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환기업 4500억 비자금 미스터리

“오빠가 꼬불쳤다” 여동생의 반란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오너가 집안싸움이 점입가경이다. 법정관리 중인 중견 건설업체 삼환기업의 최용권 명예회장이 ‘비자금 조성 혐의’로 여동생 최모씨로부터 고소를 당하면서 내홍을 겪고 있다. 유산상속을 놓고 갈등을 빚다가 검찰 고소로 이어졌다. 단순 재산 다툼에서 비리 사건으로 비화될 조짐이다. 이 같은 ‘남매전쟁’에 ‘피보다 진한 게 돈’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 내막을 들여다봤다.
 
중견 건설업체인 삼환기업의 최용권 명예회장이 여동생으로부터 고소당했다. 유산상속을 놓고 갈등을 빚다가 마침내 검찰고소로 비화됐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는 최씨가 친오빠인 최 명예회장을 상대로 수천억원대의 재산을 해외로 빼돌린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배당받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남매 싸움
비자금 의혹
 
검찰 관계자는 “최 명예회장에 대해 기업비리 형태의 고발이 접수돼 사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고소장에는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재산 국외 도피와 외국환거래법 위반, 조세 포탈 혐의 등의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 살고 있으며 삼환기업 경영에 직접 관여한 적이 없는 최씨는 최 명예회장이 조성된 비자금 4500억원 상당을 해외로 빼돌린 뒤 미국 하와이 등에 부동산을 샀다고 주장했다.
 
1980년대 중동건설 사업과 해외사업 수주과정에서 조성된 비자금 일부가 빠져나와 미국법인으로 유입됐다는 것이다. 최씨는 미국에 머무르면서 최 명예회장 비자금 조성 혐의를 뒷받침할 자료를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환기업 측은 최씨가 불만을 품고 악의적인 고발을 했다며 비자금 조성은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최씨가 최 명예회장을 고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2년 아버지인 최종환 회장이 별세한 뒤 재산을 나눠 받는 과정에서 최 명예회장과 마찰을 빚어 소송으로 번지기도 했다. 최씨는 비자금 조성 혐의를 뒷받침할 자료를 수집해 검찰에 넘기고 있어 추가 폭로가 이어질 가능성이 점쳐지는 상황이다. 
 
앞서 지난 2012년 11월에는 삼환기업 노동조합이 최 명예회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상 횡령·배임 혐의로 고발한 적이 있다. 당시 노조는 최 명예회장이 오랜 기간 현장에서 횡령해 차명계좌로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최 명예회장은 올해 4월 1심 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다만 차명계좌나 비자금과 관련한 내용은 무혐의 처리됐다.
 
이번 논란에 삼환기업 노조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노조 측은 최 명예회장 측이 유산상속에 불만을 품은 여동생 최씨가 악의적 소송을 벌이고 있다는 입장을 발표했으나, 최씨는 과거 노동조합에서 최 명예회장의 비자금과 차명계좌에 대한 고발을 했을 때, 최 명예회장이 만든 비자금을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고 거짓 증언한 것에 분개해 선친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망자명예훼손 혐의로 소송을 진행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최 명예회장은 2012년 말 노조로부터 횡령 및 배임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하지만 당시 서울지방국세청은 세금추징으로 사건을 마무리했고, 검찰 또한 서울지방국세청과 최 명예회장 측근들의 진술만 듣고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노조에 따르면 최 명예회장의 해외 비자금 형성은 기업내부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지사와 일본 동경지사를 유지한 결정적 이유가 최 명예회장의 해외 비자금 관리 때문이라는 추측이 무성하다. 
 
삼환기업 노조 측은 과거 경영지원실에서 근무하며 최 명예회장의 비자금을 관리해 왔던 손모 차장이 회사 보유의 타사 주식들을 불법적으로 매각하여 수십억대의 최 명예회장 차명계좌를 만든 증거를 포착해 서울중앙지검에 추가 고발했다.
 
