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추석 대목 앞두고 남대문시장 가보니…

대목 옛말…상품권은 애물단지

[일요시사 경제2팀] 박효선 기자 = 전통시장 활성화를 취지로 정부가 발행한 온누리상품권. 하지만 현금이 아니라서 거부감을 느끼는 상인들이 적지 않았다. 특히 지난 2012년부터 시작한 가격표시제는 2년이 지나자 ‘게 눈 감추듯’ 슬쩍 사라졌다. 가격표가 붙어 있지 않은 상품들이 여기저기서 확인됐다. 신용카드를 받지 않는 관행도 여전했다. 시장과 상인은 가격을 깎는 것이 재미고 특징이라고 주장하지만 소비자의 반응은 싸늘하다. 세상은 변하는데 시장은 성장을 멈추고 여전히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추석을 앞둔 지난 1일 서울 남대문 시장을 찾았다. 온누리상품권을 달갑게 여기는 상인들은 많지 않았다. 카드를 내밀면 대놓고 타박했다.

온누리 외면

“현금은 없으세요?”
온누리상품권을 내밀자 한 시장 상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현금이 없어 신용카드를 내밀자 그는 “아니 시장에서 신용카드라니 너무 하시네요”라며 눈치를 준다. 시장 중앙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노점 상인들은 온누리상품권에 대해 손사래를 쳤다. 속옷을 판매하는 한 노점상은 “여기는 현금만 받는다”며 “원래 노점상은 시장 측에서 따로 단속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온누리상품권과 신용카드를 꺼리는 이유를 묻자 상인은 “온누리상품권을 받는다고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지만 당장 현금이 급한데 상품권을 현금으로 교환해야 해서 좀 귀찮은 게 사실”이라며 “특히 신용카드를 받게 되면 ‘코 묻은 돈’에 수수료까지 부담해야 하니까 받을수록 손해”라고 설명했다.

현금이 아니면 거부감을 느끼는 상인들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온누리상품권은 지난 2009년 7월부터 중소기업청 주도하에 발행되고 있다. 대형마트들이 전국 거점지역 곳곳에 생겨나면서 재래시장 매출에 큰 타격을 입히고 있는데 따른 일종의 구제책이었다. 상품권 발행규모는 2000억원 수준에서 매년 늘어나고 있다. 올해는 5000억원 규모의 상품권이 시중에 풀린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상인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온누리상품권 가맹계약을 맺지 않은 점포도 상당수다. 전국의 1500여개 전통시장 중 온누리상품권을 사용할 수 있는 시장은 1000여개에 머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방에 있는 재래시장은 상품권 유통이 원활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상품권의 실효성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온누리상품권 홈페이지에는 상품권 사용처에 대한 불만이 칭찬 글보다 훨씬 많았다.

게다가 지난 2012년부터 시행된 ‘가격표시제’를 지키는 곳조차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보는 눈이 많아 남대문 시장은 가격표시제를 대체로 잘 지켰다. 그런데 2년이 지나자 가격표시가 슬쩍 사라진 것이다.
 

가격표시가 붙어 있더라도 제대로 된 표시가 아닌 애매한 문구로 가격을 한눈에 알아보기 어렵게 만들었다. ‘전품목 만원’이라고 가격표시를 붙인 한 가방판매자는 “매대에 있는 물건만 만원”이라며 “가게 안에 있는 가방은 각각 판매가가 달라서 일일이 가격을 붙일 수가 없다”고 말했다. 가격표시가 정확하지 않다는 지적에 이 주인은 “가격이 물건마다 다른데 어떻게 일일이 다 붙여 놓느냐”고 되물었다.

