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 인선 관전포인트' 막후 파워게임 전말

청와대·정치권·금융권 지원군 전쟁 승자는?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KB금융 사태가 다시 재현될 것인가. KB금융지주 차기 회장 선임을 둘러싼 막후 쟁탈전이 치열하다. 소수 권력집단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가장 잘 부합하는 회장을 앉히기 위해 이미 물밑 작업에 들어갔다. 모피아(옛 재무부 출신 관료) 그룹이 먼저 발을 뻗었고, 이에 대항해 노동계가 움직였다. 유력 후보군을 앞세운 정치권은 호시탐탐 입김을 불어넣을 기회를 노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와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파워게임 가능성이 점쳐지는 등 권력투쟁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김옥찬 전 국민은행 부행장이 KB금융지주 차기 회장 후보를 돌연 사퇴했다. 지난 8일 금융권 한 관계자는 김옥찬 전 행장이 KB금융지주회장후보추천위원회(이하 회추위)에 자진사퇴 의사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앞서 회추위는 지난 2일 제3차 회의를 열고, 전체 84명의 후보군 가운데 9명의 1차 후보를 결정했다. 이 중 후보군에 포함됐던 이철휘 서울신문 사장이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최종 후보군은 8명으로 압축됐다. 여기에 김옥찬 전 행장까지 사퇴행렬에 동참하면서 후보군은 다시 7명으로 추려졌다. 회추위는 오는 16일 제4차 회의에서 차기 회장 후보를 4명으로 좁히고, 이달 말까지는 1명의 최종후보를 선정해 발표할 계획이다.

전문가인가
낙하산인가

지난 10일 기준 남은 7명의 후보는 김기홍 전 국민은행 수석부행장, 양승우 딜로이트안진 회계법인 회장, 윤종규 전 KB금융지주 부사장(CFO), 이동걸 전 신한금융투자 부회장, 지동현 전 KB국민카드 부사장,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이다. 정치권과 금융권의 말을 종합하면 위 7명의 후보 가운데 최종후보 선정이 유력한 후보는 모두 3명이다. 이들은 각각 정치인과 관료그룹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언급된 3명의 면면을 살펴보기 전에 이철휘 사장과 김옥찬 전 행장의 사퇴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먼저 이철휘 사장은 9명의 후보 가운데 정통 모피아로 꼽힌다. 행정고시 17기로 재정경제부 공보관과 국고국장,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 등을 지냈다.


이철휘 사장과 KB금융지주는 지난 정권 때 악연으로 부딪혔다. 2009년 있었던 KB금융지주 회장 선출 당시 이철휘 사장은 막판까지 후보로 경쟁했다. 그러나 최종후보를 추리는 과정에서 "BH(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이명박 대통령 외곽조직으로 알려진 선진국민연대 출신 정모 비서관이 회장 선임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철휘 사장은 '불공정 경쟁'을 이유로 이사진 면접을 거부한 뒤 후보직을 사퇴했다. 사실상 청와대가 사퇴를 종용한 것이란 소문이 빠르게 확산됐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뒤늦은 사실 확인에 나서 정 비서관의 혐의를 벗겨줬다. 이 같은 앙금은 이철휘 사장이 KB금융지주 회장에 도전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했다.

이철휘 사장은 이번 회추위 발표 직후 후보에서 서둘러 사퇴했다. KB금융지주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KB금융지주 측은 "이철휘 사장이 '후보로 선정된 것은 영광이지만 사퇴하겠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유일한 '관 출신'이던 이철휘 사장의 사퇴로 KB금융지주 회장 선출은 '내부인사' 대 '외부인사' 구도로 재편됐다. 그런데 내부인사의 대표격인 김옥찬 전 행장이 물러나면서 무게의 추는 외부인사 쪽으로 급격히 기우는 분위기다.

김옥찬 전 행장은 KB금융지주에서만 경력을 쌓은 자타공인 'KB맨'이다. 재직기간만 31년에 이른다. 일각에선 "국민은행 출신으로 주택은행계와 갈등 요인이 있었다"며 깎아내렸다. 그러나 주택은행계가 내심 밀었던 인물은 김옥찬 전 행장이란 얘기도 들린다.

