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일파만파 1심 판결 후폭풍

'한통속' 박근혜·이명박·원세훈 모두 살았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대선의 열기가 대한민국을 달궜던 2012년 12월11일. 국정원 여직원 김모씨는 오피스텔의 문을 스스로 걸어 잠갔다. 김씨는 대선을 앞두고 인터넷에 정치댓글을 단 혐의를 받았다. 경찰은 서둘러 김씨의 혐의를 벗겨줬다. "대선 개입은 없었다"는 중간 수사 결과가 5일 뒤인 12월16일 밤 11시에 발표됐다.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무려 640일이 걸린 수사는 1심 판결로 전환점을 맞았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유죄를, 박근혜정부는 면죄부를 받았다.


"정치 관여는 했지만 선거 개입은 하지 않았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었지만 위법성은 인식하지 못했다" 지난 11일 사법부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내린 판결의 요지다.

국정원법 유죄
선거법은 무죄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이범균)는 공직선거법(이하 선거법) 및 국가정보원법(이하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원 전 원장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세부적으로 국정원법 위반은 유죄, 선거법 위반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앞서 원 전 원장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몸통으로 지목됐다. 의혹의 핵심은 지난 2012년 대선 과정에서 원 전 원장이 국정원 직원을 동원해 여당 대통령 후보에게 유리한 댓글을 작성했다는 내용이다.

문제가 된 댓글을 보면 특정 정치세력을 비난하고자 하는 인상이 강했다.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는 '뒈져야 할 사람' '문죄인'으로 비하됐다. 반면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인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우호적인 문장이 쓰였다. 국정원의 댓글 활동으로 득을 보게 될 이가 누구인지는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

이른바 '댓글사건'은 현 정부의 정통성과 직결된 '태풍의 눈'으로 확대됐다. 만약 국가정보기관이 대선 과정에 조직적으로 개입, 여론을 조작한 사실이 인정된다면 박근혜정부가 입게 될 타격은 상당할 것으로 전망됐다.

지난해 6월 검찰은 원 전 원장의 사법처리 여부를 놓고, 현 정부의 대리격인 법무부와 갈등을 빚었다.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은 "국정원 직원들의 댓글 작업이 선거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수사팀의 의견을 받아 들였다. 채 총장은 원 전 원장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었다.

징역 2년6월 집유 4년…선거법 위반 무죄
정부 한숨…채동욱 찍어내기 등 숱한 논란

그러나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법률가로서의 양심"을 거론하며 구속영장 청구 및 선거법 위반 적용에 반대의 뜻을 밝혔다. 법무부 입장에서 정권에 해가 되는 수사를 방관하긴 어려웠을 것으로 판단된다.

힘겨루기를 하던 두 기관은 절충안을 만들었다. 구속영장 청구를 검찰이 포기하는 대신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키로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채 총장은 청와대 눈 밖에 났다는 게 정설이다. 채 총장은 원 전 원장 기소 후 석 달을 버티지 못하고 혼외아들 보도로 낙마했다.

수사팀 안에서는 '항명 파동'이 일었다. 윤석열 당시 특별수사팀장은 국정원 대선개입수사 과정에서 상관과 법무부의 외압이 있었음을 주장했다. 그러나 사실상의 결재권자였던 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야당 도와 줄일 있느냐"는 말로 윤 팀장과 맞섰다고 전해진다. 문제의 사건으로 윤 팀장은 수사팀에서 배제된 후 좌천됐다. 조 지검장은 결백을 주장하며 스스로 검찰을 떠났다.

박근혜 면죄부
반토막 난 검찰

검찰 안에서 나름 중립을 지키고자 애썼던 조 지검장의 사임, 특별수사팀 핵심 인물로 꼽힌 윤 팀장의 부재는 사건 공소유지에 어려움을 불러왔다. 재판이 시작되자 수사팀에 새로 투입된 검사들은 허둥대는 모습을 보였다. 사건을 검토할 시간이 짧았기 때문이다.

