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환기업 4500억 비자금 미스터리

“오빠가 꼬불쳤다” 여동생의 반란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오너가 집안싸움이 점입가경이다. 법정관리 중인 중견 건설업체 삼환기업의 최용권 명예회장이 ‘비자금 조성 혐의’로 여동생 최모씨로부터 고소를 당하면서 내홍을 겪고 있다. 유산상속을 놓고 갈등을 빚다가 검찰 고소로 이어졌다. 단순 재산 다툼에서 비리 사건으로 비화될 조짐이다. 이 같은 ‘남매전쟁’에 ‘피보다 진한 게 돈’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 내막을 들여다봤다.
 
중견 건설업체인 삼환기업의 최용권 명예회장이 여동생으로부터 고소당했다. 유산상속을 놓고 갈등을 빚다가 마침내 검찰고소로 비화됐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는 최씨가 친오빠인 최 명예회장을 상대로 수천억원대의 재산을 해외로 빼돌린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배당받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남매 싸움
비자금 의혹
 
검찰 관계자는 “최 명예회장에 대해 기업비리 형태의 고발이 접수돼 사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고소장에는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재산 국외 도피와 외국환거래법 위반, 조세 포탈 혐의 등의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 살고 있으며 삼환기업 경영에 직접 관여한 적이 없는 최씨는 최 명예회장이 조성된 비자금 4500억원 상당을 해외로 빼돌린 뒤 미국 하와이 등에 부동산을 샀다고 주장했다.
 
1980년대 중동건설 사업과 해외사업 수주과정에서 조성된 비자금 일부가 빠져나와 미국법인으로 유입됐다는 것이다. 최씨는 미국에 머무르면서 최 명예회장 비자금 조성 혐의를 뒷받침할 자료를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환기업 측은 최씨가 불만을 품고 악의적인 고발을 했다며 비자금 조성은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최씨가 최 명예회장을 고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2년 아버지인 최종환 회장이 별세한 뒤 재산을 나눠 받는 과정에서 최 명예회장과 마찰을 빚어 소송으로 번지기도 했다. 최씨는 비자금 조성 혐의를 뒷받침할 자료를 수집해 검찰에 넘기고 있어 추가 폭로가 이어질 가능성이 점쳐지는 상황이다. 
 
앞서 지난 2012년 11월에는 삼환기업 노동조합이 최 명예회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상 횡령·배임 혐의로 고발한 적이 있다. 당시 노조는 최 명예회장이 오랜 기간 현장에서 횡령해 차명계좌로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최 명예회장은 올해 4월 1심 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다만 차명계좌나 비자금과 관련한 내용은 무혐의 처리됐다.
 
이번 논란에 삼환기업 노조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노조 측은 최 명예회장 측이 유산상속에 불만을 품은 여동생 최씨가 악의적 소송을 벌이고 있다는 입장을 발표했으나, 최씨는 과거 노동조합에서 최 명예회장의 비자금과 차명계좌에 대한 고발을 했을 때, 최 명예회장이 만든 비자금을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고 거짓 증언한 것에 분개해 선친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망자명예훼손 혐의로 소송을 진행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최 명예회장은 2012년 말 노조로부터 횡령 및 배임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하지만 당시 서울지방국세청은 세금추징으로 사건을 마무리했고, 검찰 또한 서울지방국세청과 최 명예회장 측근들의 진술만 듣고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노조에 따르면 최 명예회장의 해외 비자금 형성은 기업내부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지사와 일본 동경지사를 유지한 결정적 이유가 최 명예회장의 해외 비자금 관리 때문이라는 추측이 무성하다. 
 
삼환기업 노조 측은 과거 경영지원실에서 근무하며 최 명예회장의 비자금을 관리해 왔던 손모 차장이 회사 보유의 타사 주식들을 불법적으로 매각하여 수십억대의 최 명예회장 차명계좌를 만든 증거를 포착해 서울중앙지검에 추가 고발했다.
 