최용권 회장 돈 해외로 빼돌린 의혹 제기
유산상속 놓고 갈등 빚다가 결국 법정행
 

삼환기업은 2007년까지 이익잉여금이 2000억원에 달했고 법정관리 이전까지 매출 및 수주가 1조원에 달하는 우량기업이었다. 그러나 최 명예회장의 폭력, 독단, 비리 경영으로 인해 법정관리에 이르렀고, 법정관리 조기 졸업 이후에도 기업 정상화를 위한 노력 없이 과거와 똑같은 행태가 지속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 2012년에는 <한겨레>의 보도로 삼환기업 총수 일가의 반인권 경영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최 명예회장은 최모 전 사장, 오모 전 비서실장, 박모 전 상무 등 과거 사장을 비롯한 대다수의 고위직 임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해 갈비뼈 골절, 목 디스크 돌출, 고막 찢어짐, 맞다가 기절 등 심각한 상해를 입혔다. 현재 임원으로 재직 중인 지모 비서실장, 이모 총무이사 등도 폭행을 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3세 경영자인 최모 상무는 보고가 늦었다는 이유로 어릴 적부터 형이라 부르며 따랐던 박모 상무를 폭행하기도 했다. 또한 이모 총무이사를 회사 업무가 아닌 본인의 선산 관리를 잘못했다고 꾸짖으며 산으로 끌고가 폭행하는 일까지 있었다. 이 중 박모 상무는 중앙지검 조사부에 가서 폭행당했던 사실을 진술한 바 있다. 이러한 폭력에 삼환기업 이사회는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존재로 추락했고 모든 의사 결정은 최 명예회장이 독단적으로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최 명예회장이 기업정상화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 명예회장은 2003년부터는 출근조차하지 않은 선친의 퇴직금 회사분 5억원을 불법적으로 받아가기도 했다. 이에 노조는 괘씸하다는 반응을 내비친 상태다.

어디에 숨겼나
은닉재산 진실은?
 
이뿐만이 아니다. 최 명예회장은 본인이 보유했던 회사채 40억을 법정관리 돌입 시 회생채권에 포함시키기 위해 경영진을 이용해 채권단을 속이고 개인회사인 리온기업 명의로 청구하는 불법 행위를 저지르기도 했다. 현행법상 1년 이상 보유했던 채권을 본인이 회생채권으로 청구할 시에는 불법이 아니지만, 본인 또는 특수관계인이 실소유주인 리온기업에 채권을 양도해 청구하게 되면 마땅히 부인되었어야 하나 불법적으로 시인을 유도해 기업에 손실을 초래하는 배임행위와 탈세행위가 발생하게 됐다.
 
최 명예회장은 2012년 11월15일, 회생절차에 대한 승인을 얻기 위해 현 경영진들로 하여금 전날인 11월14일 언론을 통해 ‘주식과 차명주식을 사회에 환원하고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표현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고 지금까지도 경영에 관여하며 개인의 이익을 위해 경영진들을 괴롭히고 있다. 또 기업회생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사장과 최 명예회장의 두 아들만 근무하는 13층의 연간 임대료를 절감하기 위해 노조 측이 다른 층으로 옮길 것을 요구했으나 최 명예회장은 모르쇠로 일관 중이다. 현재 최 명예회장은 변호사 3명을 대동하고 자신의 악행을 감추기에 여념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관련 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자금난을 겪고 있는 삼환기업이 내홍까지 겪으면서 위기가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삼환기업의 올해 상반기 연결기준 매출은 2637억원이며 영업이익은 13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소폭 하락한 가운데 영업이익은 2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개선된 실적을 바탕으로 영업현금흐름도 178억원가량 창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중 부채비율은 9043%에 달한다. 삼환기업은 2011년 704억원, 2012년 1104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고 2012년 7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신청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초 법정관리를 졸업했다. 하지만 삼환기업의 3월 공시 내용에 따르면 삼환기업은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손실 681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대비 49.08% 줄어든 수치다. 매출액은 5382억원을 기록해 전년대비 0.2% 늘었고, 당기순손실은 2786억원으로 0.6% 증가했다.
 
삼환기업의 전신은 1946년 세워진 삼환기업공업사다. 삼환기업공업사는 수도, 배관, 난방 등을 전문으로 했던 회사로 삼환그룹 창업자인 최종환 회장이 10여명의 기술자와 함께 세웠다. 한국전쟁 이후 최 회장은 자택 근처에 주둔해 있던 미국 공병대의 활동을 보면서 건설업체를 세울 결심을 하고 1952년 삼환기업공업사를 삼환기업(주)으로 전환했다. 이후 삼환기업은 다양한 전후 복구사업에 참여하면서 사업을 확장했다.
 
검찰 수사…남매 전쟁 서막

풀리지 않는 의혹도 풀릴까
 
삼환기업은 62년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 공사를 시작했고 66년에는 베트남에 지사를 세우고 해외건설사업에 진출했다. 이후 60년대에만 일본 도쿄, 미국 클리블랜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해외 지사를 세웠다. 73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지사를 세우고 카이바~알울라 구간의 고속도로 공사를 따내면서 국내 건설업체 최초로 중동지역에 진출하면서 주식을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80년대 들어서는 조선호텔, 프라자호텔, 삼성그룹 태평로빌딩, 서울지방검찰청과 대검찰청, 우리은행, SC제일은행 본점 등을 잇달아 지었고 경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 등 굵직한 토목공사에 참여하며 시공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 시기에 해외지사 세우기에 박차를 가해 81년에는 필리핀 마닐라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82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83년 미국 뉴욕, 84년 미국 알래스카, 85년 미국 괌, 87년 방글라데시 다카 등에 해외 지사를 세우며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삼환기업 주요 계열사로는 삼환까뮤, 삼환종합기계, 삼환컨소시엄, 신민상호저축은행, 삼환기술개발, 회현상사, 칠성흥업 등이 있다.
 