수사팀이 재판 과정에서 증거로 제출한 트위터 멘션(글) 및 리트윗의 증거능력을 둘러싸고도 공방이 가열됐다. 압수수색으로 국정원의 광범위한 사이버 활동을 입증한 것까진 좋았으나 정작 문제는 재판부를 설득하는 데 한계를 보였다는 점이다. 사건의 꼬인 매듭을 풀 핵심 증인들은 출석을 거부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했다. 사안이 가진 폭발력 때문에 심리는 1년 넘게 이어졌지만 권부의 핵심에는 접근조차 못했다.

지난 7월15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원 전 원장에게 징역 4년과 자격정지 4년을 구형했다. 채동욱호 검찰이 원 전 원장을 기소한 2013년 6월14일 이래 11개월 만의 일이었다. 공판에서 검찰은 "국가정보기관이 일반 국민으로 가장해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 트위터를 대량으로 퍼뜨린 것은 인위적으로 여론을 조성하는 반헌법적인 행태"라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선고 공판에서 검찰의 주장을 일부 인용해 원 전 원장이 국정원법 9조를 위반했다고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원 전 원장이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에게 정치관여 활동을 하도록 지시했다"며 "이는 국민의 자유로운 여론 형성 과정에 국가기관이 직접 개입한 것으로 어떠한 명분으로도 허용될 수 없으며,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 행위로 죄가 무겁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사건의 핵심인 선거법 위반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무죄 판결의 근거는 다음과 같았다. ▲국정원의 사이버 활동은 북한의 사이버 활동에 대한 대응이 주된 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이고 ▲원 전 원장은 관련 댓글 활동 등에 대해 위법성을 인식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과거부터 지속된 국정원 심리전단의 잘못된 업무 관행을 탈피하지 못하고 답습한 점 ▲특정 후보자를 당선 또는 낙선시키기 위해 능동적이고 계획적인 행위를 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는 점이 참작됐다.

특히 재판부는 "보통의 선거운동이라면 선거일에 가까워질수록 (특정 활동이) 활발해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심리전단의 트위터 활동은 대선을 앞둔 11월에 감소했다"며 "선거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또 논란이 됐던 '전부서장 회의 발언(지시·강조 말씀)'에 대해선 "오히려 선거에 절대 개입하지 말 것을 여러 차례 지시한 사실만 확인된다"고 덧붙였다.

원 전 원장은 선고를 앞두고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가 떨어지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 진보 성향의 방청객들은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원 전 원장이 법정을 빠져나간 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박주민 변호사와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대표 등은 기자들 앞에서 "정치 개입은 맞지만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는 건 도둑질은 했지만 절도범은 아니라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원 전 원장이 정치 관여는 했지만 선거법 위반은 하지 않았다는 판결은 여러모로 논란이 되고 있다. 원 전 원장은 2012년 4월 전부서장 회의 발언에서 "북한이 총선에서 야당(이) 되면 강성대국은 완성된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얘기했어요. 우리 국정원은 잘못 싸우면 없어지는 거야"라고 했다. 하지만 법원은 원 전 원장의 발화 시점을 지목하며 후보자의 윤곽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인 데다 특정인을 위한 행위로 볼 수 없다고 짚었다.

도둑질 했지만
절도범 아니다

원 전 원장과 같은 혐의로 기소된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과 민병주 전 국정원 심리전단장은 각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이들 국정원 직원이 매달 원 전 원장으로부터 하달받은 이슈 및 논지에 따라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비방한 점은 인정했다.

그렇지만 선거법 위반에 대해선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상명하복이 중시되는 정보기관의 특성상 이 같은 지시를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는 점, 범행의 위법성을 적극적으로 인식하지는 않은 점 등을 고려했다"고 이유를 댔다.

