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 ③국민은 꼭 알아야 할 추석 후 터질 5대 사건

여기저기서 펑펑 "연말까지 정신없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세월호 참사로 꽉 막힌 정국이 활로를 찾지 못한 채 하반기를 맞았다. 난국의 중심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있다. 진보와 보수, 양측으로 팽팽하게 갈린 진영은 다가올 하반기에도 치열한 고지전을 예고하고 있다. 이번 추석을 기점으로 수면 아래 있던 대형 사건들은 고개를 들 전망이다. 짧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수년 가까이 끌어온 사건들이라 당사자들의 셈법이 복잡할 수밖에 없다. 또 사안마다 큼직한 논란을 예고하고 있어 각각의 이슈가 미칠 파급효과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추석 이후 정국을 집어삼킬 5가지 대형사건을 미리 들여다봤다.

박근혜 대통령의 5촌 조카인 박범하(가명·사망 당시 52세)씨. 그는 사촌지간인 박범근(가명·사망 당시 50세)씨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1년 9월 발생한 이 사건은 '박근혜 5촌 살인사건'으로 명명됐다.

[청와대 촉각]
대통령 5촌 사건

박근혜 5촌 살인사건은 지난 18대 대선을 앞두고 있던 2012년 12월 재조명됐다. 시사주간지 <시사인>과 <시사저널>은 박근혜 5촌 살인사건의 수사 결과와 관련한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보도를 종합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11년 9월6일 북한산 둘레길에서 범하씨의 시신이 발견됐다. 그는 나무에 목을 맨 채 숨져 있었다. 범하씨의 시신으로부터 수km 떨어진 곳에는 범근씨의 시신이 있었다.

범근씨는 북한산 둘레길 탐방안내센터 인근 주차장에서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사건을 조사한 서울 강북경찰서는 2011년 10월12일 "범하씨가 사촌동생인 범근씨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내용의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그런데 이 의문의 죽음과 관련한 몇 가지 의혹이 고개를 들었다. 2012년 4월 당시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 한 의원실은 "박근혜 5촌 살인사건 수사 과정에 외압이 있었다"는 제보를 받았다. 제보자는 주장의 근거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에서 작성한 부검 감정서와 필적 감정서 등을 제시했다. 당시 기자는 범하씨가 쓴 유서 등 여러 문건을 눈으로 확인했다.

대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정보'가 몇몇 의원실을 통해 공유됐다. 제보자가 양심고백을 하는 '그림'도 그려졌으나 실행에 옮기진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의 살인사건은 대선 투표일 직전 기사화됐다. 그러나 대선판도를 바꾸진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기대 이상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박 대통령의 동생 지만씨는 해당 의혹을 보도한 <시사인> 기자 주진우씨와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씨를 각각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주씨는 보도에서 지만씨가 5촌 관계에 있는 범하·범근씨의 사망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또 김씨는 주씨의 보도를 팟캐스트 방송인 <나는 꼼수다>를 통해 알렸다.

박근혜 5촌 살인 재조명…초대형 폭로 암시
특수부 인력 대거 보강 "곧 대기업 수사"

주씨가 제기한 의혹의 핵심은 ▲범하씨가 지만씨의 측근이었으며 ▲지만씨는 누나 근령씨와 사이가 좋지 못했는데 ▲근령씨의 남편인 신동욱(현 공화당 총재)씨는 지만씨와 당시 송사로 얽혀 있었고 ▲이에 범하씨가 관련 재판에 증인으로 나서려던 즈음 사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만씨는 관련한 의혹을 일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검찰은 지만씨가 입은 피해가 있다고 보고 주씨와 김씨를 각각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현재 이 사건은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공판 과정에서 주씨 측 변호인은 지만씨를 증인으로 신청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기각했다. 이들에 대한 항소심 공판은 이달 말 마무리될 예정이다. 앞서 1심은 주씨와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주씨 등에 대한 항소심 결과와 함께 관심을 끄는 부분이 있다. 지난달 15일 김씨는 자신이 진행하는 방송 <김어준의 파파이스>를 통해 '초대형 폭로'를 암시했다. 김씨의 주장에 따르면 김씨와 주씨는 최근 의문의 제보자에게 메일을 받았다. 제보 내용은 진행 중인 재판과 관계된 것으로 김씨는 주장했다.

김씨와 주씨는 제보자를 만나기 위해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있는 한 호텔을 찾았다. 호텔에서 그들은 '상당히 믿기 힘든' 중요한 제보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두바이 취재에는 김씨와 주씨 외에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 소속 변호사 2명, 공중파 방송의 PD, 신문기자, 국회의원 등이 동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에서 김씨는 "상당히 중요한 제보를 받았다"고 거듭 강조했다. 3박4일간 호텔 객실을 나오지 않고 취재했으며, 외교적인 분쟁을 우려해 국회의원까지 배석할 만큼 파급력 있는 사건임을 주장했다.

만약 김씨의 말대로 이번 제보가 '비현실이라고 느껴질 만큼 충격적인 얘기'라면 박근혜정부 들어 가장 큰 스캔들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김씨는 "검증되는 대로 방송하겠다"며 파장을 예고했다.

