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20년’ 공포의 지존파사건 그 후…

인육 씹으며 세상을 씹었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이모 여인은 자신이 직접 겪은 끔찍한 사건을 세상에 알렸다. "인육을 먹는다"는 '연쇄살인집단'의 존재를 폭로한 것이다. 지존파로 명명된 이들은 전국민이 지켜보는 TV 앞에서 "더 죽이고 싶었는데 못 죽여서 한이 맺힌다"는 말로 충격을 안겼다.

카메라 셔터는 쉴 새 없이 터졌고, 의기양양한 20대 초중반 사내들의 입가엔 냉소가 번졌다. 1994년 9월 대한민국을 뒤흔든 지존파 사건이 올해로 꼭 20년을 맞았다. 강산은 두 번이나 바뀌었지만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부익부빈익빈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심화됐다. "부자를 증오한다"는 이들의 말이 저릿저릿한 이유다.


지난 7월 정윤석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논픽션 다이어리>가 관객과 만났다. <논픽션 다이어리>는 지존파 살인사건, 삼풍백화점 붕괴 등 1994년을 전후로 우리 사회에서 발생한 대형 사건들을 다룬 영화다. 공교롭게도 삼풍백화점이 붕괴한 당시의 시대상과 세월호가 침몰한 지금의 사회 분위기는 여러모로 대비되고 있다.

공포의 1994
혼돈의 2014

문제의 지존파 사건은 1994년 9월19일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지존파 조직원이었던 김현양(당시 22세·사망)은 추석 연휴 마지막 날 검거됐다. 그는 범행동기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솔직히 (돈) 없는 사람은 항상 없어요"라고 당당히 말했다. 이어 "더 죽이고 싶었는데 못 죽여서 한이 맺힐 뿐"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조직원은 "돈 없는 놈 무시한 것들, 압구정동 야타족들, (우리처럼) 돈 없는 사람들 무시하는 놈들은 다 죽이고 싶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국제적인 테러조직을 제외하고 살인을 위한 집단을 만들어 이를 직접 실행에 옮긴 조직은 그 사례가 드문 것으로 전해진다. 무엇보다 지존파 조직원은 불특정 부유층을 상대로 증오범죄를 계획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잊을 수 없는 충격을 안겼다.

지금은 <응답하라 1994>와 같은 TV드라마 덕분에 1994년이 아름답게 '포장'되고 있지만 당시를 기억하는 많은 이들은 그 해를 '공포의 해'로 부른다. 1994년 12월22일자 <동아일보> 칼럼을 인용하면 '터질 것은 다 터진 한 해'였다.

20년 전 9월 연쇄살인 소식으로 '발칵'
1994년 박한상·온보현 사건 등 잇달아

실제로 1994년엔 유독 대형사건이 많았다. 자신의 부모를 돈 때문에 살해하고 시체를 불태운 박한상 사건, 여성 6명을 납치해 성폭행하고 잔인하게 살해(2명)한 온보현 사건 등이 지존파 사건 전후로 발생했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도 뒤숭숭했다. 이 무렵 북한 김일성 주석이 사망(7월8일)했고, 성수대교가 붕괴(10월21일)해 49명의 사상자(32명 사망)를 내는 등 대한민국은 한 달에 한 번씩 충격에 휩싸였다. 같은 해 연말에는 서울 아현동에서 도시가스가 폭발해 100여명이 다치고 12명이 사망하는 참극이 빚어졌다.

지존파 사건은 김일성 사망의 여파가 잦아들 때쯤 각 신문 머리꼭지를 장식했다. 시기적으로는 박한상 사건 이후 5개월 만에 터진 대형 살인사건이었다. 패륜범 박한상씨는 강남에서 소위 '잘 나간다'는 오렌지족이었는데 지존파가 증오한 대상과 정확히 들어맞아 화제가 됐다.