이번 판결로 청와대는 마음의 짐을 덜었다. 정치권에선 박근혜 대통령을 최대 수혜자로 꼽았다. 국정원의 도움을 받아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의심과 혹시 모를 정치공세를 피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patriamea)에 "원세훈 개인은 처벌하되 정권의 정통성은 살려주는 판결"이라고 적었다.

현직 한 법원 관계자는 "정치적인 고려를 제외하고 판결문만 봤을 때 재판부의 논리를 납득할 만한 했다"고 평했다. 이 관계자는 "선거법은 국정원법과 입법 취지가 다르고, 적극적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다만 이 판결로 다른 선거사범들에게 선거법 위반을 어떻게 적용할지, 쉽게 인정한다면 차별적인 법해석으로 논란이 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스갯소리'라고 강조한 뒤 "중앙(서울중앙지법)인데다 공안사건인데 우리 식구도 승진해야 하지 않겠냐"며 "내가 검사라면 흥분할 상황"이라고 비꼬았다.

언론 안팎에서 제기된 강한 책임론, 자성론과 달리 검찰은 표정관리에 한창이다. 예상했던 결과가 나온 것에 담담해하는 눈치다. 이번 정부 들어 본의 아니게 라이벌로 부상한 국정원을 견제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최대 수혜자' GH '숨은 수혜자' MB
사정 라이벌 검·국 나란히 표정관리
[여] 마지막 리스크 해결 
[야] 무너진 최후의 보루

판결 직후 검찰 일각에선 무리한 기소였다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당시 사건을 진두지휘한 채 총장이 없는 상황에서 현 수뇌부가 책임질 사안은 아니라는 의견이 더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히려 국정원의 정치개입 의혹을 사실로 확인했고, 전직 국정원장의 유죄 판결을 이끌어냄으로써 맡은 소임을 다했다는 평가다.

올 초 검찰은 이른바 '국정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에 휘말리며 국정원에게 빚을 졌다. 앞서 국정원은 일부 공안라인의 견제가 있었지만 내부 평이 좋았던 채 총장을 넘어뜨린 '주범'이라는 의심을 샀다. 때문에 이번 판결로 정권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수장을 찍어낸 국정원에게 '모종의 복수'를 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항소 과정에서 국정원법 위반에 대한 공소유지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국정원은 잃은 게 많은 판결이었다. 재판부는 원 전 원장의 혐의를 떠나 그간 국정원이 수행해온 대북·방첩활동이 잘못됐음을 수차례 지적했다. 원 전 원장의 양형 감경 사유로는 '국정원의 잘못된 업무 관행'이 언급됐다.

그렇지만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사이버 활동이 이전보다 위축됐을지언정 북한과 연관된 활동을 사실상 묵인하겠다는 의사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재판부는 원 전 원장의 범죄 사실을 "정부의 정책기조에 반대하는 특정 정당 및 정치인을 비판한 행위"로 한정했다.

때문에 국가 안보라는 이유를 붙이면 언제든 유사행위가 반복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다음 대선 과정에서 똑같은 수위의 댓글이 달려도 선거 개입이 아니라는 선례가 만들어진 셈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번 판결의 숨은 수혜자로 꼽힌다. 원 전 원장이 본인의 직무 범의로 제한된 국정원법 위반에 대해서만 유죄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야권 일각에선 이 전 대통령을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배후로 주장했지만 재판부가 대선개입 의혹을 부정하면서 어떤 책임도 물을 수 없게 됐다.

날개 단 여당
벼랑 끝 야당

여당은 반색하고 있다. 마지막 남은 정권 차원의 리스크를 덜었다는 시각이다. 실제로 '세월호 특별법'을 제외하고 여당에 불리한 것으로 평가되는 대형 이슈가 전무하다. 이제 여당은 여론 굳히기에 들어간 모양이다.

