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특별법 10년> 단속 비웃는 ‘원정녀’ 실태 고발

오대양 육대주로…한국녀 떠난다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2004년 9월23일, 홍등가는 요동쳤다. 정부가 ‘성매매특별법’이라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성매매특별법은 성매매를 강요한 업주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한편 성매매 피해여성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실제로 법 시행 이후 전통적인 성매매 집창촌은 서서히 줄어들었지만, 갈 곳을 잃은 성매매 여성들은 음지로 숨어들어 다양한 변화를 시도했다. 일부는 해외로 원정을 떠나기도 했다. 성매매특별법이 성매매 여성의 수출하는 데 일등공신이 된 셈이다.

 
성매매특별법은 2000년과 2002년 전북 군산 대명동과 개복동 화재 참사로 인해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 문제가 부각되면서 본격 논의되기 시작했다. 성매매산업 해체 운동이 전국적으로 번진 것이 계기였다. 경찰은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적극적으로 움직이면서 성매수자도 무조건 입건하는 등 집중 단속을 펼쳤다. 이로 인해 성매매산업이 급속히 위축되기도 했다. 실제로 주요 홍등가의 불빛이 점차 희미해져갔다. 성매매특별법의 효력이 제대로 발휘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오판이었다. 홍등은 더 깊고 은밀한 곳에서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껍데기만 특별법
부작용 많았다
 
‘성매매방지법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지 올해로 10년째를 맞았지만,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끊이지 않고 있다. 성매매특별법의 성적표는 매우 초라하다.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쪽을 누르면 다른 쪽에서 부풀어 오른다는 ‘풍선효과’ 논란이 점차 커지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양지에서 음지로, 국내에서 해외로 성매매의 영역이 깊어지면서 넓어지고 있다. 성매매특별법이 성매매 공급만 고려했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목소리가 높다. 성을 사려는 수요는 등한시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원정 성매매가 꾸준히 증가했다는 것이다. 국내 단속을 피해 해외로 나가 성매매를 하는 원정 성매매의 적발건수가 5년새 4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새정치민주연합 박남춘 의원(국회 안전행정위원회·인천 남동갑)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9년 128건이었던 해외성매매 검거자가 2010년에 78명, 2011년 341명, 2012년 274명, 지난해 496명으로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성매매알선자를 적발한 건수가 7배 가까이 늘었고, 성매수자인 남성의 적발보다 성매도자인 여성을 적발한 건수가 4배 이상 많았다. 박 의원은 “경찰에 따르면 해외성매매로 구속된 자의 대붑분은 성매매알선자인데, 이들의 구속률은 9%에서 5%로 절반 가까이 떨어져 ‘성매매알선자를 강력하게 처벌하겠다’던 법 시행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고 불편한 현실을 지적했다.
 
해외성매매 적발국은 일본이 61%로 가장 많았다. 이어 필리핀, 미국, 호주 순이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동남아 성매매관광과 관련해 태국이나 베트남에서 적발된 건수가 미미한 것으로 볼 때 동남아 성매수자에 대한 단속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태국은 2009년 16건을 적발했지만 2010년 이후 전무하다. 베트남도 2009년 15건을 적발했지만 2010년부터 2013년 사이 단 1건을 적발하는 데 그쳤다. 중국도 2009년 26건이었다가 2012년 2건, 2013년 5건으로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호주, 일본 적발 건수는 증가추세였다.
 
성매매 범죄자의 여권발급제한조치는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년간 55건에 불과했다. 올해의 경우도 8월 기준 19건에 불과하다. 해외성매매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해외 성매매알선자와 성매수자에 대한 보다 강력한 처벌과 단속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지만 제도는 미흡하다.

성매매 억제하니
음지로, 해외로…
 
원정 성매매가 급증하면서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악용해 현지 원정 성매매를 해 온 한국 여성들이 최근 몇 년 동안 강제추방되는 등 부작용이 커지면서 주한 일본 대사관이 만 26세 이상 한국 여성에 대한 자국 워킹홀리데이 비자발급을 중단하는 조치를 취한 것이다.
 