부자를 증오한다
범행을 계속한다

당시 신문보도와 재판기록 등을 참고한 지존파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1993년 4월 지존파 두목 김기환(당시 26세·사망)은 중학교 후배 강동은과 강동은의 교도소 동기 문상록을 만나 "더러운 인간들을 청소하자"고 제의했다.

포커를 치고 있던 이들은 마스칸, 그리스어로 야망이란 뜻을 가진 범죄조직을 결성했다. 후일 이들을 검거한 서울 서초경찰서의 고병천 수사관은 강동원 등이 김기환을 '지존'으로 부른 것에 착안해 지존파란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김기환은 "세상이 오염됐다"는 생각으로 일찍부터 사회 고위층을 겨냥한 살인을 계획했다.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줄곧 반장을 했던 그의 생활기록부에는 "이해력이 빠르고 산수나 계산능력이 우수하다"는 지도의견이 적혀있었다.

실제로 김기환은 두뇌가 나름 명석했다고 한다. <삼국지>를 10번이나 읽을 정도로 독서량이 엄청났고, 바둑은 프로에 준하는 1급이었다고 알려졌다. 때문에 일각에선 정신연령(고등학교 1∼2학년 수준)이 낮았던 조직원들이 김기환의 꾐에 이용당했다는 시각이 있었다.

같은 해 김기환은 강동은의 소개로 강문섭을 영입했고, 전남 영광에서 트럭운전을 하다 만난 김현양을 조직에 끌어들였다. 여기에 스무살 백병옥까지 모두 6명이 지존파로 활동했다. 유일한 여성조직원 이모(23세)씨도 있었지만 그는 법원에서 살인에 가담하지 않은 사유가 참작돼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지존파 일당은 1993년 5월부터 1994년 9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모두 5명을 살해·유기하는 끔직한 범행을 저질렀다. 1994년 충남 논산에서 최모(당시 23세·여)씨를 윤간 및 살해·암매장한 것을 시작으로 그해 8월에는 조직자금을 빼돌리려 한 같은 조직원 송봉은을 살해·암매장했다. 이 가운데 최씨는 지존파가 저지른 살인예행연습의 희생양으로 이유 없이 살해돼 안타까움을 줬다.

비슷한 시기 지존파는 '돈 있고 백 있는 놈의 것을 빼앗고 그들을 죽인다'는 내용의 행동강령을 만들어 이를 실행할 목적으로 자금을 모았다. 강령을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우리는 부자들을 증오한다 ▲각자 10억(원)씩 모을 때까지 범행을 계속한다 ▲배반자는 처형한다 ▲여자는 어머니도 믿지 말라 등이다.

지존파 일당은 대전·분당 등 신도시 건설 현장에서 각자 막노동을 하며 돈을 벌었다. 일부 자금 출처가 의심되는 부분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이들이 모은 돈은 수천여만원에 이르렀다. 범행자금을 모으기 위해 끼니마저 걸렀다고 하니 이들의 집요함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살인공장서
차례로 죽였다

1994년 5월 김기환의 고향인 전남 영광에는 '살인공장'이 들어섰다. 지존파 아지트였던 그곳에는 창살감옥과 사체를 태우기 위한 소각시설(화덕)이 마련됐다. 뿐만 아니라 공기총, 다이너마이트, 도끼 등 다양한 살인도구가 구비됐다.

이들의 치밀한 범행준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압구정 한 유명백화점의 VIP명단을 입수해 범행대상으로 삼았다. 하루 600만∼700만원어치 이상의 물품을 구입하는 사람이 우선 범행대상으로 지목됐다. 당시 1000여명이 적힌 우수고객명단에는 정·관계 유명인사, 재벌 2세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존파 사건으로 일부 부유층이 밤잠을 설쳤다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논픽션 다이어리>의 정 감독이 쓴 연출의도를 인용하면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분노로 시작된 지존파의 범행은 정작 '돈 많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죽이지 못한 채 검거되며 일단락됐다. 인간임을 스스로 포기하기 위해 인육을 먹었다는 지존파의 범행은 처절함을 넘어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살인공장을 만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목 김기환은 고향 선배 조카인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을 강간한 혐의로 체포됐다. 법정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그는 광주교도소에 수감됐는데 지존파 일당은 김기환의 옥중 지시를 받아 범행을 계속했다.