최용권 회장 돈 해외로 빼돌린 의혹 제기
유산상속 놓고 갈등 빚다가 결국 법정행
 

삼환기업은 2007년까지 이익잉여금이 2000억원에 달했고 법정관리 이전까지 매출 및 수주가 1조원에 달하는 우량기업이었다. 그러나 최 명예회장의 폭력, 독단, 비리 경영으로 인해 법정관리에 이르렀고, 법정관리 조기 졸업 이후에도 기업 정상화를 위한 노력 없이 과거와 똑같은 행태가 지속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 2012년에는 <한겨레>의 보도로 삼환기업 총수 일가의 반인권 경영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최 명예회장은 최모 전 사장, 오모 전 비서실장, 박모 전 상무 등 과거 사장을 비롯한 대다수의 고위직 임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해 갈비뼈 골절, 목 디스크 돌출, 고막 찢어짐, 맞다가 기절 등 심각한 상해를 입혔다. 현재 임원으로 재직 중인 지모 비서실장, 이모 총무이사 등도 폭행을 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3세 경영자인 최모 상무는 보고가 늦었다는 이유로 어릴 적부터 형이라 부르며 따랐던 박모 상무를 폭행하기도 했다. 또한 이모 총무이사를 회사 업무가 아닌 본인의 선산 관리를 잘못했다고 꾸짖으며 산으로 끌고가 폭행하는 일까지 있었다. 이 중 박모 상무는 중앙지검 조사부에 가서 폭행당했던 사실을 진술한 바 있다. 이러한 폭력에 삼환기업 이사회는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존재로 추락했고 모든 의사 결정은 최 명예회장이 독단적으로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최 명예회장이 기업정상화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 명예회장은 2003년부터는 출근조차하지 않은 선친의 퇴직금 회사분 5억원을 불법적으로 받아가기도 했다. 이에 노조는 괘씸하다는 반응을 내비친 상태다.

어디에 숨겼나
은닉재산 진실은?
 
이뿐만이 아니다. 최 명예회장은 본인이 보유했던 회사채 40억을 법정관리 돌입 시 회생채권에 포함시키기 위해 경영진을 이용해 채권단을 속이고 개인회사인 리온기업 명의로 청구하는 불법 행위를 저지르기도 했다. 현행법상 1년 이상 보유했던 채권을 본인이 회생채권으로 청구할 시에는 불법이 아니지만, 본인 또는 특수관계인이 실소유주인 리온기업에 채권을 양도해 청구하게 되면 마땅히 부인되었어야 하나 불법적으로 시인을 유도해 기업에 손실을 초래하는 배임행위와 탈세행위가 발생하게 됐다.
 
최 명예회장은 2012년 11월15일, 회생절차에 대한 승인을 얻기 위해 현 경영진들로 하여금 전날인 11월14일 언론을 통해 ‘주식과 차명주식을 사회에 환원하고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표현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고 지금까지도 경영에 관여하며 개인의 이익을 위해 경영진들을 괴롭히고 있다. 또 기업회생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사장과 최 명예회장의 두 아들만 근무하는 13층의 연간 임대료를 절감하기 위해 노조 측이 다른 층으로 옮길 것을 요구했으나 최 명예회장은 모르쇠로 일관 중이다. 현재 최 명예회장은 변호사 3명을 대동하고 자신의 악행을 감추기에 여념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관련 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자금난을 겪고 있는 삼환기업이 내홍까지 겪으면서 위기가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삼환기업의 올해 상반기 연결기준 매출은 2637억원이며 영업이익은 13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소폭 하락한 가운데 영업이익은 2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개선된 실적을 바탕으로 영업현금흐름도 178억원가량 창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중 부채비율은 9043%에 달한다. 삼환기업은 2011년 704억원, 2012년 1104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고 2012년 7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신청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초 법정관리를 졸업했다. 하지만 삼환기업의 3월 공시 내용에 따르면 삼환기업은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손실 681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대비 49.08% 줄어든 수치다. 매출액은 5382억원을 기록해 전년대비 0.2% 늘었고, 당기순손실은 2786억원으로 0.6% 증가했다.
 
삼환기업의 전신은 1946년 세워진 삼환기업공업사다. 삼환기업공업사는 수도, 배관, 난방 등을 전문으로 했던 회사로 삼환그룹 창업자인 최종환 회장이 10여명의 기술자와 함께 세웠다. 한국전쟁 이후 최 회장은 자택 근처에 주둔해 있던 미국 공병대의 활동을 보면서 건설업체를 세울 결심을 하고 1952년 삼환기업공업사를 삼환기업(주)으로 전환했다. 이후 삼환기업은 다양한 전후 복구사업에 참여하면서 사업을 확장했다.
 
검찰 수사…남매 전쟁 서막

풀리지 않는 의혹도 풀릴까
 
삼환기업은 62년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 공사를 시작했고 66년에는 베트남에 지사를 세우고 해외건설사업에 진출했다. 이후 60년대에만 일본 도쿄, 미국 클리블랜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해외 지사를 세웠다. 73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지사를 세우고 카이바~알울라 구간의 고속도로 공사를 따내면서 국내 건설업체 최초로 중동지역에 진출하면서 주식을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80년대 들어서는 조선호텔, 프라자호텔, 삼성그룹 태평로빌딩, 서울지방검찰청과 대검찰청, 우리은행, SC제일은행 본점 등을 잇달아 지었고 경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 등 굵직한 토목공사에 참여하며 시공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 시기에 해외지사 세우기에 박차를 가해 81년에는 필리핀 마닐라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82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83년 미국 뉴욕, 84년 미국 알래스카, 85년 미국 괌, 87년 방글라데시 다카 등에 해외 지사를 세우며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삼환기업 주요 계열사로는 삼환까뮤, 삼환종합기계, 삼환컨소시엄, 신민상호저축은행, 삼환기술개발, 회현상사, 칠성흥업 등이 있다.
 
