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만에 열린 형제복지원 국민재판 지상중계

"전두환이 검찰 수사 방해했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형제복지원을 아는 사람이 이제는 많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사건이 끝난 건 아니다. 2012년 말 <살아남은 아이>란 책이 세상에 나왔다. 모두가 잊고 있던 형제복지원의 비극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매스컴은 박인근 전 형제복지원장(이하 박인근)의 악행을 고발했다.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간 가해자가 그 대가로 거대한 부를 축적했다는 사실에 대중은 분노했다. 그러나 진상규명, 가해자 처벌이란 상식은 박인근에게 작동하지 않았다. 그래서 무려 27년 만에 '국민재판'이 열렸다. 공범인 전두환 전 대통령(이하 전두환)도 함께 법정에 섰다. 사법연수원 44기 연수생들이 힘을 보탰다. 이들은 끝나지 않은 악몽을 고발했다.

푸른 죄수복을 입은 두 명의 사내가 기립했다. 고요한 긴장이 흘렀다. 법정을 가득 메운 100여명의 방청객은 재판부의 선고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송용 ENG카메라가 백발의 판사를 비췄다. 판사는 중후한 목소리로 판결문을 읽어 내렸다.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해 피고인 박인권(박인근 전 형제복지원 원장, 법정에서는 박인권으로 가명을 사용)에게 무기징역을 피고인 전두환에게 징역 22년6월을 각각 선고한다."

찰나의 적막은 거대한 함성으로 바뀌었다. 법정 안에 있던 모든 방청객은 박수로 화답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은 설움에 복받쳐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박인근 무기징역


지난달 30일 27년 만에 국민재판이 열렸다.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법학관 모의법정에서 열린 '형제복지원 국민법정'은 전두환·박인권 두 피고인에게 중형을 선고했다. 어떤 이는 울먹였고 어떤 이는 어깨를 토닥였다. 이들은 이어진 기념촬영에서 환하게 웃었다.

형제복지원 국민법정(이하 국민법정)은 법적 효력이 있는 재판은 아니다. 그러나 사법연수원 44기 인권법학회와 현직 변호사,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가 직접 참여해 실제 공판처럼 진행됐다.

검사와 변호사로 역할을 분담한 10여명의 연수생들은 치열한 법리 공방을 펼쳤다. 현직 변호사들은 국민법정의 재판부로 자리해 권위를 부여했다.

이들이 검토한 수사기록 대부분은 실제 재판에 쓰여도 무방한 '진짜 증거'였다. 신민당조사보고서, 형제복지원 수용경위 진술조서, 형제복지원 검찰수사 자료, 총리지휘서신, 신병인수인계대장 등 가용한 증거가 모두 동원됐다.

국민법정 검찰 측은 박인근에게 살인·사체은닉·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집단·흉기 등 강요)·미성년자약취유인 혐의를 적용했다. 전두환에게는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집단·흉기 등 강요)·직권남용 혐의가 적용됐다. 개별혐의에 대한 입증 과정에서 눈길을 끌었던 부분은 "전두환이 수사를 방해했다"는 검찰 측 주장이었다.

1987년 부산지검 울산지청에서 형제복지원 사건을 수사했던 김용원 검사(현 변호사)는 김주호 당시 부산시장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박인근 원장을 구속해선 안 된다. 빨리 석방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김 시장은 선출직 단체장이 아닌 전두환정권이 임명한 고위 공무원이었다. 이 무렵 김 검사는 형제복지원을 압수수색하는 한편 박인근을 구속수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박희태 당시 부산지검장(전 국회의장) 등 검찰 수뇌부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였다. 미리 가이드라인을 정해 놓고 형제복지원 수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했던 것이다. 김 검사가 수사의 방향을 특수폭행·불법감금 등으로 확대하려 하자 검찰 상부는 '내사를 중지하라'며 김 검사를 압박했다. 또 공소장에 기재된 횡령액을 11억원에서 7억원으로 낮출 것을 지시했다.


