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성현아 성매매 사건의 재구성

'하룻밤 5000만원' 연예인 여럿 더 있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성매매 혐의를 받고 있는 배우 성현아씨의 항소심 공판 기일이 오는 10월로 예고됐다. 성씨는 1심에서 유죄 판결과 함께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성씨, 처벌 수위가 낮다고 판단한 검찰은 나란히 항소했다.

상급심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와 관련 1심 판결 내용 일부가  눈길을 끈다. 몇몇 여자 연예인은 성씨와 마찬가지로 남자 재력가와 성관계를 맺었다. 그런데 이들의 '은밀한 거래'는 슬며시 꼬리를 감췄다. 사생활이란 이유에서다. 그 사이 또 다른 '스폰서'는 막대한 부를 등에 업고 오늘도 돈에 취약한 연예인을 꼬드기고 있다.
 

서울 강남에 자리한 한 특급 호텔. 세계적인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객실을 설계했다. 해당 호텔은 서울 시내에 있는 호텔객실 중 가장 비싼 숙박료로 유명하다. 블라인드를 젖히면 서울 시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욕실에서 바라본 야경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상대가 누구건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물한다. 바로 이곳에서 남성 재력가와 유명 연예인의 성매매가 이뤄졌다. 물론 그들의 만남은 서로에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지 않았다.

찌라시 난무
언론은 칼춤

지난해 12월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연예인 성매매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기자는 한 법조계 관계자로부터 관련한 첩보를 단독 입수했다. 배우 성현아씨 등이 연루된 이른바 스폰서 의혹이었다. 보도에 앞서 몇 가지 사실을 확인했지만 기사화할 수 없었다. 성매매 브로커로 지목된 A씨와 성매수자로 특정된 B씨의 신원 확인을 수사기관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같은달 11일 일부 연예매체를 중심으로 관련한 내용이 기사화되기 시작했다. 수사와 무관한 연예인들의 이름이 '증권가 찌라시'에 오르내렸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연예인 성매매 리스트'가 사실인 양 유포되고 있었다. 사건의 몸통인 A씨와 B씨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엉뚱하게도 연예인 조혜련씨가 브로커로 둔갑했다. 언론은 칼춤을 췄다. '아니면 말고 식'의 찔러보기가 계속됐다.


파문이 확산되자 검찰은 때 늦은 진화에 나섰다.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수사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수원지검 안산지청은 마약사건을 수사하던 중 관련 첩보를 입수해 내사에 들어갔으며, 일부 유명 연예인에 대해 수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부분은 혐의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설명했다.

앞서 기자는 전·현직 사정기관 관계자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들은 "실체도 없는데 의혹만 커졌다" "연예인들의 사생활마저 수사대상이 돼 유감이다"라는 취지로 답했다. 속된 말로 '건수가 안 된다'는 얘기였다. 실제로 사정당국 및 일부 언론에선 '남의 아랫도리 얘기는 하는 게 아니다'라는 불문율이 전해져 내려온다.

재력가와 동침 사실로…거액 받고 스폰
초특급호텔서 만나 세 차례 성관계 맺어

하지만 이들 간에 돈이 오고갔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무엇보다 만남을 알선하고 돈을 챙긴 브로커가 있다면 이는 명백한 범죄행위다.

수원지검 안산지청은 성매매알선 혐의로 1명(남성)을 기소하고, 성매매 혐의로 11명(남성 2명, 여성 9명)을 기소했다. 이 가운데는 브로커 A씨와 재력가 B씨, 배우 성현아씨가 포함돼 있었다. 당시 검찰은 이들의 신원을 특정하지 않았다.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다.

사건에 연루된 여자 연예인들은 모두 약식기소 됐다. 약식기소란 피의자의 범죄 혐의가 중하지 않고, 처벌 역시 징역형보다는 벌금형이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때에 검사가 임의로 청구하는 형사재판이다. 약식기소된 피의자는 법원에 출석하지 않고 재판을 받을 수 있다. 단 피의자가 불복한다면 정식재판을 청구할 수 있다.

당시 대부분의 연예인은 벌금형을 받아들였다. 정식재판으로 전환되면 법원에 출석하는 등 신원 노출을 감수해야 했던 까닭이다. 그러나 이름이 알려진 성씨는 정식재판을 통해 무죄를 주장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성씨는 법원에서 유죄 판결과 함께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아 잃은 게 더 많은 상황에 놓였다.


재판에 앞서 성씨의 실제 성관계 여부, 성관계의 대가성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법원은 이 부분을 모두 인정했다. 재력가 B씨의 증언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에서 B씨는 성씨의 신체적인 특징을 구체적으로 진술하는 등 성매수 사실을 인정했다. 성씨 측은 만나긴 했지만 성매매는 없었다는 취지로 방어했다.

사건 경과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성씨는 평소 알고 지낸 A씨와 서울 모처에서 만났다.  A씨의 직업은 스타일리스트로 알려졌다. 그런데 A씨는 2010년을 전후로 연예인 성매매 브로커로 활동했다. A씨는 경제적 여건이 좋지 못한 연예인들을 재력가에게 소개해 주는 일명 '중간다리' 역할로 유명했다.

2010년 초 성씨는 A씨에게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설명했다. A씨는 "돈 많은 남자를 소개해주겠다"며 만남을 제의했다. 성씨는 이를 승낙했다. 이 무렵 성씨는 전 남편과 이혼을 앞두고 있었다.

브로커 A씨는 재력가 B씨에게 연락했다. "1년 동거하는 조건으로 1억∼2억원을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B씨는 "동거까지는 어렵고 만나본 후 결정하겠다"고 답했다. A씨와 B씨, 그리고 성씨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 모처에서 만났다. 은밀한 얘기가 오갔다. 며칠 뒤 거액의 돈이 성씨의 계좌로 입금됐다. 이 돈의 출처는 B씨였다.