지난 12일 새누리당 주호영 의원은 "판결을 비난하는 것은 여러 문제를 야기한다"며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했다고 집요하게 주장해왔던 사람들, 또 이걸 갖고 입지를 키워온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을 밝히라"고 힐난했다.

야당은 벼랑 끝에 몰렸다. 무려 600일 넘게 공들인 국정원 대선개입 진상 규명이 실패로 끝났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정국을 타개할 마땅한 해법도 보이지 않는다. 지지세를 결집할 동력도 정부를 압박할 최후의 보루도 모두 잃었다.

우상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판결 다음날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이렇게 한다면 앞으로 공무원들이 특정 후보를 당선·낙선시키기 위해 비난글을 여기저기 퍼 나르고 악의적으로 유포해도 어떻게 선거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있겠냐"고 우려했다.

결과적으로 '산 권력'은 어느 누구도 타격을 입지 않았다. '죽은 권력'인 원 전 원장만 지루한 법정 다툼을 예고하고 있다. 앞서 별건의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항소심에서 징역 1년2월을 선고받은 원 전 원장은 지난 9일 형기만료로 출소했다. 그리고 이틀 만에 법정에 섰다.

하지만 원 전 원장은 이번 판결로 재수감될 처지를 면했다. 따지고 보면 전·현직 대통령을 포함한 권력자 누구도 이 사건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상황이 됐다.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세훈 선거법 무죄' 이범균 부장판사는?

이범균(50·사법연수원 21기) 부장판사는 서울 출신으로 1995년 부산지법에서 판사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양승태 당시 대법관(현 대법원장)의 전속 재판연구관을 했다. 이때를 제외하고는 줄곧 판결 업무만 맡았다고 한다.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부임한 후에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들을 다뤘다. 그가 속한 형사21부는 선거법과 부정부패 사건 전담부로 알려져 있다. 이 부장판사는 올 초 이른바 '공무원 간첩 사건'을 심리했는데 당시 그는 간첩 혐의를 받은 유우성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를 축소·은폐한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진보·보수 각 진영 입장에선 한 번씩 유리한 판결이 나온 셈이다.

때문에 복수 언론은 법원 내부 관계자를 인용, 이 부장판사가 정치 중립적이라고 했다. 그런데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선고를 둘러싸고 법원 내에선 큰 소란이 일었다. 이유인 즉 이 부장판사가 법리를 어기고 정치적인 판결을 했다는 것이다.

지난 12일 수원지법 성남지원 김동진 부장판사(사법연수원 25기)는 법원 내부 게시판 코트넷에 '법치주의는 죽었다'는 제목의 글을 게시했다. 그는 "국정원이 대선에 불법 개입한 점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며 "서울중앙지법의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판결은 '지록위마(윗사람을 농락해 권세를 휘두름)'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김 부장판사는 "집행유예 선고 후 어이가 없어서 판결문을 정독했다"며 "재판장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양심에 따라 정말 선거개입의 목적이 없었다고 생각했는지, 헛웃음이 나왔다"고 했다. 또 "선거개입과 관련이 없는 정치개입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라며 "이렇게 기계적이고 도식적인 형식논리로는 국민을 납득시킬 수 없다. 이것은 궤변이다"고 일갈했다.