26세 이상 한국여성들이 워킹 홀리데이 비자 발급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주한 일본대사관이 발표한 2014년 2분기 워킹홀리데이 비자 심사 합격자는 총 723명으로 지난해 2분기 합격자 1461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1분기 워킹홀리데이 합격자 수 역시 880명으로 작년 동기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90%대였던 합격률은 올해부터 70% 초반으로 급락했다.
 

일본은 공식적으로 여성의 워킹홀리데이 비자 신청 자격을 만 18∼25세로 제한하고 있지만 보통 만 30세까지도 비자를 발급해 왔었다. 일부 몰지각한 원정 성매매 여성들이나 퇴폐업소들로 인해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주한 일본대사관 측은 한국 여성의 위킹 홀리데이 심사 탈락 원인에 대해 “영사가 심사권한을 갖고 있기에 알려줄 수 없다”고 답했다. 유학원 업계나 일본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 이유가 원정 성매매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워킹 홀리데이 프로그램을 악용하는 사례가 늘자 일본 정부가 이들의 입국을 원천차단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 남성은 만 30세까지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받는 데 문제가 없다.
 
특별법 시행 2004년 이후…홍등가 풍선효과
집창촌 위축됐지만 변종들 음지로 숨어들어
 
지난 10여년 동안 한국 여성 수천여명이 일본 각지로 원정 성매매를 떠났다가 당국의 단속으로 강제 추방된 사례가 많았다. 원정 성매매 여성을 피해자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목돈에 목적을 두고 자발적으로 일본으로 가 매춘을 한 여성들이 90% 이상이라고 알려진다. 대학생은 물론 평범한 직장인들도 원정에 뛰어든다고 한다.
 
지난 5월, 일본에서 유흥업소를 운영하며 한국에서 데리고 간 유흥업소 종사자 등 한국인 여성들을 고용해 일본인들을 상대로 술을 팔고 성매매를 알선한 한국인 업주와 업소 마담, 성매매 여성 등이 무더기로 검거됐다.
 
대구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일본에서 주점을 운영하면서 한국인 여성들을 고용해 술을 팔고 성매매를 알선한 김모(48·여)씨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또 김모(43·여)씨 등 업소 종업원 2명과 허모(31)씨 등 성매매 여성 7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 등 업소관계자 3명은 지난 2007년부터 2008년까지 일본 오사카에서 유흥업소를 운영하면서 허씨 등 한국인 여성 14명을 고용해 월 10여차례씩 일본인을 상대로 술을 팔며 성매매를 알선한 혐의를 받았다.
 
경찰 조사결과 성매매 여성들은 한국에서 유흥업소에 근무하던 중 김씨 등으로부터 면접까지 본 뒤 관광비자를 받고 일본으로 가 1회 2만엔(한화 약 22만원)의 화대를 받고 성매매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업소관계자들은 일본인과의 결혼 등을 통해 영주권을 가진 상태로 성매매 여성들은 비자가 만료되면 한국으로 일시귀국했다가 다시 출국해 성매매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원정 성매매의 꼬리를 잡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끊이지 않는
어둠의 거래
 
앞서 3월에는 모델 지망생들을 상대로 성관계를 맺고 해외 원정 성매매까지 시킨 모델 기획사 대표가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모델로 데뷔시켜 준다며 지망생들을 속이고 대출금과 성상납을 요구하고 원정 성매매를 시킨 기획사 대표 설모(39)씨와 영업이사 김모(25)씨를 구속했다. 또 같은 혐의로 기획사 상담실장 윤모(29·여)씨 등 직원 6명과 성매수남 박씨 등 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설씨는 지난해 말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오피스텔에 사무실을 차린 뒤 인터넷 구인 사이트에서 ‘모델 구합니다’라는 글을 올려 모델 지망생을 모집했다. 지망생들과 전속계약을 맺은 뒤에는 보증금 명목으로 대출을 받도록 강요해 모두 1억9000여만 원을 챙겼다.
 