[재계 초긴장]
대기업 사정바람

검찰은 추석 전 인사이동을 통해 특수부 인력을 대거 충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수부 인력 충원은 대기업이 연루된 수사 과정에서 이뤄지는 일이 많아 배경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지난 6월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기자와 만나 "검찰(특수부)이 30대 대기업과 관련한 리스트를 뽑아 들여다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수사에 착수한 것은 아니지만 폭넓은 내사를 벌이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 배경이다.

그렇다면 어떤 대기업이 내사망에 걸린 것일까. 대기업 자문 역을 했던 한 관계자는 "내가 봐도 눈먼 돈이 많은데 수사기관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검은돈'이 많겠냐"며 "오너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쓰는 돈이나 해외 컨설팅·부동산 업체로 흘러가는 돈 등을 살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관피아 수사의 연장선상"으로 검찰의 움직임을 해석했다. 그간 검찰은 정권이 불리한 상황에 처했을 때 여론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더 큰 사건을 수사한다는 의심을 받았다. 관피아 수사 역시 세월호 정국 타개의 한 방안으로 기획됐다.

때문에 이번 대기업 사정은 '경제 민주화'에 대한 의지보다는 당면한 '정권 보위'를 염두에 둔 수사가 될 것이란 추측이다. 검찰 내부적으로는 '더 큰 놈'을 잡기 위한 실적경쟁이 본격화된 모양새다.

재계 입장에선 달갑지 않은 신호다. 한 대기업 홍보담당 관계자는 "그룹을 괴롭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오너를 건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력 대기업 중 한 곳인 A사를 지목하면서 거물 정치인과 A사 오너의 각별한 관계를 언급하기도 했다.

A사에 대한 사정설은 올 초부터 무성했다. A사가 연루된 비리정황을 포착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추석을 전후로 A사가 막대한 수익을 올릴 것으로 추정되면서 때가 무르익었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만약 A사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다면 관련 정치인의 이름이 등장할지 관심이다.


A사뿐 아니라 정권 눈 밖에 난 것으로 알려진 B사도 요주의 대상이다. 풍부한 자금력이 강점인 B사는 지난 정권에서 특혜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B사에 대한 사정작업이 본격화된다면 지난해 있었던 CJ그룹 수사 이상의 파급력이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아울러 검찰은 이른바 통피아(통신+마피아) 수사를 진행 중인데 통신업계는 물론 몇몇 국회의원들까지 잠재적인 수사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통신업계와 정치권이 유착한 연결고리가 드러난다면 그 파장은 상당할 전망이다.

[헌재 결정은?]
통진당 해산심판

통합진보당(이하 진보당) 정당해산심판을 진행 중인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오는 16일 제14차 변론기일을 예고했다.

앞서 2심 재판부는 내란선동·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진보당 이석기 의원에게 징역 9년, 자격정지 7년을 선고했다. 단 재판부는 공방이 가열된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선 'RO의 실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로 무죄를 선고했다. 이는 헌재의 정당해산심판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5일 박근혜정부는 긴급 안건으로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건'을 국무회의에 상정했다. 박 대통령은 이를 재가했다.


같은 날 법무부는 '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및 정당 활동금지 가처분 신청'을 헌재에 청구했다. 정부가 특정 정당에 대해 해산심판을 청구한 건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다.

심리를 맡은 헌재는 지난달 26일까지 무려 13차례의 변론기일을 열었다. 가장 최근 있었던 변론에서 헌재는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1·2심 판결문과 공판·수사기록 등을 증거로 채택했다.

지난 2심 판결로 사법부는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사실 판단을 마쳤다. 때문에 다가올 변론에서 심판결과의 윤곽이 드러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우선 2심 재판부는 RO의 실체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존재가 엄격하게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즉 이 의원이 내란을 꾀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국가를 전복시킬 만한 '실체적 힘'은 없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통진당 해산심판 분수령
이석기 대법 판결 눈앞

앞서 법무부는 해산심판을 청구하면서 RO를 진보당의 실질적인 상부조직으로 해석했다. '내란을 꾀한 RO조직원들이 당의 의사결정을 좌우하는 핵심인사'라는 논리로 진보당의 위헌성을 부각했다. 그러나 사법부가 RO의 실체를 적극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격렬한 법리 공방이 예고되고 있다.

우선 진보당은 'RO가 존재하지 않는 단체'라는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진보당 측은 법무부 주장의 핵심이었던 RO의 존재가 부정됨으로써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지난 변론에서 진보당 측 변호인은 "북한과 전혀 무관하게 활동했던 경기동부연합과 진보당을 연결 짓기 위해 (행정부가) 지하혁명조직 RO를 만들어낸 것"이라며 "이 의원의 내란선동 혐의가 (대법에서) 유죄로 확정된다고 하더라도 당과 무관한 개인적인 활동이고, 선동에서 나아가 준비행위까지 이르지 않은 만큼 내란음모 사건이 진보당에 귀속된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법무부는 "엄격히 해석해야하는 법리 때문에 (사법부가) RO의 존재나 내란음모 혐의를 인정하지 않은 것 뿐"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법무부는 "RO 회합 참석자들이 정치적 이념을 같이 하는 조직화된 집단에 속해 있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국가 전복을 실행할 수 있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항소심이 인정했다"고 주장했다.