더불어 김 부장판사는 "이 판결은 정의를 위한 판결인가, 아니면 재판장이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심사를 목전에 두고 입신영달을 위해 사심을 담아 쓴 판결인가. 나는 후자라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파문이 커지자 대법원은 직권으로 김 부장판사의 글을 삭제했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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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에선 인물난 속에서도 조직표를 놓지 못하는 흔적들이 감지된다. 서울시장 경선 참여자들은 장동혁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고 있다. 조직표에 기반한 정당이 집권하지 못했던 과거 사례들은 국민의힘을 더 깊은 늪으로 몰고 있다. 리얼미터·한국갤럽이 지난달 각각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높지만,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리얼미터가 발표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62.2%로 확인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3일부터 27일까지 5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2513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가면 갈수록 지지율 격차 민주당 지지율은 51.1%로 집계됐고, 국민의힘 지지율은 30.6%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6일부터 27일까지 이틀 동안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두 조사 모두 무선 자동응답 방식을 활용해 무작위 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법으로 실시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한국갤럽도 비슷한 기간 동안 유사한 조사를 진행했다. 한국갤럽이 발표한 이 대통령 지지율은 65%였다.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46%로 집계됐고, 국민의힘은 19%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4일부터 26일까지 3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두 조사 모두 무작위로 추출된 무선전화 가상번호에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조사 결과들을 놓고 “민주당과 국민의힘 간 지지율 격차가 상당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지방선거에서 언제나 중요한 승부처로 거론되는 서울시장·경기도지사 선거와 관련해 국민의힘이 인물난을 겪고 있는 현 상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에선 양향자 최고위원·새누리당 함진규 전 의원 등 2명이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추미애 의원·한준호 의원이 치열한 경쟁을 하는 것과 대비된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에선 유승민 전 의원에게 지속해서 출마를 권유했다. 국민의힘으로선 “중도 성향 유권자에게도 설득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유 전 의원이 경기도지사 후보로 적임이란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 전 의원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달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한 이후에도 당의 강경 노선에 큰 변화가 없다”는 인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달 27일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만났던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출마 권유에도 “불출마한다는 생각엔 변화가 없다”면서 끝내 거절했다. 그러자 양 최고위원은 같은날 KBS 라디오 <세상의 모든 정보 윤인구입니다>에 출연해 “정당·국가 운영과 공천은 원칙·절차적 정당성 확보가 중요하다”며 “어떤 분이 제게 ‘절대로 떠밀려서 나오는 선거는 하면 안 된다’고 말했는데, 확실한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천이 마무리되는 대로 당이 필요로 하는 가장 어려운 곳에서 제 역할을 다할 준비를 하겠다”며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곳에서 또 다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썼다. 이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 암시로 해석됐고, “유 전 의원에게도 출마를 간접 압박하는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겹치는 악재에 강경 보수 조직표 의존? 장동혁 지원 유세? 각지 후보들 ‘난색’ 하지만 유 전 의원은 불출마 의사를 바꾸지 않았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유 전 의원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며 “현재 신청하신 훌륭한 두 분을 포함해 여러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방선거 공천이 사실상 완료됐다”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를 선언한 후 사퇴했다. 부산에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과 부산시장 후보 경선을 치러야 하는 박형준 부산시장이 손영광 울산대 교수를 공동선대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손 교수는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한 손현보 목사의 아들이다. 