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완의 수상한 돈벌이 추적

'빌딩 부자’ 회장님 돈놓고 돈먹기

[일요시사 경제2팀] 박효선 기자 = 복사용지 밀크(miilk)로 유명한 한국제지 등을 계열사로 갖고 있는 단재완 회장. 최근 독립 경영하던 계열사들을 묶어 해성그룹을 출범했다. 그런데 최근 단 회장을 향한 투자자들의 원성이 높다. 단 회장 일가의 회사로 알려진 해성산업 주가가 갑자기 추락했기 때문이다. 이후 해성산업을 둘러싼 여러 가지 설들이 퍼지고 있다.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는 해성산업을 파헤쳐보았다.

단재완 해성그룹 회장의 개인회사가 도마에 올랐다. 해성산업 이야기다. 지금까지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별다른 이슈 없이 조용한 회사였다. 그런데 이달 들어 주가가 수직하락하면서 해성산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짭짤한 수익 챙겨

해성산업은 임대 및 관리 사업을 하는 부동산업체다. 빌딩관리가 주력사업이다. 1954년 2월 설립된 이 업체는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사무실이 있다. 직원은 80여명으로 파악됐다. 해성그룹의 지주사역할을 하고 있다. 대중들에게는 복사용지 밀크를 생산하는 한국제지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지만 해성그룹의 모체는 해성산업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단 회장은 해성산업 지분 30.13%(294만주)를 보유하고 있다. 이어 단 회장의 장남 단우영 한국제지 전무가 15.70%(153만주), 차남 단우준 계양전기 상무가 15.23%(148만주)를 갖고 있다. 나머지 지분도 단정숙, 명명진(단명진), 단명호 등 대부분 단 회장의 친인척들이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즉, 단재완 회장은 특수 관계인을 포함해 65.12%의 해성산업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사실상 단 회장 일가의 회사다.

해성산업은 재계에서 은근한 알짜배기 회사로 알려져 있다. 다만 수익이 실적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해성산업의 매출은 100억원 안팎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부동산업체 특성상 매출 규모가 크거나 높은 이익을 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우량한 재무구조를 갖췄다. 역설적이게도 부동산 덕분이다. 해성산업은 서울 북창동 해남빌딩과 서초동 송남빌딩, 부산 송남빌딩 등 다수의 토지와 빌딩을 소유하고 있다. 해성산업의 주요 수입은 이들 빌딩으로부터 나온다. 빌딩 임대료와 시설관리비가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단 회장은 해성산업을 통해 ‘짭짤한’ 현금수익을 챙기고 있다.

자산이 대부분 현금이라 모두 파악하기 어렵지만 단 회장은 수조원대의 막대한 부동산 자산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성산업이 관리하고 있는 빌딩들도 대부분 단 회장 개인 소유다. 서울 강남에 해성1빌딩과 2빌딩, 성수동에 성수빌딩 등을 소유하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두 채의 해성빌딩만 해도 1조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한다. 단 회장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1877억원(지난 2007년 공시지가 기준)짜리 토지를 보유한 것으로 밝혀져 화제가 된 적도 있다. 따라서 단 회장은 ‘현금부자’로 통한다.

지난 4월에는 삼성테크윈 반도체 부품(MDS)까지 인수하면서 자산은 1411억원으로 불어났다. 반면 부채는 140억원에 불과했다. 지난해 해성산업의 부채비율은 9.7%로 집계됐다. 이처럼 단 회장이 부채를 최소한으로 유지하면서도 많은 현금자산을 보유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금을 중시하는 가풍 때문이다. 단 회장의 부친 고 단사천 창업주는 부채비율에 예민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단사천 명예회장 역시 60∼70년대 재계를 주름잡던 현금왕으로 불렸다.