1994년 9월8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카페 종업원으로 일하던 이모 여인은 카페 밴드 마스터이자 애인인 이종원(당시 36세·사망)의 그랜드 승용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러 갔다가 지존파에게 납치됐다. 지존파 일당은 이 여인을 윤간한 뒤 이종원에게 돈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목 졸라 살해했다.

이어 이종원의 시신을 차량 운전석에 앉히고 교통사고로 위장해 절벽으로 떨어뜨렸다. 경찰은 이 사건을 최초 음주운전에 의한 단순사고로 오인했다고 전해진다.

남은 이 여인의 처리를 놓고 김현양과 다른 조직원들은 심하게 다퉜다. 당시 김현양은 이 여인에게 연인의 감정을 느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지존파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는 도화선이 됐다. 김현양의 고집으로 이 여인은 살아남아 지존파와 함께 생활했다.

1994년 9월13일 경기도 성남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소윤오-박미자 부부가 납치됐다. 소윤오 부부는 고급차를 타고 다녔다는 이유로 지존파의 타깃이 됐다.

하지만 소윤오는 개인 빚까지 내가며 회사를 지키려던 성실한 사업가였다. 고급차도 회사영업용이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들은 지존파로부터 1억원 가까이 갈취당한 뒤 무참히 살해됐다. 살해 과정에는 미리 준비한 공기총과 도끼가 동원됐다. 소윤오 부부의 사체는 소각됐다.

백화점 고객명단 유출
정재계 유명인사 벌벌

1994년 9월15일 김현양은 다이너마이트를 다루다가 폭발해 부상을 입었다. 그는 치료차 병원에 가면서 이 여인과 동행했다. 당시 "이 여인을 죽여야 한다"고 했던 문상록 등으로부터 이 여인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치료를 받는 동안 이 여인은 병원에서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탈출했다. 김현양 등이 쫓아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택시를 세 번이나 갈아탔다. 이 여인이 도착한 곳은 서울 서초경찰서. 이모 여인은 자신이 직접 겪은 끔찍한 사건을 세상에 알렸다.

1994년 9월17일 이모 여인의 자리는 강동은의 애인이었던 여성조직원 이씨가 대신했다. 하지만 이씨는 이틀 뒤 들이닥친 경찰에 붙잡혔다. 자신을 조직에 끌어들인 '5명의 악당'과 함께였다. 당시 감옥에 있던 두목 김기환은 "녀석들, 여자는 어머니도 믿어서는 안 된다고 그렇게 말했는데…"라며 아쉬워했다고 전해진다.

앞서 밝혔듯 지존파의 범행은 빈부격차와 부자들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에서 출발했다. 불행하게도 실제 피해자는 평범한 서민밖에 없었다. TV화면에선 "우리는 악마의 씨를 타고났다"는 이들의 악다구니만 생중계됐다. 주류 언론은 지존파를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로 그렸다. 그렇지만 이들에 대한 동정론이 공존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양극화됐는지를 나타내는 징표였다.

1994년 10월31일 서울형사지법 합의22부(당시 이광렬 부장판사)는 김기환, 김현양 등 지존파 일당 6명에게 살인·사체유기·범죄단체조직 및 가입죄를 적용해 사형을 선고했다. 피고인들이 구속기소된 지 불과 25일 만에 1심 재판이 끝난 것이다.

다음해인 1995년 1월 <한겨레>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45.3%는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힘으로 '돈'을 첫손에 꼽았다. '권력'은 39.1%였다. 흥미로운 점은 지존파 사건의 원인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61.8%가 '사회구조의 잘못'을 짚었다는 것이다. 개인의 성격은 8.3%, 가정환경은 27.9%였다.