이는 박 시장이 직접 지난달 24일 CBS 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에 출연해 “손 교수는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고, 누구의 아들이라고 매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명해야 할 정도로 큰 논란이 됐다. 박 시장은 국민의힘 내에서 합리적 보수 이미지가 강한 인물로 평가된다. 손 교수 영입에 대해선 “경선을 앞두고, 부산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대형 교회 조직표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서 공천 배제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해서도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진행된 2026 KBO리그 개막전을 방문해 ‘대구시장 예비후보 이진숙’이란 어깨띠를 두르고 시민들에게 인사했다. 이에 대해선 “이 전 위원장이 대구시장 선거에 무소속 출마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반대로 “국민의힘이 이 전 위원장의 공천 자체를 배제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지난달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전 위원장은 정권의 무도함에 맞선 최전선 투사”라며 “대구시장 후보에 현역 의원이 공천되면, 그 지역구 재보궐선거에 이 전 위원장을 공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을 경기도지사 후보로 공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민의힘 조광한 최고위원은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 “이 전 위원장이 경기도지사 후보로도 추천되고 있다”며 “이 전 의원장의 결심 여하에 따라 선택지가 굉장히 다양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은 경기도지사 공천 가능성은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5일 <조선일보>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경기도지사 출마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제 인지도 하나만 달랑 갖고 경기도지사를 하겠다는 건 경기도민에 대한 우롱”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경기일보>는 지난달 27일 ‘국힘, 경기지사가 경선 탈락자 처리장이냐’는 제목의 사설을 공개했다. 이 사설엔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에 나선 주자는 중량감·연고성 등이 모두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2명”이라며 “급기야 대구시장 탈락자 차출설도 나오는데, 이쯤 되면 경기도민 모욕 아니냐”고 비판했다. 낮은 당 지지율과 공천 과정의 잡음이 이어지면서 급기야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도 난감해하는 상황도 이어졌다. 유권자에게 “공개적 절윤 선언과 달리 인적 절연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 영향이라고 분석되고 있다. 7년 만에 대표 거부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2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저도 장 대표를 선거 유세에 모시고 싶다”면서도 “변신한 모습으로 와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도 지난달 26일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장 대표의 지원 유세는 조금 예민한 문제”라며 “시민 눈높이에서 해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선거는 후보가 시민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잘 전하는 시민을 위한 시간”이라며 “장 대표는 노선형 정치인이 됐으므로, 정책 선거 현장이 정치 선거로 비화하면 유불리를 떠나 서울시민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논란이 이어지자 지난 1일엔 의견을 바꿔 채널A 라디오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저는 국민의힘이 확장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대가 확실히 있다고 생각한다”며 “정공법을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주요 선거 후보들이 당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는 것은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주요 후보들이 자유한국당 대표였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지원 유세를 거부한 상황을 연상시킨다. 낮은 지지율과 혼란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이미 예고됐던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2024년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대규모 집회 개최 및 참여 등 강경 보수 행보를 유지했다. 당시 진행됐던 대규모 집회는 손 목사·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유튜버 전한길씨 등이 주도했다. 울림이 큰 방에서 나는 소리는 메아리가 돼 돌아온다. 이는 특정 성향·신념이 일치하는 사람들이 모여 비슷한 정보·주장을 계속 접하면서 그 의견이 굳어지는 현상을 비유하는 데 활용된다. 이를 두고 에코 체임버 현상이라고 한다. 보통은 SNS에서 일어나지만, 최근엔 정치권에서도 구조화되고 있다. 정치인의 관점에서 대규모 집회에서 동원한 인파·우호적인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열렬한 지지는 쉽게 눈에 띈다. 선거에선 이게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후보의 캠프에선 이를 유권자의 보편적 정서로 착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근엔 당원투표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당원의 뜻이 공천에 반영되면, 정당의 민주적 구조가 탄탄해진다. 