개인회사 통해 금싸라기 부동산 소유
주가 추락…믿고 투자한 개미들 울상

그런데 최근 해성산업에 투자했던 개인투자자들의 원성이 높다. 지난해 12월부터 서서히 올랐던 주가가 이달들어 급격하게 수직 하강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13일만해도 8만원대였던 주가는 2만∼3만원대로 뚝 떨어졌다. 15일 2만원대 바닥을 찍고 서서히 올라가고 있지만 힘을 못 쓰고 있다. 25일 종가는 3만1400원에 그쳤다. 한달 만에 주가가 3분의 1토막이 난 셈이다.

이에 따라 해성산업을 둘러싼 여러 가지 설들이 퍼지고 있다. 우선 해성산업의 보유 부동산이 애초부터 지나치게 고평가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해성산업에서 삼성테크윈 반도체 사업을 인수했다는 점과 보유한 부동산의 재개발로 자산가치가 크게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에 많은 매수세가 유입됐지만 가치가 떨어지면서 주가가 빠졌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런 이유만으로 주가가 가파르게 떨어지지는 않는다.

특히 업계에서는 작전세력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세력이 있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올 초부터 증권가에서는 해성산업에 개입한 작전세력 때문에 개미투자자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전부터 ‘과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주가가 지나치게 ‘고공비행’하고 있다는 평가가 잇따랐고, 개인투자자들 중 피해자가 생길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매출액 100억원대 소형 건물관리업체가 코스닥 시장에서 9000억원을 육박하는 시가총액을 모으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현재 시가총액은 3000억원대(25일 기준)로 토막이 난 상태다.

한국거래소는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해성산업을 투자주의 종목으로 지정한 뒤 집중 모니터링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일부 금융사 지점이 집중적으로 해성산업 주식을 매도한 정황을 파악하고 있다. 거래소는 해성산업 측에 주가 급락 관련 조회공시를 요구했으나 회사는 이와 관련해 공시할 정보가 없다고 답했다. 해성산업은 공시를 통해 “최근에 현저한 시황변동(주가급락)과 관련하여 공시할 중요한 정보가 없다”고 밝혔다.

해성산업은 담당자 부재를 이유로 자세한 답변을 회피했다. 요동치는 주가에 대해 해성산업 관계자는 “홍보팀은 따로 없고 담당자가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재까지 특별한 이슈는 없다”고 일축했다.

작전세력 개입?

단 회장이 기업을 키우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대부분 부동산을 통해 돈벌이를 하다 보니 회사를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단 회장이 독립 경영하던 계열사들을 묶어 해성그룹을 출범했던 것도 실질적인 ‘성장’을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속 성장하는 선도 기업을 만들겠다는 단 회장의 다짐이 지켜질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dklo216@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해성그룹은?

해성산업은 단재완 회장의 부친 고 단사천 명예회장이 설립했다. 단 명예회장 역시 재계에서 손꼽히는 ‘현금왕’이었다. 많은 부동산을 보유했고, 현금 동원력도 상당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개성상인 집안에서 태어난 단 명예회장은 고등학교 졸업 후 18세에 홀로 월남했다. 이후 재봉틀 조립회사 ‘일만상회’를 설립했다. 그의 나이 23세였다. 일만상회를 운영하며 모은 돈으로 1945년 해성직물상회를 세웠다. 이후 1958년 한국제지를 일궈냈고, 1977년 계양전기를 설립했다.

사채시장에서도 그는 명성을 날렸다. ‘명동 사채시장의 큰손’으로 불렸을 정도다. 당시 사업하는 사람 중에서 단 회장의 돈을 빌려 쓰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1980년대 단 회장의 하루 현금동원력이 무려 3000억원 규모였다는 얘기도 있었다. 과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단 회장의 도움을 받았다는 소문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70년대 그는 국내 종합소득세 납부 순위 7위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보다 더 많은 소득세를 냈다.

그렇게 많은 현금을 보유하고도 단 회장은 검소한 생활로 일관했다. 특히 부채비율에 민감했다.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단 회장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낮은 부채비율을 유지해가며 지금까지 기업을 경영해왔다.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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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