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비리 '멘탈갑' 산업은행 대해부

국책은행 맞아? 뒷돈 받는 KDB '사면초가'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국책은행인 KDB산업은행(이하 산업은행)이 사면초가에 놓였다. 국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산업은행은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의 중징계 통보에 이어 일부 임직원이 검찰의 수사망에 오르는 등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산업은행은 STX그룹을 상대로 수천억원 규모의 부실대출을 한 의혹을 받고 있으며 ▲임직원 금품 수수사건 ▲동부그룹 패키지 매각 실패 ▲은행권 인사개입 의혹 등에 휘말리며 표류 중이다. 위기에 빠진 KDB호, 선장인 홍기택 산은금융지주 회장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산업은행은 이명박정부 들어 '용광로'가 됐다. 여기서 비유한 용광로는 중의적인 표현이다. '민영화'라는 이슈로 우리 사회를 달궜던 것이 첫째고, 정권 실세와 연결된 '모종의 의혹'이 녹아 없어진 것이 둘째다. 어느 경우든 산업은행은 금융권의 뜨거운 감자였다.

산은 임직원
동양 봐줬나

정권이 바뀌고 산업은행에는 새 주인이 들어섰다. 홍기택 산은금융지주 회장은 지금껏 무난히 조직을 이끌어 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파도가 일기 시작했다. 정부 각 기관은 약속이나 한 듯 산업은행을 겨냥해 십자포화를 퍼붓고 있다. 예상치 못한 시점에 궁지에 몰린 산업은행, 홍 회장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먼저 검찰은 산업은행 임직원들을 상대로 수사에 착수했다. 지난달 26일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부장 이선봉)는 산업은행 임직원 3∼4명의 비리 정황을 포착해 수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최근 몇 년간 동양그룹 경영진으로부터 수억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한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동양그룹 측이 카드 매출을 과다계상한 뒤 현금을 되돌려 받는 수법(일명 카드깡)으로 비자금을 조성했으며, 이중 일부 현금을 산업은행 임직원들에게 건넨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은행은 동양그룹 핵심 계열사로 알려진 동양시멘트의 주채권은행으로 확인된다.


검, 임원 동양서 수억 챙긴 의혹 수사 착수
금, STX 부실대출 책임자 10여명 징계 예고

지난해부터 정치권에선 산업은행과 동양그룹의 커넥션 의혹이 제기됐다. 불거진 의혹의 핵심은 동양시멘트에 대한 특혜 대출이다. 동양시멘트는 지난 2010∼2012년까지 재무구조개선에 대한 약정을 모두 3차례 불이행했다.

그럼에도 산업은행은 오히려 약정 조건을 완화해주거나 자금 회수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등 특혜를 줬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또 산업은행의 전·현직 임원진은 동양시멘트의 사외이사나 고문직으로 대거 이름을 올렸는데 이들이 일종의 '관피아' 역할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최근 검찰은 동양그룹 계좌추적 과정에서 의문의 뭉칫돈을 발견했다. 액수는 5억원가량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돈의 용처를 규명하는 과정에서 산업은행을 수사망에 올렸다. 앞선 조사에서 동양그룹 관계자는 관련한 사실을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실액만 1조원
금감원 징계 예고

수사결과에 따라 산업은행은 금융 신용도에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산업은행은 STX그룹에 대한 대출 여파로 1조원이 넘는 손실을 입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산업은행은 국세청의 세무조사까지 받고 있는 실정이다.

세무전문지 <조세일보>는 지난 7월 국세청이 산업은행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산업은행이 세무조사를 받는 건 4년 만의 일이다. 국세청은 오는 11월7일까지 조사관 5명을 파견해 산업은행을 집중 점검할 계획이다. 공교롭게도 동양시멘트에 대한 특혜 의혹이 불거진 2010년부터 2012년까지의 회계 기록이 조사 대상으로 알려졌다.


홍 회장의 전임인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산은금융지주 회장)이 재임했던 2011년 산업은행은 1조4124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2012년에도 9469억원의 흑자를 냈다. 그러나 홍 회장이 취임한 2013년 산업은행은 적자로 돌아서 손실규모가 1조4474억원에 이르렀다.

