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성현아 성매매 사건의 재구성

'하룻밤 5000만원' 연예인 여럿 더 있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성매매 혐의를 받고 있는 배우 성현아씨의 항소심 공판 기일이 오는 10월로 예고됐다. 성씨는 1심에서 유죄 판결과 함께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성씨, 처벌 수위가 낮다고 판단한 검찰은 나란히 항소했다.

상급심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와 관련 1심 판결 내용 일부가  눈길을 끈다. 몇몇 여자 연예인은 성씨와 마찬가지로 남자 재력가와 성관계를 맺었다. 그런데 이들의 '은밀한 거래'는 슬며시 꼬리를 감췄다. 사생활이란 이유에서다. 그 사이 또 다른 '스폰서'는 막대한 부를 등에 업고 오늘도 돈에 취약한 연예인을 꼬드기고 있다.
 

서울 강남에 자리한 한 특급 호텔. 세계적인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객실을 설계했다. 해당 호텔은 서울 시내에 있는 호텔객실 중 가장 비싼 숙박료로 유명하다. 블라인드를 젖히면 서울 시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욕실에서 바라본 야경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상대가 누구건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물한다. 바로 이곳에서 남성 재력가와 유명 연예인의 성매매가 이뤄졌다. 물론 그들의 만남은 서로에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지 않았다.

찌라시 난무
언론은 칼춤

지난해 12월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연예인 성매매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기자는 한 법조계 관계자로부터 관련한 첩보를 단독 입수했다. 배우 성현아씨 등이 연루된 이른바 스폰서 의혹이었다. 보도에 앞서 몇 가지 사실을 확인했지만 기사화할 수 없었다. 성매매 브로커로 지목된 A씨와 성매수자로 특정된 B씨의 신원 확인을 수사기관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같은달 11일 일부 연예매체를 중심으로 관련한 내용이 기사화되기 시작했다. 수사와 무관한 연예인들의 이름이 '증권가 찌라시'에 오르내렸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연예인 성매매 리스트'가 사실인 양 유포되고 있었다. 사건의 몸통인 A씨와 B씨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엉뚱하게도 연예인 조혜련씨가 브로커로 둔갑했다. 언론은 칼춤을 췄다. '아니면 말고 식'의 찔러보기가 계속됐다.


파문이 확산되자 검찰은 때 늦은 진화에 나섰다.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수사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수원지검 안산지청은 마약사건을 수사하던 중 관련 첩보를 입수해 내사에 들어갔으며, 일부 유명 연예인에 대해 수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부분은 혐의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설명했다.

앞서 기자는 전·현직 사정기관 관계자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들은 "실체도 없는데 의혹만 커졌다" "연예인들의 사생활마저 수사대상이 돼 유감이다"라는 취지로 답했다. 속된 말로 '건수가 안 된다'는 얘기였다. 실제로 사정당국 및 일부 언론에선 '남의 아랫도리 얘기는 하는 게 아니다'라는 불문율이 전해져 내려온다.

재력가와 동침 사실로…거액 받고 스폰
초특급호텔서 만나 세 차례 성관계 맺어

하지만 이들 간에 돈이 오고갔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무엇보다 만남을 알선하고 돈을 챙긴 브로커가 있다면 이는 명백한 범죄행위다.

수원지검 안산지청은 성매매알선 혐의로 1명(남성)을 기소하고, 성매매 혐의로 11명(남성 2명, 여성 9명)을 기소했다. 이 가운데는 브로커 A씨와 재력가 B씨, 배우 성현아씨가 포함돼 있었다. 당시 검찰은 이들의 신원을 특정하지 않았다.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다.

사건에 연루된 여자 연예인들은 모두 약식기소 됐다. 약식기소란 피의자의 범죄 혐의가 중하지 않고, 처벌 역시 징역형보다는 벌금형이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때에 검사가 임의로 청구하는 형사재판이다. 약식기소된 피의자는 법원에 출석하지 않고 재판을 받을 수 있다. 단 피의자가 불복한다면 정식재판을 청구할 수 있다.

당시 대부분의 연예인은 벌금형을 받아들였다. 정식재판으로 전환되면 법원에 출석하는 등 신원 노출을 감수해야 했던 까닭이다. 그러나 이름이 알려진 성씨는 정식재판을 통해 무죄를 주장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성씨는 법원에서 유죄 판결과 함께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아 잃은 게 더 많은 상황에 놓였다.


재판에 앞서 성씨의 실제 성관계 여부, 성관계의 대가성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법원은 이 부분을 모두 인정했다. 재력가 B씨의 증언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에서 B씨는 성씨의 신체적인 특징을 구체적으로 진술하는 등 성매수 사실을 인정했다. 성씨 측은 만나긴 했지만 성매매는 없었다는 취지로 방어했다.

사건 경과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성씨는 평소 알고 지낸 A씨와 서울 모처에서 만났다.  A씨의 직업은 스타일리스트로 알려졌다. 그런데 A씨는 2010년을 전후로 연예인 성매매 브로커로 활동했다. A씨는 경제적 여건이 좋지 못한 연예인들을 재력가에게 소개해 주는 일명 '중간다리' 역할로 유명했다.

2010년 초 성씨는 A씨에게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설명했다. A씨는 "돈 많은 남자를 소개해주겠다"며 만남을 제의했다. 성씨는 이를 승낙했다. 이 무렵 성씨는 전 남편과 이혼을 앞두고 있었다.

브로커 A씨는 재력가 B씨에게 연락했다. "1년 동거하는 조건으로 1억∼2억원을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B씨는 "동거까지는 어렵고 만나본 후 결정하겠다"고 답했다. A씨와 B씨, 그리고 성씨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 모처에서 만났다. 은밀한 얘기가 오갔다. 며칠 뒤 거액의 돈이 성씨의 계좌로 입금됐다. 이 돈의 출처는 B씨였다.