모델 지망생들은 설씨의 협박에 성상납을 했다. 지난해 말에는 모델 지망생 4명에게 ‘싱가포르 클럽에서 파티 매니저 역할을 하면 한 달에 5000만원 이상을 벌게 해주겠다’고 속여 해외 원정 성매매를 알선하기도 했다.
 
어설픈 단속과 솜방망이 처벌
신·변종업소에 손님 바글바글 
 
이러한 사건과 더불어 원정 성매매의 실태가 알려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속칭 ‘19호녀’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호라 불리는 미모의 한국 여성이 일본 성매매 원정을 떠나 일본 남성과 성관계를 하는 동영상이 삽시간에 퍼지면서 원정 성매매 존재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19호녀 동영상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했다. 남성들 사이에서 19호를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19호녀 동영상이 화제가 되면서 갖은 설이 난무했다. 그러던 중 지난 7월 <19호>라는 장편소설이 나오기까지 했다. 소설 <19호>는 ‘원정녀 몰래카메라’라는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들며 음모를 숨기려는 집단과 진실을 파헤치려는 집단 간의 팽팽한 두뇌 싸움을 긴장감 있게 그려낸 작품이라고 소개돼 있다. 그만큼 원정 성매매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반증이다.
 
문제는 원정 성매매가 일본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호주, 캐나다, 미국, 중국, 동남아 등에서 원정 성매매를 벌이는 한국 여성의 숫자가 최대 10만여 명에 이를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국제사회는 40만여 명에 이르는 중국 여성들의 원정 성매매와 함께 한국 여성들의 원전 성매매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해마다 세계 각국의 인신매매 실태를 ‘TIP(Traffick in Persons) Report’를 통해 보고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는 한국의 인신 매매현황도 비교적 자세히 기록돼 있다. 최근 공개된 2014년 보고서에는 새롭게 추가되거나 강조된 부분이 있다.
 
특히 한국 여성의 해외 성매매를 상세히 다뤘다. 2013년 보고서에 명시된 일본, 미국, 캐나다, 호주뿐 아니라 홍콩, 마카오, 두바이, 대만이 추가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여성이 해외 성매매에 연루되는 경로는 인터넷 광고물이었고, 이들은 주로 관광, 취업, 학생 비자를 통해 해외 성매매에 유입됐다.
 
이 보고서는 한국 정부에 몇 가지 제안을 하기도 했다. ▲형사법 내의 ‘인신매매’의 법적 의미를 공식적으로 명확히 해 모든 종류의 인신매매를 불법화하고 인신매매 피해자 모두를 보호할 수 있도록 할 것 ▲인신매매에 정부관료들이 연관되었다는 혐의를 조사하고 연루된 관료들을 처벌할 것 ▲출입국 관리관들이 인신매매의 잠재적 피해자에게 적용하는 출입국관련 규정을 표준화할 것 ▲판사들이 인신매매 범죄자들의 형량을 더 일관되게 판결할 것 ▲2000년도 UN 인신매매 의정서에 가입할 것 등이었다.

성매매 전쟁 실패
새로운 대안 요구
 
한국의 인신매매 처벌에 관한 내용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건이 2013년에 수정된 형법 제 31조를 따르지 않고, 상대적으로 관대한 2004년의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벌되고 있다는 점 ▲성적 인신매매 범죄자들의 형량이 대부분 2∼3년이지만, 다수가 집행유예를 받는다는 점 ▲출입국 관련 규정이 일관되게 적용되지 않고 있고, 실제로 형량을 다 살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 등이었다.
 
