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막힌 스토리> 도굴꾼 된 박물관장 사연

개인창고에 국보급 유물이 ‘가득’

[일요시사 사회2팀] 박효선 기자 = 가을비가 내리던 지난달 29일 오후, 창덕궁 인근에 위치한 한국미술박물관을 찾았다. 박물관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주변만 기웃거리다 발길을 돌렸다. 3일째였다. 박물관 관장이 구속되면서다.

한동안 뜸했던 도굴사건이 또 터졌다. 사립박물관 관장이 도굴된 문화재를 자신의 창고에 수년간 숨겨온 것이다. 그는 10년 가까이 자신의 창고에 문화재인 지석 500여점을 가둬 공소시효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에게 문화재를 판 3명의 매매업자는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다. 문화재관리정책은 여전히 날뛰는 도굴꾼을 따라잡지 못하는 모양새다.

수장고 열어보니…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최근 도굴된 지석을 문화재 매매업자를 통해 사들여 수년간 보관한 혐의로 한국미술박물관 권모 관장(73)을 불구속 입건했다. 또한 이를 권 관장에게 팔아넘긴 문화재 매매업자 조모(65)씨와 김모(64)씨도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 6월 ‘도난된 불교 문화재가 경매시장에 나왔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권 관장의 수장고를 압수 수색하던 중 지석 500여점을 무더기로 발견했다.

경찰에 따르면 권 관장은 경기도 성남에 있는 자신의 창고에 도굴된 지석 558여점을 숨겼다. 이 중 379점은 조선 제 11대 왕 중종(1488∼1544)의 손자인 풍산군 이종린의 묘에서 도굴됐다.


지석은 죽은 사람의 인적사항을 기록해 무덤 앞에 묻는 돌이다. 형태는 사각백자, 원통형, 접시형 등 다양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지석은 ‘조선시대 타임캡슐’로 통한다. 지석을 통해 조선시대의 다양한 사회상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새겨진 내용과 서체를 보고 당대의 풍속사, 서예사 등을 연구할 수 있다.

경찰이 설명한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회수된 지석 중 379점은 2002년 사망한 문화재 매매업자 이모씨가 도굴꾼으로부터 처음 사들였다. 이씨가 사망하자 조씨와 김씨는 그의 아내로부터 지석 판매를 위탁받아 거래했다. 조씨와 김씨는 넘겨받은 지석들을 권 관장에게 팔았다.

권 관장은 2003년 6월부터 8월까지 조씨와 이씨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3300만원어치 지석 279점을 사들였다. 또 다른 도굴꾼으로부터 지석 179점을 취득해 지난 6월까지 총 558점을 자신의 수장고에 보관했다. 모두 경기 성남시에 있는 자신의 개인 수장고에 숨겼다.
 

권 관장은 수사기관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명의로 창고를 빌렸다. 이곳에 대거 사들인 지석을 보관했다. 장물취득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7년이 만료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지석을 유통할 계획이었다. 문화재는 오래될수록 그 가치가 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도굴된 문화재는 공소시효가 끝나면 유통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현금거래를 통해 매매가 이뤄진다.

도굴된 문화재 500여점 수년간 숨겨
조용히 범행, 공소시효 끝나기 기다려

권 관장이 숨겼던 지석은 모두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있는 문화재였다. 족보에도 적혀 있지 않던 정보나 인물들의 문체 등을 엿볼 수 있는 희귀한 연구자료였다. 조선 전기부터 후기까지 제작된 것들이다. 가장 오래된 것은 죽산 안씨 안복초(1382∼1457)의 것으로 세조 3년(1457)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종린의 분묘에서 발견된 지석 8점은 조선 왕실의 매장 풍습을 연구하는 데 높은 가치를 지녔다. 조선시대 중종반정을 도운 공으로 정국공신에 오른 전의 이씨 이희옹(1472∼1541)은 권 관장이 숨겼던 지석을 통해 처음으로 생년이 확인됐다.


또한 세조부터 성종에 이르기까지 많은 공을 세워 공신으로 불렸던 광산 김씨 김극뉴(1436∼1496)의 지석은 연산군 때 무오사화를 주도했던 유자광(1439∼1512)이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자광의 문체를 엿볼 수 있는 희귀한 연구 자료다.

반남 박씨 박린(1547∼1625)의 지석에는 이수광(1563∼1628)이 지은 글이 적혀있었다. 이수광은 조선 중기 실학의 선구자이자 ‘지봉유설’의 저자이다.
 

이처럼 회수된 지석은 조선시대의 변천 과정과 매장자의 일대기, 조선의 시대상과 서체 등 모두 연구에 활용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만큼 전문가들에게 지석은 조선의 500년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한국에서 발견된 지석 중에서는 지난 1971년 충남 공주 송산리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지석이 최고로 평가되고 있다. 지석과 같은 문화재를 개인적으로 취득한 경우 문화재보호법상 처벌대상이 된다.

그러나 권 관장은 수사 과정에서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연구 목적으로 지석을 취득했다”며 “장물인지 몰랐다”고 잡아뗐다. 또한 처벌을 피하기 위해 그는 매입 시기가 공소시효가 완성되는 시점이라고 주장하거나 지석을 본인에게 판매한 사람이 2002년 사망한 이씨라고 우겼다.

보존이 소명?

경찰은 권 관장을 문화재보호법상 은닉 혐의를 적용해 처벌하기로 했다. 그러나 매매업자 조씨와 김씨의 경우 공소시효가 끝나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키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공소시효가 장물 알선 및 취득은 7년, 문화재보호법 위반은 10년이라 2003년 권 관장에게 물품을 판매한 사람들의 공소시효는 지났다”며 “공소시효가 지난 두 사람과 사망한 이씨의 경우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문화재 관련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석은 매장문화재로 피해자들조차 피해사실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다. 도굴꾼을 따라잡지 못하는 문화재 관리 정책에 대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dklo216@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한국미술박물관은?

한국미술박물관은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사립박물관이다. 권모 관장은 30여년간 수집한 문화재 중 500점을 출연해 1993년 한국불교미술박물관을 개관했다. 이후 2011년 1월 한국미술박물관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제1종 전문박물관인 한국미술박물관에서는 보물 2점과 시도지정문화재 21점 등 총 6023점의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권 관장은 매년 수천만원의 사업비를 지자체 등으로부터 지원받아왔다. 서울시와 서울시 교육청, 한국사립박물관 협회 등에서 2011년 총 4775만원, 2012년 총 4720만원, 2013년 총 5200만원을 지원받았다. 그런데 권 관장은 문화재를 쉽게 구입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해 지석을 자신의 창고에 숨겨온 것이다.

그는 과거 다수 매체 인터뷰에서 “시중에서 나도는 우리 불교미술품들이 외국으로 팔려나가거나 개인 수장고 속에 갇혀 지내야 한다는 사실을 그냥 놔둘 수 없었다”며 “문화재 보존은 나의 소명”이라고 밝힌 바 있다. 문화재 보존에 힘쓰겠다던 그의 다짐은 이번 사건으로 오히려 비웃음을 사게 됐다.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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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