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20년’ 공포의 지존파사건 그 후…

인육 씹으며 세상을 씹었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이모 여인은 자신이 직접 겪은 끔찍한 사건을 세상에 알렸다. "인육을 먹는다"는 '연쇄살인집단'의 존재를 폭로한 것이다. 지존파로 명명된 이들은 전국민이 지켜보는 TV 앞에서 "더 죽이고 싶었는데 못 죽여서 한이 맺힌다"는 말로 충격을 안겼다.

카메라 셔터는 쉴 새 없이 터졌고, 의기양양한 20대 초중반 사내들의 입가엔 냉소가 번졌다. 1994년 9월 대한민국을 뒤흔든 지존파 사건이 올해로 꼭 20년을 맞았다. 강산은 두 번이나 바뀌었지만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부익부빈익빈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심화됐다. "부자를 증오한다"는 이들의 말이 저릿저릿한 이유다.


지난 7월 정윤석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논픽션 다이어리>가 관객과 만났다. <논픽션 다이어리>는 지존파 살인사건, 삼풍백화점 붕괴 등 1994년을 전후로 우리 사회에서 발생한 대형 사건들을 다룬 영화다. 공교롭게도 삼풍백화점이 붕괴한 당시의 시대상과 세월호가 침몰한 지금의 사회 분위기는 여러모로 대비되고 있다.

공포의 1994
혼돈의 2014

문제의 지존파 사건은 1994년 9월19일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지존파 조직원이었던 김현양(당시 22세·사망)은 추석 연휴 마지막 날 검거됐다. 그는 범행동기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솔직히 (돈) 없는 사람은 항상 없어요"라고 당당히 말했다. 이어 "더 죽이고 싶었는데 못 죽여서 한이 맺힐 뿐"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조직원은 "돈 없는 놈 무시한 것들, 압구정동 야타족들, (우리처럼) 돈 없는 사람들 무시하는 놈들은 다 죽이고 싶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국제적인 테러조직을 제외하고 살인을 위한 집단을 만들어 이를 직접 실행에 옮긴 조직은 그 사례가 드문 것으로 전해진다. 무엇보다 지존파 조직원은 불특정 부유층을 상대로 증오범죄를 계획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잊을 수 없는 충격을 안겼다.


지금은 <응답하라 1994>와 같은 TV드라마 덕분에 1994년이 아름답게 '포장'되고 있지만 당시를 기억하는 많은 이들은 그 해를 '공포의 해'로 부른다. 1994년 12월22일자 <동아일보> 칼럼을 인용하면 '터질 것은 다 터진 한 해'였다.

20년 전 9월 연쇄살인 소식으로 '발칵'
1994년 박한상·온보현 사건 등 잇달아

실제로 1994년엔 유독 대형사건이 많았다. 자신의 부모를 돈 때문에 살해하고 시체를 불태운 박한상 사건, 여성 6명을 납치해 성폭행하고 잔인하게 살해(2명)한 온보현 사건 등이 지존파 사건 전후로 발생했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도 뒤숭숭했다. 이 무렵 북한 김일성 주석이 사망(7월8일)했고, 성수대교가 붕괴(10월21일)해 49명의 사상자(32명 사망)를 내는 등 대한민국은 한 달에 한 번씩 충격에 휩싸였다. 같은 해 연말에는 서울 아현동에서 도시가스가 폭발해 100여명이 다치고 12명이 사망하는 참극이 빚어졌다.

지존파 사건은 김일성 사망의 여파가 잦아들 때쯤 각 신문 머리꼭지를 장식했다. 시기적으로는 박한상 사건 이후 5개월 만에 터진 대형 살인사건이었다. 패륜범 박한상씨는 강남에서 소위 '잘 나간다'는 오렌지족이었는데 지존파가 증오한 대상과 정확히 들어맞아 화제가 됐다.

부자를 증오한다
범행을 계속한다

당시 신문보도와 재판기록 등을 참고한 지존파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1993년 4월 지존파 두목 김기환(당시 26세·사망)은 중학교 후배 강동은과 강동은의 교도소 동기 문상록을 만나 "더러운 인간들을 청소하자"고 제의했다.


포커를 치고 있던 이들은 마스칸, 그리스어로 야망이란 뜻을 가진 범죄조직을 결성했다. 후일 이들을 검거한 서울 서초경찰서의 고병천 수사관은 강동원 등이 김기환을 '지존'으로 부른 것에 착안해 지존파란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김기환은 "세상이 오염됐다"는 생각으로 일찍부터 사회 고위층을 겨냥한 살인을 계획했다.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줄곧 반장을 했던 그의 생활기록부에는 "이해력이 빠르고 산수나 계산능력이 우수하다"는 지도의견이 적혀있었다.