성매매특별법 10년을 되돌아보는 지금, 가시적인 성과보다는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성매매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자발이냐 강제냐’는 잣대로 나뉜다. 그러나 성매매 문제의 원인을 단순히 여성에게 전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성매매 문제의 원인을 사회구조적인 문제에서 찾자는 것이다. 올바른 인식과 제도개선이 뒷받침될 때 보다 의미 있는 성매매 담론이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성매매업소 변천사
집창촌 지고 키스방 뜨고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성매매 집창촌은 눈에 띄게 줄었지만 신·변종업소는 더 늘어났다. 지난 22일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신·변종업소에서의 성매매, 음란행위, 음란물 상영 판매 등으로 경찰에 적발된 건수는 모두 4170건이었다. 이는 지난 2010년 2068건의 2배에 달한다. 또 지난해 4706건의 거의 90%에 육박해 올해 실적은 지난해를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키스방 단속 건수는 2010년 61건에서 지난해 584건으로 무려 857%나 급증했다. 변태마사지 단속 건수는 2010년 505건에서 지난해 1757건으로 3배 이상 뛰었다. 이처럼 신·변종업소가 되레 늘어나는 데 대해 경찰은 단속 근거 자체가 부실했다고 말한다. 과거 경찰은 키스방과 호스트바, 룸카페 등은 풍속영업의 규제에 관한 법률이나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로 처벌할 수 없어 다른 법률을 적용했다.
 
특별법 후 신·변종업소 확산
단속 사각지대서 여전히 성업
 
키스방의 경우 ‘음란한 행위가 이뤄지는 업무에 취업하게 할 목적으로 직업소개, 근로자 모집 또는 근로자 공급을 한 자’를 처벌하는 직업안정법을 적용했으며 룸카페는 PC방처럼 컴퓨터를 방에 설치한 것을 근거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업주를 단속해야 했다.
 
한편, 지난 2011년 9월 규제개혁위원회는 신·변종업소의 영업을 중단시키는 ‘풍속영업 규제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신·변종업소는 유흥·단란 주점 등 단속 가능한 풍속영업소로 규정돼 있지 않아 사실상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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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목줄 잡은 대법원 막전막후