하지만 조직표 동원 경선이 될 위험이 커진단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당내 강경파·특정 조직의 관성은 중도층·무당층까지 포함하는 전체 민심과 방향이 다른 경우가 많다. 집권은 불가능 후보도 선거를 치르면서 조직표를 움직이는 지역 토착 세력·강경 지지층을 만나는 과정에서 현장 분위기를 착각한다. 설령 당선되더라도 이들의 포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확증 편향 현상은 “누구나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을 본다”던 고대 로마 정치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격언이 현재진행형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조직표는 장단점이 명확하게 나뉜다. 일정한 득표를 보장하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하지만 득표 이상의 목표 달성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전형적인 사례는 일본 공명당이다. 공명당은 창가학회란 종교를 배경으로 두고 있다. 덕분에 공명당은 엄청난 조직력을 동원할 수 있다. 창가학회 회원 1명은 강력한 선거운동원이 된다. 그 1명은 주변 지인 모두에게 공명당 선거운동을 한다고 보면 된다. 정치와 종교의 결합이 흔히 발생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일본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공명당과 연정을 하면서 창가학회·공명당의 조직력을 토대로 많은 정치적 이익을 얻었다. 공명당 후보가 출마하지 않는 지역구에선 그 조직력이 고스란히 자민당 후보의 선거 조직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명당은 종교 기반 정당이기 때문에 그 틀을 벗어나긴 어려웠다. 그래서 공명당이 정치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최대치는 집권당의 연정 파트너였다. 공명당과 손을 잡았다고 무조건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다고 보긴 어렵다. 이는 지난 2월 진행된 제5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이하 중원선)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이하 입민당)은 자민당과 결별한 공명당과 손잡고 ‘중도개혁연합’이란 선거 연대를 구성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참혹했다. 입민당·공명당은 원래 총 169석을 보유했지만, 선거 결과 49석만 확보하는 대참패를 당했다. 이 중 입민당이 확보한 의석수는 21석에 불과했다. 중도개혁연합이 해체되면 각각 28석을 확보한 공명당·국민민주당이 제1야당 반열에 오를 수 있을 정도의 대참패였다. 조직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심이란 걸 보여준 선거였다. 경기도지사 후보 인물난…유승민은 거듭 고사 손현보 아들 등장·컷오프 이진숙 못 놓는 이유? 절대로 몰락하지 않는 안정적인 하한선을 보유했지만, 상한선·기대치도 낮은 사례로 일본 공명당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향이 강한 특정 집단을 기반으로 유지되는 정당은 그에 대한 다른 유권자의 거부감 때문에 집권이 불가능하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독일 좌파당 ▲영국 민주연합당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 등을 거론할 수 있다. 독일 좌파당은 독일 통일 이후 구동독 지역 사회주의 통합당 후신이 모여 조직됐다. 따라서 구동독 지역의 고령 유권자·옛 공산당 관료·강성 노동계급 등이 핵심 지지층을 이루고 있다. 이런 연유로 구동독 지역에선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전체 민심과 조화를 이루긴 어렵고,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주로 거론된다. 영국 민주연합당은 북아일랜드 강성 개신교·연합주의자 조직에 기반한다. 이들의 강경한 종교 성향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 등의 정서와 많이 멀다. 따라서 이들도 북아일랜드 지역 정당 겸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거론된다. 지난 2017년엔 영국 보수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하자 민주당과 신임 공급 협약을 맺고 정부를 구성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은 이스라엘 내 극단적인 유대교 원칙주의자들로서 사회적 민폐라고 거론되는 하레디를 기반으로 구성된 정당이다. 이들은 사회적인 활동보다 경전 공부에 몰두한다. 극단적인 일부 하레디는 19세기 생활 양식을 고집하고, 일체 생산 활동을 하지 않면서 정부 보조금에 의존한다. 이들은 출산율이 높아 이스라엘 재정에 부담을 주지만, 이스라엘 내 유대인 인구 비율 유지를 고려하면, 정부가 이들을 지원하지 않을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이들은 랍비의 지시에 따라 절대적인 투표 성향을 유지한다. 이스라엘의 보수 정당 리쿠드당은 이들과의 연정을 통해 조직표를 동원한다. 일본 자민당은 원래 다양한 성향의 여러 파벌이 모여 구성된 특성을 역설적으로 정권 유지 비결로 활용했다. 총리를 배출하는 회파만 바뀌어도 국정 기조가 바뀌어 유권자에게 정권교체 체감을 주는 유사 정권교체 효과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월 중의원 의원 선거 대승은 자민당으로서도 기존과 다른 형태였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기민한 유튜브·SNS 활용 ▲실용적 포퓰리즘으로 통하는 사나에노믹스 등 다카이치 총리의 개인 팬덤이 강력하게 형성된 것이 승리로 연결됐다. 공명당 등 해외 사례 표면적으로는 국민의힘은 이미 지난 2월에 입증된 자민당의 승리 비결을 외면하고, 공명당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주요 후보들이 당 대표 지원 유세에 신중한 반응을 보이는 것 자체가 국민의힘이 ‘더 깊은 늪’에 들어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일면일 수도 있다. 국민의힘은 늪에서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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