헌재는 이르면 10월 안에 사건 심리를 마칠 예정이다. 단 이 의원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남아 있고, 선례가 없는 사건이라 헌재가 최종 판단을 11월 이후로 미룰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정당해산을 위해선 9명의 재판관 중 6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연예가 패닉]
한류스타 탈세

배우 송혜교씨에 이어 한류스타 장근석씨도 탈세 혐의가 드러난 가운데 국세청의 칼날이 어디까지 미칠지 눈길이 쏠린다.

먼저 송씨는 지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 동안 모두 137억원의 수입을 올렸으며, 67억원을 필요경비로 신고했다. 이 중 54억원에 대해서는 증빙서류 없이 임의로 경비 처리했다. 또 신용카드 영수증과 카드사용 명세서 등을 중복 제출해 경비를 허위로 신고했다. 이 기간 송씨는 종합소득세 25억원을 과소 신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국정감사 과정에서 관련한 의혹이 일자 송씨는 뒤늦은 진화에 나섰다. 지난달 송씨 측은 "2012년 서울지방국세청으로부터 '제출된 세무·증빙자료를 신뢰할 수 없으니 귀속소득(2008~2011)의 무증빙 비용에 대해 소득세를 추징한다'는 통보를 받고 중가세와 가산세까지 납부했다"고 해명했다. 지난 2009년 모범납세자상을 받았던 송씨는 세무조사가 유예된 2~3년을 틈타 탈세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1일에는 장씨의 탈세 정황이 포착됐다. 중국에서 벌어들인 소득 중 약 20억원을 탈루했다는 의혹이다. 서울지방국세청은 장씨가 중국에서 거둔 수익과 세무당국에 신고한 소득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잇단 톱스타 탈세 혐의
제2의 강호동 사태 모락

국세청은 지난 6월 한 대형 연예기획사의 계약서 및 회계자료 등을 확보해 관련 조사를 진행해 왔다. 이 과정에서 가수 정지훈(비)씨의 탈세 의혹도 제기됐으나 뚜렷한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문제의 기획사 대표는 차명계좌 등을 이용해 '환치기' 및 탈세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한 달 새 유명 연예인 2명의 탈세 정황이 드러나면서 국세청의 칼날이 연예계를 정조준한 모습이다. 앞서 국세청은 국내 최대 연예기획사인 SM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여 몇 가지 의혹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국세청은 SM엔터테인먼트가 소속 가수들의 해외공연 수익금을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빼돌리는 수법의 역외탈세를 했다고 의심했지만 구체적인 혐의는 입증하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연예계를 겨냥한 국세청의 전방위 조사는 계속됐고, 결국 송씨와 장씨의 일부 혐의를 포착하면서 당국의 징세작업은 탄력을 받게 됐다.

연예계 일각에선 "세무당국이 기획사를 상대로 한 세무조사에서 연예인 개인을 겨냥한 조사로 방향을 튼 것 아니냐"는 푸념이 들린다. 실제로 국세청 지근에선 몇몇 톱스타들의 탈루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경우에 따라 '제2의 강호동' 사태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다.

[정국 시한폭탄]
세월호 진상규명

세월호 특별법이 암초에 부딪혔다. 지난 1일 새누리당과 세월호 유가족들은 세 번째 면담을 진행했지만 냉랭한 분위기 속에 서로의 입장 차이만 확인했다. 이들은 30분 만에 성과 없이 헤어졌다.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와 지도부는 국회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 대표단(이하 가족대책위)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가족대책위는 특별법에 명시된 진상조사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절대 불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몇 차례 고성이 오고간 끝에 면담은 파행됐다.

새누리당은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는 것은 위헌적인 수사기관을 창설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은 지금 있는 '특검'만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즉 진상조사위와 특검을 별도로 운영하겠다는 심산이다.

하지만 가족대책위는 "수사권과 기소권이 없는 진상조사위는 의미가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핵심 주장을 요약하면 권력 눈치 안 보고 성역 없는 수사를 하려면 행정부 밖에 있는 전문가 집단(판사·검사·변호사 등 포함)에 권한을 위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진상조사위의 조사 범위에 청와대나 국정원 등이 포함된 만큼 행정부 안에서 위원들을 뽑을 수는 없다는 논리다.

이처럼 양자 간 입장 차이로 특별법 제정이 무산된 가운데 연휴가 끝나는 11일부터는 강대강 대치가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여당은 '2차 여야 합의안'을 밀어붙이기 위해 여론전을 벌일 것으로 보이며, 야당은 가족대책위를 지원하는 한편 대통령이 약속한 결단을 촉구한다는 복안이다.

정국의 시한폭탄으로 불리는 진상조사위가 어떤 형태로 구성될지, 또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이 이뤄진다면 감춰졌던 책임소재가 드러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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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