이재명 목줄 잡은 대법원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선을 앞두고 또 하나의 변수가 발생했다. 대권에 가장 가깝다고 평가받는 후보가 또 한 번 판결대에 서야 할 상황에 놓인 것. 그 후보로서는 지난 대선 때부터 꼬리표처럼 따라붙은 리스크를 떨칠 기회이면서 나락으로 빠질 수 있는 위기이기도 하다. 그 중심에 대법원이 있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대통령 파면 결정으로 오는 6월3일 조기 대선이 열린다.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각 당은 최종 대선후보를 뽑기 위한 레이스에 돌입했다. 국민의힘은 컷오프를 거쳐 8명의 후보를 추린 후 1차 경선서 4명을 뽑았다. 2차 경선서 과반 득표자 여부에 따라 추가 경선을 진행해 최종 후보를 선정한다. 민주당은 3명의 후보가 4개 권역을 돌며 지난 27일, 이재명 전 대표가 대선후보로 결정됐다. 압도적 1위 제동 걸리나 국민의힘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최악의 악재를 짊어진 상태다. 조기 대선의 책임 소재가 여당인 국민의힘에도 지워진 상황이라 내부가 혼란스럽다. 실제 후보 간에도 탄핵 찬성과 반대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최종 1인이 결정되는 다음 달 3일까지 후보 간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 민주당은 ‘1극 독주’ 상황이다. 이 전 대표가 경선 지역마다 압도적인 득표율을 보였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의 득표율보다 높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다. 경쟁자로 나선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김동연 경기도지사 등은 한 자릿수 득표율을 벗어나지 못했다. 실제 지난 27일 마지막 경선서 이 전 대표는 민주당 대선후보로 최종 결정됐다. 다자 대결, 양자 대결서도 이 전 대표는 국민의힘 후보를 압도하고 있다. 어떤 후보와 붙어도 15%~20%p 차이로 넉넉하게 앞선다.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재수 끝에 대권을 잡는 데 성공한 문재인 전 대통령 때와 오버랩된다는 의견이 나온다. 당시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이라는 표현이 선거를 지배했듯, 이번 대선은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 유권자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최근 ‘이재명이냐, 아니냐’로 흘러가던 선거 구도에 대법원이라는 변수가 던져졌다. 지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 처음 불거져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전 대표의 발목에 달려 있던 ‘사법 리스크’가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다. 그중에서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다시 한번 판결대 위에 올랐다. 이 전 대표는 20대 대선 과정서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1처장과 경기 성남시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용도변경과 관련해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2022년 9월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뒤집고 무죄로 판결했다. 항소심 유죄, 무죄로 뒤집어 김명수 체제서 7대 5로 회생 이 전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항소심 판결은 지난달 26일에 나왔다. 이후 헌재가 지난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안을 인용하면서 이 전 대표의 대선 행보를 막을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 나왔다. 공직선거법 재판은 1심은 기소 후 6개월, 2·3심은 3개월 이내에 판결을 내려야 한다는 6·3·3 규정에 따라 대법원 판결은 대선 이후에 나올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 전 대표의 사건을 대법원 전원합의체(이하 전합)에 회부하면서 상황이 미묘하게 흘러가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22일 오전, 이 전 대표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오경미·권영준·엄상필·박영재 대법관으로 구성된 2부에 배당했다. 주심은 박영재 대법관이 맡았다. 그러나 곧이어 해당 사건을 전합에 회부했다고 밝혔다. 전합은 ▲소부서 의견 일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 ▲기존 대법 판례의 해석·적용에 관한 의견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 ▲소부서 재판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다고 인정하는 경우 등의 상황에 올리게 된다. 사건이 전합에 회부되면서 조 대법원장과 13명의 대법관 가운데 재판 업무를 하지 않는 법원행정처장, 회피를 신청한 노태악 대법관을 제외한 12명이 최종 판결 선고를 포함해 심리 및 판단을 하게 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겸직하고 있는 노 대법관은 이해 충돌을 우려해 전합으로부터 빠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지난 22일 사건을 전합에 회부하고 첫 기일을 진행한 데 이어 지난 24일에도 기일을 잡았다. 대법원이 사건 심리에 속도를 내는 모습을 보이면서 판결 선고 시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동시에 이 전 대표 앞에도 몇 가지 경우의 수가 놓이게 됐다. 먼저 대법원이 상고 기각을 하는 경우다. 항소심 재판부가 이 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에 대법원이 기각하면 공직선거법 사건은 그대로 마무리된다. 이 전 대표의 대선 가도에 정말 아무것도 거리낄 게 없어지는 셈이다. 변수 등장 경우의 수 반면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내는 ‘파기환송’ 판결을 내리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을 한다고 해서 바로 형이 결정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확정 판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대선 전에 최종 결론이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이 경우에는 이 전 대표의 대선후보 자격 논란이 빚어질 수 있다. ‘파기자판’ 가능성도 나온다. 