가격표시제 시행 2년 후 슬쩍 사라져
세상은 변하는데…여전히 제자리인듯

서울 중구청은 2012년 7월 1일 서울 남대문시장을 가격표시제 의무 대상으로 지정했다. 남대문시장 내 40개 상가 6000여개 점포 중 도매점포를 제외한 모든 소매점포는 개별 상품에 라벨, 스템프, 꼬리표 등의 방법으로 가격을 표시해야 한다. 바가지 요금 근절을 위해 판매가격 표시를 의무화했지만 가격표를 붙이지 않은 상품들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광장시장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각종 매스컴의 조명으로 맛집이라고 소문난 한 녹두전집은 신용카드를 받지 않았다. 이곳 상인은 “전 한 장 먹는데 무슨 신용카드를 받느냐”며 “현금이 전혀 없느냐”고 되물었다.

조용히 살 것 같은 소비자에게는 가격을 높여 부르고 비싸다고 따지면 금새 가격을 낮췄다. 구경하다 돌아서면 사지도 않을 거면서 왜 귀찮게 했냐는 듯 일부 상인은 얼굴을 찌푸렸다. 생산지 표시가 없어 물어보면 “당연히 국산이고 다 좋은 곳에서 난 것”이라며 어물쩍 넘어가는 상인들도 있었다.


시장 측은 단속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고 호소했다. 백승학 남대문시장 기획부장은 “일부 상인들 입장에서는 온누리상품권을 받고 환전해야 하는 복잡한 과정에 거부감을 느껴 당장 현금을 받는 것을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상인들에게 온누리상품권을 받아야 시장이 활성화된다고 교육하고 환전과정의 간편함을 꾸준히 알려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온누리상품권을 받지 않는 노점상에 대해서는 노점 자체가 불법이라 시장에서 단속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가격표시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에 백 부장은 “아무래도 시장에서는 도소매를 겸하고 있어 가격을 일일이 붙이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상인들에게 가격표시제 관련 홍보물을 나눠주고 지속적으로 교육도 하고 있지만 상점이 자주 바뀌다 보니 상인들의 인식이 정착되지 않아 지도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사실상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가격을 깎는 재미 자체가 전통시장의 특징”이라면서 “상인들 사이에서도 (가격표시제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상품권 사용이나 가격표시제와 관련한 정부의 홍보가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시장경영진흥원 관계자는 “가격표시제는 계도하는 수준의 캠페인 형식이라 지키지 않는다고 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다”며 “아직까지 지방에 있는 일부 재래시장에서는 상품권 유통이 원활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깎는 재미가…

하지만 소비자들은 가격표시제 시행을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는 평가다. 외국인 친구와 함께 남대문 시장에 온 한 학생은 “외국인 친구들에게 시장을 구경시켜주고 있었는데 솔직히 창피한 부분도 있다”며“가격표시를 해놓은 곳이 거의 없어 가격표시제라는 게 시행된지도 몰랐고, 위생 부분은 좀 더 철저하게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dklo216@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온누리상품권 무용론

온누리상품권이 상인과 소비자들에게서 외면당하고 있는 가운데 ‘상품권 깡’은 활개를 치고 있다. 

상품권 깡은 현금가로 할인을 받아 온누리상품권을 구매한 뒤 정상가를 받고 공식 판매처와 온라인 등을 통해 되팔아 차익을 챙기는 것이다. 예컨대 은행에 가서 27만원을 주고 재래시장 상품권인 온누리상품권 30만원 어치를 구입하고 상가번영회에 가서 환전하면 30만원을 받을 수 있다. 잠깐의 발품으로 3만원이 생기는 셈이다.

정부가 세월호 참사 등으로 얼어붙은 소비심리를 녹이기 위해 6월 초부터 5%였던 온누리상품권 현금구매 할인율을 10%로 확대하면서 편법 환전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특히 전국 3대 재래시장으로 손꼽히는 대구 서문시장이 상품권 깡의 온상이 됐다. 서문시장은 8개 지구에 총 4622개나 되는 점포가 있다. 이 중 77%인 3580개 점포가 온누리상품권 가맹점에 등록하지 않았다. 상인들의 익명성이 보장돼 편법 환전이 더욱 활개를 친 것이다. 정부가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도입한 온누리 상품권이 소비자들의 외면과 관리 부실, 일부 상인의 도덕적 해이로 당초 취지가 무색해진 모습이다.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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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