삼환기업은 96년 9월 창립 50주년과 동시에 최 명예회장이 경영을 맡았다. 또한 장남과 차남이 경영수업을 받으며 부친의 경영을 도왔다. 삼환기업은 2007년까지는 대우건설 인수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튼실한 기업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사세가 기울기 시작해 2007년 9145억원에 이르던 매출이 2012년에는 778억원으로 줄었고 422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던 당기순이익은 991억원 적자로 급감했다.
 
회사가 기울자 당시 노조 측은 최 명예회장의 퇴임을 요구하고 나섰다. 노조는 법정관리인으로 선임된 허종 삼환기업 사장을 해임해 달라는 의견서를 서울중앙지법 파산4부에 제출했다. 허 사장은 최 명예회장의 고등학교 동창으로 2006년부터 사장을 맡았다. 노조는 의견서를 통해 “대주주인 최용권 회장이 임원 등의 이름을 빌려 차명주식을 관리해 온 내역을 확보했다”며 “허종 사장의 이름도 차명계좌 내역에 들어 있다”고 밝혔다. 허 사장이 최 회장의 주식을 차명으로 관리했고, 비자금 조성 및 관리, 경영 악화의 책임 등 법정관리인의 역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문제가 크다는 것이었다.

신화도 옛말

추락 가속도
 
이처럼 기업경영에 빨간불이 들어오자 최 명예회장이 사재를 출연하고 회사를 떠나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환기업과 관련된 각종 비리와 부패는 끝없이 터져 나왔다. 2012년 초에는 최 명예회장과 삼환기업이 대주주로 있는 신민상호저축은행은 대주주 불법 대출과 당기순이익을 200억원 부풀려 자기자본비율을 부당하게 산정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당시 삼환 측은 차명계좌 의혹에 대해 부인한 바 있다. 결국 차명계좌 논란은 무혐의 처리돼 한숨 돌렸지만 그것도 잠시, 최근 삼환 오너가 남매전쟁이 불거지면서 최 명예회장을 둘러싼 새로운 비리가 수면 위로 드러날 가능성에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재벌가 골육상쟁사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의 형제 간 골육상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주요 재벌가 집안  싸움은 과거부터 끊이지 않았다. 2001년 현대그룹 왕자의 난, 2002년 한진그룹 유산다툼, 2005년 두산그룹 형제분쟁, 2009년 금호가 형제갈등, 올해 삼성가 상속재산 법정다툼 등이 대표적이다.
 
2001년 현대그룹은 왕자의 난으로 알려진 2세 경영권 분쟁이 불거진 바 있다. 이 분쟁은 현대자동차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 현대그룹 등으로 분리되면서 일단락됐다. 2002년 한진그룹에서는 조중훈 전 회장 타계 후 계열분리로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과 조정호 메리츠금융 회장이 정석기업 차명주식과 대한항공 면세점을 두고 소송을 제기했다가 철회하면서 끝났다.
 
한집 건너 한집 ‘난’
 
2005년 두산그룹 역시 고 박병두 전 회장의 2세들이 회장직을 둘러싼 경영권 다툼으로 아픔을 겪었다. 2009년 금호그룹도 계열분리 과정에서 박삼구 금호그룹 회장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사이 경영권 다툼이 있었다. 2012년 삼성가는 동생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형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 간의 상속재산을 둔 소송을 진행한 바 있다. 이 분쟁은 올해 초 마무리됐다.

라면 사업을 두고 롯데와 농심 간에도 갈등이 있었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 1965년 라면사업에 진출하려고 하면서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과 마찰을 빚었다. 한라그룹도 정몽국 배달학원 이사장이 정몽원 한라건설 회장 측의 주식매도 건을 두고 사문서 위조 등으로 고소하기도 했다. 태광그룹도 이호진 회장 등 남매 간 상속분쟁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효성그룹에서도 형제 간 경영권 분쟁이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대성그룹도 장남 김영대 대성산업 회장과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 간 법적 분쟁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국내 주요 재벌그룹 가운데 아직까지 형제들 간 갈등이 공식적으로 터지지 않은 곳은 SK, LG, GS그룹 등이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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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