파기자판은 상급심 재판부가 하급심 판단에 잘못이 있다고 보고 원심을 파기하면서 사건을 돌려보내지 않고 직접 판결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대법원이 판결을 하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이후 보수 진영 등에서 대선 전까지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엔 시간이 부족하다는 의견을 두고 파기자판 가능성을 거론했던 바 있다. 대법원이 벌금 100만원 이상으로 유죄 판결을 내린다면 이 전 대표는 피선거권 박탈로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다만 대법원은 하급심 판결에 대한 법리해석을 따지는 법률심에 해당하며, 징역 10년 이하의 형이 선고된 사건에 대해선 양형을 판단하지 않는다. 법조계에서는 파기자판 가능성은 작게 보고 있다. 대법원이 심리를 서두르는 것과는 별개로 선고가 대선 이후에 나면 헌법 해석을 둘러싼 논란이 점화될 전망이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5년 만에 평행이론? 여기서 논란이 되는 부분이 ‘소추’에 대한 해석이다. 기소로 봐야 하는지, 기소와 재판을 합쳐서 봐야 하는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는 것. 또 이 전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재판 정지 여부도 맞물려 있다. 민주당은 대법원의 행보를 경계하는 듯한 모양새다. 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이 전 대표는 우리 당 대선 (경선) 후보기도 하지만 선고 결과에 따라 우리 당이 직접적 영향을 받는 사건이라 당 차원의 입장 표명이 불가피하다”면서 “(대법원의)공정한 재판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정청래 의원은 “대법원이 국민 참정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면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SNS에 올렸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 전 대표의 운명이 또다시 대법원의 결정에 달렸다는 점이다. 앞서 이 전 대표는 지난 대선 전 대법원의 판결로 ‘기사회생’했던 경험이 있다.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 전 대표는 성남시장 재임 시절인 2012년 6월 보건소장, 정신과 전문의 등에게 친형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도록 지시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로 기소됐다. 또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열린 TV 토론회서 ‘친형을 강제 입원시키려고 한 적이 없다’는 취지의 허위 발언을 한 혐의(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도 받았다. 1심과 2심 모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지만 허위 사실 공표에 대해서는 판결이 엇갈렸다. 1심은 무죄, 2심은 유죄였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형량으로 대법원서 확정되면 이 전 대표는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상황이었다. 경기도지사직은 물론 대선 가도에도 브레이크가 걸릴 판이었다. 조희대 체제도 12명이 판결 이례적 속도전 대선 전에? 대법원은 이 전 대표의 사건을 전합에 회부했다. 판결에는 김명수 전 대법원장과 11명의 대법관이 참여했다. 12명 대법관의 의견은 7(무죄) 대 5(유죄)로 갈렸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7명의 대법관은 이 전 대표의 발언이 “상대 후보자의 공격적 질문에 소극적으로 회피하거나 방어하는 취지의 답변 또는 일부 부정확하거나 다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 표현”이라고 봤다. 적극적으로 반대 사실을 공표했다거나 전체 진술을 허위라고 볼 수 없다는 취지다. 반면 박상옥 전 대법관 등 5명은 이 전 대표의 발언이 유권자의 정확한 판단을 방해할 정도로 왜곡됐다면서 유죄 취지의 반대 의견을 냈다. 상대방 후보의 질문이 즉흥적인 것도 아니었고 이 전 대표도 답변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한 가지 눈여겨볼 부분은 당시 판결이 낳은 후폭풍이다. 7대 5 판결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는 권순일 전 대법관의 행보가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이는 재판 거래 의혹으로 번졌다. 특히 화천대유 실소유주로 알려진 김만배씨가 대법원 선고를 전후해 여러 차례 권 전 대법관의 집무실을 방문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의혹이 확산됐다. 여기에 권 전 대법관은 퇴직 이후 2020년 11월부터 2021년 9월까지 화천대유 고문으로 재직하며 등록 없이 변호사로 활동한 혐의도 받았다. 이 기간 그는 1억5000만원의 고문료를 받았다. 또 대장동 개발업자들로부터 거액을 받거나 약속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른바 ‘50억 클럽’으로 지목된 6명 가운데 1명이기도 하다. 2표 차로 벼랑 끝에서 살아 돌아온 이 전 대표는 경기도지사 임기를 마치고 이후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결국 2022년 대선서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지긴 했지만 대법원 판결이 없었다면 출발선에조차 서지 못할 뻔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5년 뒤 이 전 대표는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로 다시 출발선에 서 있다. 고비마다 또 한 번? 문제는 이 전 대표의 발목에 달린 모래주머니다. 이 전 대표는 12개 혐의로 5개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중에서 공직선거법 사건만 확정 판결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 이번에 대법원이라는 산만 넘으면 이 전 대표 앞에는 ‘꽃길’만 깔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물론 ‘가시밭길’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건 대법원에 달렸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