사법연수원 44기들 모의법정 열어
증인들 가혹한 실상 낱낱이 폭로
법적효력 없어…특별법 제정 될까

11억원과 7억원의 차이는 상당하다. 법률상 횡령액이 10억원 이상이면 '중범죄'로 분류돼 최대 무기징역을 구형할 수 있다. 이 같은 점을 악용한 검찰 수뇌부는 박인근의 형량을 최대한 낮추기 위해 공소장을 사실상 '바꿔치기'했던 것이다.

이로부터 며칠 뒤 전두환은 부산을 방문했다. 김 검사가 쓴 회고록 <브레이크 없는 벤츠>를 보면 전두환은 김 시장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박 원장(박인근)은 훌륭한 사람이오. 박 원장 덕분에 거리에 거지도 없고 좋지 않소?"

박인근은 3년 전 전두환으로부터 부랑인을 선도한 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받은 바 있다. 당시 김 검사가 청와대·안기부로부터 수사 축소와 관련한 전화를 받은 건 우연이 아니었다. 김 검사의 수사자료 19쪽(정보보고)을 보면 "명에 의하여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에 대한 업무상황령의 점 수사를 중단"했다고 돼 있다.

이어진 재판에서 박인근은 무려 7번의 재판 끝에 일부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를 선고받았다. 대법원이 주요 범죄사실인 감금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사법정의'란 말을 무색케 했다. 문제의 판결을 내린 대법관은 약 20년 후 박근혜정부 초대 국무총리로 지명됐다.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이다.

이처럼 정권의 비호를 받은 박인근은 징역 2년6월형을 살고 자유의 몸이 됐다. 출소 당시 형제복지원을 운영하며 축적한 부는 그대로였다. '피의 대가'로 불린 재산은 그의 자녀들에게 상속됐다. 비교적 최근까지 박인근 일가는 부산의 대표적인 복지재벌로 행세했다.

국민법정에서 증인들은 형제복지원의 가혹한 실상을 낱낱이 폭로했다. 한 원생은 '규율을 어겼다'는 이유로 사지가 침대에 묶여 죽을 때까지 몽둥이찜질을 당했다. 또 다른 원생은 도망치다 잡혀와 머리가 터질 때까지 맞고 암매장됐다. 짚단에 쌓여 버려진 시체는 돈을 받고 병원에 팔렸고, 부검의는 사인을 조작해 그곳에서 일어난 끔찍한 학살을 은폐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 속에 수천여명의 원생은 시키는 대로 일했다. 이 같은 강제노역에도 박인근은 임금 한 푼 주지 않았다. 오히려 원생수를 더 늘리기 위해 죄 없는 아이들을 잡아 가뒀다. 정부보조금을 타내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전두환정권은 박인근의 강제수용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전두환 명의로 된 총리지휘서신을 보면 "신체장애자 구걸 행각이 늘어나고 있는 바 실태파악을 하여 일절 단속·보호·조치하고 대책과 결과를 보고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써 있다.

이를 근거로 경찰은 밤마다 거리에 남아 있는 시민들을 닥치는 대로 형제복지원에 인계했다. 당시 경찰 인사고과에 반영된 내부 근무평점을 보면 일반 구류자의 경우 2∼3점, 형제복지원 입소는 5점을 주도록 돼 있다. 즉 풀어주지 않고 잡아넣을수록 가산점이 부여되는 기막힌 제도였던 것이다.

전두환은 22년6월형

이외에도 끝없는 증언과 증거들이 쏟아졌다. 형제복지원 실제 피해자는 자신의 경험담을 증언하던 중 눈시울을 붉히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 같은 재판과정을 지켜본 11명의 배심원은 대부분 만장일치, 일부 혐의에 대해선 다수 의견으로 전두환·박인근의 유죄를 평결했다. 배심원 구성은 참여를 희망한 일반인 중 자격을 갖춘 11명을 선발했다.


이날 재판부는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사회적 약자인 국민을 부랑인으로 몰아 인권을 유린했다"며 모든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했다. 판결 직후 형제복지원진상규명을위한대책위원회는 "하루빨리 특별법이 제정돼 실제 재판에서도 진상규명이 이뤄졌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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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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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