IP를 '사찰'당했다. 지난 2월 경찰이 이 본부장에게 보낸 '통신자료제공 집행사실 통지서'에는 다음카카오(당시 다음커뮤니케이션즈와 카카오로 분리) 측에 경찰이 로그기록(ID·IP)과 실시간IP를 요청한 것으로 쓰여 있다. 이를 근거로 철도노조는 "사용자의 카카오톡 접속 위치가 실시간으로 추적된다"고 주장했으며, 당시 카카오는 이 본부장의 로그기록 일체를 경찰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외국계 IT회사 프로그래머로 일한 윤모씨는 "실시간 감청은 상황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에 서버를 두고 데이터를 축적한 '싸이월드'를 예로 들면서 "이용자가 비밀방에 올려놓은 글이나 사진을 관리자가 볼 수 있었으며, 온라인에서 특정 키워드를 입력하면 알람이 울리도록 하는 등의 방법으로 감시가 가능하다는 사실은 일반 대기업 보안 관계자들도 익히 아는 얘기"라고 말했다.

실제로 경찰은 최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을 수사하면서 유 전 회장이 은신해 있던 전남 송치재 일대 지명을 입력한 모든 사람의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위치)을 조회했다. 경찰은 유 전 회장 측과 통화한 430명 가운데 '송치재 휴게소' '송치골가든' 등의 검색어를 입력한 사용자의 위치정보를 수집했다. 이를 바꿔 말하면 '박근혜'라는 검색어를 입력한 특정인의 개인정보가 수사기관으로 제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유승희 의원은 지난 12일 정부의 인터넷 감시를 위한 패킷감청 인가 설비가 2005년 이후 무려 9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알렸다. 모두 9대였던 미래창조과학부 인가 감청설비는 2008년 이후 73대로 늘었으며, 이 가운데 71대가 인터넷 감시 설비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국회 정보위원회에 통보토록 돼 있는 국정원의 감청설비는 집계되지 않은 수치다.

같은당 전병헌 의원은 다음카카오 측이 발표한 '카카오톡 정보제공 현황'이 축소됐다고 주장했다. 카카오톡은 올 상반기에만 61건의 감청을 요구 받아 90% 넘게 처리한 것으로 확인됐다. 통신사실확인은 1044건, 압수수색영장은 2131건이었다. 여기에는 간접 제공된 회선(아이디 및 전화번호)은 포함되지 않았다.

당장 다음카카오가 수사기관의 협조를 거부함으로써 검찰은 난처한 상황이 됐다. '정권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며 발 빠른 대응을 했지만 도리어 사찰 의혹의 빌미를 준 꼴이 됐다.


"실시간 감청
 기술적 가능"

지난달 18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사이버 허위사실 유포사범 엄단 범정부 유관기관 대책회의'에는 다음카카오가 출석을 요구받았다. 당시 다음카카오는 "실시간 모니터링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전면전을 선택한 다음카카오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언제 어떤 구실로 또 다시 검찰의 출석 요구를 받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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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