브로커 통해
파트너 소개

첫 만남에서 B씨는 성씨에게 1000만원권 수표 2장을 건넸다. 만남을 주선한 A씨에게도 수백만원을 전달했다. B씨와 성씨는 2달 가까이 만난 것으로 보이는데 해외여행도 다녀오는 등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같은 기간 B씨는 성씨에게 5000만원을 3회에 걸쳐 분할지급 했다. 일반적인 연인 관계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다.

B씨는 성씨를 만난 시기를 전후로 A씨에게 몇몇 연예인을 소개받았다. B씨는 이들과 깊은 관계를 맺은 것으로 확인된다. B씨의 성매수 혐의는 언론의 포커스가 성씨에게 맞춰져 간과된 측면이 있다.

재판부는 성씨와 성관계를 가진 B씨에게 벌금 300만원형을 선고했다. 이는 성씨 사건으로 한정해 선고받은 형량이다. B씨가 맺은 스폰서 계약은 더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브로커 A씨는 "여성을 성상품화하는 등 죄질이 불량하다"는 판결과 함께 법정 구속됐다.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6개월에 추징금 3280만원을 선고했다. 성씨 사건에서 B씨가 건넨 알선비(300만원)와 법원이 선고한 추징금(3280만원)으로 미뤄보면 A씨를 통해 수차례 성매매가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성씨 사건은 연예인 스폰서 계약을 위법으로 인정한 첫 판례다. 남녀 간의 사적만남이 '대가성을 띤 성관계를 목적'으로 이뤄졌다면 '처벌할 수 있다'는 전례를 남긴 것이다. 그간 연예인 스폰서는 윤락업소에서 벌어지는 일반적인 성매매와 달리 당사자간 합의에 의한 성관계로 그 실체가 은폐되는 일이 잦았다.

그럼에도 연예인을 찾는 스폰서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는 많지 않다. 유명 재력가의 경우 범죄 혐의는 있지만 증거가 부족해 처벌되지 않은 사례도 눈에 띈다.


“형편 어려운 연예인들 알선” 증언
‘비밀 거래’ 추가 수사 나설지 주목

올 3월에는 배우 김부선씨가 "스폰서 제의를 받고 거절했다"는 내용의 발언을 해 화제가 됐다. 당시 김씨는 연예계에 스폰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힘주어 고백했다. 때문에 한 연예계 관계자는 "성씨 입장에서는 자신만 사법처리 받는 것에 억울함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재판에서 성씨 측은 "B씨가 5000만원을 호의로 건넸다"며 스폰서 계약을 부정했다. 하지만 A씨는 "B씨를 소개해준 대가로 성씨가 받은 돈 일부를 나누어 주기로 약정했다"며 성씨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

증언의 요지는 성씨가 B씨를 만나기 전부터 이미 금전적인 이득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며, 돈을 받으면 그중 일부를 A씨가 수수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또 A씨는 "성씨와 B씨의 만남이 성교행위를 전제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A씨는 성씨의 유죄 판결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공교롭게도 A씨는 수사 과정에서 두 차례나 구속영장이 기각됐는데 이번 재판에서 성매매 알선 혐의를 스스로 인정해 실형을 피하지 못했다.

성씨 측은 "A씨와 B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의심된다"며 거듭 항변했다. 그러나 이들의 진술을 뒤집을 만한 새로운 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오히려 B씨와 교제 도중 전화번호를 급작스레 바꾼 사실이 불리하게 작용했다. 일반적인 연인이라면 거액을 받고 상대에게 어떤 통보도 없이 일방적으로 관계를 정리할 리 없기 때문이다.


더불어 성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B씨는 우연히 소개받은 연예인에게 거액을 주고 만남을 지속하던 중 해당 연예인이 연락을 끊고 잠적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셈이 된다. 느슨한 법리로 따지면 이 경우 성씨에게 사기죄가 성립될 수 있다. 그런데도 B씨는 예정된 이별을 받아들였다. 소기의 목적을 이뤘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B씨와 관련해 알려지지 않은 일화가 있다. 성씨를 만나고 있던 당시 모 연예인과 실제 연인 관계였다는 내용이다. B씨는 성씨를 만나고 있던 시기 잠시 흔들렸고 한다. 하지만 결국 과거 연인을 선택했고, 조사 과정에서는 해당 연예인을 감싸는 모습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이는 B씨의 입장이 쉽게 번복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1심 직후 B씨는 A씨와 함께 항소를 포기했다. 이는 자신들의 혐의 일체를 인정한다는 뜻과 다름없다. 반면 검찰은 항소를 제기했다. 1심 양형이 낮다는 이유에서다. 성씨도 항소했지만 그에게 유리한 정황은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돈만 많으면
연예인 공급

한 연예계 관계자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말했다. "연예인과 직접 맺는 스폰서 계약은 물론이고, 연예인의 동생이나 언니 등도 연예인의 후광을 빌려 재력가와 성관계를 맺는 일이 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몇몇 연예인이 실제 성매매를 한 것처럼 소문이 와전된 경우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스폰서를 찾는 이들의 목적은 결국 돈으로 수렴된다.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으로 연예인을 찾는 일부 재력가들에게도 책임은 있다. 스폰서 세계의 특성상 수요에 비례해 공급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강요된 성상납은 물론이고 자발적인 성매매도 언젠가는 여성들의 삶을 망가뜨린다. 어쩌면 이런 상식조차 무시해왔기 때문에 '그들'이 더 많은 환락을 누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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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