브로커 통해
파트너 소개

첫 만남에서 B씨는 성씨에게 1000만원권 수표 2장을 건넸다. 만남을 주선한 A씨에게도 수백만원을 전달했다. B씨와 성씨는 2달 가까이 만난 것으로 보이는데 해외여행도 다녀오는 등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같은 기간 B씨는 성씨에게 5000만원을 3회에 걸쳐 분할지급 했다. 일반적인 연인 관계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다.

B씨는 성씨를 만난 시기를 전후로 A씨에게 몇몇 연예인을 소개받았다. B씨는 이들과 깊은 관계를 맺은 것으로 확인된다. B씨의 성매수 혐의는 언론의 포커스가 성씨에게 맞춰져 간과된 측면이 있다.

재판부는 성씨와 성관계를 가진 B씨에게 벌금 300만원형을 선고했다. 이는 성씨 사건으로 한정해 선고받은 형량이다. B씨가 맺은 스폰서 계약은 더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브로커 A씨는 "여성을 성상품화하는 등 죄질이 불량하다"는 판결과 함께 법정 구속됐다.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6개월에 추징금 3280만원을 선고했다. 성씨 사건에서 B씨가 건넨 알선비(300만원)와 법원이 선고한 추징금(3280만원)으로 미뤄보면 A씨를 통해 수차례 성매매가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성씨 사건은 연예인 스폰서 계약을 위법으로 인정한 첫 판례다. 남녀 간의 사적만남이 '대가성을 띤 성관계를 목적'으로 이뤄졌다면 '처벌할 수 있다'는 전례를 남긴 것이다. 그간 연예인 스폰서는 윤락업소에서 벌어지는 일반적인 성매매와 달리 당사자간 합의에 의한 성관계로 그 실체가 은폐되는 일이 잦았다.

그럼에도 연예인을 찾는 스폰서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는 많지 않다. 유명 재력가의 경우 범죄 혐의는 있지만 증거가 부족해 처벌되지 않은 사례도 눈에 띈다.


“형편 어려운 연예인들 알선” 증언
‘비밀 거래’ 추가 수사 나설지 주목

올 3월에는 배우 김부선씨가 "스폰서 제의를 받고 거절했다"는 내용의 발언을 해 화제가 됐다. 당시 김씨는 연예계에 스폰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힘주어 고백했다. 때문에 한 연예계 관계자는 "성씨 입장에서는 자신만 사법처리 받는 것에 억울함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재판에서 성씨 측은 "B씨가 5000만원을 호의로 건넸다"며 스폰서 계약을 부정했다. 하지만 A씨는 "B씨를 소개해준 대가로 성씨가 받은 돈 일부를 나누어 주기로 약정했다"며 성씨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

증언의 요지는 성씨가 B씨를 만나기 전부터 이미 금전적인 이득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며, 돈을 받으면 그중 일부를 A씨가 수수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또 A씨는 "성씨와 B씨의 만남이 성교행위를 전제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A씨는 성씨의 유죄 판결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공교롭게도 A씨는 수사 과정에서 두 차례나 구속영장이 기각됐는데 이번 재판에서 성매매 알선 혐의를 스스로 인정해 실형을 피하지 못했다.

성씨 측은 "A씨와 B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의심된다"며 거듭 항변했다. 그러나 이들의 진술을 뒤집을 만한 새로운 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오히려 B씨와 교제 도중 전화번호를 급작스레 바꾼 사실이 불리하게 작용했다. 일반적인 연인이라면 거액을 받고 상대에게 어떤 통보도 없이 일방적으로 관계를 정리할 리 없기 때문이다.


더불어 성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B씨는 우연히 소개받은 연예인에게 거액을 주고 만남을 지속하던 중 해당 연예인이 연락을 끊고 잠적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셈이 된다. 느슨한 법리로 따지면 이 경우 성씨에게 사기죄가 성립될 수 있다. 그런데도 B씨는 예정된 이별을 받아들였다. 소기의 목적을 이뤘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B씨와 관련해 알려지지 않은 일화가 있다. 성씨를 만나고 있던 당시 모 연예인과 실제 연인 관계였다는 내용이다. B씨는 성씨를 만나고 있던 시기 잠시 흔들렸고 한다. 하지만 결국 과거 연인을 선택했고, 조사 과정에서는 해당 연예인을 감싸는 모습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이는 B씨의 입장이 쉽게 번복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1심 직후 B씨는 A씨와 함께 항소를 포기했다. 이는 자신들의 혐의 일체를 인정한다는 뜻과 다름없다. 반면 검찰은 항소를 제기했다. 1심 양형이 낮다는 이유에서다. 성씨도 항소했지만 그에게 유리한 정황은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돈만 많으면
연예인 공급

한 연예계 관계자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말했다. "연예인과 직접 맺는 스폰서 계약은 물론이고, 연예인의 동생이나 언니 등도 연예인의 후광을 빌려 재력가와 성관계를 맺는 일이 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몇몇 연예인이 실제 성매매를 한 것처럼 소문이 와전된 경우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스폰서를 찾는 이들의 목적은 결국 돈으로 수렴된다.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으로 연예인을 찾는 일부 재력가들에게도 책임은 있다. 스폰서 세계의 특성상 수요에 비례해 공급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강요된 성상납은 물론이고 자발적인 성매매도 언젠가는 여성들의 삶을 망가뜨린다. 어쩌면 이런 상식조차 무시해왔기 때문에 '그들'이 더 많은 환락을 누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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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