실제로 김기환은 두뇌가 나름 명석했다고 한다. <삼국지>를 10번이나 읽을 정도로 독서량이 엄청났고, 바둑은 프로에 준하는 1급이었다고 알려졌다. 때문에 일각에선 정신연령(고등학교 1∼2학년 수준)이 낮았던 조직원들이 김기환의 꾐에 이용당했다는 시각이 있었다.

같은 해 김기환은 강동은의 소개로 강문섭을 영입했고, 전남 영광에서 트럭운전을 하다 만난 김현양을 조직에 끌어들였다. 여기에 스무살 백병옥까지 모두 6명이 지존파로 활동했다. 유일한 여성조직원 이모(23세)씨도 있었지만 그는 법원에서 살인에 가담하지 않은 사유가 참작돼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지존파 일당은 1993년 5월부터 1994년 9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모두 5명을 살해·유기하는 끔직한 범행을 저질렀다. 1994년 충남 논산에서 최모(당시 23세·여)씨를 윤간 및 살해·암매장한 것을 시작으로 그해 8월에는 조직자금을 빼돌리려 한 같은 조직원 송봉은을 살해·암매장했다. 이 가운데 최씨는 지존파가 저지른 살인예행연습의 희생양으로 이유 없이 살해돼 안타까움을 줬다.

비슷한 시기 지존파는 '돈 있고 백 있는 놈의 것을 빼앗고 그들을 죽인다'는 내용의 행동강령을 만들어 이를 실행할 목적으로 자금을 모았다. 강령을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우리는 부자들을 증오한다 ▲각자 10억(원)씩 모을 때까지 범행을 계속한다 ▲배반자는 처형한다 ▲여자는 어머니도 믿지 말라 등이다.

지존파 일당은 대전·분당 등 신도시 건설 현장에서 각자 막노동을 하며 돈을 벌었다. 일부 자금 출처가 의심되는 부분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이들이 모은 돈은 수천여만원에 이르렀다. 범행자금을 모으기 위해 끼니마저 걸렀다고 하니 이들의 집요함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살인공장서
차례로 죽였다

1994년 5월 김기환의 고향인 전남 영광에는 '살인공장'이 들어섰다. 지존파 아지트였던 그곳에는 창살감옥과 사체를 태우기 위한 소각시설(화덕)이 마련됐다. 뿐만 아니라 공기총, 다이너마이트, 도끼 등 다양한 살인도구가 구비됐다.

이들의 치밀한 범행준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압구정 한 유명백화점의 VIP명단을 입수해 범행대상으로 삼았다. 하루 600만∼700만원어치 이상의 물품을 구입하는 사람이 우선 범행대상으로 지목됐다. 당시 1000여명이 적힌 우수고객명단에는 정·관계 유명인사, 재벌 2세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존파 사건으로 일부 부유층이 밤잠을 설쳤다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논픽션 다이어리>의 정 감독이 쓴 연출의도를 인용하면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분노로 시작된 지존파의 범행은 정작 '돈 많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죽이지 못한 채 검거되며 일단락됐다. 인간임을 스스로 포기하기 위해 인육을 먹었다는 지존파의 범행은 처절함을 넘어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살인공장을 만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목 김기환은 고향 선배 조카인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을 강간한 혐의로 체포됐다. 법정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그는 광주교도소에 수감됐는데 지존파 일당은 김기환의 옥중 지시를 받아 범행을 계속했다.


1994년 9월8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카페 종업원으로 일하던 이모 여인은 카페 밴드 마스터이자 애인인 이종원(당시 36세·사망)의 그랜드 승용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러 갔다가 지존파에게 납치됐다. 지존파 일당은 이 여인을 윤간한 뒤 이종원에게 돈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목 졸라 살해했다.

이어 이종원의 시신을 차량 운전석에 앉히고 교통사고로 위장해 절벽으로 떨어뜨렸다. 경찰은 이 사건을 최초 음주운전에 의한 단순사고로 오인했다고 전해진다.

남은 이 여인의 처리를 놓고 김현양과 다른 조직원들은 심하게 다퉜다. 당시 김현양은 이 여인에게 연인의 감정을 느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지존파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는 도화선이 됐다. 김현양의 고집으로 이 여인은 살아남아 지존파와 함께 생활했다.