법무부는 같은 해 11월 지존파 6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 한상씨는 사형이 확정됐지만 집행되지 않았다. 경찰 수사관에게 "오늘(조간신문)은 내가 톱이냐, 지존파가 톱이냐"고 물었던 온보현은 형장의 이슬이 됐다. 이들과 함께 사형된 죄수 중에는 가정집에 침입해 아기를 죽이겠다고 위협하여 부녀자를 다섯 차례 강간한 배모씨, 김모씨 등이 눈에 띄었다.

지존파사건 직후 발생한 성수대교 참사, 사상 유례가 없는 사망자를 낸 삼풍백화점 붕괴로 10년 이상의 중형이 선고된 예는 없었다. 이준 전 삼풍건설산업 회장의 경우엔 징역 7년6월이 선고됐다.

이례적 사형집행
부자는 솜방망이

대한민국을 뒤흔든 지존파 사건은 올해로 꼭 20년을 맞았다. 강산은 두 번이나 바뀌었지만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부익부빈익빈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심화됐다. 올 1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펴낸 '근로 및 사회정책에 대한 국민의식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41.3%가 '부자는 극소수이고 가난한 사람이 많은 사회'라고 답했다. 또 올 4월 한국갤럽이 실시한 '부자에 대한 인식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66%는 ‘존경할 만한 부자가 많지 않다’고 답했다.

지존파는 죽었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 안에는 부정하게 돈을 번 부자들이 기득권을 대물림하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부자를 증오한다"는 지존파의 강령이 오늘날에도 저릿저릿한 이유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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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에 판 깔린 ‘명심’ 선발전