성낙조 KB국민은행 노조위원장은 주택은행 출신이지만 김옥찬 전 행장을 지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차 후보 선정에 앞서 노조 측은 회추위와 면담을 갖고 내부 출신을 회장으로 선임해 줄 것을 적극 요구했다. 이에 대해 김영진 회추위 의장 대행은 "외풍을 막아야 한다는 점에 대해 많은 사외이사들이 동의하고 있다"며 내부인사를 중용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면담 이후 이른바 '노치(勞治)' 논란이 언론을 중심으로 확대됐다. 정보의 근원은 외부출신 인사를 밀고 있는 '특정세력'으로 의심됐다. 노조 측은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을 선임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반대론자들은 "전문성과 중량감이 떨어질 수 있다"며 노조의 개입을 적극 차단했다.


결과적으로 내부인사의 입지는 좁아졌다. 성 위원장과 만난 김옥찬 전 행장은 노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여러 갈등을 우려해 사퇴를 선택했다. 더구나 내부 출신이 회장이 되면 노조의 입김에 휘둘릴 수 있다는 프레임이 만들어지면서 경합 중인 외부인사는 상당한 반사이익을 얻게 됐다.

한쪽에서는 김옥찬 전 행장에게 "일종의 딜이 들어오지 않았겠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김옥찬 전 행장은 지난해 7월 이건호 당시 국민은행 리스크관리그룹 부행장과 은행장 자리를 놓고 경합하다가 최종 문턱에서 고배를 마셨다. 김옥찬 전 행장을 밀어낸 이건호 은행장(현재 사임)은 짧은 은행경력으로 이른바 '낙하산' 논란을 지폈다. 이는 KB금융지주 노사 갈등의 불씨가 됐다.

관련한 과정을 지켜본 김 전 행장은 또다시 내부인사 대 외부인사 구도가 짜인 것에 부담을 느꼈다고 전해진다. 때문에 후보 접수 절차가 진행 중인 서울신용보증기금 사장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분석이다. 여기서 문제는 김옥찬 전 행장이 사장으로 '내정'됐다는 부분인데 정권 차원의 입김(혹은 배려)이 있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차기회장 선임 과정서 '내 사람심기' 감지
'박근혜라인' 이동걸 급부상…내부인사 주춤
'산 권력'이냐 '뜬 권력'이냐

KB금융지주는 이른바 '주인 없는 회사'다. 그러나 주인에 근접해 있는 권력은 존재한다. 바로 정부다. KB금융지주는 정부가 이사회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다. 그간 정부는 KB금융지주 회장을 사실상 내정했다. 낙하산 논란이 해마다 되풀이된 이유다.

또 역대 회장은 저마다 금융당국의 징계를 받고 사임했다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속된 말로 ‘찍어내기’를 당한 셈이다. 최근 물러난 임영록 전 KB금융지주 회장도 최수현 금융감독원장과의 힘겨루기에서 밀렸다는 게 정설이다.

금융당국이 "KB금융지주 회장 선출 과정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음에도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내부 관계자는 많지 않다. 임 전 회장의 경질을 예상한 시점에 이미 대체 후보를 염두에 뒀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금융권 일각에선 모피아와 말이 통하는 특정후보를 띄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항명의 여지가 다분한 모 후보는 금융당국이 기피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KB금융 사태에서 엇박자를 낸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은 미묘한 시각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상대적으로 금감원의 관심이 더 높은데 KB금융지주가 정상화되면 그에 따른 '명분'을 챙길 수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이는 최 원장이 차기 금융위원장으로 영전할 것이란 소문과 맞물려 양 기관의 셈법을 복잡하게 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모피아 그룹이 지지하는 후보 쪽에 금융위가, 정권이 미는 후보 쪽에 금감원이 각각 호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내부는 NO?
외부는 YES?

최근 복수 언론은 이동걸 전 부회장을 유력한 차기 회장으로 꼽았다. 금융권도 '이동걸 대세론'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동걸 전 부회장은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금융인들을 모아 박근혜 후보 지지선언을 하며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그는 대구 출신으로 경북사대부고를 졸업한 대표 TK(대구·경북)인맥이기도 하다.