1994년 9월13일 경기도 성남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소윤오-박미자 부부가 납치됐다. 소윤오 부부는 고급차를 타고 다녔다는 이유로 지존파의 타깃이 됐다.

하지만 소윤오는 개인 빚까지 내가며 회사를 지키려던 성실한 사업가였다. 고급차도 회사영업용이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들은 지존파로부터 1억원 가까이 갈취당한 뒤 무참히 살해됐다. 살해 과정에는 미리 준비한 공기총과 도끼가 동원됐다. 소윤오 부부의 사체는 소각됐다.

백화점 고객명단 유출
정재계 유명인사 벌벌


1994년 9월15일 김현양은 다이너마이트를 다루다가 폭발해 부상을 입었다. 그는 치료차 병원에 가면서 이 여인과 동행했다. 당시 "이 여인을 죽여야 한다"고 했던 문상록 등으로부터 이 여인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치료를 받는 동안 이 여인은 병원에서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탈출했다. 김현양 등이 쫓아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택시를 세 번이나 갈아탔다. 이 여인이 도착한 곳은 서울 서초경찰서. 이모 여인은 자신이 직접 겪은 끔찍한 사건을 세상에 알렸다.

1994년 9월17일 이모 여인의 자리는 강동은의 애인이었던 여성조직원 이씨가 대신했다. 하지만 이씨는 이틀 뒤 들이닥친 경찰에 붙잡혔다. 자신을 조직에 끌어들인 '5명의 악당'과 함께였다. 당시 감옥에 있던 두목 김기환은 "녀석들, 여자는 어머니도 믿어서는 안 된다고 그렇게 말했는데…"라며 아쉬워했다고 전해진다.

앞서 밝혔듯 지존파의 범행은 빈부격차와 부자들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에서 출발했다. 불행하게도 실제 피해자는 평범한 서민밖에 없었다. TV화면에선 "우리는 악마의 씨를 타고났다"는 이들의 악다구니만 생중계됐다. 주류 언론은 지존파를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로 그렸다. 그렇지만 이들에 대한 동정론이 공존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양극화됐는지를 나타내는 징표였다.

1994년 10월31일 서울형사지법 합의22부(당시 이광렬 부장판사)는 김기환, 김현양 등 지존파 일당 6명에게 살인·사체유기·범죄단체조직 및 가입죄를 적용해 사형을 선고했다. 피고인들이 구속기소된 지 불과 25일 만에 1심 재판이 끝난 것이다.

다음해인 1995년 1월 <한겨레>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45.3%는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힘으로 '돈'을 첫손에 꼽았다. '권력'은 39.1%였다. 흥미로운 점은 지존파 사건의 원인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61.8%가 '사회구조의 잘못'을 짚었다는 것이다. 개인의 성격은 8.3%, 가정환경은 27.9%였다.

법무부는 같은 해 11월 지존파 6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 한상씨는 사형이 확정됐지만 집행되지 않았다. 경찰 수사관에게 "오늘(조간신문)은 내가 톱이냐, 지존파가 톱이냐"고 물었던 온보현은 형장의 이슬이 됐다. 이들과 함께 사형된 죄수 중에는 가정집에 침입해 아기를 죽이겠다고 위협하여 부녀자를 다섯 차례 강간한 배모씨, 김모씨 등이 눈에 띄었다.

지존파사건 직후 발생한 성수대교 참사, 사상 유례가 없는 사망자를 낸 삼풍백화점 붕괴로 10년 이상의 중형이 선고된 예는 없었다. 이준 전 삼풍건설산업 회장의 경우엔 징역 7년6월이 선고됐다.

이례적 사형집행
부자는 솜방망이

대한민국을 뒤흔든 지존파 사건은 올해로 꼭 20년을 맞았다. 강산은 두 번이나 바뀌었지만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부익부빈익빈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심화됐다. 올 1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펴낸 '근로 및 사회정책에 대한 국민의식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41.3%가 '부자는 극소수이고 가난한 사람이 많은 사회'라고 답했다. 또 올 4월 한국갤럽이 실시한 '부자에 대한 인식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66%는 ‘존경할 만한 부자가 많지 않다’고 답했다.

지존파는 죽었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 안에는 부정하게 돈을 번 부자들이 기득권을 대물림하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부자를 증오한다"는 지존파의 강령이 오늘날에도 저릿저릿한 이유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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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