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경제2팀] 윤병효 기자 = 자본금 5000만원으로 설립한 회사가 5년 만에 매출액 300억원의 모회사를 역합병하더니 10년도 안 돼 매출 2조원이 넘는 회사를 삼키고 있다. 이게 가능한 일일까.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회사가 있다. 서울도시가스그룹의 얘기다. 서울도시가스그룹 최대주주인 김영민 회장이 33세에 불과한 아들 김요한 부사장에게 회사를 물려주기 위해 치밀한 경영권승계 작전을 펴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삼성 뺨칠 정도라고 평가받는 서울도시가스 경영권 승계 과정을 들여다봤다.
서울도시가스는 1983년 설립된 회사로 강서구 등 서울 11개구와 경기도 고양·김포·파주시 일대 214만 가구에 연간 180만톤의 도시가스를 공급하고 있다. 본사 아래 27개의 계열사를 두고 있으며,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실적은 매출액 2조1400억원, 당기순익 693억원 규모다.
장남 낙점된 듯
서울도시가스 최대주주는 서울도시개발로 26.25%를 보유하고 있다. 이어 김영민 회장이 11.54%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김 회장이 서울도시개발의 지분을 98% 보유하고 있어 실질적으로 서울도시가스에 대해 김 회장이 행사할 수 있는 지분규모는 전체의 37%에 이른다.
이 서울도시가스에 편법 경영권 승계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은 지난 3월 정기주총에서 하나의 정관변경안이 통과되면서부터다. 개정된 정관내용의 핵심은 ‘회사에 신기술을 도입했거나 재무구조 개선에 도움을 준 특정한 자에게 신주인수권, 전환사채,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할 수 있다’는 조항.
신주인수권과 전환사채 등은 회사 지분에 관한 것으로 경영권 향방에 영향을 끼칠만한 중대 사안인 까닭에 쉽게 발의되고 채택될 사안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관변경안은 이사회를 가볍게 통과했다. 지분 37%의 힘이다.
업계에서는 이 정관변경을 두고 “김영민 회장이 매출 2조원대 회사의 경영권을 큰 아들인 김요한 부사장에게 물려주기 위한 수순 밟기”라고 평가하고 있다. 즉, 김 부사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IT회사가 서울도시가스에 신기술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신주 또는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전환사채를 받음으로써 서울도시가스 경영권을 승계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것이다. 신기술에 대한 평가 자체도 김 회장과 김요환 부사장, 그 측근들로 구성된 이사회가 제동을 걸리는 만무하다는 분석이다.
김요환 부사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IT회사는 어떤 회사일까. 그 설립과 성장 과정 또한 예사롭지 않다. 6년 전, 불과 스물일곱에 불과한 김 부사장은 자본금 5000만원으로 통신장비 제조 및 시스템통합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에스씨지솔루션즈(이하 에스씨지)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이 회사의 창업자금은 서울도시가스의 도시가스 배관공사 및 콜센터 업무를 하청 받던 서울도시산업에서 나왔다. 이 에스씨지는 설립 5년 만에 매출액 580억원을 기록할 정도로 쾌속성장을 했다. 그 배경에는 아버지 김 회장이 오너로 있는 서울도시가스 및 계열사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이렇게 성장한 에스씨지는 급기야 지난해 모회사인 서울도시산업을 흡수 합병했다. 자본금 5000만원 짜리 자회사가 불과 5년 만에 매출 300억원이 넘는 모회사를 역합병하는 대형사고를 터트린 것이다.
5000만원짜리 IT회사로 300억 모회사 합병
수상한 정관변경…2조 기업 물려주기 수순?
이러한 역합병은 김 부사장이 서울도시산업의 최대주주(100%)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김 회장이 미리 아들 명의의 하청업체를 세우고 키워온 것이란 얘기다. 합병과정에서 서울도시산업이 출연한 자본금에 대한 지분 또한 김 부사장에게 흡수됐다.
현재 에스씨지는 김 부사장이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결국 모회사 금고에서 돈을 꺼내 자회사를 세우고, 모회사와 아버지 회사의 지원 속에 회사를 키운 다음 종국에는 모회사를 역합병하는 대작업(?)이 완성된 것이다. 서울도시가스의 정관배경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는 이러한 전력 때문이다.
이번에 변경된 정관에 따라 합병으로 몸집을 키운 에스씨지는 서울도시가스에 IT 신기술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신주나 전환사채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생겼다. 이는 삼성전자의 이재용 부회장이 회사 경영권을 인수하게 된 경위와 흡사하다는 점에서 향후 과정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당시 이 부회장은 삼성에버랜드의 전환사채를 싼 값에 매입해 삼성그룹 순환출자의 첫 고리를 쥐게 됐고, 같은 방법으로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매입, 추후 상장을 통해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받을 재산상속에 대한 세금재원을 마련할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번 서울도시가스의 정관병경은 ‘삼성 따라하기’ 정도가 아니라 ‘삼성을 뛰어넘는 편법 경영권 인계 수순’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부사장이 신주 또는 전환사채를 통해 서울도시가스의 지분을 확보해 두고 향후 에스씨지의 기업공개를 통해 현금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김 회장의 지분상속에 소요되는 세금재원을 마련할 것이란 예측이다.
멍석은 깔렸다
서울도시가스 측은 이번 정관변경을 경영권 승계와 연관 짓는 시각을 극도로 경계했다. 회사 관계자는 “이번 정관변경은 지난해에 관련법이 개정돼 변경했을 뿐, 다른 의도는 없다”고 해명했다.
자본금 5000만원짜리 회사가 10년 만에 매출 2조원 규모 회사의 경영권을 넘보는 이 상황이 IT강국의 저력에 기인한 것인지, 빗나간 부정의 애욕 때문인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ybh@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회장님의 유별난 자식 사랑
김영민 회장의 자식 사랑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김 회장은 슬하에 딸 하나 아들 둘을 두고 있다.
첫째 김은혜, 둘째 김요한, 셋째가 김종한이다. 세 자녀 모두 서울도시가스에 근무를 하고 있다. 첫째 은혜씨는 교육기획팀장, 둘째 요한씨는 부사장, 막내 종한씨는 기획팀장이다.
은혜씨는 서울도시가스가 부가사업으로 차린 영어학원인 ‘굿캠퍼스’를 운영하다 실패한 후 곧바로 팀장으로 들어온 케이스. 요한씨는 현재 서울도시가스의 부사장급인 기획조정실장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으면서 에스씨지솔루션즈의 등기이사 및 ‘툰부리’라는 웹툰 제작회사의 대표로도 활동 중이다.
상식적으로 매출 2조원의 넘는 대기업의 부사장이 분야가 전혀 다른 웹툰 업체의 대표로 활동한다는 것 자체가 오너의 아들로서 받는 특혜임을 방증하고 있다. 막내 종한씨는 대학 재학 중에 입사해 바로 팀장이 됐다.
팀장이라고는 하지만 내부직원들도 얼굴을 보기 힘들 정도로 출근이 불규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