통계만 놓고 보면 홍 회장이 방만 경영을 한 것으로 추론된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다. 홍 회장이 기록한 대부분의 적자는 전임인 '강만수호'의 유산이다. 금융권은 강 전 행장이 STX그룹에 대한 '묻지마' 대출로 적자폭을 키웠다고 지적한다.

산업은행에 큰 손실을 끼친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은 지난 정권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례로 그는 MB(이명박 전 대통령)의 해외순방을 수차례 수행하며 친분을 과시했다.

강 전 회장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던 2012년 산업은행으로부터 단기차입금 2300억원을 융통했다. 산업운용자금 1800억원도 확보했다. 다른 민간은행들은 앞다퉈 대출금을 줄이는 추세였는데 산업은행은 유독 '퍼주기'로 STX그룹을 도왔다. 지난 정권 비호설이 나온 배경이다. 실제로 MB의 '경제통'이자 측근으로 불렸던 강 전 행장은 "계열사들이 모두 나서서라도 (STX그룹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KDB대학 부실운영 지적
각종 구설 휘말려 곤욕
홍기택 회장 자질 시험대

결과적으로 STX그룹은 산업은행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무너졌다. 지난 5월 강 전 회장은 2조3000억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저질러 9000억원의 사기성 대출을 일으킨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STX그룹 분식회계 후폭풍은 곧장 산업은행을 덮쳤다. 지난 21일 금감원은 산업은행 전·현직 임직원에 대한 제재를 사전 통보했다. 징계 명단에는 현직 산업은행 부행장을 비롯해 전·현직 간부 18명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STX그룹이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이행하지 않았지만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분식회계 우려가 있었음에도 STX조선해양에 대한 대출액을 3000억원으로 늘려줬다"며 "산업은행에게 부실대출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징계 이유를 밝혔다.

또 선박건조 현황을 살피지 않고 거액의 선수금을 지급해 돈이 유용된 점도 문제 삼았다. 금감원은 당시 산업은행이 여신심사를 제대로 했더라면 천문학적인 손실은 없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산업은행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STX그룹 구조조정 가운데 생긴 불가피한 손실이란 것이다. 산업은행은 국책은행 자격으로 리스크를 감수했는데 이를 금융당국이 사후 징계하는 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금감원은 조만간 징계대상자들의 해명자료를 종합해 제재심의위원회에 안건을 상정할 계획이다.

동부 매각 난항
'음모론' 창궐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건 징계대상에 강 전 행장이 포함되지 않은 부분이다. 여신 총책임자이자 결정권자인 강 전 행장은 여신심사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면책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산업은행이 현재 부침을 겪고 있는 건 궁극적으로 이명박정부 때 단초가 제공됐다.

세부적으로 산업은행은 2년 전과 비교해 고졸 채용인원이 10분의 1로 줄었다. MB는 임기 중 '고등학교만 나와도 취업할 수 있다'는 정책을 들고 나와 금융권에 고졸을 채용하도록 주문했다. 하지만 불과 2년 만에 MB의 아이디어는 없던 일이 됐다.


새누리당 김정훈 의원이 산업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1년 전체 채용인원(188명)의 절반에 육박했던 고졸 사원(90명)은 2012년 120명으로 늘었다가 지난해 20명으로 급감했고, 올해 역시 15명에 그쳤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강 전 행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KDB금융대학교(이하 대학교)의 신입생 수도 감소했다. 사내 고졸사원을 대상으로 한 대학교의 신입생은 2013년 68명이었다가 2014년 45명으로 줄었고, 같은 기간 자퇴생은 1명에서 14명으로 늘었다. 덧붙여 김 의원은 "대학교 학생 수가 교육부 설치인가 학생 수 기준(교원 1인당 25명)과 비교해 미달됐다"고 주장했다.

장애인 고용비율도 문제다. 산업은행의 장애인고용비율은 1%대로 국정감사를 받는 모든 금융기관을 통틀어 가장 낮았다. 2010년부터는 장애인 법정 의무고용 비율인 3%를 채우지 못해 관련 법규에 따라 매년 의무고용부담금을 내 왔다.