경기도에 판 깔린 ‘명심’ 선발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6·3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선거판을 달구고 있다. 여당 강세 지역인 만큼 민심은 물론 당심까지 한번에 훑어볼 절호의 기회다. 1차 예비경선도 ‘기승전 이재명’으로 막을 내렸다. ‘찐명’ 타이틀을 거머쥘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지, 여당의 이목이 경기도에 쏠리는 이유다. 지난 22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경기도지사 예비경선을 실시했다. ▲김동연 현 경기도지사 ▲추미애 의원 ▲한준호 의원 등으로 후보가 압축되면서 3강 체제가 굳어졌다. 권칠승·양기대 후보는 고배를 마셨다. 100% 권리당원 투표로 진행된 만큼 오직 당심으로만 결정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현역인 김동연 후보는 행정력을, 추미애 후보는 검찰개혁 선봉자와 6선의 중량감을, 한준호 후보는 친명(친 이재명)계 조직력을 바탕으로 1차 관문을 통과했다는 평을 받는다. 당심 100% 첫 관문 본경선은 다음 달 5~7일 진행되며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상위 2명이 15~17일 결선투표를 치른다. 본경선 투표는 권리당원 50%와 국민 여론조사 50%가 반영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 검찰개혁에 앞장선 추 후보는 강성 지지층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다. 추 후보 역시 이를 동력 삼아 사법 3법(법 왜곡죄, 재판소원법, 대법관 증원법)과 중수청·공소청 설치 법안 강행 처리를 주도했다. 추 후보는 출마 선언을 통해 선명한 개혁과 강인한 리더십을 강조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이 재난지원금과 청년기본소득을 적극 추진하며 사회적 기본권을 보장하고, 수십 년간 지지부진했던 불법 계곡을 정비해 경기도가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던 것처럼 경기도에도 도민을 행정 중심에 놓는 사고의 전환과 강한 결단력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 추미애는 개혁이 필요하면 정면으로 돌파했다. 원칙 앞에서 물러선 적이 없었고 어려운 이웃을 외면한 적이 없었다”며 “책임지는 행정, 실천하는 행정으로 경기도정을 이끌겠다”고 밝혔다. 한 후보는 “경기도가 성공해야 이재명정부가 성공한다”며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을 전면에 내세웠다. 한 후보는 “이정부의 실용주의를 경기도에서 가장 먼저, 가장 분명하게 성과로 완성하겠다. 지금 경기도에 필요한 것은 망설임이 아니라 실행, 말이 아니라 결단, 계획이 아니라 책임지는 도정”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당시 한 정치권 관계자는 “추 후보는 정부를 이끌 리더십을 강조했다면 한 후보는 보조하는 조력자 역할에 방점을 찍었다.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명심을 내세웠지만 이를 활용하는 방법은 다른 셈”이라며 “민주 당원도 어떤 역할이 이정부 성공에 도움이 될지 저울질하면서 선거 과정을 지켜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역인 김 후보는 “일잘러(일을 잘하는 사람) 대통령에게는 일잘러 도지사가 필요하다”며 행정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김 후보는 이 대통령이 경기도지사를 지내던 당시 추진하던 기본소득과 지역화폐 등의 정책을 이어받아 발전시킨 사례를 성과로 제시했다. 김 후보는 “지금 이 대통령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속도와 체감’이다. 좌충우돌, 시행착오로 낭비할 시간이 우리에겐 없다”며 자신이 이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국정 제1동반자’임을 거듭 강조했다. ‘강경’ 추 ‘친명’ 한 ‘비명’ 김 앞다퉈 “내가 국정 파트너 적임자” 정치권은 세 사람의 성향이 모두 다른 점에 주목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강성 추미애’ ‘친명 한준호’ ‘비명(비 이재명)이었던 김동연’이 한자리에 모였다. 경기도지사 선거를 빙자한 ‘친명 선발 토너먼트’인 격”이라며 “최종 후보가 선정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민주당 권력이 어디를 향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어 “국민의힘이 끼어들 틈이 없다 보니 민주당만의 리그가 됐다. 민주당 최종 후보는 경기도지사직뿐만이 아니라 ‘이재명의 복심’이라는 타이틀까지 얻는 효과를 본다. 민심과 당심의 향배를 모두 주목해야 한다”고 봤다. 세 사람 모두 네거티브 경쟁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예비경선 득표율을 놓고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후보 측이 “(예비경선) 2위를 확신한다”고 주장하며 불을 지핀 것. 