현재 금융권 회장단 대부분은 TK와 PK(부산·경남)로 채워져 있다.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경남고 출신이며, 김종준 하나은행장도 고향이 부산이다. 이순우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경북 경주 출신으로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대구고 동문이다. 박근혜정부가 해왔던 고위직 인사 경험과 이동걸 전 부회장의 이력·출신 등을 종합하면 그를 제칠 만한 후보는 아직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정권이 내려 보낸 낙하산이란 시선이 부담이라면 부담이다.

이동걸 전 부회장을 지지하는 쪽은 그가 KB금융지주를 거치지 않은 '순수 외부인사'란 사실에 가산점을 주고 있다. 거꾸로 이동걸 전 부회장을 반대하는 쪽은 "다른 사람은 돼도 이동걸만은 안 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특히 노조는 "차기 회장은 내부 출신이 맡아야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이동걸 전 부회장에게 전달하는 등 강한 반대 의견을 개진했다.


그럼에도 내부인사 가운데 특별히 믿을 만한 인물이 없다는 게 당국의 시각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소신 있는 내부 출신보다는 코드가 맞는 외부 출신을 앉혀놔야 정권 입장에서 덜 불안하지 않겠냐"며 분위기를 전했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는 후보가 있다. 바로 하영구 은행장이다.

하영구 은행장은 한국씨티은행의 전신인 한미은행장으로 2001년 취임해 현재까지 10년 넘게 연임 중이다. 2010년부터는 한국씨티금융지주 회장을 겸했다.

현 금융당국 최고 수장인 신제윤 금융위원장과는 각별한 인연이 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기획재정부 차관보였던 신 위원장은 하영구 은행장을 통해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협정을 체결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하영구 은행장은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과 같은 회사(한국씨티은행)에서 행장과 부행장으로 일했다. 뿐만 아니라 하영구 은행장은 대관업무를 위주로 정관계와 두터운 교분을 쌓았는데 그때의 공로가 이번 인선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다.

단 하영구 은행장은 현직 금융지주 회장이 다른 곳도 아닌 경쟁 금융회사 회장으로 지원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아울러 10년이 넘는 은행장 경력이 있음에도 이렇다 할 실적을 내지 못한 점이 리스크로 분류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동걸 대 하영구' 구도가 유력시되는 가운데 중대 변수로는 최경환 부총리가 언급된다. 국내 경제정책을 총괄할뿐더러 '부통령'이란 별명까지 얻은 최경환 부총리는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을 능가하는 실력자로 부상 중이다. KB금융지주가 사실상 정부 영향하에 있는 만큼 최 부총리의 의중은 후보자 선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정권 입장에서 총자산 300조원의 금융회사 회장 선출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반면 최 부총리가 월권을 행사했다고 판단할 경우 청와대가 직접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통적으로 '2인자'를 용납해오지 않은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상 이번 회장 선출은 둘의 관계에도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 공학적으로 보면 친박계에 대항하는 비박계가 내부인사 선임에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례로 노조 측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게 도움을 청했다는 일화는 이를 암시한다. 만약 내부 출신이 여러 악조건을 뚫고 회장이 된다면 그 자리는 윤종규 전 부사장에게 돌아갈 확률이 높다고 점쳐진다.

마지막 반전
어디서 터질까

윤종규 전 부사장은 2002년 김정태 당시 국민은행장이 영입한 인물로 내부 사정에 정통한 것이 강점이다. 무엇보다 KB금융지주 부사장을 역임해 회추위 구성원인 사외이사들과 친분이 있다는 것이 희망적인 부분이다. 차기 회장 후보는 회추위 구성원의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받은 후보 1명이 선정된다.

때문에 '본선'까지만 가면 승산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옥찬 전 행장에게 쏠린 표심이 윤종규 전 부사장에게 더해질 것도 예상해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윤종규 전 부사장의 거취를 놓고, 그를 떨어뜨리기 위한 세력과 지지하는 세력 간에 치열한 물밑 경쟁이 예고되고 있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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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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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