새정치민주연합 김기준 의원이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산업은행은 2010년 0.8%, 2011년 2.1%, 2012년 1.5%, 2013년 1.3%, 2014년 1.3%의 비율로 장애인을 채용했다. 지난해 산업은행은 고용의무 미이행으로 3억1000만원의 부담금을 납부했으며 4년간 모두 8억4000만원의 부담금을 사용했다.

중소기업 대출 비중 감소 문제도 심각하다. 지난 2009년 산업은행의 대출 비중은 대기업 61.0%, 중소기업 39.0%로 나름 균형을 이뤘다. 하지만 5년 새 대출 비중은 대기업 76.2%, 중소기업 23.8%로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산업은행은 그간 여러 대기업들의 구조조정에 채권단 자격으로 참여했다. 현대·한진그룹을 포함해 지난해엔 동부그룹의 구조조정에 개입했다. 동부그룹의 금융권 여신은 지난달 기준 6조원 정도로 파악되는데 산업은행은 전체 여신 중 32%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동부그룹의 경영난이 가속화될수록 산업은행 역시 출혈을 피할 수 없는 구조다.


그런데 산업은행은 동부그룹을 대신해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건설 발전당진을 묶어 매각하려다 실패했다. 때문에 동부그룹은 유동성 위기를 겪었고, 비금융계열 지주회사격인 동부CNI의 법정관리 가능성이 타진되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을 맞았다.

당초 산업은행은 동부그룹의 희망과 달리 경쟁입찰 없는 패키지 인수를 포스코에게 제안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포스코가 입찰을 포기하면서 구설에 올랐다. 시간만 허비한 채 구조조정을 어렵게 만든 까닭이다.

일각에선 "산업은행이 같은 금융권인 동부화재의 경영권을 노리고 있기 때문에 구조조정을 방해하려 한다"는 음모론을 내놓고 있다. 산업은행은 강 전 행장 시절 장기적인 수익모델을 찾다가 민영화를 추진한 전력이 있다.

당시 강 전 행장은 '메가뱅크론'을 주장했다. 우리금융지주와 산은금융지주(산업은행 포함), IBK기업은행을 합병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사실상 민영화로 가기 위한 전초전 성격이 강했는데 결과적으로 여러 암초에 부딪히며 실현되지 못했다.

인사 외압설
메가 뱅크론?

흥미로운 것은 박근혜정부 들어 산업은행 민영화가 전면 중단됐다는 점이다. 박근혜정부는 정책금융을 위한 금고로 산업은행을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 경영자 입장에서 권력에 끌려다니는 등 자율성을 보장받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실제로 홍 회장은 전임에 비해 뚜렷한 '자기 색깔'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강 전 행장이 풀지 못했던 수익구조 역시 해법이 없는 상황이다.

홍 회장은 지난주 IBK자산운용 인사에 개입하고 있다는 루머에 시달렸다. 내용을 요약하면 IBK자산운용 대표로 추천된 내부인사가 홍 회장이 추천한 외부인사에 밀려 인선이 늦어지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산업은행이 타은행 경영에 관여했다는 주장이었지만 산업은행 측은 "사실무근"이라며 부인했다.

이후에도 홍 회장과 관련한 소문은 잦아들지 않았다. 계열사인 대우증권 사장 교체 과정에서 그의 이름이 등장했다. 사장 공모도 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홍 회장이 입김을 불어넣고 있다는 의혹은 복수 매체를 통해 보도됐다. 권력이 한 곳에 집중되며 벌어지는 기현상이다.

여러 정황상 홍 회장의 지위는 공고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산업은행에 대한 전방위 압박이 계속되는 건 각 사정기관의 과열된 실적경쟁으로 풀이된다. 바꿔 말하면 산업은행만큼 적폐가 많은 곳이 없다는 얘기다. 어느덧 '사면초가'에 몰린 산업은행. 이제 홍 회장은 권력의 눈치를 살펴야 살아남는 처지가 됐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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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