득표율은 후보 본인에게만 공개되지만 본선 진출을 위해 각자 유리한 여론 조성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예비경선이 치러진 다음 날인 23일, 민주당 염태영 의원은 경기도의회 브리핑룸에서 ‘한준호 후보 본경선 전략 브리핑’을 갖고 “당이 후보별 전체 순위와 득표율을 공개하지 않고 있어 추정치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면서도 “한 후보가 상당히 약진했고, 권리당원 투표에서는 2위를 했다는 것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 중요한 것은 현재 수치보다 추세와 흐름”이라며 “경기도민과 권리당원들이 경기도의 미래를 이끌 새로운 지도자의 기준을 바꾸기 시작한 결과가 이번 예비경선에 반영됐다”고 해석했다. 이에 김 후보는 “순위 발표도 안 됐는데 각자 자기주장 하는 것”이라고 받아쳤다.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는 권리당원의 당심과 경기도민의 민심,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의 승리다. 김 후보는 당심이, 나머지 두 후보는 민심에 취약한 만큼 각각 절반이 부족하다는 평이다. 민심과 당심이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 만큼 후보들은 전략 수정에 나섰다. 그동안 추 후보는 각종 개혁에 앞장서는 등 강성 이미지를 굳혀왔다. 하지만 강성 이미지는 양날의 검이 돼 2024년 하반기 국회의장 선거 당시 낙선 원인이 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강성 당심은 추 후보를 밀었지만, 의원 투표 결과 온건파인 우원식 후보가 당선되면서 급제동이 걸린 것. 추 후보는 6선의 중진이지만 이번 경기도지사까지 패배하게 되면 정치적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역풍 불라” 완급 조절 이를 의식한 듯 최근 추 후보는 ‘추다르크’라는 별명을 내려놓고 행정가로서의 면모와 실용성을 강조하고 있다. 추 후보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입법·사법·행정을 골고루 경험한 유일 후보”라며 “입법을 통해 큰 틀 아이디어를 냈다면 이제는 현장에 뛰어들어 성과를 내보고 싶다”고 말했다. 검찰개혁 완수를 본인의 최대 성과로 내세운 추 후보가 법사위원장을 내려놓고 선거에 뛰어든 것 역시 중도를 설득하기 위한 행보로 해석된다. 권리당원 100%로 치러진 예비경선과 달리 본경선은 일반 여론조사와 당원 조사가 각각 50%씩 반영된다. 결국 줄어든 강성 당원의 영향력 만큼 중도층을 최대한 끌어오는 것이 관건이다. 추 후보는 사퇴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7개월간 법사위원장으로서 총 682건의 개혁법안과 민생법안을 처리했다”며 “법 왜곡죄를 도입하는 ‘형법’, 재판소원을 허용하는 ‘헌법재판소법’, 대법관 증원안이 담긴 ‘법원조직법’ 개정안 등 사법개혁 3법과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법안까지 검찰개혁 과제를 완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언제나 제 중심에는 국민이 있었고, 어떠한 가시밭길도 외면하지 않았다”며 “2021년 검찰개혁을 완수하지 못한 채 법무부 장관 자리를 떠나야 했던 무거운 발걸음이 아니라 이처럼 뜻깊은 결과를 여러분께 보고드릴 수 있게 되어 영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힘이 되어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며 “대한민국의 중심 경기도를 승리로 이끌고 이정부와 함께 국민주권시대를 만들어 내겠다”고 덧붙였다. 한 후보는 오히려 ‘이재명 픽’을 앞세웠다. 이정부를 흔드는 세력을 향해 각을 세우면서 전투력을 강조하는 등 기존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 최근 한 후보는 ‘이재명 공소 취소설’의 근원지인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대통령의 생각을 자꾸 언급하는 것 자체가 당을 지휘하고 있는 당 대표로서 맞냐는 생각이 있다”며 김어준씨와 정청래 대표 등을 겨냥한 듯한 발언을 했다. 여권 갈등의 뇌관이 된 유시민 작가의 ‘ABC론’을 놓고 설전이 이어지기도 했다. 유 작가는 민주당 지지층을 A(가치 중시), B(본인 이익 추구), C(A, B의 교집합) 등 세가지 그룹으로 분류했으며 특히 B그룹은 “이익과 생존을 위해 친명을 자처하는 이들”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한 후보는 “갈라쳐서 얻는 게 뭔지 모르겠다”고 반응했고 유 작가가 재반박에 나섰다. 이후 한 후보는 자신의 SNS를 통해 “작가님의 말씀, 무겁게 듣고 있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며 “저를 향한 비판과 비난은 기꺼이 감당하겠다. 하지만 이 대통령님과 정부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어 “지금의 모습은 불안한 외줄타기 같다”며 “선은 분명하다. 그 선은 지켜달라”고 요구했다. 끊지 못한 명 꼬리표 한 후보는 “53% 싸움”을 내세우며 본경선 승리를 위한 지지층 결집을 호소했다. 오는 6월 선출되는 경기도지사의 임기는 4년으로 이 대통령의 남은 임기와 맞물린다. 따라서 이정부와 합을 잘 맞추는, 명심을 잘 꿰뚫는 후보가 경기도지사에 당선되어야 한다는 게 한 후보 측 지지층의 핵심 메시지다. 한 후보 역시 “‘이재명 지사였다면 벌써 해결했을 일들’을 한준호가 가장 스마트하고 빠르게 해결하겠다”며 “딱 세 표가 부족하다. 나의 한 표에 더해, 가장 가까운 두 분만 더 설득해 달라”고 밝혔다. 