삼환기업은 96년 9월 창립 50주년과 동시에 최 명예회장이 경영을 맡았다. 또한 장남과 차남이 경영수업을 받으며 부친의 경영을 도왔다. 삼환기업은 2007년까지는 대우건설 인수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튼실한 기업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사세가 기울기 시작해 2007년 9145억원에 이르던 매출이 2012년에는 778억원으로 줄었고 422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던 당기순이익은 991억원 적자로 급감했다.
 
회사가 기울자 당시 노조 측은 최 명예회장의 퇴임을 요구하고 나섰다. 노조는 법정관리인으로 선임된 허종 삼환기업 사장을 해임해 달라는 의견서를 서울중앙지법 파산4부에 제출했다. 허 사장은 최 명예회장의 고등학교 동창으로 2006년부터 사장을 맡았다. 노조는 의견서를 통해 “대주주인 최용권 회장이 임원 등의 이름을 빌려 차명주식을 관리해 온 내역을 확보했다”며 “허종 사장의 이름도 차명계좌 내역에 들어 있다”고 밝혔다. 허 사장이 최 회장의 주식을 차명으로 관리했고, 비자금 조성 및 관리, 경영 악화의 책임 등 법정관리인의 역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문제가 크다는 것이었다.

신화도 옛말

추락 가속도
 
이처럼 기업경영에 빨간불이 들어오자 최 명예회장이 사재를 출연하고 회사를 떠나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환기업과 관련된 각종 비리와 부패는 끝없이 터져 나왔다. 2012년 초에는 최 명예회장과 삼환기업이 대주주로 있는 신민상호저축은행은 대주주 불법 대출과 당기순이익을 200억원 부풀려 자기자본비율을 부당하게 산정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당시 삼환 측은 차명계좌 의혹에 대해 부인한 바 있다. 결국 차명계좌 논란은 무혐의 처리돼 한숨 돌렸지만 그것도 잠시, 최근 삼환 오너가 남매전쟁이 불거지면서 최 명예회장을 둘러싼 새로운 비리가 수면 위로 드러날 가능성에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재벌가 골육상쟁사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의 형제 간 골육상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주요 재벌가 집안  싸움은 과거부터 끊이지 않았다. 2001년 현대그룹 왕자의 난, 2002년 한진그룹 유산다툼, 2005년 두산그룹 형제분쟁, 2009년 금호가 형제갈등, 올해 삼성가 상속재산 법정다툼 등이 대표적이다.
 
2001년 현대그룹은 왕자의 난으로 알려진 2세 경영권 분쟁이 불거진 바 있다. 이 분쟁은 현대자동차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 현대그룹 등으로 분리되면서 일단락됐다. 2002년 한진그룹에서는 조중훈 전 회장 타계 후 계열분리로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과 조정호 메리츠금융 회장이 정석기업 차명주식과 대한항공 면세점을 두고 소송을 제기했다가 철회하면서 끝났다.
 
한집 건너 한집 ‘난’
 
2005년 두산그룹 역시 고 박병두 전 회장의 2세들이 회장직을 둘러싼 경영권 다툼으로 아픔을 겪었다. 2009년 금호그룹도 계열분리 과정에서 박삼구 금호그룹 회장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사이 경영권 다툼이 있었다. 2012년 삼성가는 동생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형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 간의 상속재산을 둔 소송을 진행한 바 있다. 이 분쟁은 올해 초 마무리됐다.

라면 사업을 두고 롯데와 농심 간에도 갈등이 있었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 1965년 라면사업에 진출하려고 하면서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과 마찰을 빚었다. 한라그룹도 정몽국 배달학원 이사장이 정몽원 한라건설 회장 측의 주식매도 건을 두고 사문서 위조 등으로 고소하기도 했다. 태광그룹도 이호진 회장 등 남매 간 상속분쟁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효성그룹에서도 형제 간 경영권 분쟁이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대성그룹도 장남 김영대 대성산업 회장과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 간 법적 분쟁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국내 주요 재벌그룹 가운데 아직까지 형제들 간 갈등이 공식적으로 터지지 않은 곳은 SK, LG, GS그룹 등이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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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