김 후보는 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1위의 김 후보를 추 후보가 뒤쫓고, 한 후보가 마지막 뒤집기 기회를 엿보는 구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4일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퍼블릭이 <중부일보> 의뢰로 경기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지난 2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오는 6월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누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은 결과 김 후보는 25%, 추 후보는 22%, 한 후보는 11%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전화면접조사 방식(CATI)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5%p, 응답률은 12.7%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김 후보는 당심 100%라는 가장 어려운 관문을 뚫었지만 질긴 비명 꼬리표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의 최대 약점은 경기도지사 선거 당시 본인에게 도움을 줬던 민주당 핵심 지지층과의 관계를 소홀히 했다는 국민 인식이다. 유 작가는 한 유튜브 방송을 통해 “(당시 이재명) 대표한테 붙어 지사가 된 사람이지 않나. 배은망덕”이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2024년 임기 후반기 접어들자 본격적으로 비명 프레임이 굳어졌다. 당시 김 후보는 민주당 전해철 전 의원 등 대표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영입했고, 친명계에서는 “유력 대권후보 주자인 이재명 당 대표에 맞서기 위한 결집 시도” 등 견제가 이어졌다. 김 후보는 표를 분산시키는 친비명 프레임을 깨고 인물론에 승부를 걸었지만 민주당 여론이 심상치 않다. 일부 친민주당 성향 커뮤니티에서 “친명계와 개딸(개혁의 딸)이 벼르고 있다”는 여론이 형성되자 김 후보는 자세를 낮추고 당원에게 호소하는 메시지를 냈다. 2% 부족한 후보들…해법은? 이제 와서 고개 숙인 김동연 김 후보는 예비경선이 시작된 지난 21일 자신의 SNS에 “‘나는 동지들의 헌신에 보답했는가’ 되묻는다. 많이 부족했다”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김 후보는 “경기도의 저력도, 제가 여기에 서 있는 것 자체도, 당원 동지들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며 “갚을 길은 하나라고 믿는다. 이재명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제 저는 선택의 시간 앞에, 당원동지들 앞에 서 있다. 감히 청한다.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뛰어라, 당원의 마음을 명심하고 다시 한번 일하라.’ 저 김동연에게 그 기회를 주십시오. 당원 동지들의 뜻을 간절히 기다린다”고 호소했다. 김 후보는 친비명 논란에 거듭 선을 그었다. 그는 “이 대통령 중심으로 성공한 나라를 만드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당의 친명(친 이재명)·비명은 의미가 없다”며 “경기도는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서 국정 제1파트너로서 충분히 뒷받침하면서, 필요하다면 앞에서 끌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한 후보와 마찬가지로 유 작가의 ABC론을 꼬집었다. 김 후보는 JTBC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가나다’론을 제시하며 “ABC 때문에 논쟁이 벌어진 거 같은데 저는 ‘가나다’로 얘기하면 어떨까 싶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가’는 김대중 대통령을 좋아하는 민주당의 토대다. ‘나’는 그 뒤를 이은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하고 지지했던 분들, ‘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과 성과로 보여주는 리더십을 좋아하는 분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ABC론이 조선시대 노론이나 소론도 아니고 가나다로 한데 뭉치고 더하는 민주당이 됐으면 좋겠다”고 부연했다. 민주당은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가 계파 분열의 초입이 될까 노심초사하는 모양새다. 이에 민주당 원조 친명 핵심으로 꼽히는 김영진 의원은 김 후보를 향한 ‘반명 공세’에 “이 대통령과 어려움을 함께했던 소중한 민주당의 멤버”라며 직접 엄호에 나섰다. 또 김 의원은 2022년 대선 당시 김동연 대선후보(새로운 물결)와의 단일화 과정을 회상하며 “안철수 후보는 윤석열 후보에게 갔지만 김 후보는 이재명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어려운 선거를 함께 뛰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분열은 ‘독’ 친명 지원전 한 민주당 관계자는 김 지사의 화합 메시지와 호소력에 주목했다. 이 관계자는 “골수 친명은 김 후보에 대한 반감이 크다. 김 후보에게 친문 표가 약 30% 정도 있다고 본다”며 “김 지사가 막판에 승리하려면 이 30%를 유지하면서 당원에게 호소하는 전략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친명을 적으로 돌리면 답이 없다. 등 돌린 사람이 있는 곳에 가서 그 사람이 원하는 메시지를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